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군단 지휘의 효과로 투지가 상승합니다.]
[군단 지휘의 효과로 고통 내성이 적용됩니다.]
…….
[군단 지휘의 효과로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다들 동의했잖아요, 영수 형님.”
“그, 그래도…….”
승급전에 참여한 플레이어들.
난 그들을 모조리 김영수의 지휘 아래로 넣어 버렸다.
“승급전에 참여한 사람들이 제 말을 따를지 의문입니다만.”
“다 방법이 있죠.”
[백인장이 통솔 중입니다. 투지가 대폭 상승합니다.]
[십인장 입명이 가능합니다.]
[임명 가능 인원: 0/10]
백인장의 고유 스킬, 십인장 통솔.
십인장으로 임명한 플레이어하고는 일정 거리 안에서 시야 공유가 가능하다.
그뿐이랴?
통신 아이템 없이도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지휘에 특화된 스킬!
나는 천안(千眼)으로 플레이어 중 수준이 높은 이들을 솎아 냈다.
“이제부터 지시는 영수 형님을 통해 내려갈 겁니다.”
오지원을 포함하여 십인장으로 임명된 10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 조는 20명으로 구성. 오더에 따라 주십쇼.”
“알겠습니다!”
각각의 십인장이 통솔하는 숫자는 20명.
구성원이 10명을 넘어간다고 해서 스킬 효과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배정된 인원들을 통솔하러 흩어지는 십인장들.
“이러면 됐죠?”
“팀장님께서 내려주신 오더를 전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군요.”
“에이, 사회생활 안 해 보신 것처럼 왜 그러시나.”
김영수는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비명을 지를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진심이십니까?”
“예. 이번 승급전은 형님이 지휘 맡으세요.”
회귀 전에도 여러 사람들을 지휘할 일은 여럿 있었다.
그런데 말이지.
시야는 넓게 볼 수 있는데, 여러 병단을 동시다발적으로 운용하는 재주까진 없더라고.
내 역량으로 커버 가능한 건 50명까지.
지휘해야 할 숫자가 그 이상으로 늘어나면 효율이 떨어졌다.
“이건 저희만 아는 비밀이에요.”
“알겠습니다.”
김영수는 안색을 굳힌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첫 번째 목표는 [고대의 협곡]에 있는 괴물들의 정수.
브론즈 등급으로 올라가면 다시 못 오는 곳이니, 빨리 취하는 편이 나았다.
길게 뻗은 협곡을 지나니, 일본 측 1차 요새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긴장한 기색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김영수.
“여긴 적진 아닙니까?”
“아저씨, 원래 스승님은 이러세요.”
“끄응. 아이언 승급전 때도 카운터 정글링을 시도하셨군요.”
카운터 정글링.
승급전에서 간간이 쓰이는 전술이다.
‘간간이’라는 건, 성공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
상대 진형에 있는 수정체를 털어도 본진으로 돌아가려면 협곡을 통과해야 하니, 앞뒤로 쏟아지는 협공에 쓰러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아군은 모두 제 위치에 도착했습니다.”
“영수 형님, 하나만 물을게요.”
“말씀하시죠.”
“우리 쪽 군락은 놔둔 이유가 뭐에요?”
승급전 초반에 괴물 군략을 공략하는 건 상식이다.
자칫하다 아군의 전선이 밀려서 군락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면 곤란하거든.
은신 계열 스킬 보유자도 있으니, 가능하면 수정체를 빨리 얻는 것이 정석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영수 형님은 전력을 반으로 나누어서 협곡에 배치했단 말이지?
“팀장님 때문입니다.”
“내가 뭐요.”
“두 나라가 팀장님을 경계하고 있으면, 양쪽 라인에 더 투자할 테니까요.”
“에이, 설마 외국 애들이 그 정도까지 하겠나.”
……라며 웃어 넘겼는데.
괴물 군락 앞에서 마주친 일본 측 플레이어들은 나를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유진호! 유진호다!!”
“빨리 본대에 알려. 유진호가 나타났다!”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가야 해. 아니면 군락을 모두 뺏길지도 몰라.”
