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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39화 (139/300)

139화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비행기 창문 너머로 푸른 바다와 여러 섬들이 비친다.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 인도네시아가 점점 멀어져 간다.

“아. 너무 아쉽다.”

지영이가 미련 섞인 눈빛으로 창문을 흘겨본다.

“혼자 남아 있던가.”

“제자라면 스승님을 따라야죠.”

“그런 거 치고는 눈을 못 떼는데?”

“스승님이 안 계시면 귀빈 대접을 받을 수나……. 아차,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그게 진심이었구먼?

난 가늘게 눈을 떴다.

시선을 회피하는 지영이.

점점 능청스러워지는 것 같단 말이야.

회귀 전에는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적응이 안 되네.

반면에 김영수는 연신 눈썹을 꿈틀거렸다.

“형님. 그렇게 좋으세요?”

“안사람이랑 유리가 기뻐할 겁니다.”

“가장은 역시 다르네요.”

“팀장님도 결혼하면 저처럼 될 겁니다.”

“결혼 바이럴 마케팅은 사양하죠.”

회귀 전에도 다른 사람과 맺어진 적이 없는 몸이다.

누군가와 정서적인 교감을 제대로 나눠 본 적이 없거든.

입맛이 쓰군.

“근데 말입니다, 팀장님.”

“예.”

“저 두 사람은 괜찮은 겁니까?”

김영수가 뒷좌석을 가리켰다.

좌석에 얌전히 누워 있는 핑 레이와 카를라.

간헐적으로 들리는 숨소리만 아니면 죽었다고 해도 착각할 만큼,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뭐, 그 정도로 죽겠습니까.”

인도네시아를 떠나기 전까지도 대련을 벌인 두 사람.

둘 다 묘하게 의욕적이라서 힘을 과하게 썼다.

결과야 보다시피 기절 엔딩.

평소에도 조용한 카를라야 그렇다 쳐도, 핑 레이가 안 떠드니 편안하군.

귀국한 뒤에는 이틀 동안 휴가를 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승급전 준비하게 방에서 나가 있으라고 쫓아낸 것에 가깝구나.

“전 팀장님과 대련하고 싶어요.”

“지영이가 놀아줄 거야.”

“…….”

그렇게 서운하다는 눈빛 보내도 소용없다.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걸.

“스승님. 존중해요.”

“뭘?”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얘가 누구를 사춘기로 아나.”

“질풍노도의 시기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법이니까요.”

“헛소리 그만하고 나가.”

팀원들을 추방, 아니 휴가를 주고는 텅 빈 훈련장을 흘겨보았다.

뒤따라 온 닉스.

“참 요란하게도 하는구나.”

“요새 수련을 통 못 했으니까.”

“그대에게도 수련이라는 행위가 필요하느냐?”

“새로운 능력을 얻었잖아.”

나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축지를 사용합니다.]

한 걸음 만에 훈련장 끝으로 이동한 육체.

나는 턱을 만지작거렸다.

“쉽지가 않아.”

“무엇이 말이더냐?”

“스킬 발동 원리.”

융합기공으로 무공과 체술을 역어내서 만든 새로운 스킬.

축지는 회귀 전에도 습득하지 못한 스킬이기에,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지 못했다.

“만약 축지를 이해하면 무공과 체술도 결합할 수 있을 거야.”

“보상으로 얻은 스킬이 있거늘.”

“한정적이잖아.”

융합기공의 원주인인 르네.

놈은 20개에 달하는 융합 스킬을 저장할 수 있다.

그뿐이랴. 새 융합 기술을 등록하는 쿨타임도 훨씬 빨라서 융합의 폭만 놓고 보면 원본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해도 훌륭한 보상이기는 해.”

솔라 익스플로전.

축지(縮地).

둘 다 현재의 내 수준을 뛰어넘는 강력한 스킬이다.

르네처럼 융합기공을 만능열쇠로 다루진 못하겠지만, 비장의 패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한데 그 발언과는 달리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기색이로구나.”

“이왕이면 내 능력으로 만들어야지.”

회귀 전에는 걸어 보지 못한 길.

