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낙원의 밤 게이트의 모든 괴물을 쓰러트렸습니다.]
[게이트를 닫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수호의 보주가 주어집니다.]
[수호의 보주]
등급: 유니크[U] / 분류: 보주
내구도: 500/500
방어 마법에 특화된 강력한 마법 보조도구입니다.
수호의 보주를 통해 방어, 혹은 결계 관련 스킬을 사용하면 지속시간 및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마력 + 25
*방어 스킬 마나 소모 -30%
변종 좀비의 몸통에서 튀어나온 새카만 구슬.
낙원의 밤을 첫 공략 포인트로 잡은 건 이 아이템 때문이기도 했다.
“뭐야, 여기는 탑처럼 보상도 주는 건가?”
“보아하니 그런 것 같군.”
짐짓 모르는 척, 핑 레이의 혼잣말에 대꾸했다.
“원래는 팀 단위로 분배를 해야겠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따 몫을 나눠도 되지?”
“상관없어요.”
“흥, 어차피 보주 따위는 안 쓰니까 상관없다……요.”
카를라와 핑 레이는 순순히 내 의견에 동조했다.
나머지 두 사람이야 물을 것도 없고.
그럼 배분 문제도 해결됐겠다.
“당장은 네가 써.”
수호의 보주를 지영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스, 스승님?”
“게이트는 위험해. 임계를 돌파하면 괴물들이 바깥으로 나올 건데, 그럼 큰일이 날 거다.”
실제로 회귀 전에 벌어진 일.
1차 대침식 초기에는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기에, 각국의 플레이어들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의 소극적인 대처 및 방치는 각지의 게이트 브레이크로 이어졌고.
무수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여길 공략하는 걸로 끝이 아니란 말이네요.”
“당분간은 바쁠 거야.”
“그러면 맡아 두는 걸로 할게요.”
지영이는 두 손으로 수호의 보주를 감쌌다.
[매드 사이보그 좀비 카탄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급속 치료가 추가됩니다.]
좀비나 기계와 관련된 스킬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사 가운을 입었다고 해서 이런 정수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정말로 올라운더가 되겠네.”
“후훗, 그대가 치유만 하고 있는 건 상상이 안 되는구나.”
“상황이 급할 때만 써야지.”
내가 전장의 후미에서 치유에 매진하는 건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꼴이다.
부상이 심한 사람이 있으면 모를까, 어지간하면 안 쓰겠네.
힐도 좀비의 전염을 막는 용도로만 사용했으니까.
보험으로 괜찮은 스킬을 얻었다.
“우선 협회에 보고부터 해야겠어.”
[낙원의 밤]은 게이트 사태의 위험성을 알리기에 충분한 케이스.
이 행동이 미래를 얼마나 바꿀지는 지켜봐야 알겠지.
* * *
게이트 공략을 마친 후.
바로 협회로 돌아가서 게이트에 대해 보고했다.
1) 게이트에는 온갖 괴물이 있음.
2) 임계가 넘어가서 브레이크 사태로 이어지면 괴물들이 지구로 넘어오게 됨.
3) 게이트 안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사망.
4) 클리어하면 보상이 나온다.
김우성 협회장은 보고를 들은 후,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주 큰일을 해 주었어.”
“헬기를 빌려주신 덕분입니다.”
“그게 어찌 내 공인가? 자네가 건의한 것을.”
협회장은 나를 칭찬하더니 돌연 한숨을 푹 쉬었다.
“자네가 그 게이트를 폐쇄하지 않았으면 참사가 일어날 뻔했어.”
회귀 전.
낙원의 밤 게이트에서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진 후, 영화에서 볼 법한 좀비 사태가 일어났다.
피해 규모가 커진 후에야 나선 길드들.
당시 인명 피해만 만 단위였으니, 사전에 막지 않았으면 이번에도 피해가 어마어마했을 거다.
“아무래도 대통령 각하를 다시 한번 뵈어야겠군.”
“괜찮으시겠습니까?”
