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쇼거스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고대]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근력 + 8]
[맷집 + 15]
[스킬 - 액화가 추가됩니다.]
[액화]
등급: ★★★
분류: 액티브
사용자의 신체를 점성 있는 액체로 만든다. 물리 공격에 상당한 저항력을 지니나, 속성 공격에 취약해진다.
액화 상태에서는 전신으로 음식 섭취가 가능하다.
육체를 슬라임처럼 만드는 스킬.
이매망량한테서 얻은 ‘유체화’와 비슷하지만, 장·단점이 있다.
유체화는 물리 공격이나 지형지물을 완전 무시할 수 있지만, 액화 상태에서는 일부를 흘려보내는 정도다.
대신 액화 상태에서는 물리력 행사가 가능했고.
“괜찮군.”
아가미.
프리 워터.
그리고 액화.
이 정도면 수중전의 페널티가 없어졌다고 해도 무방했다.
[쇼거스의 정수가 포식 능력과 공명합니다.]
[포식 시 획득하는 능력치가 20% 증가합니다.]
회귀 전과 동일한 시너지 효과.
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액화라는 건 ‘슬라임’의 본질을 그대로 반영한 스킬이다.
오로지 먹어 치우는 데만 관심 있는 괴물.
‘먹는다’는 행위는 내 고유 능력인 포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튜토리얼에서 마주했던 슬라임의 정수, ‘용해’도 포식 능력에 어드밴티지를 주었듯.
“운이 좋군.”
외우주를 투영한 게이트는 흔치 않다.
회귀 전보다 훨씬 앞당겨진 쇼거스와의 조우.
시너지로 추가된 포식 효율 증가는 [혼원룡의 심장]으로 쌓는 능력치에도 가산된다.
좋아. 마음에 들어.
[심해인의 거처 게이트의 모든 괴물을 쓰러트렸습니다.]
[게이트를 닫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네크로노미콘(사본)의 조각이 주어집니다.]
검은 책자.
언뜻 보기에는 아르스 게티아와 흡사해 보이지만, 품고 있는 기운이 훨씬 흉흉했다.
외우주, 공허의 힘을 담은 글귀.
“이건…….”
“네크로노미콘. 외우주의 존재들에 대해 기록해 놓은 저서다.”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구나.”
“외우주는 섭리가 다르니까.”
난 네크로노미콘 일부를 아공간에 넣었다.
이건 오래 봐서 좋을 것 없거든.
쇼거스의 정수와 네크로노미콘(사본) 일부.
얻은 게 많은걸?
거기에 레벨도 엄청나게 올랐다.
“착한 일을 하면 보답받는다고 하더니 진짜네.”
“그대의 표정은 선행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만…….”
“내가 뭘 어쨌다고?”
“거울을 보면 알 것이니라.”
한탄하는 닉스.
저 여신님은 내가 웃을 때면 꼭 저러더라.
“영수 형님, 기록은 잘됐죠?”
“물론입니다. 편집은 좀 해야겠습니다만.”
김영수가 손을 흔들었다.
작은 수정구.
게이트 공략 과정을 모두 담은 영상기록 수정이다.
탑이 실시간 중계가 되기 전만 해도 분석용으로 들고 가던 아이템.
이제는 게이트 공략 때 기록용으로 많이 쓰이곤 한다.
“뭘 편집까지 해요? 괜찮아요.”
“그러면 팀장님의 전력이 모두 노출될 건데요.”
“탑 오르다 보면 다 까발려질 건데. 사릴 필요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수정구를 넘겨받고는 촬영본 일부를 훑어보았다.
바다 위로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심해인들.
쇼거스의 끔찍한 형상.
일행이 벌였던 사투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잘 찍었는데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카메라는 익숙해서요.”
허허로이 웃는 영수 형님.
이런 곳에도 재주가 있는지는 몰랐네?
팀 단위로 공략할 때 촬영을 부탁해도 되겠어.
“귀빈 대접 받으러 갑시다.”
난 히죽 웃으면서 게이트 너머로 발을 디뎠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이 영상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구먼.
* * *
역천 팀은 게이트 공략 후, 김영수가 촬영한 수정구를 인도네시아 정부에 전달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여러 전문가를 초빙.
공략 과정을 분석하며 브레이크 발생 시 피해 규모를 추정했다.
“이런 괴물은 데이터에 없는데?”
“허, 악랄하군. 이러니까 생존자가 나올 수 없었지.”
“게이트 브레이크가 발생했으면 위험했습니다.”
“하필 위치도 해변이라서. 괴물들이 바다로 넘어갔으면 피해가 어느 정도였을지.”
물속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괴물들과 외신의 힘에 의해 보호받는 바다.
그리고 쇼거스까지.
“라또르만으로는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처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만약 저 괴물들이 반다해(海)에 쏟아졌다면…….”
“최소로 잡아도 부루섬은 이계화가 되었겠죠.”
인도네시아 플레이어를 총괄하는 협회장의 얼굴이 새카맣게 물들었다.
반면, 외교부 차관에 퍼지는 은은한 미소.
두 사람은 [심해인의 거처] 게이트 대응 방침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타국의 플레이어에게 의뢰를 해서라도 위험 요소를 제거하자고 했던 게 외교부의 입장.
협회장은 브레이크 사태까지 기다렸다가 플레이어들을 동원하자고 주장했다.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마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증폭되어서 최소 몇 개월 동안 사람이 지낼 수가 없게 되지만, 부루섬 전체의 인구가 많지 않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외교부의 대처가 현명했군요.”