사방으로 흩어지는 일본 측 플레이어들.
“거보십쇼.”
“제길.”
내가 호환마마나 질병도 아니고.
보자마자 등을 돌리고 도망칠 정도야?
“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
[윈드 밤을 사용합니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응축된 바람을 등 뒤로 폭발.
그와 동시에 경신법을 운용하면서 엄청난 속도를 얻었다.
한순간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제 힘을 못 이기고 지면과 박치기를 할 상황.
나는 그 추진력을 제어하면서 일본 측 플레이어의 등 뒤까지 따라잡았다.
“유, 유진…….”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러는 거니 원망 마라.”
손에 아른거리는 검은 기운.
광서지로 일본 측 플레이어의 목덜미를 푹 찌르자, 일격에 검은 가루로 변했다.
“여가 나설 차례로구나.”
영체로 머무르던 닉스가 실체화했다.
[어둠 지배]
[암영추혼검]
다섯으로 갈라진 극야가 흑검으로 변환, 내공을 실어서 일본 측 플레이어들을 베었다.
일검에 한 명씩.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플레이어들.
닉스는 후욱, 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내공이라는 기운. 필멸의 육체로 다루기 유용하나, 피로하구나.”
“그 무공을 원거리로 소화하는 게 대단한 거야.”
내가 암영추혼검을 펼치려면 구현한 흑검을 손에 쥐어야 한다.
무공의 이해도만 놓고 보면 닉스가 훨씬 부족할 텐데.
극야라는 기운을 자신의 수족처럼 다루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니지.
밤 그 자체인 닉스이니까.
“흩어져!”
“뭉쳐 있으면 모두 당해!”
“미친 한국인들!”
아이고야.
극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남은 플레이어 소수가 뒤늦게 흩어져서 도주했지만.
운류보를 사용한 나한테서 벗어나진 못했다.
열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전멸하기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수정체나 얻으러 가죠.”
“예, 예.”
“나설 틈도 안 주고 끝내 버리셨네요.”
혀를 내두르며 따라오는 팀원들.
괴물의 군락지는 일본 플레이어 무리와 조우한 곳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했다.
“워단께서 명하신다. 광기, 피, 그리고 분노!”
“명예로운 전사자에게는 발할라로 가는 영광이 있으리니!”
“죽여라! 우리의 적을! 그리고 전사다운 죽음을!”
곰가죽을 뒤집어쓴 자들.
머리 위에 [광기의 신자]라는 글자가 아른거린다.
닉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참으로 품위가 없는 자들이로구나. 악신이라도 믿는 것이더냐?”
“나름 신왕급인 양반을 섬기는 사제들이야.”
마법과 지혜의 신.
광기, 그리고 전장을 주관하는 자.
그를 칭하는 이름은 여럿인데, 워다니즈, 워단, 혹은…….
“오딘. 애시르 신족을 다스리는 신왕이다.”
“저 후안무치한 자가 위대한 이름을 경망되게 부르는구나!”
광신자 하나가 삿대질을 했다.
눈 뒤집어진 거 보소.
“빠르게 가야지.”
난 욕망의 주머니에서 검은 책을 집었다.
아르스 게티아.
72 마신의 이름을 빌린 암흑 마법들이 기록된 [레메게톤] 중 하나다.
[아르스 게티아 - 내장 스킬: 바르바토스의 철퇴를 사용합니다.]
쿠콰콰콰콰!
혼원룡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암흑 마나.
곧, 10미터가 넘는 철퇴로 구현되었다.
내가 손짓하는 순간.
완성된 흑색 철퇴가 궤적을 그리면서 광신자 무리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땅.
충격의 여파로 생긴 바람과 함께, 뿌연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다 좋은데 너무 요란하다니까.”
윈드 밤으로 먼지를 걷어 내자, 으깨진 광신자들의 사체가 움푹 파인 크레이터에 모여 있는 형상이 드러났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두 눈을 부릅뜹니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흥분합니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은 당신에게 책자의 입수 경로를 묻습니다.』
『오염된 왕좌의…….』
빗발치는 성좌의 메시지.
