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11화 (111/300)

111화

1차 대침식.

일명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는 축제분위기였다.

다이아몬드 등급으로 넘어가기 위한 관문.

60층 승급전이 활성화되려면 탑과 세계의 동화가 20%를 넘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더 높이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불로장생하게 해 주는 불로초가 있을지도 몰라.”

“마나로 움직이는 엔진. 친환경에 가성비도 엄청 좋잖아.”

“과연 어떤 물질이 발견될지.”

바벨탑은 인류의 기술, 나아가서는 생활 방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마나 엔진으로 구동되는 자동차나 가전 기구는 이미 실용화가 된 지 오래.

현대 의학으로는 치유가 어려운 분야도 치유 주문이나 마나를 활용한 수술로 해결되었다.

기대 수명도 전반적으로 상승.

탑과 세계의 동기화가 올라갈수록 대기 중의 마나 농도도 상승, 파괴되었던 자연도 복원되었다.

하지만 동기화가 20%에 도달하는 순간, 단 한 명을 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가 벌어졌다.

『전 세계 각지에서 이상 현상 발생!』

『임계를 넘어선 게이트, 바벨탑에만 존재하는 괴물을 지구로 불러들이다?』

『캐나다 퀘백 주 오타와, 갑자기 출몰한 괴물들로 인해 피해 발생…….』

나라를 따지지 않고 생성되는 게이트들.

임계치에 도달한 게이트들은 차원 내부에 담아 둔 괴물들을 밖으로 토해 냈다.

그 사실을 먼저 밝혀낸 건 한국의 플레이어였다.

유진호.

최근 바벨탑 저층의 기록들을 모조리 갈아치우며 알음알음 명성을 떨쳐 가던 플레이어다.

진호는 팀원들과 함께 게이트를 빠르게 공략, 공통적인 구조와 위험성을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전 세계에 알렸다.

“민가 근처에 열린 게이트들부터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처리를 못하면 피난이라도. 그리고 근처에 경찰과 군인 배치하고!”

전 세계 각국에서는 의외로 진호의 발언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게이트 설명과 함께 언급된 브레이크 사태.

임계점을 돌파한 게이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리란 것을 대부분 짐작했기 때문이다.

회귀 전.

전 세계에 게이트가 나타나고, 처음으로 공략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5시간 정도.

진호는 그걸 3시간이나 줄였다.

언뜻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전 세계 사람들은 진호가 과감하게 나선 덕에 회귀 전보다 골든타임을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거 한국에서 지어낸 말 아니야?”

“사람들을 대피시켰는데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잖아.”

모든 정부가 진호의 말을 믿은 건 아니었다.

행정적인 번거로움이나 예산.

기타 등등의 이유를 들어서 굼뜨게 움직인 국가들도 있었고.

“우리는 브루앙 민족을 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

“레이더는 모든 민족의 것이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들은 게이트 레이더 사용 문제로 갈등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제3세계 쪽은 더 상황이 심각했다.

한 국가라는 울타리에 매여 있지만, 역사가 다르기에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여러 민족들.

그들은 진호가 알린 소식을 듣고 힘을 합치기보다 게이트 레이더 소유권을 두고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대혼란에 빠진 제3세계. 게이트 브레이크 골든타임 놓치다!』

『브레이크 사태를 일으킨 게이트는 해당 지역을 이계(異界)화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지구의 10%.

1차 대침식에서 이계화가 된 땅이다.

초동 조치가 빨랐던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이계화에 의한 영토 손실이 적은 편이었다.

반면에 진호의 말을 신용하지 않거나 갈등으로 게이트 폐쇄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국가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차 대침식의 여파는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극에 괴조 출현?』

『히말라야에서 커다란 뱀의 그림자가 아른거려…….』

『그랜드캐니언에 등장한 거인. 천개의 눈을 가진 거인, 아르고스로 밝혀졌다!』

히말라야, 울루루, 북극, 그랜드 캐니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에 돌연 신화 속에 존재하던 괴물들이 나타났다.

동시에, 해당 지역은 반경 100킬로미터가 게이트 브레이크도 없이 이계화돼 버리기까지.

바벨탑과 차원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생긴 변화는 이제 시작한 것에 불과했다.

* * *

협회로 돌아온 후, 나는 세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진호님 덕에 어깨를 펴고 다닌다니까요.”

호쾌하게 웃는 사내.

