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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12화 (112/300)

112화

지리산은 경상도와 전남, 그리고 전북에 걸쳐 있는 커다란 산이다.

산이 큰 만큼, 올라가는 방향도 여러 곳.

게이트가 생성된 곳은 전남 구례에서 북쪽으로 쭉 올라가는 방향이다.

좁은 도로를 쭉 가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스승님, 혹시 구례에 와 본 적 있으세요?”

“뭐, 일이 있어서.”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가다 보면 산중턱에 지어진 절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엄사다.

내가 이쪽 길을 알고 있는 것도 저 웅장한 절 때문이다.

불가의 정수.

그러니까 불교와 관련된 유물이 있나 했는데 의외로 신라시대 화랑의 정수가 있어서 말이야.

꽤 인상적이어서 회귀를 하고 나서도 떠올릴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정수가 특정 물체에 깃들어 있지 않고 땅 자체에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올림포스 신전에서 가이아의 정수를 흡수한 여파로 지진 났던 걸 생각하면…….

“쩝.”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화엄사 주차장에서 멈춘 검은 세단.

협회에서 제공해 준 차량이다.

“시간이 꽤 걸릴 테니, 읍내에서 커피라도 드시고 오세요.”

“아닙니다. 진호 특무대원님을 모시는 일인데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정장을 입은 요원들은 딱딱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

“그럼 출발하자.”

화엄사 우측으로 난 산길을 쭉 따라 걷다 보니, 강한 마력의 파동이 시야에 잡혔다.

등산로에서 살짝 떨어진 곳.

푸른색을 띤 게이트가 기암절벽 바로 앞에 생성되어 있었다.

“화엄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다행이군.”

“헤엑, 헥. 무슨, 게이트가, 산지에…….”

지영이가 숨을 헐떡였다.

보너스 스텟 대부분을 마력에 찍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산행 중에 내가 업을 수는 없잖아.

게이트 임계가 코앞이면 모를까, 업고 가는 건 서로한테 민폐다.

[이매망량의 구덩이]

[제한 - 아이언(50)]

핑 레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50명? 이건 팀이 아니라 길드 단위잖습니까.”

“쫄리면 빠지시든지.”

“흥! 위대한 중화의 전사가 이런 곳에서 발을 뺄 줄 압니까?”

이제 슬슬 핑 레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이 오는걸.

지영이가 고개를 홱 돌렸다.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보니 웃음을 참나 보군.

티를 내면 핑 레이를 부려 먹기가 힘들어지잖아!

게이트 공략이 끝나면 조심하라고 따로 경고(?)를 해야겠다.

“하던 대로 가자.”

팀원 넷은 고개를 끄덕였다.

반복적인 19층 공략에 이어 게이트도 여럿 공략했으니.

이제는 말 한마디 툭 던져도 알 만큼 팀플레이에 익숙해졌다.

게이트에 발을 딛는 순간, 자욱한 안개가 눈을 가린다.

[진동 결계 x 5]

바닥을 제외한 모든 면을 감싸는 결계.

지영이는 내 지시 없이도 당황하지 않고 결계를 전개했다.

“모두 괜찮으세요?”

“덕분에.”

게이트 내부의 구조는 들어갈 때까지 알 수 없다.

[낙원의 밤]처럼 한번 들어가면 클리어하기 전까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기도 하고.

이번 게이트처럼 오감을 훼방하는 환경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끼이이이!!!”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쿵- 하는 소리가 나면서 결계가 흔들렸다.

하얀 소복 위를 덮은 검은 머리카락.

기다란 머리 사이로, 붉은 안광이 번들거린다.

“흐응, 잡귀로구나.”

“잡귀라면 귀신이잖아!!”

소스라치게 놀라는 지영.

닉스는 입을 살짝 오므렸다.

“왜 그리 놀라느냐? 영체조차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자격 미달의 영들일진대.”

과연, 여신님은 달라도 다르군.

온갖 요괴를 일컫는 단어, 이매망량(魑魅魍魎).

여기서 말하는 온갖 요괴란, 생전의 격이 모자라서 잡귀로 영락해버린 귀신들을 가리킨다.

“키키키키키!!”

희끄무레한 영체가 점점 늘어난다.