한수창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사람들의 안전이 걸린 일이라네.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일단 각 길드에도 협조 공문을 내리겠습니다.”
“전국의 지점을 공유, 인근에서 대기해 달라고 해.”
한국 각지에 열린 게이트는 수십 개.
플레이어 전원이 나선다면 어떻게든 사고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협회에서 공문을 보낸다 한들, 각 길드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경찰 쪽에도 공문을…….”
“그 부분은 내가 맡도록 하지.”
협회장은 전화를 들었다.
“근데 스승님,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말해 봐.”
한 발 물러서 있던 지영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협회에 특무대 팀장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근데 왜 저분만 일해요?”
“내가 최초로 보고한 게 한수창 팀장이잖아.”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는 지영이.
플레이어 협회도 갑작스러운 게이트의 출현에 혼란한 건 마찬가지.
내가 발 빠르게 게이트를 공략, 정보를 물어와서 망정이지.
아니면 전국 각지에서 브레이크 사태가 일어나는 걸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을걸?
회귀 전에는 실제로 그랬으니까.
“참, 한 가지 부탁드릴 게 더 있습니다.”
“게이트 문제가 진정될 때까지는 헬기를 마음껏 쓰게.”
“아, 그건 감사한데 다른 부분이에요.”
“흐음, 무엇인가?”
“게이트와 관련된 정보. 다른 나라에도 공유를 부탁드립니다.”
협회장은 두 눈을 깜빡이더니, 잠시 후 허허허- 하곤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값진 정보를 외국에 그냥 전달하자는 말인가?”
“예.”
“자네의 목숨값이나 다름없네.”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잖아요.”
“박애주의자인줄은 몰랐군.”
“그래서 안 되는 겁니까?”
“설마. 정보 제공자가 원하면 그리 해야지.”
“감사합니다.”
나는 90도로 인사를 한 후, 팀원들과 함께 헬기로 향했다.
다음으로 공략할 게이트는 이미 정해 두었다.
[청주 - 공양의 탑]
[조건 - 아이언(20)]
최대 20명까지 입장이 가능한 미션.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찰의 흑요검]과 비슷한 성장형 아이템인 [핏빛 사자 방패]가 나올 거다.
성장형 아이템은 유력 길드에서 비싸게 사 가니까.
이 시기에는 반드시 독식해야 할 클리어 보상이 많진 않았다.
그래도 챙길 수 있는 만큼은 챙겨야지.
“의문이 생기는구나.”
“지영이야 그렇다치고, 여신님은 뭔데.”
“아까 그 정보 말이니라. 다른 나라에 알리는 것이 감사를 표할 일은 아닌 것 같거늘.”
“정보라는 건 힘이야. 그건 외교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
전 세계를 통틀어도, 우리보다 빨리 게이트를 공략한 팀은 없을 것이다.
있다고 해도 내부 정보를 풀 리가 없겠지.
자국 내에서 쉬쉬하거나 외교에서 활용할 카드로 썼을 거다.
“국가나 이념이 달라도 결국에는 같은 인간 아니더냐?”
“여신님이 보기에는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현명한 종족이 아니야.”
“한데 그대는 그 귀한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구나.”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멸망한 세계를 본 입장에서는 그깟 것, 아무것도 아니거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인류의 체계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했다.
“난 여신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귀하지 않아.”
“후후훗, 상관없느니라. 중요한 건 그대가 여의 마음에 합한다는 것이니.”
근질근질한 기분.
왠지 모를 감정에 닉스한테서 시선을 돌렸다.
“뭐, 좋을 대로 생각해.”
난 퉁명스레 대꾸하곤, 휴대전화를 집었다.
게이트 사태.
팀원들과 함께 다녀도 공략에 한계가 명확했다.
골드 등급 이상인 고난이도 게이트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때를 위해 만들어 둔 인맥들을 써먹을 때가 되었다.
-후배님 아닌가? 오래간만이군.
“예, 신준석 선배님. 많이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말이죠.”
신준석.
