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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26화 (126/300)

126화

21층을 클리어한 후, 일주일이 흘렀다.

쏜살같이 흘러간 시간.

나는 전국을 돌며 게이트 공략에 힘썼다.

“스승님! 저도 도울게요!”

“아니. 내 속도 따라잡을 체력이 안 된다.”

“쳇.”

“지금은 바쁘니까 이해 좀 해줘.”

아르스 게티아를 건 내기.

승리하면 ‘용의 총통’의 성유물을 얻지만, 패배하면 레메게톤의 첫 장을 잃는다.

한 달 안에 실버 등급으로 올라서려면 일단 레벨을 150까지 맞춰야 한다.

승급전의 조건은 한계 레벨이니.

눈이 뒤집힌 채로 게이트들을 공략하면서도, 틈틈이 미션을 수행했다.

▶메인 미션 - 원수는 외다리나무에서를 통과했습니다.

▶최단 기간에 상대편 플레이어들을 탈락시켰습니다.

▶24층 최고 기록을 갱신했습니다.

브론즈 등급의 주요 테마는 플레이어들끼리의 경쟁.

함정 파기.

길 찾기.

혹은 이번 미션처럼 PvP(플레이어 vs 플레이어)로 구성되어 있다.

플레이어는 쓰러트려 봐야 정수를 얻을 수 없잖아?

취할 정수도 없으니, 난 거리낄 것 없이 미션을 클리어했다.

[최고 기록 경신 보상으로 B급 성좌 계약서가 주어집니다.]

“모르스.”

“부르셨습니까요, 고객님!”

“계약서 처분해 줘.”

“매번 구매는 없으시고 판매하시기만 하면 저도 남는 게…….”

입을 가린 채 흑흑거리는 모르스.

“야, 손 내려.”

“부끄럽게 왜 그러십니까?”

“웃고 있으면서 가리고 있기는.”

모르스가 김샜다는 투로 팔을 내렸다.

히죽거리는 입술.

내 저럴 줄 알았다.

차원 상인은 판매자이자, 동시에 구매자다.

플레이어에게 물건을 판매하면서 cp를 벌어들이고.

또한, 미션 중에 나온 부산물이나 아이템을 구매한 후, 윗선에 마진을 붙여서 판매하는 식이다.

“그렇게 우는소리 하면 전속 계약 취소한다.”

“우리 고객님, 노여움을 풀어 주십쇼.”

“한 번만 더 그래 봐.”

회귀 전, 모르스는 소위 ‘갑질’로 유명한 상인이었다.

싹수가 노란 녀석이니 기가 오르려고 할 때마다 꾹꾹 눌러 줘야지.

“참, 전에 부탁한 세공은?”

“시간이 좀 걸립니다요. 제 솜씨가 뛰어난 게 아니라.”

고대의 핑크 다이아몬드.

21층 미션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얻은 보석이다.

난 그걸 얻자마자 모르스에게 가공을 맡겼다.

“언제까지면 될 것 같나?”

“제 실력이 미천하여…… 1주는 더 주셔야겠는뎁쇼.”

“알겠어.”

모르스는 미래에서 세공 장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여태 그 실력이 알려지지 않은 건 기회가 없었을 뿐.

이 녀석의 재능은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았다.

형이 기회를 주는 거니까.

실망시키지 마라.

미션을 클리어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부재중 전화 - 1건]

바벨탑 어플을 종료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부재중 전화.

전에 쓰던 휴대전화는 무분별한 연락들 때문에 번호만 둔 채, 업무용 번호를 하나 더 개통해 두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걸려 올 전화는 별로 없다는 말이지?

[15:27 - 신준석]

어럽쇼.

이 양반이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걸까.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 뚜, 수신음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통화가 연결되었다.

-바쁜가 보구먼.

상당한 고음.

내 기억 속에 있는 신준석의 목소리와 동일했다.

“아닙니다, 선배님. 막 탑에서 나온 찰나였습니다.”

-허허,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군. 요새 바빠 보여서 말이야.

신준석은 흠흠, 하고는 간격을 둔 후에 다시 말했다.

-연락을 한 건 부탁할 게 있어서네.

“말씀하시죠. 저번에 신세를 지기도 했잖아요.”

1차 대침식 때 신준석이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몇몇 게이트는 폐쇄하지 못했을 거다.

내 수준에서는 공략 가능한 게이트에 제약이 있으니.

그런데 다이아몬드 등급인 양반이 나한테 부탁할 게 뭔지 모르겠군.

-나랑 대련 한번 하지 않겠나?

신준석은 뜬금없는 제안을 꺼냈다.

* * *

나는 팀원들과 함께 종합상가 근처 트레이닝 센터로 향했다.

“다 따라올 필요는 없는데.”

