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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25화 (125/300)

125화

두 팀원이 휴가를 보내고 돌아올 무렵.

카를라와 핑 레이도 같은 날에 팀으로 돌아왔다.

“나 몰래 짜기라도 했나?”

“무슨 말씀인지…….”

“됐다. 그냥 한 말이야.”

어리둥절해하는 핑 레이를 두고, 카를라에게 시선을 옮겼다.

“엘렌 상무님은?”

“당분간은 스스로를 단련하는 데 힘쓰겠다고 하셨어요.”

“그럼 너 혼자 온 건가.”

“네. 저를 단련시켜 줄 분은 팀장님뿐이니까.”

다른 사람이 하면 오해할 만한 말.

그 발언의 대상자가 카를라라면,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저렇게 감정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사심이고 뭐고 있겠어?

“카를라야! 돌아왔어?”

“응.”

아무리 봐도 마지못해 대꾸하는 것 같은데.

지영이는 카를라의 손을 맞잡고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팀장님.”

“왜. 오자마자 훈련 빼 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

가늘게 눈을 뜨고 핑 레이를 노려보았다.

첫인상과 많이 달라진 모습.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전 세계의 암흑가를 주름잡았던 [죽음의 손].

놈이 걸어간 길을 아는 만큼, 언제나 의심하고 또 생각해야 한다.

핑 레이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상담드릴 게 있습니다.”

몸을 낮추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럽쇼.

난 뒤를 흘낏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핑 레이, 너는 특별 훈련이다.”

“예에?”

“오래간만에 봤으니까 몸 좀 풀어야지.”

“3일 가지고 오래간만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반가워서 그러지.”

닉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대에게는 적당히라는 단어가 없구나.”

“훈련. 부러워.”

“카를라야, 저런 훈련은 부러워하면 안 돼.”

제각각 다른 반응을 흘려보내고, 멀찍이 있는 구룡방 길드원, 주이션을 쳐다봤다.

“핑 레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보아하니 눈치를 챈 것 같지는 않군.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는 훈련장으로 내려왔다.

“여기라면 누구도 들을 일 없을 거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너한테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걸.”

“제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셨으니까요.”

포권을 하는 핑 레이.

아까 나한테 귀띔을 한 건 주이션이 들어선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거겠지.

난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래서. 사범까지 떼 놓고 할 이야기라는 게 뭔지나 들어 보자.”

“핏빛 하늘의 주인이라는 성좌를 알고 계시오?”

“말투.”

“……계십니까?”

“혈마라. 무공으로 대성을 이룬 S급 성좌이지.”

혈마(血魔).

하늘의 악(天魔)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지만, 무공과 연관 있는 성좌 중에선 수위에 드는 존재다.

미간을 찌푸린 핑 레이.

“저는 처음 듣는 성좌의 이름입니다만.”

그러고 보니 혈마의 계약자들이 폭주했던 사건은 2028년이구나.

“별호 앞에 피(血)가 붙잖아. 느낌이 오지 않아?”

“혹, 사파와 관련된 무인이 성좌가 된 것이라면…….”

“사파보다 더 악질이지. 혈교야, 그놈.”

핏빛 하늘의 주인.

마교보다도 더 악질로 알려진 사교(邪敎) 주인이다.

“이름 들으면 감이 좀 오지?”

“불길하다고는 생각합니다만. 정확히는…….”

“너희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사술에 능한 놈들이다.”

강시술(殭屍術).

혈주술(血呪術).

그 외에도 여러 사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게 혈교(血敎)다.

“고약한 성좌로군요.”

“뭐, 나름 무공이 고강한 건 사실이니까.”

“그렇습니까?”

“너한테 관심을 가진 것도 무공이 쓸 만하다고 생각해서겠지. 계약하면 5성급 무공도 줄 거다.”

혈천마공(血天魔功).

혈마의 직전비전이자, 천마의 무공인 천마신공(天魔神攻)에 버금가는 절세의 무공이다.

음- 핑 레이는 짧은 심음을 흘렸다.

“그래도 받아들일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혈마 녀석의 후원은 달콤한 독이다.

계약의 증표로 하사하는 기예, 혈천마공은 제대로 된 무공이 아니다.