무공과 체술을 융합한 새로운 경지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지금이야 융합기공의 도움 없이는 축지를 구현할 수 없지만.

반복적으로 기술을 펼치다 보면 언젠가 감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어.”

오른손을 꽉 말아 쥐었다.

내가 타도해야 할 진정한 목표는 고신족.

놈들을 압도하려면 회귀 전의 나보다 훨씬 강해져야 한다.

“못 말리겠구나.”

닉스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훈련장 벤치에 앉았다.

“그런 계약자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 또한 여신의 책무일지니.”

“지영이랑 놀러 가도 되는데?”

“……여는 그깟 필멸자들의 사회 따위 궁금하지 않도다.”

그런 것치고는 대답이 좀 느리던데?

“아무튼 고마워.”

“가르침이 부족하구나. 고마움이라는 감정은 물질로 표현하라고 했거늘.”

“수련 끝나고 솜사탕 3개 더 줄게.”

“학습시킨 보람이 있도다.”

닉스와 극적으로 타결을 본 후, 다시 축지를 사용했다.

이틀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소득은 있었느냐?”

“아니.”

난 쓴웃음을 지었다.

결이 다른 두 기예를 하나로 묶는 것.

단기간에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감은 와.”

“호오, 여의 앞에서 허세를 부릴 필요는 없다만.”

“결과가 증명해 줄 거다.”

두고 봅시다, 여신님.

보란 듯이 축지의 원리를 이해해서 펼쳐 줄 테니.

승급전 아침이 되자, 휴가를 보냈던 팀원들이 돌아왔다.

“힘내세요, 스승님! 걱정은 딱히 안 되지만요.”

“같은 시기에 승급했는데. 분하군요.”

“다녀오면 수련해 줘요.”

“파티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네 명의 응원을 들으면서 바벨탑 어플을 켰다.

[바벨탑 접속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합니다.]

[현재 사용자가 머무는 공간은 안정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접속됩니다.]

[현재 실버 승급전이 활성화되어있습니다.]

[30층에 도전하시겠습니까?]

[Y/N]

“다녀오지.”

가볍게 인사하고는 접속 버튼을 눌렀다.

* * *

[이번 승급전은 한국 / 그리스 입니다.]

[두 국가의 인원 차이가 10% 이상 나지 않으므로 조정 없이 시작됩니다.]

[한국 - 86]

[그리스 - 81]

[바벨탑 - 30층]

[에르델 섬에 입장했습니다.]

[미션 - 승급전]

에르델 섬은 과거 마도제국에서 새로운 마도병기 및 전투 마법사 훈련시설을 설치한 곳입니다.

제국이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에는 가동을 멈추었지만, 곳곳에 위험시설과 병기들이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섬 곳곳에 있는 거점을 점거하십시오.

상대 진형보다 많은 거점을 지배하면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목표: 500포인트 적립.

▶특이 사항

-사망 시 60분 후에 전장으로 다시 소환됩니다.

-거점 점령 개수 차이가 벌어질수록 포인트 적립 속도도 빨라집니다.

1위 - 참여 인원 100% 승급

2위 - 참여 인원 50% 승급

실버 등급전도 국가 대항전으로 진행된다.

고대의 협곡과의 차이점은 1대1이라는 것과 NPC가 없다는 점.

아군 시작 지점은 섬 동부의 폐공장이다.

『천상의 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올림포스의 군신이 화들짝 놀랍니다.』

『올림포스의 군신이 천상의 신의 안색을 살핍니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광소를 터트립니다.』

-이 기운은…… 그 아이로구나!

영체로 변한 닉스가 작게 속삭였다.

성좌들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천상의 신'이라는 오만한 성좌명.

내가 아는 한, 저렇게 과시욕이 대단하면서 존재감까지 강렬한 성좌는 하나뿐이다.

“제우스.”

『천상의 신이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올림포스의 군신이 쩔쩔맵니다.』

올림포스 신족의 지배자.

크로노스를 위시한 티탄들과의 전쟁, 티타노마키아에서 승리하고 현시대를 연 위대한 신왕.

매번 나한테 추파(?)를 던지는 아레스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아레스 녀석이 쩔쩔맬 만도 하지.