“한국의 무공 사용자를 볼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존댓말.”

“……없습니다.”

핑 레이는 그렇다 쳐도.

훈련에 열중해야 할 카를라는 왜 따라오는 거야?

“팀장님의 대련.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런 이유라면 알겠어.”

“왜 저 여인에게는 관대하면서, 난 차별대우하는 것입니까!”

“평소의 네 행동을 되돌아봐.”

핑 레이야.

너는 반골 기질이라 안 돼.

두 사람과 달리, 지영이는 신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와, 우리 스승님이, 권성이 직접 대련을 요청할 정도라니!”

“누가 들으면 오해할 거 같으니까 거기까지 해.”

“넵!”

지영이는 과장되게 고개를 숙였다.

권성 신준석.

홍윤수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 10위 안에 드는 랭커다.

이번에 다이아몬드 등급으로 진입하기까지 했으니, 한계 레벨인 300도 돌파했을 터.

솔직하게 말하면 갓 100레벨을 넘어선 나랑 비교하기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후훗, 여도 자랑스러운 건 마찬가지이거늘.”

미소를 짓는 닉스.

그 웃음은 너무나도 눈부셔서, 주위의 시선을 확 빨아들였다.

지영이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닉스야, 조금 떨어져서 걸어 주라.”

“왜 그러느냐?”

“내가 너무 못나 보여.”

라며 투덜거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선배님이 기다리는 중이니까. 장난치지 말고 가자.”

나는 앞장서서 걸었다.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서자, 솜털이 삐죽삐죽 섰다.

통로에 아른거리는 강렬한 기.

두근- 두근-.

육감이 경고음을 울릴 정도의 기세다.

“후배, 왔는가?”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

흰 무복을 입은 무인이 해맑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었다.

“직접 뵙는 건 오래간만이군요. 선배님.”

“하하핫, 4개월 만이던가? 못 보던 사이에 성취가 엄청 올랐군.”

신준석은 함박웃음을 짓다가 내 뒤로 시선을 옮겼다.

“저 친구들이 역천 팀인가?”

“그렇습니다.”

“1차 대침식 때에도 그렇고. 엄청나게 활약했다고 하던데.”

“선배님만 할까요.”

“나야 뒷북이었고. 자네 팀 덕분에 우리나라가 무사한 거지.”

덕담을 나누고 있을 때, 바깥에서 또 다른 마력의 파동이 아른거렸다.

이번에는 기(氣)가 아닌 바람의 마나였다.

잠깐, 바람의 마나라고 하면…….

“오래간만이군요. 유진호 플레이어.”

“홍윤수 님께서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저 친구가 불러서.”

폭풍의 지배자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한국의 랭커다.

잠깐, 홍윤수랑 신준석이 원래 친했던가?

회귀 전에는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두 사람.

이 시기의 홍윤수는 동생을 찾는답시고 눈이 벌게진 채 전국을 누비고 있었을 테니.

“하하핫, 다 후배님이 맺어 준 인연 아니겠나.”

“게이트를 폐쇄하면서 알게 되었죠. 다 진호 플레이어 덕입니다.”

이것도 회귀를 하면서 생긴 긍정적인 변화……겠지?

“근데 여긴 왜 오신 건지.”

“저 친구가 불렀습니다.”

“흐흐, 후배랑 대련하는 걸 지켜보라고 말했지.”

신준석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기요. 님은 다이아몬드 등급이고, 난 브론즈 따위거든요?

“당당하게 말씀하실 건 아닌 것 같은데요.”

“흣, 후배는 저번에도 내 빈틈을 꿰뚫어 보지 않았는가.”

“그렇긴 합니다만.”

“알고 있겠지만, 저번 승급전에서 형편없이 졌거든.”

홍윤수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충격적이었던 다이아몬드 승급전.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둘 다 한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플레이어.

공헌도가 높아서 승급했어도, 이차원의 전사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더 강해져야 해.”

신준석은 일전에 보여 주지 않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뭐, 이해해 줘요. 우리 수준이면 랭커라고 해서 대련 한번 하기 힘들어서.”

홍윤수가 덧붙였다.

국내 10위에 손꼽히는 플레이어.

즉, 랭커가 되면 탑의 미션을 클리어할 때마다 추가 보상이 들어온다.

그래서일까.

한번 랭커가 된 이들은 누군가와 대련하는 것을 기피했다.

“그러면 견식해 보죠. 랭커의 실력이라는 걸.”

나는 주먹을 쥐었다.

* * *

팀원들과 홍윤수는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스승님! 파이티이잉!!!!!”

지영이의 목소리가 트레이닝 센터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훗, 부러운 사제 관계야.”

“선배님은 제자를 두지 않으셨습니까?”

“국내 플레이어 중에 무공 사용자가 얼마나 희귀한 줄 알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군.”

