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28화 (128/300)

128화

내가 승부수를 띄운 이유는 간단했다.

암영추혼검으로 신준석의 권기를 뚫어 냈기 때문.

언뜻 보기에는 둘이 대등하게 겨루는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반대였다.

여력을 두고 싸움에 임하는 신준석에 비해, 나는 한계 이상으로 힘을 끌어내는 중이었으니.

-지켜볼 수만은 없구나. 전력으로 가겠느니라.

“아냐. 비장의 수는 아껴 둬.”

암영추혼검.

호문쿨루스의 육체를 얻으면서 닉스에게도 추가된 스킬이다.

다만.

닉스는 보유 내공이 적어서 암영추혼검을 전력으로 펼칠 수 있는 게 한 번뿐이다.

내 극야와 합일을 이루었다고 해서 내공까지 쓸 수 있진 않거든.

만약 그랬으면 바로 주화입마에 걸릴걸?

-알겠도다. 여의 힘이 필요하면 바로 말하여라.

파팟!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신준석의 ‘간격’에 들어가기 직전, 몸을 홱 돌렸다.

파르르 떨리는 눈가.

나는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신준석의 주위를 빠르게 돌았다.

“그 기술, 지속시간이 짧은 걸로 아는데 괜찮겠나?”

나는 대꾸하는 대신, 상대의 눈동자를 꾸준히 관찰했다.

여전히 작용 중인 [단탈리온의 환영].

신준석이 어떤 환상을 보고 있는지 알진 못하지만.

그의 초점이 흔들리는 것만으로 저주의 효과가 여전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운류보로 현란하게 움직인 건 저주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

그리고.

내가 기다리던 ‘빈틈’이 드러났다.

[백수제왕무 - 1초식]

[응룡황권을 사용합니다.]

파츠츠츠!

검은 기류가 팔뚝을 뒤덮는다.

이전처럼 불완전한 형상이 아닌, 완벽한 권기상인의 경지였다.

환영을 떨쳐내느라 한발 늦게 내 접근을 알아챈 신준석은 응룡황권을 보더니.

“권기?!”

화들짝 놀라면서도 본능적으로 폭호신권을 펼쳤다.

흑색 기와 푸른 기의 충돌.

퍼어엉!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것은 신준석이었다.

“어떻게…….”

“제가 익힌 게 절정무공이라서 그렇죠.”

폭호신권은 일류 무공.

반면, 내가 익힌 백수제왕무는 절정무공이다.

초식에 담긴 묘리와 깊이만 놓고 보면 신준석보다 한 수 위라는 뜻.

어설프지만 수라마령심공으로 백수제왕무의 힘을 강제적으로 끌어올려서 권기까지 구현해 냈다.

회귀 전의 깨달음이라면 권기상인(拳氣傷人) 너머의 경지, 강기도 펼칠 수 있지만.

무공의 성취도가 낮아서 편법까지 써야 겨우 권기를 펼치는 게 가능했다.

“정말이지. 끝을 알 수가 없군.”

[폭호신권 - 12초식]

[호왕권]

금색으로 빛나는 주먹.

아까도 마주한 적 있는 초식이다.

무언가에 닿는 순간 기를 해방시켜서 폭발시키는 기예.

스스슷!

내 그림자가 꿈틀거리더니, 문어가 먹이를 낚아채듯 수십으로 흩어지더니 호왕권을 휘감았다.

“아까도 충격을 모두 해소하지 못했을 텐데?”

“그건 봐야 알죠.”

닉스의 극야 컨트롤은 나보다 몇 배나 뛰어나거든!

지근거리에서 폭발한 호왕권.

극야의 힘은 몇 번이고 찢어졌다가 봉합되기를 반복하며 신준석의 권기를 흡수했다.

폭발하면서 위력을 거듭 증가시키는 초식.

닉스는 극야를 운용해서 호왕권의 위력을 감소시켰다.

“이럴 수가?”

“같은 수에 두 번은 안 당합니다.”

뭐, 내가 한 건 아니고 여신님의 솜씨지만.

하지만.

두 초식을 파훼한 걸로 승기를 잡지는 못했다.

신준석은 여러 저주에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중심을 잃지 않았으니까.

연신 허공에서 부딪치는 손.

난 [백수제왕무]의 여러 초식으로 몰아붙였다.