-후훗, 아레스는 예전부터 저 아이를 어려워했느니라.

제우스를 아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여신님밖에 없을 겁니다.

이미 신왕급 성좌가 셋이나 나를 주목하는 상황.

항렬로도, 성좌의 급으로도 높은 제우스까지 나타났으니 아레스가 안달이 날 만도 했다.

내가 볼 때에는 괜한 고민 같지만.

왜냐면 이맘때쯤…….

『천상의 신이 당신에게 제안을 합니다.』

『천상의 신은 이번 무대에서 자신의 계약자와 당신 중 누가 강한지 겨루어 보고 싶어 합니다.』

역시.

제우스의 관심사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 소속 플레이어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근본인 나라.

회귀 전에도 제우스가 관심을 보였던 나라는 그리스뿐이었거든.

-제우스의 계약자라. 만만치 않은 상대로구나.

“걸어온 싸움은 마다하지 않지.”

『천상의 신이 당신의 호기로운 모습에 기뻐합니다.』

『천상의 신은 탑 시스템에 개입을 요청합니다.』

『시스템이 해당 사항이 미션에 미칠 영향을 판단합니다.』

『탑 시스템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천상의 신이 지목한 두 사람이 제안에 동의하면 서브 미션이 추가됩니다.』

“동의한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어차피 싸워야 할 적.

무려 성좌께서 보상을 챙겨 주고 싶어서 안달 났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서브 미션 - 신의 대리자

성좌 [천상의 신]은 배후성 계약을 맺은 플레이어와 당신 중, 누가 더 강한지 시험하고자 합니다.

승급전이 진행되는 동안 맵에 서로의 위치가 공유됩니다.

▶목표: 제우스의 계약자 제압.

▶특이 사항: 승급전을 진행하는 동안, 킬 수가 더 높은 측이 승리합니다.

미션 현황을 활성화하자, 붉은 점이 섬 반대편에서 아른거린다.

찾기는 쉽겠어.

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요.”

“아, 유진호 플레이어님이다!”

호들갑을 떠는 상대.

거참, 알아주는 건 고마운데 사람 말 좀 합시다.

“먼저 갈 테니 천천히 오십쇼.”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고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한국 측 플레이어들이야 알아서 하겠지.

내 무력을 믿는 건지 태클을 거는 사람도 없었다.

유명해지면서 편해진 것도 있다니깐.

전력 질주를 사용한 채로 섬 중앙을 향해 곧장 나아갔다.

얼마쯤 뛰었을까.

맵에 찍혀 있는 붉은 점도 중앙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먼저 섬 중심부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지 형태로 된 중심 지역.

야트막한 산지 안쪽으로 커다란 공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길 점거하면 워 골렘 생산이 가능했지?

분지에 걸터앉아서 기다리던 중, 마력의 파동이 눈에 아른거렸다.

-저 아이로구나.

닉스가 정면을 가리켰다.

삐쭉삐쭉 선 금발.

옛 그리스 철학자들이 입을 것 같은 하얀 천으로 몸을 감싼 사내가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사내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삿대질을 했다.

“감히, 나 말고도 신왕의 관심을 산 플레이어가 너냐?”

보자마자 욕이라.

역시.

회귀 전의 기억과 동일한 녀석이다.

“잘됐군.”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할 것이지. 뭐가 잘되었단 말이냐!”

“죄책감 없이 두들겨 팰 수 있어서.”

제우스의 계약자, 알렉시스 파판드레우.

놈은 멸망의 시대 때 지구를 등지고 떠난 배반자다.

“뭐, 뭣이?”

“방금 실언은 못 들은 걸로 해 줄게.”

이제부터 너한테 더 큰 결례를 저지를 예정이니까.

서로 비긴 걸로 치자고.

[축지를 사용합니다.]

[백수제왕무 - 7초식]

[현무제암고를 사용합니다.]

단걸음에 알렉시스의 앞으로 이동, 오른발을 축 삼아 회전하면서 놈을 세게 밀쳤다.

콰앙!

충격음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알렉시스.

“일어나. 이제 시작이야.”

나는 흉흉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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