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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41화 (141/300)

141화

알렉시스가 전장에 복귀하자마자 본 것은.

『천상의 신이 당신에게 진노합니다.』

『천상의 신은 자신의 계약자가 볼썽사납게 패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천상의 신이 닦달합니다.』

분노 섞인 제우스의 메시지였다.

두 눈을 질끈 감는 알렉시스.

‘빌어먹을!’

통렬한 분노가 마음을 집어삼켰다.

플레이어가 된 후로, 한 번도 좌절이라는 걸 해 보지 않았다.

고유 능력인 [번개 조종]을 능숙하게 다루어서 떠오르는 신예로 인정받았고.

‘번개’라는 속성을 다루는 성좌 중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며 S급보다 더 위에 있는 ‘신왕’, 제우스가 배후성으로 선택되었다.

탄탄대로였던 자신의 인생.

그런데.

‘이렇게나 굴욕적인 건 오래간만이다.’

까득, 이가 절로 갈렸다.

“알렉시스! 괜찮으십니까?”

“꺼져.”

“예?”

“꺼지라고!”

파지직- 푸른 번개가 다가오던 그리스 플레이어의 몸통에 적중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가루로 변해 버린 사내.

곁에 있던 이들이 곁눈질로 알렉시스의 눈치를 살폈다.

“무능한 놈들.”

알렉시스는 혀를 찼다.

잠시 후, 맵에서 유진호의 위치를 확인한 알렉시스의 머리카락에서 스파크가 번쩍였다.

살기 어린 눈동자.

그리스 플레이어들은 몸을 움찔거렸다.

“당장 가지.”

“아군을 모으겠습니다.”

“멍청하긴. 위대한 천상의 신께서는 나랑 유진호, 둘의 진검 승부를 원하신다.”

“저희는 한국 플레이어들을 막을 테니, 알렉시스 님이 상대해 주시죠.”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킁, 알렉시스는 콧방귀를 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숨을 삼키는 그리스 측 대표.

알렉시스의 방자함은 그리스 측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번 승급전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서풍의 주인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갈망하는 자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공포의 주시자가 당신을…….』

알렉시스와 함께해서일까.

평소에는 거의 느껴 보지 못했던 성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했다.

서풍의 주인은 제피로스.

공포 관련 성좌는 포보스.

그 외에도 올림포스 출신 성좌들이 이번 승급전을 주목했다.

올림포스의 신왕, 제우스가 후원하는 플레이어!

알렉시스 파판드레우와 한 팀이 되었다는 이유로 성좌들의 관심을 받았다.

‘승급전에서 이기면 성좌와 계약할 수도 있다.’

C급 성좌라도 좋다.

성좌의 후원을 받으면 평범한 플레이어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 나가는 것이니.

알렉시스를 필두로 한 그리스 플레이어 집단이 섬 중심부로 향했다.

탐색 계열 스킬을 가진 플레이어가 고개를 저었다.

“유진호는 내뺐군요.”

“흥, 내가 두려워서 도망쳤군.”

알렉시스가 과장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하하, 하고 웃는 그리스 플레이어들.

알렉시스의 호언장담이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직진한다. 빚도 갚아 주고 놈들 거점도 뺏어야지.”

“유진호 플레이어가 나오면 알렉시스 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놈은 너희 수준 가지곤 안 돼. 괜히 끼었다가 죽지나 마라.”

수십에 달하는 플레이어들이 섬 동부로 넘어갔다.

언덕 위의 거점에서 대기하던 한국 플레이어들은 그리스 측의 돌발행동에 황당한 기색을 드러냈다.

“자기들 거점은 안 지키고 몽땅 온 거야?”

“아니. 저러다가 빈집털이 당하면 어쩌려고 저러나.”

플레이어들은 에르델 섬 승급전을 ‘줄다리기’에 비유하곤 한다.

밧줄 하나를 두고 양 팀이 힘겨루기를 하는 형태.

서로의 전력을 한 번에 부딪치기보다는 버티면서 힘을 소진시키는 방식이다.

거점 개수는 수십 개.

그리스 진형처럼 몰려다니면 거점을 효율적으로 지킬 수 없다.

“너희, 한국인들!”

[뇌신의 걸음]

한 줄기 번개와 함께 알렉시스가 거점 위에 나타났다.

거점에서 대기하던 플레이어 몇몇이 병기를 휘두르려는 순간.

콰르릉!

푸른 번개가 떨어지면서 한국 측 인원 대부분을 가루로 만들었다.