권(拳), 장(掌), 조(爪).

전설적인 동물들의 움직임을 본떠 천변만화하는 동작들.

반면 폭호신권의 초식들은 우직했다.

기 운용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 오직 주먹으로 승부했다.

스펙에서는 신준석이 한 수 위.

초식 운용 능력 및 깊이에서는 내가 앞섰다.

악귀의 분노를 사용한 후에야 얼추 균형이 맞춰진 상황.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극야의 힘이 변칙적으로 파고들었지만, 결정적인 수가 되진 못했다.

하나둘씩 쌓이는 상처.

단단한 신준석의 육체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그는 여전히 침착함을 잃지 않고 내 공격을 받아쳤다.

여기서 변수를 만들어 낼 방법은 하나뿐.

[공허의 거울을 사용합니다.]

[오크의 흔적이 거울에 비쳐집니다.]

[혼에 기록된 형태로 변환합니다.]

[사용자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지속 시간이 1시간으로 설정됩니다.]

[근력이 40% 상승합니다.]

투투투툭!

피부가 초록색으로 물들고, 한계까지 부풀어 오른 근육이 더 커졌다.

늘 침착하던 신준석의 눈동자에서 처음으로 드리운 당혹감.

“오크……?”

콰앙!

서로의 주먹이 정면으로 부딪쳤을 때, 신준석의 자세가 처음으로 무너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니.

남의 밑천을 다 털어 가는군.

[백수제왕무 - 7초식]

[현무제암고(玄武擠巖靠)를 사용합니다.]

오른다리를 축 삼아 전신을 회전, 주춤거리는 신준석을 밀쳐 냈다.

쿵!

진각을 밟으면서 태세를 정비하려고 하지만.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결정적인’ 때다.

“닉스!!”

-괄목하라, 필멸자들이여, 이게 바로 여의 힘이니라!

[어둠 지배]

[암영추혼검]

흑검 다섯에 깃든 내공이 폭발적인 기세로 솟구친다.

‘밤’ 그 자체인 닉스.

무공의 이해도는 낮지만, 그걸 압도하는 ‘밤’의 성질이 암영추혼검의 파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검기(劍氣).

흑검에 맺힌 푸른 기운이 신준석에게 쇄도했다.

푸아아악!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닥친 암흑 칼날이 신준석의 육신을 베어 낸다.

한계까지 단련한 외공도.

근육 한 올 한 올에 스며든 내공도 소용없었다.

[플레이어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공격입니다.]

[결계가 작동합니다.]

우우웅!

트레이닝 센터에 설치된 방어 마법이 신준석에게 적용되었다.

극야의 힘을 밀어내는 초록색 파장.

신준석은 피를 흘리면서도 겨우 중심을 잡았다.

“후, 보호막이 아니었으면 죽었겠어.”

“엄살 부리지 마시죠.”

“후배님, 이렇게 뼈가 드러나는데 엄살이라고 하긴 그렇지 않나?”

“치명상은 아니었잖습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절반의 성공.

트레이닝 센터에서 개입하지 않았어도, 방금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을 거다.

뼈가 드러나는 상처라고?

신준석 정도의 플레이어라면 [전투속행] 같은 스킬을 하나씩은 익혔을 터.

“후배님이 이렇게까지 빨리 강해질 줄은 몰랐군.”

드드득.

뼈가 훤히 드러난 팔인데도, 태연하게 주먹을 쥐었다.

-저 아이, 멀쩡하게 움직이는구나.

“봐 봐, 멀쩡하다니까.”

뼈째로 깔끔하게 베었으면 모를까, 이 정도로는 전투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았을 거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변수가 되겠지.

근데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거든.

난 두 손을 위로 올렸다.

“상처를 입은 건 나인데 왜 갑자기 손을 올리나?”

“이 공격이 비장의 수였거든요.”

닉스와의 합동 공격.

홀로 암영추혼검에 내공을 싣는 건 가능하지만, 저만한 속도와 정교함은 불가능했다.

정직하게 흑검을 휘둘러 봐야 신준석이 맞아 줄 리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 항복합니다.”

신준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 *

우우웅!

하얀 빛이 극야가 만들어 낸 상처에 스며든다.

빠르게 아무는 상흔.