인도네시아 대통령, 마루프가 입을 떼었다.
“대통령님께서 과감하게 판단을 내리신 덕분입니다.”
“자국의 안위를 다른 나라 사람에게 맡긴다는 발상, 쉽게 받아들일 순 없었죠.”
허허, 하고 짧게 웃는 외교부장관.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한자리에 모인 장관들을 훑어보았다.
“나는 부루섬과 같은 일이 또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그건…….”
말끝을 흐리는 플레이어 협회장.
“우리나라의 플레이어 수준은 높지 않으니. 더 예산을 편성하는 게 우선이겠군요.”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각하.”
“또한, 우리 수준에서 대응할 수 없는 게이트가 열렸을 땐 타국의 지원도 서슴없이 받아야 합니다.”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게이트 관리는 나라의 치안과도 연관된다.
1차 대침식 이후, 전 세계에 새롭게 정립된 상식.
일국의 대표가 자국의 안전을 다른 나라에 맡기자는 발언을 한 것이다.
“조금만 더 예산과 시간을 주신다면 우리나라 플레이어들도…….”
“그러다가 이런 꼴이 나지 않았소?”
대통령은 한숨을 푹 쉬고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안전이오. 또한, 이번 선택이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어떤 기회 말씀이십니까?”
“한국의 플레이어들을 대우해 줌으로써, 우리의 입장을 전 세계로 퍼트릴 수 있지 않겠소.”
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 * *
보고르 궁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근방 여러 섬들을 식민지배할 때 세워진 건물이다.
이후 영국의 지배와 인도네시아 독립 이후에도 대통령 관저로 쓰이며 국정을 운영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장소.
지영이가 눈을 크게 뜬 채로 궁을 둘러보았다.
“와, 세상에.”
“파리 들어가겠다.”
“스승님은 안 놀라우세요?”
“놀라울 게 있나.”
난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대통령 표창이라고요!”
“섬 하나를 구해 줬잖아. 이 정도 대우는 당연한 거야.”
“아니.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아니고 타국 사람이잖아요. 근데 이렇게까지 대접을 해 주다니!!”
흥분하는 지영이.
저런 상태가 되면 누가 말려도 소용없으니 지칠 때까지 두자.
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과감하게 나선 건 사실이다.
대통령 표창이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상은 아니니까.
“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양반이네.”
“스승님,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냐. 혼잣말.”
과감하군.
이걸 기획한 사람이 대통령 본인이든, 보좌진이든 간에 파격적이다.
심해인, 그리고 외신.
게이트 공략 정보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인도네시아의 입장까지 표명하는 날카로운 수다.
거기에, 내 유명세까지 활용하면 금상첨화.
누구 솜씨인지는 몰라도 대단하네.
표창을 받기 전,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간단한 예절교육을 했다.
“여러분은 한국의 얼굴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난 한국인이 아니라 위대한…….”
빠아악!
핑 레이의 고개가 앞으로 숙여졌다.
“그렇게 인사하면 된다.”
“으그그극.”
눈이 붉어진 채로 노려보면 어쩌자고?
원망 섞인 핑 레이의 눈빛을 무시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커다란 홀.
인도네시아 국기 아래에는 대통령이 서 있었고, 양복을 입은 이들이 양옆에 도열했다.
입구 쪽 프레스 석에서는 기자들이 셔터를 누르기 바빴고.
“으으으, 긴장해서 속이 안 좋아.”
지영이가 우는소리를 했다.
“이럴 때일수록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어야 하느니라.”
“난 체질상 그게 안 맞다고.”
티격태격하는 닉스와 지영이를 흘겨보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과연. 이 무대를 준비한 건 대통령 본인이었군.
한국 대사관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양복 입은 사람들 대부분이 장관급이다.
대통령이 직접 불렀다는 증거.
무수한 눈빛이 나를 향해 쏟아졌지만, 긴장 하나 안 하고 대통령 앞까지 걸어갔다.
“유진호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허리를 숙였다.
“향신료 제도의 영웅을 이렇게 만나는군요.”
“예?”
“당신이 구해 준 섬, 아니 섬들은 옛날에 향신료 제도라고 불렸습니다.”
그야 알고 있죠.
단, 회귀 전과는 다르게 ‘비극’ 대신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니까 당황스러운 거지.
“영웅이라고 불릴 만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국민과 영토를 구해 주었으니 충분히 영웅이라고 불릴 만하지요.”
“과찬이십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표창 외에도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했다.
언제, 어느 때 방문해도 국빈 급 대우를 약속했고.
큰 의미는 없지만 무인도 하나를 팀 이름 앞으로 주었다.
그뿐이랴.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서한을 보내 감사를 표하고 보상금도 두둑하게 쥐여 주었다.
“조금 과하군.”
“우리가 한 일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 아닌가요?”
“뭐, 틀린 말은 아니다만.”
나는 말끝을 흐렸다.
플레이어 우대 정책의 일환.
그 간판으로 우리 팀을 이용하겠다고 하니, 이쪽도 최대한 누려 주지.
인도네시아 플레이어 협회도 우호적이었다.
“게이트 공략이라니. 진호 플레이어님의 정의로운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두 눈을 반짝이는 협회 요원.
이런 오해는 안 풀어 주는 게 좋겠지?
국빈 대접을 받는 와중에도 탑 미션과 게이트를 공략했다.
심해인의 거처에서 레벨을 145까지 올린 덕에, 승급전 조건을 맞추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버 승급전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을 때.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계 레벨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경험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다음 등급으로 올라가야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난 브론즈의 최대치인 150레벨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