“내 말을 전해 줄 녀석은 하나만 있어도 되니까.”

“무슨 말을 전해 달라는 건지.”

“유진호, 그놈을 당장 여기로 불러내라.”

“알겠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겠군.”

마른하늘인데도, 벼락이 하늘에서 땅으로 꽂혔다.

거점을 지키던 마지막 플레이어가 푸른 번개에 직격당했다.

알렉시스는 쭈그렸던 몸을 일으키고는.

“전능하신 제우스의 이름으로 네놈을 심판해 주마!!”

목청을 크게 높였다.

맵에 찍힌 붉은 점이 빠른 속도로 알렉시스가 있는 위치에 가까워진다.

“더럽게 시끄럽네.”

검은 머리카락.

머리와 비슷한 어둠 자락으로 전신을 감싼 남자, 진호가 거점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발 늦게 따라온 그리스 플레이어가 알렉시스를 흘겨보고는.

스르릉- 허리께에서 칼을 꺼냈다.

“허튼짓하지 마라. 그러면 너부터 죽일 거다.”

“방해하는 자가 있을까 대비하는 겁니다.”

“흥. 보다시피 우리의 신성한 대결을 방해할 자는 없다.”

알렉시스는 양손을 살짝 올리면서 자비를 베푼다는 투로 말했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겠네.”

하아암- 진호는 하품을 하면서 침을 눈가에 살짝 묻혔다.

“그 시건방진 태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마침 나도 같은 문제를 고민했는데. 잘됐네.”

[뇌신의 걸음]

[뇌신의 정수]

알렉시스는 진호의 도발에 분노를 터트리는 대신, 스킬로 빈틈을 노렸다.

‘놈. 이번에는 잡았다!’

진호의 옆으로 이동, 뇌기를 한계까지 주먹에 응집시켜서 옆을 노렸다.

닿는 순간 번개가 해방되면서 진호의 옆구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터였을 텐데?’

알렉시스의 눈에 의구심이 감돌았다.

순간 이동 후 주먹을 내지른 것까지 기억하는데.

어째서일까.

뻥 뚫린 진호의 옆구리 대신 마른하늘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크헉.”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극통.

알렉시스는 한발 늦게 상황을 인지했다.

“내가 당했다고?”

“그렇게 뻔한 공격을 누가 맞아 주냐.”

[천안(千眼)]

[백수제왕무 - 8초식]

[비익대붕장]

알렉시스가 뇌신의 걸음을 펼치는 순간.

진호는 마력의 파동을 읽어 내서 이동 위치를 파악, 비익대붕장으로 뇌신의 정수를 쳐 냈다.

비익대붕장에 실린 힘은 알렉시스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중심 자체를 무너트렸으니.

“이런 건 무효야!”

“자신의 힘도 못 다루는 놈이.”

“내가 제대로 싸웠으면…….”

“다음에 또 와라.”

[백수제왕무 - 10초식]

[백택군림각]

콰직!

내공을 실은 구르기에 알렉시스가 즉사했다.

“아, 그쪽은 수가 많구나.”

진호는 너스레를 떨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그리스 측 플레이어들이 진호의 뒤를 쫓았다.

“보내 주지 마라!”

“일단 포위해. 소모전이라면 가능성이 있어!”

허무하게 쓰러진 알렉시스.

그리스 측 플레이어 집단은 둘의 전투를 보면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품었다.

이 자리에서 진호를 그냥 보내 버리면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없다는 것도.

“협공은 반칙이지.”

진호는 여유를 부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운류보와 전력 질주를 동시에 전개하니 그리스 측에서 쫓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집결된 한국 측 인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일단 물러난다.”

“여기서 후퇴하면 빼앗은 거점을 다 뺏기는데요?”

“지킬 수는 있을 것 같나.”

그리스 측 대표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대회전으로 이어 가면 진호한테 거점 여러 개를 뺏긴 그리스가 훨씬 불리했다.

천천히 물러나는 그리스 플레이어들.

한국 측은 그 모습을 빤히 보기만 할 뿐, 추격하지 않았다.

* * *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박장대소를 합니다.』

『올림포스의 군신은 눈치를 살핍니다.』

『하늘의 악은 당신의 무공을 세심하게 살펴봅니다.』

『천상의 신이 주먹을 세게 쥡니다.』

알렉시스를 두 번째로 쓰러트리자, 성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알렉시스.

말 그대로 완벽한 승리였다.

-첫 번째 대결 때는 왜 손속에 자비를 두었느냐?