신준석은 기이하다는 눈빛을 띠었다.

“도대체 무슨 능력을 그렇게 많이 다루는 건가?”

“제가 다재다능하죠.”

“부정할 마음은 없지만 왠지 얄밉군.”

“원래 잘난 사람은 다 시기와 질투를 받는 법이니까요.”

신준석이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더 떠들었다가는 주먹이 나를 향할 것 같으니 그만하자.

“선배님의 투로는 너무 올곧습니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투로가 올곧다?”

“정직해서 어디를 노릴지가 눈에 보인다고요.”

“나름 신경을 쓴다고 생각하는데.”

“멀었습니다. 주력 무공도 일류 수준이잖아요.”

일류는 절대로 낮지 않은 경지.

그렇지만, 무공 사용자로 국내 랭킹 10위 안에 드는 실력자의 성명절기라고 보기는 좀 어려웠다.

“이 무공이 나하고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러면 개량을 하시든 해야죠.”

“안 그래도 후배와의 대련에서 감이 왔다.”

“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선배님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어요.”

참견이 과하다고 화를 낼 법한 상황.

신준석은 분노를 터트리기는커녕 묵묵히 내 말을 들었다.

회귀 전에도 무공에 대해서는 진심인 사람이었기에 말해 본 건데.

그 품성은 2026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유연함이라.”

“무공을 구결 그대로 해석하지 말고 넓게 보는 건 어떻습니까?”

“과연. 느낌이 오는군.”

신준석은 대화 중에 돌연 눈을 감았다.

방금 전의 대련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일까.

가부좌를 튼 상태인데도, 팔과 다리 근육이 꿈틀거렸다.

“홍윤수 님.”

만약에라도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 방해받을지 모르잖아.

홍윤수는 내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는 관중석에서 뛰어내렸다.

[토네이도 실드]

후우우웅!

강한 바람이 신준석의 주위를 감쌌다.

공방일체형의 방어막.

침입자를 베어 내는 강력한 바람의 결계다.

“대련하다가 이게 무슨 짓인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홍윤수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돌연 박수를 쳤다.

“정말 대단하군요. 마지막 수는 나도 얕보지 못했을 겁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다 조력자가 있어서 가능한 거였죠.”

-후, 후훗, 이 필멸자들이 드디어 여의 위대함을 알아보는구나.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말해 봐야 신빙성이 없거든요?

닉스는 내 극야와 일체된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얼마 정도 지났을까.

신준석이 감았던 눈을 떴다.

“후, 고맙군.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어.”

“지켜 준 사람한테는 고맙다고 안 하냐?”

“우린 친구잖아.”

“친구면 다 되는 줄 아나.”

“훗, 나중에 보은하도록 하지.”

신준석은 여유롭게 웃었다.

-저 아이, 짧은 순간에 기운의 총량이 늘어났구나.

“무인들은 깨달음을 얻고 부쩍 강해지거든.”

-신기하도다.

닉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담담하게 말하고는 있지만, 나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대련 한 번으로 깨달음을 얻을 줄이야.

하여간 재능이 대단하다니까.

내가 회귀 전의 경험과 지식으로 신준석의 허점을 찔렀다지만.

거기서 영감을 바로 얻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계기만 줄 생각이었는데, 예습까지 해 버리는구먼.

“후배한테 억지를 부렸는데 은혜까지 입어 버렸군.”

“이번 일의 대가는 비싸게 받아먹을 겁니다.”

“그렇게 하게. 뭐든 들어줄 테니.”

“빈말 아니죠?”

“사내일언 중천금.”

탕!

신준석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내가 다른 말을 할 사람으로 보이나?”

“그렇지는 않죠.”

좋아.

밑밥은 충분히 깔아 놨겠다.

계획보다 조금 빠른 시기이지만, 판이 깔렸으니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선배님께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어서 말해 보게.”

“빠르면 다음 달쯤에 길드를 창설할 생각이거든요.”

난 그 말을 하면서 옆을 흘겨보았다.

어깨를 움찔거리는 홍윤수.

그 모습을 못 본 척하며 다시 입술을 떼었다.

“한 달 뒤, 제가 만들 길드에 들어와 주시죠.”

깨달음도 얻으셨겠다.

미래를 위한 전력으로 힘을 모아주시죠, 선배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