결계 주위를 감싸는 이매망량.

안개에 혼령들이 가세하니, 바깥 풍경을 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영체라면 공격이 안 통하는 거 아닙니까?”

“물리 공격은 안 통하지.”

“그럼 어떻게 해야…….”

“내공은 둬서 국 끓여 먹을 거냐?”

저 이매망량들은 온전한 영체가 아니다.

게이트의 마력을 받아들여서 어정쩡하게 물질화가 된 존재.

만약 물리 공격이 아예 안 통한다면 난이도가 아이언이 아니겠지.

그렇지만.

단순히 칼을 휘두르기보다 내공을 실어서 타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굳이 검기상인의 경지에 목매지 마. 의지를 담는 걸로 충분해.”

열기를 휘감은 검격.

핑 레이의 초열검이 이매망량의 몸통을 찌르는 순간.

“키이이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면서 소멸했다.

“이게 된다고?”

멍한 표정을 짓는 핑 레이, 그 위로 이매망량 무리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전장에서 멍하니 있으면 어떻게 하냐.”

[유인을 사용합니다.]

핑 레이한테 달려들던 이매망량들이 방향을 급선회했다.

흡사 파도가 몰려드는 것 같은 모습.

수라마령심법의 구결대로 모은 패도적인 내공이 혈도를 타고 전신을 회전한다.

원시종의 정수와 일체화되어 더 날카롭게 벼려진 손톱.

그 위로 [탐욕의 권능]을 씌운 후, 폭발적인 기세로 흐르는 내공으로 초식을 펼쳤다.

서거걱!

날선 손톱에서 솟구친 검은 기류가 이매망량 무리를 찢어발겼다.

“팀장님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영업 비밀.”

쭉 세운 검지를 입가에 대었다.

궁금하다고 다 알려 줘야겠냐?

* * *

내가 이매망량의 구덩이를 노린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막대한 경험치.

“키키키키!”

이매망량은 영체와 육체의 성질을 동시에 지닌 괴물이다.

본래는 격이 모자라서 현계할 힘조차도 없는 귀신들.

게이트의 파동으로 어설프게 양쪽의 성질을 띤 반푼이라서 어떤 공격이든 먹힌다.

완전한 귀신이라면 화염이나 번개 등, 속성력을 담아서 공격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란 말씀.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핑 레이의 공격이 통하는 게 증거다.

대신 영력과 물리력 양쪽 모두를 다룰 수 있긴 한데…….

“키키키키!!”

쿵! 쿵!

수십 마리가 뭉쳐도 지영이의 결계 하나 쉽게 걷어 내지 못했으니.

떼거리로 몰려드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는 놈들이다.

“와, 또 레벨이 올랐어요!”

지영이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귀신 어쩌고 하던 게 불과 수십 분 전인데.

이매망량이 위협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뒤로는 텐션이 올라갔다.

의외인 건 닉스였다.

“참으로 혼탁한 세상이로다. 이리도 잡귀가 많을 줄이야.”

한탄하듯 중얼거리며 손을 펼치더니.

[어둠 지배]

극야를 수십으로 쪼개서 사방으로 방출했다.

내 수준에선 흉내 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섬세한 컨트롤.

워낙 힘을 여럿으로 나눈 터라 가시 하나하나에 실린 힘은 크지 않았는데.

“키키키…….”

이매망량은 가시에 찔린 순간, 힘 빠진 비명을 지르면서 사라졌다.

쟤네가 맷집이 약하기는 해도 극야 한 가닥에 실린 힘에 소멸할 정도는 아닌데?

“아하.”

“깨달음이라도 온 것이더냐?”

“아니, 여신님은 극야에 격을 싣는구나.”

닉스는 개념의 영역에 다다른 신.

격만 놓고 보면 제우스나 오딘 같은 신왕(神王)보다도 높다.

극야는 닉스의 상징이자, 그녀 자체인 힘이니.

한낱 잡귀 따위는 아주 적은 힘만으로도 소멸시켰다.

영혼의 격을 극야에 담아 낸다, 라.

나도 한번 따라서 해 봤지만 닉스만큼의 효율이 나오지는 않았다.

“더럽게 힘드네.”

