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바위로 만든 태양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고대]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맷집 + 15]
[마력 + 19]
[스킬 - 솔라 스피어가 추가됩니다.]
[솔라 스피어(Solar Sphere)]
등급: ★★★
분류: 액티브
마나로 태양의 열기를 구현한다. 구체 형태로 뭉쳐진 열에너지는 집중, 혹은 사방으로 펼칠 수 있다.
상당한 마나를 소모한다.
화르륵!
재배열한 마력으로 구현한 마력 태양.
이글거리는 화염이 손바닥 위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태양의 힘이 내 손 안에 있다.”
“꺼림칙한 마나로구나.”
닉스가 솔라 스피어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밤과 대척점을 이루는 빛.
마나로 구현했다지만, 하늘 위에 떠 있는 태양과 흡사한 파동을 지닌 구체다.
펼치거나 집중하거나.
내가 원하는 형식으로 방출할 수 있어서 응용력도 뛰어났다.
▶히든 미션 - 유적의 수호상을 통과했습니다.
▶공헌도
1. 유진호(100%)
▶수호상 공략에서 압도적인 활약상을 선보였습니다.
▶공헌도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보상으로 태양석이 주어집니다.
[태양석]
등급: 레전드
분류: 촉매
내구도: 150/150
항성의 힘이 담긴 강력한 광물입니다.
각종 장비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면 열기를 담아 낼 수 있으며, 화염 마법과 관련하여 촉매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입가에 감도는 미소.
태양석은 바벨탑 전역을 통틀어도 구하기가 힘든 강력한 촉매다.
이건 쓸데가 따로 있지.
‘바위로 된 태양’이나 ‘아이언 슬러그’의 정수도 그렇고.
이번 미션에서는 얻어 가는 게 참 많아.
태양석을 욕망의 주머니에 챙겨 두고는 다음 층 도전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올림포스의 군신이 당신에게 제안을 합니다.』
『올림포스의 군신은 26층 미션의 난이도를 대폭 강화하는 대신, 당신에게 합당한 보상을 치러 주겠다고 합니다.』
어럽쇼?
아레스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 * *
진호가 25층 미션을 진행하고 있을 때.
올림포스 소속 성좌들이 머무는 천공의 영역에서는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콰앙!
“또 아레스인가요?”
“요즘 자주 저러는군요.”
“탑에서는 필멸자들의 세계처럼 깽판을 칠 수 없으니까.”
“하여간, 신왕의 장자다운 품위가 없네요.”
“신왕께서도…… 커흠.”
올림포스 신들은 글라디우스가 세워진 신전을 힐끗 보더니 제 갈 길을 갔다.
다른 신들이 혀를 차든 말든.
아레스는 연신 발로 지면을 차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계약을 빨리 했었어야 했어!”
최근 아레스의 신경을 긁는 건 딱 하나다.
유진호.
튜토리얼 때 마주쳤던 신성.
그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본 성좌는 바로 자신이었다.
하지만.
“감히 내 계약자를 넘보려고 작당을 벌여?!”
진호가 탑을 오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수많은 성좌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천마(天魔).
만마전의 주인, 바알.
애시르 신족의 왕, 오딘.
신왕급 성좌만 무려 셋이다.
아레스와 동급인 S급 성좌도 넷이나 붙어 있고.
그 아래 등급 성좌들은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었다.
“형님도 참. 너무 간만 보시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빈 의자에 홀연히 나타난 헤르메스.
아레스의 표정에서 노기가 아른거렸다.
“올림포스 신왕의 적자인 내가 간을 보았다고?”
“맞죠. 그 필멸자를 형님의 품에 거두려고 하셨으면 가호도 좀 주시고, 아이템도 내려 주셨어야지.”
“그렇게 베푼다고 해서 유진호가 수호성 계약을 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인색하시니까 이렇게 되는 겁니다, 형님.”
헤르메스가 유들유들하게 웃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그 혀를 더 놀리지 말거라.”
아레스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감돌았다.