“자비라기보다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고 했었지.”

-이리도 과감하게 나서는 걸 보면 그대의 상대는 아닌 모양이로구나.

“자기 힘도 제대로 못 다루는 애송이잖아.”

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회귀 전에는 훨씬 까다로운 상대였다.

번개와 일체화된 존재.

어마어마한 파괴력과 속도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끊임없이 맹공을 퍼부었다.

‘군주’급 바로 아래 단계인 하이 랭커 중에서도 까다롭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히던 플레이어.

지금의 알렉시스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완전 버스잖아.”

“유진호 플레이어랑 같이 미션을 하면 편하다곤 들었는데.”

“우린 가만히 있어도 승급할 수 있겠어!”

“1년 동안 승급을 못 했는데. 드디어 실버로 가는구나!”

한국 측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스에서 서부 쪽 거점들을 수습하지도 않고 몰려온 탓에 초반부터 대량으로 득점했으니.

이젠 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만 내주지 않으면 되겠습니다.”

한국 측 대표가 말했다.

“참. 그래서 말인데, 한 가지 부탁 좀 합시다.”

“말씀하시죠, 진호 님.”

“섬 중앙의 공장 지대. 그리스한테 내줄 수 있습니까?”

내 말을 들은 플레이어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예?”

하고 되물었다.

-공장 지대가 무엇이기에 저리 반응하느냐?

“더블 스코어 상태에서 뒤처지는 팀이 공장을 점거하면 워 골렘 생산이 가능하거든.”

-워 골렘? 꽤 강한 병기인가 보구나.

“전력 차이가 심할 때, 반대편에게 역전의 기회를 주는 거야.”

-저 필멸자가 놀랄 만도 하구나.

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 님, 농담으로 하신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예.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책임까지야. 어차피 진호 님 아니었으면 알렉시스한테 몰살당했을 텐데요.”

한국 측 플레이어들은 의외로 내 말을 듣고도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이름값이 올라가면 이럴 땐 편하단 말이야.

-하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조만간 움직일 거야.”

맵 기능을 활성화하고는 느긋하게 기다렸다.

그리스 측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전략적인 선택지는 많지 않다.

아니. 섬 중앙의 공장을 점령하는 것 말고는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다.

작정하고 싸웠으면 그리스 측 플레이어 전원이 몰려와도 이길 자신이 있거든.

“이제 워 골렘 말고는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았을 테니.”

-다 그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셈이구나.

“실력 차이가 많이 나서 다행이지.”

얼마쯤 기다렸을까.

붉은 점이 섬 중앙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알렉시스가 움직였다는 건 그리스 측에서 칼을 뽑았단 말이군.

-그치들은 위치가 공유되는데도 왜 움직이느냐?

“어차피 중앙 지역 점거는 숨길 수 없으니까.”

알렉시스는 그리스 측의 핵심 전력이다.

지도 공유 때문에 대기시켜도 1분이나 벌 수 있을까.

차라리 알렉시스를 무리에 포함해서 전력으로 부딪치는 게 낫다.

“우린 천천히 가죠.”

“저희는 진호 님만 믿습니다.”

한국 측 플레이어들을 대동한 채, 중앙 지역으로 향했다.

[그리스 측이 에르델 섬 분지에 있는 공장을 점령했습니다.]

[두 진형의 점수 차이가 배 이상 납니다. 워 골렘 생산이 가능합니다.]

[그리스 측은 워 골렘을 제작합니다.]

“이 안으로는 못 들어간다.”

분지 입구를 막아선 그리스 측 플레이어들.

알렉시스는 선두에서 목청을 높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공장.

방어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 앞에서 받아치는 게 최선이다.

“워 골렘이 만들어질 때까지 버틸 수나 있겠어?”

“위대한 천상의 신의 이름을 걸고, 넌 내가 반드시 막는다.”

“네 성좌가 싫어하겠는걸. 또 패배할 텐데.”

이글거리는 알렉시스의 눈동자.

나는 픽, 웃은 후 바닥에 선을 그었다.

“……뭐냐?”

“워 골렘이 완성될 때까지는 안 넘어갈 거다.”

“진심인가, 유진호?”

“내가 이길 건데 뭐 하러 거짓말을 치냐.”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알렉시스의 입가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날 상대로 이길 자신도 없었으면서 허세 부리기는.

에르델 섬에서 포식할 수 있는 유일한 정수.

워 골렘의 정수는 못 놓치지.

나는 팔짱을 낀 채,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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