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역천 팀의 구성은 솔직히 말해서 엉망이다.
근거리 딜러 2명.
서브 탱커 + 서브 원딜 1명.
버프에 특화된 서포터 1명.
그리고 나.
구성원 중에 메인 탱커나 원딜도 없고.
서포터는 버프에 특화되어서 치유 기술 하나 없는 반푼이다.
이렇게 언밸런스한 팀이 구성된 것은 미래의 가능성만 보고 영입했기 때문이다.
근데 말이야.
“힐.”
부족한 건 내가 채우면 된다.
[치유 주문이 삿된 기운을 몰아냅니다.]
카를라의 팔뚝에 생긴 이빨 자국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 녀석들한테 물린 거 치료 안 하면 좀비 된다.”
사이보그 좀비는 암흑 마나로 제작한 언데드가 아니다.
좀비 영화에서나 볼 법한 바이러스 타입.
기계와 살덩이가 섞인 사이보그 좀비는 ‘어느 세계’에서 진짜로 벌어진 비극이다.
“히익!”
주춤거리는 핑 레이.
새끼, 쫄기는.
“좀비한테 물리면 치료제도 없지 않습니까!”
“힐 하면 돼.”
“영화 보면 안 그러던데?!”
“중국에서는 좀비 영화 개봉도 안 되는데 어디서 봤대.”
“그야…….”
“아까도 말했잖아. 힐이면 충분하니까 물리면 말해.”
[낙원의 밤]이 큰 피해를 초래한 것도 그 이유다.
게이트 너머로 나오는 사이보그 좀비들.
하급 치유 주문으로도 감염을 예방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보가 부족했고 서포터도 없었다.
달그락- 김영수가 조종하는 인형 5기는 합을 맞춰서 사이보그 좀비를 하나씩 쓰러트렸다.
“끙. 좀비가 단단해서 힘에 부치는군요.”
“형님은 충분히 제 몫 하고 있으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걸어 다니는 버퍼.
거기에 인형들로 1인분 몫은 해내고 있다.
이 정도면 넘치고도 남지.
[사이보그 좀비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금속화가 추가됩니다.]
금속화는 피부 위에 금속을 덧대는 스킬이다.
이미 원시종이라는 그릇으로 개변한 육체에 [가시 갑피]를 녹여 낸 상황.
난 사이보그 좀비의 정수를 가시 갑피에 공명시켰다.
드드드!
회색을 띠던 갑피의 색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금속 성질이 추가되면서 더욱 견고해진 가시 갑피.
탑에서 ‘아이언슬러그’의 정수를 흡수하면 방어력 하나는 엄청나지겠어.
“그우어…….”
사이보그 좀비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검을 휘두르던 핑 레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 해치웠나?”
“저기요, 그런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은 지영이가 비명을 내질렀다.
구구구궁-!
타이밍 좋게 지축이 흔들리고.
폐허 일부가 폭삭 주저앉더니 사이보그 좀비 수백 마리가 기어올라 왔다.
“넌 떠들지 마라.”
“크흠.”
헛기침을 하는 핑 레이.
두 번째로 나타난 사이보그 좀비 집단은 이전보다 더 까다로웠다.
일부는 팔이 총으로 마개조된 상태.
맨 뒤에는 의사 가운을 입은 커다란 좀비가 일행을 내려다보았다.
눈 대신 달려 있는 현미경이 좌우로 움직이는데, 그 모습이 꽤 징그러웠다.
팔을 앞으로 내미는 원거리형 사이보그 좀비.
새파란 입자가 총구에 모였다.
[솔라 에너지탄]
빗발처럼 쏟아지는 노란색 에너지탄.
몇 겹을 덧대어 놓은 지영이의 결계가 유리창 깨지듯 부서진다.
결계가 부서지는 순간 곧바로 뒤에 추가 전개.
사이보그 좀비들의 공격은 강력했지만, 일행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마나는 1/3 정도 남았지?”
“조금 더 돼요.”
“오래 끌어서는 안 되겠군.”
[낙원의 밤]의 출입 조건은 브론즈 이하.
다른 각도로 보면 브론즈 등급은 되어야 사이보그 좀비 집단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영이가 밀리지 않고 받아 낸 게 대단한 거지.
사이보그 좀비들은 한 차례 사격을 퍼붓더니 에너지를 충전했다.
“넷은 정면을 맡아 줘.”