특무대 팀장 한수창은 내가 게이트들을 돌아다닌 동안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혹시 절 영입했다고 힘주는 건…….”

“왜 아니겠습니까? 지금 특무대 지원하는 플레이어도 엄청 늘어났다고요.”

“그건 잘됐네요.”

난 예의상으로 대꾸했다.

한수창이 떠들어 준 덕에 회귀 전과 후의 변화를 빠르게 인지할 수 있었다.

지구의 10%가 이계화라.

유의미한 데이터다.

회귀 전에는 1차 대침식 후 며칠 만에 27%나 되는 땅이 이계의 환경으로 변했거든.

3시간을 앞당겨 움직인 결과가 이 정도다.

과거로 돌아온 지 4개월.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세계의 흐름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진호 님, 피곤하시면 조금 쉬시는 게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만 갑자기 왜…….”

“눈이 벌게지셨어요. 눈이라도 붙이시는 게 좋아 보입니다만.”

내가 그렇게까지 감정적이 되었나?

튜토리얼에서 [냉혈]을 익힌 후로는 도통 감정에 휘둘리는 일이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확신.

이 손으로 멸망의 시대를 막아 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갈 길은 멀었다.

우선 지구에서 최강의 플레이어가 되어야겠지?

“미안하군. 오래 기다리게 해서.”

한참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중후한 목소리가 아른거렸다.

김우성 협회장이다.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시니 감사하죠.”

“허허, 우리 진호 특무대원이라면 없는 시간도 내야지, 암.”

협회장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요즘은 자네 덕에 내가 어깨를 펴고 산다네.”

어째 한수창 팀장이랑 같은 말을 하시네.

두 사람이 짠 건 아니겠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최근 협회장님께 이런 말씀을 자주 드리는군요.”

“껄껄! 뭐든 말하게. 내 최대한 힘써 볼 터이니.”

“아, 별건 아니고 게이트 위치를 저희 팀에 공유해 주실 수 있나 해서요.”

호오- 하고는 턱을 쓰다듬는 협회장.

“자네, 올해로 나이가?”

“24살입니다.”

“분명히 젊은데, 어찌 이런 혜안을 가졌는지 모르겠군.”

협회장은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말하는 걸 보니, 이미 ‘게이트 레이더’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꿰뚫어 본 모양이군.

나는 짐짓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렸다.

“협회장님께서 무슨 뜻으로 말씀을 하시는지…….”

“앞으로 게이트 공략은 경쟁이 붙을걸세.”

게이트는 바벨탑처럼 도전 횟수에 제한이 없다.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클리어 보상도 탑의 미션만큼이나 짭짤하고 경험치도 올릴 수 있다.

아니.

내가 공략했던 게이트들처럼 탑의 보상보다 뛰어난 아이템을 주는 곳도 나오겠지.

“힘과 명성, 그리고 돈. 게이트 공략은 모든 것을 쥘 수 있는 기회가 될걸세.”

역시나.

회귀 전에도 유능하다는 이야기를 꽤 들었지만, 벌써 향후에 생길 일들을 예상할 줄은 몰랐다.

“자네도 짐작하고 있지 않는가?”

“쉽게 넘어가 주시지.”

난 어수룩한 표정을 풀었다.

“자네 덕에 우리나라가 무사할 수 있었으니,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렵지 않다네.”

“그러면 생색이라도 내신 겁니까?”

“껄껄. 이렇게라도 해야 빚을 하나라도 줄일 수 있지 않겠나.”

오호라.

“빚, 이군요.”

“그렇다네. 갚아나가려면 멀었으니 더 많이 부탁하게나.”

내 활약상을 단순한 ‘특무대원’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표현.

협회장은 스스로 허리를 굽히면서 나를 협회 쪽으로 더 당기려는 액션을 취했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난 히죽 웃었다.

협회에 지운 빚은 두고두고 뜯어먹어야지.

* * *

게이트 레이더 정보 공유를 약속받은 후.

팀원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 허름한 곳이 반갑게 느껴질 줄이야.”

“허름하다고?”

“아, 아늑하다는 말이 잘못 나왔습니다, 팀장님.”

화들짝 놀라는 핑 레이.

구룡방의 인프라랑 비교하면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내가 이해를 하는 거랑, 실언을 내뱉은 건 또 별개지.

“핑 레이, 대련이다.”

“팀장님, 게이트 들락거린다고 고생했는데 오늘은 좀 봐주십쇼.”