국내에서 10위 안에 드는 랭커이자, 무공 사용자다.
예전에 플레이어 종합상가에서 운류보 비급을 계기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난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짧게 추려서 이야기했다.
-큰일이군. 내가 도울 일이라도 있을까?
“제가 협회에 발을 걸치고 있어서요. 선배님께 게이트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알겠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니 힘닿는 데까지 돕지.
“감사합니다, 선배님.”
플래티넘급 플레이어.
이미 최대레벨인 300을 찍었으니, 어지간한 게이트는 혼자서도 공략이 가능할 거다.
뚜- 뚜- 전화를 마친 후, 곧바로 다음 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발신 정보: 홍윤수]
심각한 정의덕후인 홍윤수.
게이트에 대한 정보만 툭 던져 줘도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또 음흉한 생각을 하는구나.”
“누가 들으면 오해할라.”
“그 비틀어진 미소를 치우고 말하여라.”
닉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 * *
1차 대침식 후 이틀이 지났다.
두두두두-!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고막을 어지럽힌다.
가끔 들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때로는 헬기가 흔들리기도 했지만.
일행은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그대도 쉬어 둬라.
“난 괜찮아.”
-지난 이틀 동안 한 번도 눈을 붙이지 못하였거늘.
“그래도 체력은 좋거든.”
내 육신은 이미 반쯤 인간을 벗어났다.
원시종의 정수를 그릇 삼아서 신체를 개변, 포식한 정수들을 몸 곳곳에 녹여 냈으니.
이틀이 아니라 며칠 밤을 새도 괜찮았다.
“여신님이나 쉬어 둬. 피곤하다고 영체화하지 말고.”
-이 순간에도 육신의 피로가 풀리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호문쿨루스는 ‘인공적’일 뿐, 사람과 100%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다.
피로도가 쌓이자 영체화를 사용한 닉스.
저런 꼼수도 괜찮아 보이는데?
-언제까지 게이트를 쫓아다닐 계획이더냐?
“급한 불은 다 껐어.”
게이트 브레이크 초기에 벌어진 사고는 대부분 막았다.
내 힘이나 능력, 혹은 시간이 안 되면 홍윤수나 신준석에게 의뢰를 해서라도.
한국은 그 덕분에 1차 대침식 때 눈에 띠는 피해가 없었다.
“인명 피해가 안 생긴 게 가장 크지.”
나는 미소를 지었다.
모두를 지킨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다.
회귀 전에 마주했던 파멸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바삐 움직였을 뿐이다.
결과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 풀렸다.
-잘하였도다. 참으로 장해.
닉스가 뾰로롱, 날아오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젠 아예 버릇이 되었구먼.
-그래도 바쁘게 돌아다닌 덕에 보상을 두둑이 얻었구나.
이틀 동안 공략한 게이트는 10군데.
[유니콘 뿔 창]
[플레임 스트라이크 스킬 북]
[만능 도구함]
2026년에는 구하기 힘든 희귀한 아이템들이 클리어 보상으로 나왔다.
아쉬운 건 새로 포식한 정수가 거의 없다는 정도?
게이트에서 마주한 건 오크나 리자드맨, 코볼트, 고블린처럼 이미 정수를 포식한 괴물들이었다.
딱 한 군데.
[바람 정령의 회관]에서 새로 얻은 스킬이 하나 있군.
“혼자였으면 힘들었을 거다.”
-그대의 선견지명이 들어맞은 것 아니겠느냐?
“웬 선견지명.”
-단독 행동을 좋아하면서도 팀을 꾸렸으니. 멀리 본 것이지.
저번에도 비슷한 농담을 한 것 같은데.
하여간 예리해.
-이제 협회로 가느냐?
“응. 다른 나라 상황도 좀 들어야지.”
회귀 전보다 훨씬 안전하게 1차 대침식을 넘긴 우리나라.
다른 나라들은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를 어떻게 대처했을지 사뭇 궁금했다.
미래를 바꾸는 일.
그 난이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나는 긴장감을 꾹 누른 채, 협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