“팀장님은요?”
“난 안으로 들어간다.”
원거리 타입 사이보그 좀비.
생긴 건 우스워 보이지만, 태양열 에너지를 압축한 탄은 무시하기 어려운 위력을 지녔다.
정면에서 팀원들이 압박하고.
니는 안에 들어가서 혼란을 유도하는 양동작전.
거기에, 팔짱 낀 채 구경하고 있는 대장 좀비라는 변수도 있다.
“공간 조작 능력이면 원거리 공격을 흘려보내는 것도 가능한데요.”
“아서라. 마나 아껴. 이제 한 절반 정도 소모했을 거 아니야?”
카를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팀장님.”
“사이보그 좀비는 내구성이 좋아. 화력에 집중해.”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의욕만 너무 앞서면 전투의 효율이 확 떨어진다.
특히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에는 체력을 안배하는 것 또한 전투의 일부.
“닉스, 승리의 주문을.”
[밤의 축복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극야의 회복 속도가 최대치로 올라갑니다.]
“한데 저 무리를 뚫고 어떻게 진입하려느냐?”
“지영이가 도와줄 거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지영이는 허공에 결계를 구축했다.
좌표만 지정하면 어느 위치에서든 전개 가능한 진동 결계.
공중에서 위치가 고정된 육각형 타일을 밟고 [민첩한 뒷발]을 사용.
전열의 사이보그 좀비 무리를 훌쩍 넘어갔다.
“그우어어어?”
사이보그 좀비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볼 때.
“공격 개시!”
난 목청을 크게 높였다.
* * *
[낙원의 밤]은 승급을 앞둔 브론즈 플레이어가 와도 공략하기 힘든 게이트다.
사이보그 좀비.
제때 치유를 안 하면 플레이어조차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기계와 융합해서 철로 뒤덮인 부위는 원체 단단하다 보니 살이 드러난 곳 위주로 공격해야 한다.
팔을 마개조한 좀비들은 원거리 공격까지 해 대니.
실버 등급.
150레벨의 한계를 넘어선 플레이어들이나 상대할 만했다.
역천 팀은 그런 상대를 앞두고도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대등하게 싸웠다.
“핫.”
카를라는 기합을 내뱉은 후,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녀의 낫에 파괴된 사이보그 좀비만 수십 구.
쉴 새 없이 움직인 탓에 한계까지 달아오른 폐부.
신선한 공기를 넣어 주자, 몸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았다.
그 순간.
노란 구체가 멈춰선 카를라에게 날아들었다.
[진동 결계]
쩌어엉!
강한 반탄력과 함께 튕겨 난 에너지탄.
카를라는 지영이를 슬쩍 보고는 꾸벅, 하고 목례했다.
“헤헤, 빈틈은 내가 다 커버해 줄게요!”
진호가 이지영을 훈련시킬 때 중점을 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진동 결계의 좌표 계산.
두 번째로 전장을 넓게 보는 ‘시야’ 그 자체다.
진동 결계의 가장 큰 장점은 유틸성.
여럿을 겹쳐서 적을 분자 단위로 무너트릴 수도.
방금 전처럼 아군의 틈을 보완해주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달그락-.
김영수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인형들이 막 지영에게 다가오던 사이보그 좀비 위로 들이닥친다.
“아저씨, 나이스!”
앙증맞게 주먹을 말아 쥐는 지영.
가볍게 웃는 걸로 대꾸한 김영수가 다시금 손을 움직였다.
한편, 핑 레이는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로 사이보그 좀비들을 베어 넘겼다.
“거, 빌어먹을 정도로 효과적인 전술이네.”
홀로 사이보그 좀비 집단 한가운데에 뛰어든 진호.
그 덕에 팀원들이 움직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팔을 마개조한 사이보그 좀비 대부분은 깊숙이 파고든 진호에게 신경이 쏠렸고.
비교적 전선에서 먼 곳의 좀비들도 진호를 타깃으로 바꾼 터라 진형이 상당 부분 무너졌다.
그럼에도.
핑 레이가 화가 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도 대등해지고 싶다.’
열등감을 품었다는 건 진즉에 인정했다.
진호는 찬란한 태양.
구룡방의 대형인 장 우페이보다도 더 환한 빛을 내는 것 같았다.
그걸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갈 길은 멀어 보였다.
“너희 좀비 새끼들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
푸아아악!
