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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22화 (122/300)

122화

[이틀 차 아침이 되었습니다.]

[세 진형이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협곡의 지배자, 내샨 대공이 잠에서 깨어납니다.]

협곡 중심부에 자리한 호수.

잔잔했던 수면 위로 무수한 기포가 솟구치더니, 전체적으로 보라색을 띤 무언가가 솟구쳤다.

지네를 닮은 외형.

머리에는 붉은색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열 개 넘게 박혀 있고.

20미터 넘게 솟아오른 몸뚱이 주위에는 다리 수십 개가 촘촘하게 붙어 있다.

“기다리느라 지루했다.”

나는 목을 좌우로 돌렸다.

사아아악-!

호수를 감싸고 있던 안개가 걷혀진다.

플레이어들의 접근을 막는 결계.

이제는 호수 너머로도 다른 진형으로 넘어갈 수 있고.

막 깨어난 협곡의 지배자를 사냥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영수 형님, 전황은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 다들 몸을 사리는 분위기네요.”

내가 전장에 개입하지 않으니, 한국 측 플레이어들은 전선을 더 넓히지 못했다.

일본과 필리핀에서는 한국 측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으로 움직였으니.

내샨 레이드를 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시작하죠.”

욕망의 주머니에서 아다만티움과 아르스 게티아를 꺼냈다.

아다만티움을 손에 쥐자, 내샨의 얼굴에 달린 눈들이 일제히 날 쏘아본다.

“왜, 탐나냐?”

“크리리릭. 그거. 어서 내놔라.”

☆ 모양으로 갈라진 입.

걸쭉한 침이 그 사이로 흘러나온다.

“웩. 저건 좀 그런데요.”

헛구역질하는 지영이.

탑을 오르다 보면 저것보다 더한 놈들도 엄청 많은데. 아직 비위가 약하구먼.

“원한다면 주마.”

나는 아다만티움을 공중으로 던졌다.

몸통을 숙이는 내샨.

붉은 금속이 활짝 벌어진 입안으로 들어간다.

[내샨 대공이 아다만티움을 흡수합니다.]

[봉인되었던 힘이 해방됩니다.]

보라색이던 내샨의 몸뚱이가 붉게 물든다.

아다만티움을 섭취하면서 협곡의 진정한 주인의 힘을 되찾은 상태.

천안(千眼)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마력을 읽어 낸다.

한순간 눈이 피곤해질 정도의 막대한 파동.

아다만티움을 흡수한 내샨은 통상적인 상태보다 3배 강해진다.

[용이 머무는 뜰]의 보스 몬스터인 이무기보다도 한 수 위.

내샨이 뿜어내는 기운에 솜털이 삐쭉삐쭉 솟는다.

꿀꺽 침을 삼키는 지영이.

김영수는 손가락 끝에 마력을 집중, 인형 다섯 기가 언제라도 달려 나갈 수 있게 준비했다.

“이럴 땐 변신 중에 공격하는 게 국룰이잖아요?”

난 아르스 게티아를 펼치고는 암흑 마나를 재배열했다.

[아르스 게티아 - 내장 스킬: 단탈리온의 환영을 사용합니다.]

생물의 ‘마음’을 읽는 마신.

단탈리온의 힘으로 구현해 낸 암흑 마법은 대상이 마음에 품은 두려움을 환상으로 구현했다.

“크리리릭?”

놈의 동체가 좌우로 흔들거린다.

혼란스러워하는 걸 보니 환상 마법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군.

변이를 일으키던 내샨이 발들을 마구 움직였다.

동체에 달려 있는 발 수십 개가 쭉 늘어나더니, 호수 여기저기를 후려쳤다.

쾅! 콰앙!

사방으로 비산하는 물방울.

그중 일행에게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신님.”

“처음부터 전력으로 가는구나.”

내 이마에 손을 얹는 닉스.

밤의 축복이 스며들었다.

동시에 스스로한테 [피오르의 축복]을 전개.

고양감이 솟구쳤지만 이내 냉혈의 효과로 진정되었다.

[약화의 문장을 사용합니다.]

[검은 눈빛을 사용합니다.]

[머드 트랩을…….]

…….

물을 흡수하면서 치솟는 끈적끈적한 진흙.

그 위로 앙상한 팔들이 나와서 내샨을 붙들었고.

저주의 문장이 몸통 한가운데에 새겨졌다.

얼추 준비는 끝났군.

“크게 한 방 먹이면 환영에서 벗어날 거다.”

“알겠어요.”

“예.”

전투 준비를 마친 두 사람.

난 아르스 게티아의 다음 장을 펼쳤다.

[아르스 게티아 - 내장 스킬: 바르바토스의 철퇴를 사용합니다.]