“아이고, 이 아우가 기가 막힌 계책을 가지고 왔는데. 죽으면 말할 수 없으니 안타깝네요.”
“계책이라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격언이 있잖아요.”
까드득.
아레스의 두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격렬한 소리.
헤르메스는 눈치를 슬쩍 살폈다.
‘이야, 좀 더 건드렸으면 진짜로 터졌겠네.’
전쟁의 신 아레스.
올림포스에서 싸움으로 그를 이길 수 있는 성좌는 손에 꼽힌다.
아레스가 폭발하면 목숨이 위험할 거다.
헤르메스는 그 스릴을 즐겼다.
어느 상황에서도 ‘유희’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성좌.
아레스를 도발한 것 또한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방금 내뱉은 말은 철회하지.”
“감사합니다, 형님.”
“이제 말해 봐라. 네가 생각한 비책이라는 게 뭔지.”
아레스가 분을 식히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만약, 그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도발한 대가를 어떤 식으로든 치르게 해 줄 것이다.
‘……라고 형님은 생각하겠지.’
헤르메스는 히죽 웃고는 입을 떼었다.
“그 필멸자가 형님의 위대함을 체험하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말이야 참 쉽구나.”
“후후, 그 방법도 생각해 왔죠.”
“뜸 들이지 마라.”
“성미도 급하시지.”
헤르메스는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26층의 미션 테마가 뭔지 아십니까?”
“내가 고작 탑의 구조 따위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이 아우가 모두 설명드리려고 했죠.”
26층 미션은 [고난의 길].
각 신들의 사회에 존재하는 ‘지옥’을 일부 구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성좌들이 탑 시스템과 타협하면 난이도를 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미션 난이도를 올려서 뭘 하려고?”
“유진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야죠.”
궁지에 빠진 진호에게 가호를 선사하고 수호성까지 제안하자는 의미.
아레스가 비로소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동생이다.”
수정구를 집은 아레스는 곧바로 탑의 관리자에게 미션 개입 요청을 했다.
헤르메스의 입가 끝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역시 형님이야.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니까.’
그가 아레스를 부추긴 목적은 하나. 오로지 재미를 위해서였다.
파격적인 행보로 여러 성좌들의 시선을 끈 진호.
진호의 미션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성좌들에게도 전해질 것이 분명했다.
탑 시스템이 침묵한다고 해도.
왜냐면.
‘내가 퍼트릴 거니까.’
바벨탑과 연결된 차원은 수십 개.
여러 차원의 플레이어들을 관찰했지만, 진호만큼 파란을 일으킨 자는 극소수였다.
천마나 바알이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헤르메스는 숨죽인 채 웃었다.
* * *
나는 26층 도전을 잠깐 동안 보류했다.
“영웅이 되려면 시련은 필수. 아레스가 그대를 크게 보는 듯하구나.”
“글쎄…….”
애매하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회귀 전에도 종종 마주한 적 있는 성좌, 아레스.
비슷한 속성을 지닌 아테나와 대조적이게 지략이나 머리를 굴리는데서 무척 약한 편이다.
이건 뇌까지 근육으로 된 아레스의 머리에서 나올 제안이 아닌데?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올림포스의 군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지혜의 탐구자도 미션 개입에 관여하고자 합니다.』
『하늘의 악이 흥미로운 눈으로 이 상황을 지켜봅니다.』
신왕급 성좌 셋이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다.
오호라.
이제 상황 파악이 좀 되는군.
“또, 또 그 음흉한 미소를 짓는구나.”
“내가 뭘 어쨌다고.”
“이토록 많은 성좌들이 그대에게 시련을 부여하고자 하다니. 여가 계약자를 보는 눈 하나는 탁월하다니까.”
닉스는 콧대를 추켜세웠다.
이 양반아, 그럴 때는 의심부터 해야지.
아레스가 저 많은 성좌들을 움직였을 리가 없잖아.
나랑 수호성 계약을 맺고 싶어서 눈이 벌게져 있는데, 남 좋은 일을 벌이겠나.