쌍검이 교차하면서 사이보그 좀비의 목을 베었다.
“너무 앞서 나가지 마세요.”
지영의 말에 곧장 뒤로 물러나는 핑 레이.
19층을 반복적으로 공략한 덕에 서로의 간격에 익숙해진 모습이다.
“지영이여.”
“왜, 닉스?”
“여는 계약자를 도우러 가 보겠노라.”
“저 많은 숫자를 뚫고 진입하는 게 가능해?”
“후후훗, 여에게는 방법이 다 있느니라.”
[영체화]
오리하르콘을 추가로 흡수하면서 생긴 능력.
닉스는 호문쿨루스에 깃든 상태에서도 영체로 변할 수 있다.
뾰롱-!
이전처럼 작아진 모습으로 진호에게 다가간 닉스.
적진 한가운데에서 사투를 벌이던 진호가 눈을 크게 떴다.
“여기는 왜 왔어?”
-그대를 도우러 왔나니, 빨리 여를 받아들여라.
극야와 동화된 닉스.
스스스슷!
닉스의 제어에 들어온 극야의 힘이 사이보그 좀비들을 휘몰아쳤다.
“여신님, 방어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만 맡아 줘.”
[금속화]로 더 견고해진 갑피.
[락 스킨]도 동시에 전개, 원거리 사이보그 좀비들을 견제하면서 방어력 증가 효과까지 누렸다.
적진 한가운데로 파고들었지만 진호가 입은 상처는 거의 없었으니.
-계약자가 원한다면 그리 하겠노라.
닉스는 안심하고 극야를 마구 휘둘렀다.
사이보그 좀비 대부분이 쓰러졌을 무렵,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던 보스 몬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희는 새로운 연구 재료로 쓸 수 있겠군.”
[매드 사이보그 좀비 키탄]
눈 대신 현미경으로 바라보고, 팔이 있어야 할 위치에는 전기톱과 총구를 붙여 놓은 좀비.
마개조된 변종 좀비가 다가오자, 핑 레이가 앞서나갔다.
[고유 능력 - 분신]
다섯으로 분리된 핑 레이.
여태 안배해 둔 체력을 소모해서 변종 좀비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지금이다!”
“감사.”
카를라는 짧게 대꾸하곤 공간 압축으로 등 뒤를 밀며 가속, 고유 능력과 스킬을 결합했다.
무수한 진동을 일으키는 낫.
[액셀러레이트]
변종 좀비의 팔뚝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크크크, 이번 재료들은 아주 팔팔해서 마음에 들어.”
“누가 너 같은 돌팔이한테 몸을 맡긴대?”
“죽음을 겪을 리 없는 완벽한 육체를 얻고 싶지 않느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변종 좀비가 어깨를 살짝 젖히자, 촉수 다발이 튀어나오면서 땅바닥에 떨어진 팔을 붙들었다.
허공에서 서로 얽히며 재생하기 시작하는 팔.
[낙원의 밤]의 보스 몬스터, 키탄의 핵심 능력인 ‘힐링 팩터’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진호는 돌연 한마디를 툭 뱉었다.
“지영아, 결계.”
“아, 알겠어요! 스승님!”
[진동 결계 x 2]
극소형으로 구현된 육각형 결계.
한데, 결계를 펼친 위치가 묘했다.
촉수 다발이 얽히고설킨 팔의 중간 부분.
포개어진 결계가 촉수 일부를 뭉개고는 둘 사이의 접합점까지도 틀어막았다.
픽, 하고 실소를 터트리는 진호.
“변신하면서 기다려 달라는 것도 아니고.”
“너도 연구해 주마!”
쿵! 쿵!
변종 좀비는 떨어진 팔을 붙이길 포기하고 진호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백수제왕무]
[2초식 - 산군파랑조]
강화된 손톱으로 펼친 조법이 변종 좀비의 반대쪽 어깨를 훑고 지나갔다.
뼈와 근육이 찢겨 나가고.
카를라가 베었던 것보다 더 큰 상처가 나면서 반대쪽 팔도 바닥에 떨어졌다.
“스승님, 저것도 막을게요.”
어깨 부위에 생성된 결계.
양팔이 다 잘린 변종 좀비가 발버둥을 쳤지만.
마찬가지로 양다리가 모두 잘리면서 몸통만 남은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투쾅!
백수제왕무 1초식, 응룡황권이 변종 좀비의 머리를 으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