[탐욕의 가호]의 주인이자, 내 애청자(?)인 바알이다.
역시, 내 예상대로군.
72마신 중에 으뜸가는 존재이자 판데모니엄의 수좌에 앉은 마신.
바알이라면 아르스 게티아를 보고 흥미를 가질 줄 알았다.
“스승님, 지금 성좌들이 엄청 메시지를 보내는데요?”
“저도입니다. 이런 건 처음 겪는군요.”
혼란스러워하는 두 사람.
72마신의 권위와 능력을 빌려서 주문으로 구현하는 마도서가 뜬금없이 나왔으니.
출처가 궁금할 만도 하지.
“둘 다 괜히 대꾸하지 말아요. 책잡힐라.”
아르스 게티아에 흥미를 가질 만한 성좌라면 제정신인 놈들이 별로 없다.
72마신이나 악마에 관심을 가지면 뻔하잖아?
나는 바알의 메시지를 못 본 척하고 광신자의 사체로 다가갔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지만, 다행히 포식은 가능했다.
[광기의 신자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근력 + 2]
[체력 + 3]
[마력 + 8]
[스킬 - 피오르의 축복이 추가됩니다.]
[피오르의 축복]
등급: ★★
분류: 액티브
끓어오르는 감정을 몸에 투영시킨다. 분노와 일체화된 육신의 잠재능력을 일깨우지만, 정신이 혼란해진다는 단점도 있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근력·민첩 20% 증가.
*사용 시 분노 상태에 빠짐. 지속시간 후에는 혼란 상태에 빠짐.
*지속 시간: 120초.
*재사용 시간: 60초.
근접전에서 중요한 두 능력치를 20%나 늘려 주는 엄청난 옵션.
대신 ‘축복’이라는 말이 안 어울리는 페널티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지속 시간 중에는 분노가.
축복이 끝나면 혼란 상태에 빠지는 반쪽짜리 버프.
아니.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버프보다 디버프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볼 정도의 옵션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피오르의 축복]을 사용했다.
[피오르의 축복이 스며듭니다.]
[근력과 민첩이 20%씩 증가합니다.]
[격렬한 분노가 일어납니다.]
[냉혈 스킬이 발동됩니다. 냉정한 마음이 유지됩니다.]
흐흐흐.
바로 이 맛이지.
정신 계열 스킬에 엄청난 저항력을 지닌 냉혈.
냉혈은 늘 적용되기에, 저 축복의 페널티를 가뿐하게 상쇄할 수 있다.
“수정체는 영수 형님이 챙겨 주세요.”
“팀장님께서 안 하시고요?”
“내가 집으면 이름이 뜨잖아요.”
적어도 일본 진형은 김영수의 예상대로 나를 엄청나게 의식하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영수 형님을 내세우면 정보가 퍼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출 수 있겠지.
근데.
바알이라는 작자가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군.
“에이, 맨입으로 알려 달라고 하면 서운하죠. 안 그래요?”
『오염된 왕좌의 주인은 당신에게 하사한 가호도 있지 않느냐며 입맛을 다십니다.』
“그건 정당한 거래였고. 누가 튜토리얼에 난입하랬나.”
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바알이 원하는 건 [레메게톤] 전권일 터.
아르스 게티아의 출처를 말해 주는 건 쉽지만, 이왕이면 하나라도 얻어 가야지.
그냥 정보를 줄 수는 없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은 당신에게 거래를 제안합니다.』
『만약 당신이 브론즈에서 실버 등급까지 한 달 안에 도달할 수 있으면 탑의 규정 안에서 최대한의 보상을 해 주겠다고 선언합니다.』
『그 대신 실패하면 아르스 게티아를 양도하라고 제안합니다.』
이야, 좀 세게 나오네.
아르스 게티아를 탐낼 건 예상했지만, 공수표까지 날릴 줄은 몰랐다.
나는 짐짓 고민하는 척 두리번거리다가.
“사악한 뱀신상을 준다면 거래 받아들이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보상 품목을 언급했다.
사악한 뱀신상.
72마신 중 하나인 62위(位) ‘용의 총통’ 발라크의 성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