커다란 철퇴로 내샨의 머리를 내려찍는 순간.

놈의 눈동자를 뒤덮었던 탁한 빛이 사그라지면서 살기가 터져 나왔다.

“그래, 나다, 이 새끼야.”

직선 대신 지그재그로 움직이면서 내샨의 시선을 끌었다.

3배로 강해진 내샨 대공.

열 개가 넘는 눈동자가 내 움직임을 열심히 쫓더니.

“크리리릭. 날파리는 뭉갠다.”

몸통에 붙은 다리 수십 개를 일제히 휘둘렀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가속을 유지하며 발, 아니 촉수라고 불러도 될 만큼 길고 유연한 내샨의 발들을 회피했다.

“지영아.”

“네, 스승님!”

[진동 결계 x 3]

3겹으로 포개어진 결계가 몸을 숙인 내샨의 허리 부분 위에 펼쳐졌다.

증폭된 진동이 내샨을 짓누르자.

“크리리릭?! 감히!”

놈은 기다란 동체를 비틀면서 결계를 깎아 냈다.

몸통으로 비비적대는 것만으로도 내구도가 소모된 지영이의 결계.

불과 1, 2초 만에 삼중 결계 중 둘이 부서졌지만.

“충분해.”

그동안 내샨의 자세에서 곧바로 반격하기 어려운 사각으로 파고들었다.

놈의 두꺼운 갑피 사이.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틈이 눈에 들어온다.

[백수제왕무 - 5초식]

[광서지를 사용합니다.]

그래.

나한테는 그 정도 틈이면 충분했다.

응축된 내공을 손에 집중, 갑피 사이로 쑥 집어넣었다.

큰 저항감 없이 들어가는 손가락.

내샨의 몸이 움찔거린다.

광서지로 타격한 부위는 인간으로 치면 척추 같은 곳.

내샨의 움직임을 제어해 주는 주요 신경계가 모여 있는 위치다.

백수제왕무가 아직 1성에 불과해서 내력을 길게 늘이거나 하지 못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한 번의 공격으로 내샨을 반쯤 무력화시킬 수 있었을걸?

“크리릭! 잔재주를!”

“이게 잔재주인지는 봐야 알지.”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광서지로 뚫어 낸 구멍으로 파고든 극야의 힘.

살점 안으로 스며들게 한 뒤에 가시로 구현, 내샨의 몸속을 뒤흔들었다.

“크리리리릭!!!”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괴성.

내샨은 격한 헤드뱅잉으로 나를 털어내려 했다.

놈의 몸뚱이에 딱 달라붙은 채로 버티다 보니, 갑피 사이의 틈에서 피가 솟구쳤다.

격렬하게 몸을 트는 내샨.

두근- 두근-!

육감이 경고음을 울렸다.

놈이 자세를 바꾸면서 촉수를 닮은 발들의 공격 범위 안에 들어선 것이다.

버티는 건 무리.

망설이지 않고 내샨의 갑피를 박찼다.

빠르게 멀어지는 거리.

내가 서 있던 곳을 덮친 발들이 인근을 검게 물들인다.

“스승님! 괜찮으세요?”

“어. 이 정도쯤이야 가뿐해.”

내샨의 붉은 눈동자가 내 움직임을 좇는다.

이전보다 더 진해진 살기.

방금 전의 공격 덕분에 내 존재 하나는 확실하게 인지한 듯했다.

뭐, 중요 신경을 손댔으니 제 마음대로 운신하긴 어렵겠지만.

“이제 몰아붙여 봅시다.”

내샨 레이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 *

내샨의 공격 패턴은 두 가지.

입을 벌려서 산성 브레스를 내뱉거나 몸통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발들을 휘두르는 것이다.

[인형 조종술]

[다섯 인형의 춤]

“시선을 끌겠습니다.”

김영수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인형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호수를 빙 두르면서 내샨에게 접근하니.

“크리리릭. 이따위 잡것들로 죽음을 피할 줄 아느냐?”

내샨의 발들이 쭉 늘어나더니 기다란 궤적을 그리면서 인형들을 타격했다.

일격조차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인형들.

[인형 조종술]

[긴급 수리]

발에 두들겨 맞아서 금 간 부위가 다시 붙는다.

아가리를 크게 벌리는 내샨.

부글거리며 끓는 산성 액체가 목구멍에 아른거린다.

그 순간.

지영이가 양손을 펼쳤다.

턱 아래에서 생성된 진동 결계.

막 브레스를 내뱉으려던 내샨의 고개가 위로 젖혀졌다.

“크리리릭!”

충격은 크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면 손바닥으로 뺨을 문댄 정도.