운기행공을 할 때마다 생물의 피를 주기적으로 섭취해야 하고.

성취가 올라갈수록 이지가 멀어지며, 혈마의 속삭임에 몸을 맡기게 된다.

그 결과.

혈마의 후원을 받았던 무공 사용자들은 모두 광기에 젖어 이성을 잃어버렸다.

무공 사용자 양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국가는 중국뿐.

당연하게도.

중국은 혈마와 계약을 맺었다가 폭주한 몇몇 플레이어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아직 일어나지야 않은 일이지만.

난 미래의 일을 적당하게 각색해서 들려주었다.

“허, 허허허.”

털썩 주저앉는 핑 레이.

“혈마랑 계약이라도 했냐?”

“그런 건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어쨌든 혈마가 너한테 관심을 가진다는 거네.”

“후, 그렇습니다.”

“너희 대형이라는 자는 뭐라고 하디?”

“S급 성좌라면 당연히 배후성 계약을 받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용케도 그 말을 안 따르고 여기에 왔군.”

나는 목소리를 누그러트렸다.

장 우페이.

구룡방의 대형(大兄)이자, 중국의 탑 랭커다.

“대형께는 배후성 계약을 제시했다고는 말씀을 안 드렸으니까요.”

“왜지?”

“팀장님을 이기고 싶어서 그렇소.”

핑 레이의 눈동자에서 이글거리는 뜨거운 감정.

호승심이다.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성좌인지를 확인받으려고 물어봤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드네.”

큭, 크크큭.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녀석, 걸작이잖아?

뒤에서 칼을 숨기고 있는 것보다는 정면으로 보여 주는 녀석이 상대하기가 훨씬 편하다.

저 말도 내 마음을 사기 위한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핑 레이의 발언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그 말, 진심이냐?”

“내가 왜 거짓을 고하겠소.”

“뭐, 그래. 진심인 건 그렇다 치고.”

퍼억!

묵직한 충격음이 울리고, 핑 레이의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존댓말.”

“…….”

새빨개진 안색으로 입술을 오물거리는 걸 보니, 욕이 튀어나오는 걸 참는 듯했다.

마음에 드는 건 둘째 치고.

나는 저 녀석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

죽음의 손.

회귀 전, 핑 레이가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을 잊을 수 없거든.

본질이라는 건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언제든 기어오를 수 있으니 기를 죽여 놔야 한다.

“참, 혹시 오아시스의 주인이라는 성좌가 다가오진 않았나?”

“그랬습니다만. 승급전에서 당신한테 패배한 후로 떠나 버렸습니다.”

“어쩐지. 나한테 붙더라고.”

핑 레이의 얼굴이 다시 한번 붉어졌다.

미안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꼭 확인해야 하거든.

부분적으로 바뀐 미래.

문제가 있다면, 혈마는 세트보다 한 수 더 위인 악질 성좌다.

핑 레이도 물건이기는 하네.

S급 성좌의 관심을 연달아 받다니.

제안을 꺼낸 성좌들이 모두 악 계열이라서 그렇지.

나는 다시 한번 확신했다.

이놈을 개심시키지 않으면…….

“팀장님?”

“아, 잠시 생각 좀 하느라.”

끓어오르는 살심을 가라앉히고는 핑 레이를 바라보았다.

“제안 하나 하지.”

“갑자기 제안입니까?”

“어. 나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성좌를 소개시켜 줄게.”

“당신과 농담을 나누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진심인데?”

핑 레이가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화과산의 미후왕.”

“그 별호는 무슨 성…… 아?!”

“신왕급 성좌에도 견줄 수 있는 존재와 계약할 방법을 알려 주마.”

핑 레이는 독기 가득한 표정 대신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냥 알려 줄 리는 없겠죠?”

“당연히 조건이 있지.”

“제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듣겠습니다.”

“구룡방에서 나와.”

핑 레이의 운명에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 낼 확실한 방법.

이걸 수용할 수 있다면.

나 또한 네놈이 강해지는 것을 도와주마.

“……이야기 감사했습니다.”

핑 레이는 내 제안에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자리를 떠났다.

괜찮아.

바로 대답할 만한 제안이 아니었으니.