이 사달이 난 건 누군가가 아레스를 부추겨서일 가능성이 크다.
헤르메스.
그 양반이겠군.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참았다.
수많은 성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 만큼, 말 한마디 내뱉는 것도 신중해야했다.
『올림포스의 군신이 분노를 표합니다.』
『올림포스의 군신은 이번 미션에 개입하는 건 자신뿐이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지혜의 탐구자가 26층 미션에 개입합니다.』
『하늘의 악이…….』
…….
신왕급 성좌들은 아레스의 말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미션에 개입하는 신왕급 성좌들.
올림포스의 군신 정도면 대단한 성좌이긴 해도, 저 셋한테는 조금 꿀리지.
[성좌들이 개입하면서 미션 난이도가 대폭 상향되었습니다.]
[탑 시스템이 형평성을 고려합니다.]
[이번 미션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일반/고난이도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야, 회귀 전까지 포함하면 탑을 수십 년 동안 들락거렸는데, 이런 건 또 처음이다.
성좌가 하나도 아니고 넷이나 개입해서 미션 난이도를 올리는 전대미문의 사태.
“이걸 도전 안 하고 어떻게 참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전 버튼을 꾹 눌렀다.
하얗게 물드는 시야.
[바벨탑 - 26층]
[헬의 정원에 입장했습니다.]
[미션 - 고난의 길]
여러 세계의 험지를 걸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십시오.
총 다섯 구간으로 이루어진 코스 중, 셋 이상 통과하면 성공으로 인정됩니다.
성좌들의 개입으로 코스의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목표: 세 지역 이상 통과.
▶특이 사항 - 다수의 성좌 개입
눈을 감았다 뜨니,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평야가 나타났다.
휘이이잉-! 냉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피부를 강타한다.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몸.
그러고 보니, 회귀한 시점이 전역 직후였지?
군 생활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지만, 몸은 추위를 기억했다.
“더럽게 춥네.”
“ㅇ, 이, 이 정도 추, 추위는 아, 아무것도…….”
“영체로 변해. 그 육체로는 헬의 추위에 버틸 수 없어.”
닉스는 군말 없이 영체로 돌아왔다.
[현재 당신의 위치는 헬의 정원입니다.]
[냉기 Lv 128가 적용됩니다.]
[체력 소모량 30% 증가]
냉기야 그렇다 쳐도 체력 소모 페널티까지 붙다니.
아주 악랄하게 미션을 바꿔 놨어.
-참으로 혹독한 곳이로구나.
“원래 이러지는 않아. 다 성좌들의 변덕 때문이지.”
니플헤임.
여신 헬이 다스리는 ‘아홉 왕국’의 지옥이다.
이 코스를 꾸민 건 오딘이겠지.
『지혜의 탐구자가 흥미를 드러냅니다.』
빌어먹을 영감 같으니라고.
나는 하늘을 노려본 후, 앞으로 발을 떼었다.
무릎까지 푹 빠지는 다리.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내리고, 설상가상으로 바람까지 불어 댔다.
눈발이 거센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대여, 괜찮으냐?
“이 정도야 뭐.”
스톤 스킨과 가시 갑피로 전신을 감싸서 체온 유출을 막았다.
여기서 메탈 반사 장갑을 썼다가는 더 추워질걸.
“처음부터 세게 나오는데.”
-이 눈보라를 헤치고 나아갈 방도가 있느냐?
“원래는 없었는데 생겼어.”
나는 씩 웃었다.
손바닥 위로 재배열되는 마나.
[솔라 스피어를 사용합니다.]
이글거리는 화염을 공중으로 던진 후, 응축된 열에너지를 일제히 해방했다.
화아아악!
공중에 떠오른 작은 태양.
솔라 스피어 근처에서 나부끼던 눈이 모두 녹아내렸다.
난데없이 쏟아지는 비.
저걸 맞았다간 추위에 체온을 싹 뺏기겠지?
극야로 막을 형성해서 소나기를 막았다.
“이 마법을 이렇게 쓰네.”
역시.
쓸모없는 정수는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