“아…….”

“뭣하면 후배가 내 제자로 들어와도 되지만.”

“정중하게 사양하죠.”

농담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천안(千眼)으로 신준석을 꾸준히 관찰했다.

과연, 틈이 없군.

거세게 타오르는 불과 같은 아우라가 빈틈없이 전신을 뒤덮었다.

극한으로 단련한 육신.

저 근력이야 [플레이어 시스템] 보정으로 대부분 올렸겠지만, 기(氣)가 온몸을 순환하는 건 내·외공을 꾸준히 수련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길 수 있겠느냐?”

“설마.”

첫 대련 때보다 훨씬 강해졌어도 신준석에게 닿을 정도까진 아니다.

성취가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무공 사용자.

저 사내는 바벨탑이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무공을 수련해 왔다.

포식과 회귀 전의 기억으로 세월의 차이를 많이 좁혔다지만.

아직 모자랐다.

“그래도 재미있잖아.”

“이번에는 여도 가세하겠느니라.”

“좋아. 부탁하지.”

닉스는 영체로 돌아와서 내 옆에 붙었다.

다이아몬드 초입의 랭커.

내가 회귀를 하고 나서 얼마만큼 강해졌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상대다.

그러니.

이번에는 모든 것을 걸고 신준석한테 부딪칠 것이다.

[밤의 축복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피오르의 축복이 스며듭니다.]

반발 없이 적용되는 두 버프.

피오르의 축복의 부가 효과로 기분이 고양되었지만, 냉혈의 간섭으로 금세 가라앉았다.

이 정도가 딱 좋아.

“좋은 눈빛이다.”

“선배님은 따로 준비하실 거 없습니까?”

“나는 이미 준비가 끝났다.”

“뭐, 좋습니다. 저번처럼 3수 양보해 주시는 거죠?”

“후배님인데, 그리해야지.”

흐흐흐.

그 말, 후회할 겁니다.

-설마. 저번처럼 할 셈이더냐?

“그래야지. 선배님이 기다려 준다고 하잖아.”

나는 아르스 게티아를 펼쳤다.

데모닉 파워까지 사용했다가는 트레이닝 센터가 박살 나 버릴 것 같으니.

조금 순한 맛으로 가야겠지?

[아르스 게티아 - 내장 스킬: 단탈리온의 환영을 사용합니다.]

“후배님, 그 기운은……?”

“이제 와서 무르시거나 하지는 않겠죠.”

대량으로 빠져나간 암흑 마나.

내샨의 시야를 현혹시켰던 저주가 다시 한번 발현되었다.

신준석은 저주를 뒤집어쓰자마자 두 주먹을 꽉 쥔 채로 주위를 경계했다.

효과 확실하네.

뭐, 아직 두 수 남았으니까.

[아르스 게티아 - 내장 스킬: 암두시아스의 선율을 사용합니다.]

회색 기류가 신준석의 전신을 옭아맨다.

민첩 30% 하락.

그리고 대상의 움직임을 예측하게 해주는 ‘미래시’ 효과까지.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암두시아스의 능력 일부를 재현한 저주다.

마지막은 역시 이거지.

아르스 게티아에 기록된 마지막 주문.

바르바토스의 철퇴를 구현해서 허우적대는 신준석에게 휘둘렀다.

콰아앙!

트레이닝 센터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우리나라에서 최고 수준의 설비를 갖춘 곳이지만, 72 마신 중 하나의 힘을 빌린 주문의 여파에는 힘겨워했다.

-해치웠느냐?

“여신님, 그런 말은 배우지 마.”

푸하하학!

바르바토스의 철퇴가 일으킨 먼지를 뚫고 튀어나오는 한 인영.

“후배님, 못 본 사이에 정말 많이 강해졌어.”

“그런 말씀 하시면서 왜 이를 가십니까?”

“초전부터 큰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갚아 줘야 하지 않겠나.”

반 정도가 찢어진 무복.

단련된 상체 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바르바토스의 철퇴를 정면으로 받아 낸 탓에 피부가 붉어져 있었고.

눈가에는 여전히 [단탈리온의 환영]이 아른거렸다.

[암두시아스의 선율]이 적용되고 있어서 민첩이 감소했을 텐데도, 내 수준으로는 쫓기 어려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부우우웅!

다부진 주먹이 머리로 곧장 날아든다.

이거 살초(殺招) 아니야?

[암두시아스의 선율]로 미리 궤도를 읽어 냈기에 어렵지 않게 흘려보냈다.

“선배님도 진심이란 말이군요.”

권성.

현시대에는 외면받는 무공을 극한까지 익힌 실력자가 전력으로 달려드는 상황이다.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볼 좋은 기회.

……대련하다가 죽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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