중요한 건 핑 레이가 ‘고민’ 자체를 한다는 것이다.

“기대되는걸.”

부디 좋은 선택을 하기 바란다.

네 대답에 따라서 살릴지 죽일지가 달라지거든.

핑 레이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 * *

핑 레이와의 대담을 마친 후.

나는 팀원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방침은 그대로다.”

“탑 미션은 각자 진행. 팀으로 움직이는 건 게이트 공략인가요?”

“그래, 카를라.”

“훈련만 있으면 돼요.”

참 일관적인 친구야.

옆에 있는 핑 레이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브론즈 등급 미션들은 팀보다 개인의 성적으로 최고 기록을 정한다.

팀플레이를 하면 서로가 손해를 본다는 말이지.

“이번에는 스승님보다 빨리 올라갈 거예요!”

“그래. 힘내라.”

“아, 좀. 영혼을 담아서 말씀해 주셔야죠.”

“내가 너한테 진다는 게 상상이 안 가서 말이야.”

“으으으!”

지영이가 이를 갈며 전의를 불태웠다.

“후훗, 계약자에게는 여가 있으니 힘들 것이니라.”

닉스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훈련 일정은 오후니까. 다들 이따 봅시다.”

팀원들에게 축객령을 내리고는 곧장 바벨탑으로 접속했다.

[바벨탑 - 21층]

[방어막 실험실에 입장했습니다.]

[미션 - 방어막 격파]

실험실에는 충격을 흡수하는 방어막이 쳐져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화력을 동원해서 방어막을 파괴하십시오.

총 7겹으로 된 방어막은 안쪽으로 갈수록 내구력이 높습니다.

방어막을 많이 부술수록, 당신의 능력도 증명될 것입니다.

▶목표: 방어막 7장 중 3장 이상 파괴.

▶특이 사항

-최초 피격부터 10초가 지나면 미션이 자동으로 종료됩니다.

21층 미션 장소는 돔 야구장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공간이다.

-이 결계가 서로의 간섭을 막는구나.

닉스는 신기하다는 기색으로 반투명한 막에 접근했다.

10평 크기로 펼쳐진 반투명한 결계 너머로 다른 플레이어들의 신형이 아른거린다.

“만지지 마. 그 순간 바로 미션이 시작돼.”

-그런 건 일찍 말하여라!

“농담이야. 영체로는 만져도 반응 안 할걸?”

난 아르스 게티아를 쥐었다.

21층 미션에서 언급된 ‘10초’란, 최초 타격을 기준으로 한다.

마력을 재배열하는 데 5초가 걸리든 1시간이 걸리든, 완성된 마법이 결계에 닿는 걸 기준으로 타임 어택인 셈.

그 점을 이용할 생각이다.

“여신님, 가호 좀 줘.”

-정말이지. 그대는 여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구나.

“축복 하나 가지고 혀가 기시네.”

닉스가 이마에 손을 얹자, 밤의 축복이 전신의 힘을 끌어올렸다.

[데모닉 파워를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가 마력으로 치환됩니다.]

지속 시간은 1분.

바로 마력을 재배열하지 않고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데모닉 파워를 사용하고 30초가 지나갔을 때.

나는 아르스 게티아의 페이지를 넘겼다.

사용할 주문은 정해져 있지.

[바르바토스의 철퇴를 사용합니다.]

데모닉 파워의 지속 시간을 2초 남겨 두고 완성된 마법.

바르바토스의 철퇴가 방어막 위로 떨어진다.

-과연. 지속 시간이 끝나기 직전까지 기다린 이유가 있구나.

“마법으로 결계를 부수는 건 자신이 없어서.”

데모닉 파워를 사용하면 무공이나 체술 같은 기술들이 봉인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르바토스의 철퇴로 결계를 모두 부수지 못하면 곤란했으니.

철퇴로 결계를 타격하는 순간, 모든 스텟이 원래대로 돌아오면 육탄전으로 돌입할 계획이었다.

한데.

콰아아앙!

▶메인 미션 - 방어막 실험실을 통과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계 7겹을 파괴했습니다.

▶21층 최고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내 안배가 무색하게도.

21층 방어막은 일격에 산산조각 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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