극야.

회귀 전, 각종 신격을 포식해서 자유자재로 다루던 나조차도 다루기 힘든 심오한 힘.

또 수련을 할 게 늘었군.

“스승님, 이 귀신들은 언제까지 몰려와요?”

“그걸 내가 어찌 아냐.”

퉁명스레 대꾸하면서 혈조공을 펼쳤다.

백수제왕공은 강력한 대신 한번 전개할 때마다 내공이 쭉쭉 빠져나갔다.

여의주에 깃든 내공까지 끌어올렸는데도 안 되겠네.

동시에, 포식으로 소멸해 가는 영혼의 찌꺼기도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이매망량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유체화가 추가됩니다.]

[유체화]

등급: ★★

분류: 액티브

사용자의 육체를 물질계에서 이탈하여 혼 상태로 만든다.

각종 물리 공격을 무시하지만, 빛 속성 공격에 극도로 취약해진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말 그대로 유령이 되는 스킬.

유체화는 포위당하거나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유용했다.

완전 무적은 아니고 오러나 기(氣)를 실은 공격이나 마법 공격에 닿으면 피해를 입지만.

브론즈 등급까지는 두고두고 유용하게 사용 가능한 스킬이다.

내가 얻은 건 [유체화]만이 아니었다.

이매망량의 수는 못해도 천 단위.

정수를 100% 포식해서 추가 스텟을 얻진 못해도.

나한테는 포식 시 마력을 늘려 주는 [혼원룡의 심장]이 있다.

이매망량이 소멸할수록 급격하게 늘어나는 마력 스텟!

게이트에 진입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수십이나 늘어났다.

[경험치 0.4%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가파르게 오르는 레벨은 덤.

직업 페널티가 우스워지는 속도다.

레벨이 상승했다는 메시지를 듣자마자 극야에 투자했지만.

[보너스 스텟을 극야에 투자할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이 돌아왔다.

과연. 내공이랑 비슷한 개념인가.

무공 사용자들은 일정 구간마다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기(氣)의 순환을 깨치지 않으면 내공 스텟이 정체되어서 더 이상 늘지 않는다.

극야도 마찬가지겠지.

밤이라는 개념 그 자체인 닉스의 힘이다.

보너스 스텟으로 올릴 수 있었던 게 오히려 기적인 거지.

끊임없이 몰려들던 잡귀들.

시간이 지날수록, 이매망량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허억, 헉.”

“하아…….”

지친 기색이 역력한 팀원들.

김영수의 고유 능력 [군단 지휘]가 아니었으면 마음이 먼저 꺾였을 것이다.

“되먹지 못한 망령들 같으니라고.”

단 한 명.

닉스 빼고.

그녀는 평소의 나른한 표정 대신 드물게 분노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표출했다.

이매망량들이 몰려드는 게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엄밀히 말하면 팀원은 아니니까 빼야 하나?

[이매망량의 구덩이의 모든 괴물들을 쓰러트렸습니다.]

[게이트를 닫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유부(幽府)의 열쇠가 주어집니다.]

[유부(幽府)의 열쇠]

등급: 유니크[U] / 분류: 잡화

내구도: 1/1

명계로 향하는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열쇠입니다.

보라색을 띤 금속 열쇠.

“설명이 너무 불친절한 거 아닌가요?”

지영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열쇠를 들어 보더니, 이내 입술을 내밀었다.

핑 레이나 카를라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고.

아이템 설명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리더라.

“쓸데없으면 내가 가진다?”

“그 대신 훈련 양을 2배로 해 주세요.”

“1주일.”

“콜.”

카를라가 흔쾌히 대답하자, 핑 레이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야, 너, 너! 왜 그런 벌칙을 정하는 건데!!”

“당신도 훈련하려고 이 팀에 머무르는 거잖아.”

“아니. 그건 맞는데…… 아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

나는 못 본 척하며 열쇠를 챙겼다.

유부의 열쇠.

[이매망량의 구덩이]를 찾아온 진짜 목적이다.

명계, 타르타로스, 무간지옥 등.

쇠락해 버린 옛 신들이 갇힌 공간으로 이어 주는 열쇠.

바로 탑 지하와의 길을 여는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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