푸우우우우-!

내샨의 목울대를 타고 넘어온 산성 액체가 분출되었다.

바위조차 녹여 버리는 강산성 브레스.

막상 노란 액체가 쏟아진 곳은 인형의 옆이었다.

“아저씨, 인형값 굳었죠?”

“후우, 덕분에.”

내샨의 몸뚱이가 지영이 쪽으로 향한다.

호수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는 괴물.

하지만 몸길이 자체가 워낙 길다 보니 방향을 틀기만 해도 지영이가 공격 범위 안에 들어왔다.

[유인을 사용합니다.]

[범위 안의 적들이 당신을 인식합니다.]

강제적으로 상대의 시선을 틀어버리는 어그로 스킬.

열 개가 넘는 눈동자가 일제히 돌아갔다.

“한눈팔 여유가 있나 봐.”

꽉 말아 쥔 주먹.

수라마령심법의 패도적인 내공이 팔뚝을 휘감는다.

이무기의 비늘을 닮은 형상.

백수제왕무 1초식, 응룡황권을 펼칠 때의 모습이다.

콰아앙-! 내샨의 몸뚱이가 크게 휘청거린다.

붉은 갑피에 새겨진 균열.

[괴력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근력 수치 + 330%의 피해를 입힙니다.]

시너지 효과로 증폭된 괴력으로 같은 부위를 다시 타격했다.

“크리리릭. 벌레 같은 놈!!”

“벌레는 다리 여러 개 달린 너고요.”

내샨이 자세를 다잡으려는 찰나, 백 스텝과 맹렬한 돌진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갑피를 쳤다.

콰드드득!

연이은 충격으로 약해진 갑피가 산산조각 났다.

저 커다란 몸뚱이를 생각하면 극히 일부이지만, 직접 공격이 가능한 포인트가 생겼다는 게 어디야?

“크리릭. 죽인다!”

곧장 반격하는 내샨.

덩치가 큰 괴물이라서 경직 효과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군.

“추한 괴물이여. 여는 너 따위가 계약자에게 손대는 걸 허락하지 않았도다.”

닉스의 극야가 촉수 다발들의 궤도를 틀어 버린다.

좋아.

나이스 타이밍!

짧게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수라마령심공을 운용, 다시 한번 내공을 끌어올렸다.

[백수제왕무 - 2초식]

[산군파랑조를 사용합니다.]

갑피가 떨어지고 드러난 부위를 손톱으로 난자했다.

쩍 벌어진 상처에서 폭포수처럼 넘치는 피.

[검은 눈빛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상처의 회복 속도가 둔해집니다.]

악령에게서 얻은 스킬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 보니, 저주 효과가 추가적으로 발생했다.

“크리리리릭!!”

“아직 안 끝났으니까 조용히 있어.”

나는 극야를 흑검으로 구현했다.

흑검에 스며드는 내공.

암영추혼검으로 상처를 더욱 크게 벌리자, 놈의 내장기관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20미터에 달하는 거체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으니, 꽤 아픈 모양이다.

[재빠른 도주를 사용합니다.]

일격이탈.

등을 일부러 노출해서 스킬 효과까지 추가, 경신법과 전력 질주로 내샨의 범위에서 이탈했다.

“크리리릭! 너만큼은 찢어 죽이겠다!!”

내샨의 몸에 달라붙은 발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꽂힌다.

플레이어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깨지 못한 갑피다만.

3배로 강해진 내샨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내는 건 위험했다.

내샨의 다리 하나가 정수리에 닿기 직전.

카가가각!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육각형 타일이 머리 위를 감쌌다.

“흥. 닉스 말고 저도 있거든요?”

“그래서 방어를 안 했잖아.”

1차 대침식 이후 게이트 공략을 하면서 맞춰진 팀워크.

지영이의 기지 덕분에 큰 힘 들이지 않고 내샨의 공격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헤헤. 브레스만 조심하면 그만이니, 승리는 따 놓았네요.”

“넌 파멸의 조동아리 2 해라.”

“제가 왜 그 재숫덩어리랑 같은 별명인데요?!”

“불길한 말 하니까 내샨이 화내잖아.”

나는 실소했다.

내샨에게 아다만티움을 먹인 후에 생명력을 대부분 깎아 내면 2페이즈가 시작된다.

지영이 그 말을 꺼낸 직후, 붉어졌던 놈의 몸뚱이가 보라색으로 다시 변이를 시작했다.

“아, 아…….”

“지영이여, 그대도 입이 화를 부르는구나.”

닉스는 한심하단 투로 혀를 찼다.

[공허의 거울]

보라색으로 물든 내샨의 몸뚱이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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