울 것 같은 표정이군.

게이트 공략한다고 엄청 굴렸으니, 이번만큼은 풀어 줘야겠다.

“한 번은 봐준다.”

“팀장님, 감사합니다!”

핑 레이는 포권을 하고는 제 방으로 쏙 들어갔다.

나랑 대련하는 게 그렇게까지 싫은 건가.

-평소에 그대가 행한 일들을 되돌아보아라. 답은 그 안에 있느니라.

“다 잘되라고 하는 거야.”

-후후훗.

묘한 웃음을 흘리는 닉스.

그렇게 반응하니까 더 기분이 안 좋은데.

막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코너를 끼고 강한 마나의 파동이 느껴진다.

“미스터 유, 활약상은 들었어요.”

“엘렌, 1차 대침식 이후로도 여기에 있었습니까?”

“네. 소식을 듣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기상이변이 심해서요.”

10대 마경.

고신족들이 이 차원에 심복들을 뿌리면서 전 세계의 기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열대지역에서 눈이 내리질 않나.

평소 잔잔했던 곳에서 강풍이 불곤 했다.

비행기들은 대부분 운항을 중지.

대양을 누비던 배들도 속도를 늦추거나 인근 항구로 들어갔다.

큰 사고는 없던 걸로 아는데…… 비행기가 끊길 건 생각을 못 했군.

“그러면 언제쯤 미국으로 갑니까?”

“마침 비행기 운행이 재개된다고 해서요. 인사라도 드리고 가네요.”

호호호- 하고 웃는 엘렌.

카를라의 스승 겸, 나를 스카우트하려고 남아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적절한 시기에 돌아가는 셈.

“오, 카를라?”

“상무님, 안녕하세요.”

“우린 이제 미국으로 돌아갈 거랍니다. 준비해요.”

카를라는 원래 골드 문 길드 소속이니, 당연한 일이다.

내 팀에서 경험을 쌓는다는 구실로 왔으니 더 머무를 필요도 없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엘렌도 나한테 도장을 찍어 놨으니까.

-참으로 아쉽구나. 그래도 오래 본 아이이거늘.

아쉬움을 토로하는 닉스.

나중에라도 기회는 있는 법이니까.

회귀 전에 엘렌한테 들었던 이야기도 있으니, 카를라가 미국으로 돌아간 뒤의 행적도 관심을 둬야겠…….

“저는 남아 있고 싶어요.”

뭐라굽쇼?

나는 연신 두 눈을 껌뻑였다.

당혹스러운 건 엘렌도 마찬가지였는지, 말문이 막힌 채 어- 하고 입을 벌렸다.

“잠깐만. 저 카를라야,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진호 팀장님만이 저를 더 강하게 단련시켜 줄 수 있어요.”

카를라는 여전히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저 말 진심이야?

-말했지 않느냐. 저 아이는 강함에 대한 집착이 있다고.

닉스가 후훗, 하고 웃으면서 속삭였다.

아니, 나도 저 친구가 대련에 매달리는 걸 보고 알기야 했지.

그렇다고 엘렌의 지시에 불응할 줄은…….

“흣, 흐흐흐.”

넋이 나간 것 같은 웃음소리.

엘렌이 동요했을 때만 볼 수 있는 반응이다.

저땐 누가 건드려도 정신을 못 차리니까 내버려 두는 게 답이다.

한참을 넋이 나간 음성으로 웃던 엘렌이 돌연 날 바라봤다.

“미스터 유.”

“예, 예.”

“제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카를라를 잘 부탁드릴게요.”

뭐야. 저 말을 납득한 거야?

엘렌이 보기에는 유해 보여도 확실한 성격이다.

그냥 넘어갈 리가 없는데.

어째서 두 번 묻지 않고 넘어가는 걸까.

카를라와 엘렌.

그녀가 힘에 집착하는 이유, 그리고 엘렌과의 관계.

회귀 전에는 듣지 못했던 무언가가 둘 사이에 있는 게 분명했다.

-게이트 공략에 나설 전력이 확보되었구나.

닉스의 말이 옳다.

당장 중요한 건 두 사람의 관계나 카를라의 목적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강해지는 것.

한국에서 열린 게이트 중 ‘기연’을 품은 곳들 위주로 공략하려면…… 당분간은 바쁠 거야.

[지리산 - 이매망량의 구덩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기연’ 보관 장소.

첫 번째 목표는 지리산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