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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08화 (108/300)

108화

협회 입구는 소란스러웠다.

“게이트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플레이어 협회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한 말씀만 해 주십쇼!”

“협회장님께서 청와대로 향하셨다고 하는데 이번 사태와 관련된 겁니까?”

취재진만 수백 명.

두꺼운 인의 장벽에 협회로 들어가는 것조차 녹록지 않았다.

“우와, 승급전 때보다도 더한 것 같은데요?”

지영이는 핼쑥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방벽을 흘겨보았다.

“승급전이라.”

옆에서 쓴웃음을 짓는 핑 레이.

매번 대국이네, 중화의 위엄이네 하면서도 그날의 패배를 떨쳐 내진 못한 듯했다.

그 승급전으로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진호 특무대원님, 이쪽입니다.”

등 뒤에서 아른거리는 음성.

한수창 팀장이었다.

“거긴 왜…….”

“쉿. 기자들 이목 끌면 진호 님이나 저나 파멸입니다.”

으음.

꽤 과격한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동감할 수밖에 없군.

일행은 기자들의 시선을 피해 뒤로 빠졌다.

협회 별관으로 안내하는 한수창.

“본래는 외부 행사가 있을 때만 사용하는 곳입니다만 상황이 이러니 양해를 바랍니다.”

“뭐, 양해까지야.”

별관에는 의외의 인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협회장님이 왜 여기에?”

“껄껄. 협회 입구를 보고도 그런 질문을 하는 건가.”

우문현답이군.

난 쓴웃음을 지은 후, 협회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뒤에 있는 친구들은?”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제 팀원들입니다.”

“저들도 특무대원으로 추천할 것은 아닌 것 같고.”

“이번 사태에서 힘을 보태 주기로 했죠.”

지영이나 김영수라면 모를까.

나머지 두 사람은 애초에 한국 국적이 아니다.

특무대원 조건도 안 맞는단 말이지.

가벼운 말로 긴장감을 털어 낸 협회장이 재차 입술을 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게이트를 조사해 주게.”

“너무 직설적이신 거 아닙니까?”

“앞뒤를 잴 시간이 없다고 판단되어서 말이네.”

협회장은 손을 펼쳤다.

손바닥 크기 정도 되는 둥근 물건.

겉은 하얀색이고, 안쪽은 X나 Y같은 좌표축과 함께 붉은 점들이 찍혀져 있다.

“게이트 레이더군요.”

“맞네. 대통령 각하께서 내게 일임하였지.”

저 작은 기물이 향후 플레이어 협회의 입지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킬 보물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협회장의 표정을 보니 그 정도까지는 못 내다본 듯했다.

나처럼 미래를 겪어 보지 않는 이상에야.

“잠시 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나는 게이트 레이더를 전달받았다.

레이더의 탐색 범위는 전국.

정확히 ‘한국’의 행정 영역 안은 모두 검색이 가능했다.

[밀양 - 안개 골짜기]

[익산 - 고대의 동굴]

[속초 - 밤의 숲]

…….

전국 각지에 나타난 붉은 점들.

난 회귀 전의 기억을 되살피면서 지역들을 빠르게 훑었다.

초창기에 게이트 브레이크를 막지 못해서 피해가 컸던 곳이…….

“먼저 이쪽을 공략하겠습니다.”

“과천이라. 여기서 멀지 않으니 괜찮아 보이는군.”

[과천 - 낙원의 밤]

[조건 - 브론즈 이하(5인)]

[게이트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 - 02:57:11]

낙원의 밤 게이트.

초등학교 및 아파트 밀집 지역 근처에 생성되어서 많은 인명 피해를 일으킨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이다.

현재 레이더에 떠 있는 게이트 중에서는 임계치에 가장 가깝기도 하고.

미래의 비극도 막을 겸, 플레이어 협회에 게이트의 정보를 넘기려면 공략부터 해야 한다.

내가 게이트에 대한 정보를 읊어주려면 나름대로 근거가 있어야 하잖아?

“사소한 것이라도 좋네. 게이트와 관련된 정보를 알아와 주게나.”

플레이어 협회에 한 발 걸친 보람이 있군.

앞으로 [게이트 레이더]는 플레이어들을 좌지우지할 강력한 ‘당근’이 될 것이다.

내가 특무대원이 됨으로써, 정보에서 다른 플레이어들보다 한발 더 앞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만 부탁드려도 됩니까?”

“내 역량 안의 일이라면.”

“협회 측 헬기 하나만 내주십쇼.”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거리.

하지만 평소 교통량이 많은 곳이기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여야 한다.

“부탁이라기에 걱정했는데. 큰일은 아니군.”

“헬기는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옆에 있던 한수창이 작게 속삭였다.

협회장이 꽉 막힌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러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진호 대원의 무운을 빌도록 하지.”

협회장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과천으로 향하는 길.

-협회 요원들도 임계가 머지않은 게이트 근처에 파견을 보내겠습니다.

한수창은 다른 팀 지원에 나섰다.

특무대 담당이라고는 하나, 소속 인원이 나뿐이라서 할 일이 없다나.

고생을 사서 하는 성격이군.

분당에서 북서쪽으로 쭉 이동하다 보니, 금세 게이트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현장 근처에는 한발 앞서 파견된 경찰들이 폴리스 라인을 쳐 놓고 통제를 하는 상황.

“플레이어 협회에서 나온 유진호입니다.”

“유진호라면 그……!”

다행히 경찰들은 일행을 제지하지 않았다.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군.

“이번에는 스승님의 유명세가 도움이 되었네요.”

“너도 곧 유명해질 거다.”

내 이름값에 묻혀서 그렇지, 지영이도 승급전 이후 상당히 유명해졌다.

희소성 있는 결계 전문 능력.

방출 계열 마법을 익히지 못한다는 페널티가 치명적이라서 그렇지, 그게 아니었으면 여러 군데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왔을 거다.

폴리스라인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가자, 반구형으로 된 푸른 웜홀이 보였다.

게이트.

이 생에서는 처음 보는구나.

[낙원의 밤]

[제한 - 브론즈 이하(5인)]

브론즈 등급 이하.

아이언이나 언랭크도 출입이 가능한 게이트다.

허들을 브론즈로 설정해놓은 만큼, 난이도도 그에 맞춰져 있겠지만.

꿀꺽- 마침 같은 생각을 했는지 김영수가 침을 삼켰다.

“차원의 그림자라. 뭐가 나올지 모르겠군요.”

“직접 들어가 보면 알겠죠.”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면서 게이트가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망설이지 않고 내 뒤를 따라오는 팀원들.

세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김영수조차 한 치도 머뭇거리지 않다니.

내심 놀라움을 가라앉히고는 게이트로 입장했다.

[낙원의 밤에 입장했습니다.]

[분류 - 폐쇄형 게이트]

[게이트에 있는 모든 괴물들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외부로 나갈 수 없습니다.]

[게이트 안에서의 사망은 곧 현실입니다.]

푸른 웜홀을 넘는 순간.

바깥과는 다른 풍경이 일행을 맞이했다.

폐허가 된 도시.

바벨탑에서 미션을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하지만.

“스, 스승님, 보셨어요?”

“오냐, 봤다.”

“실제로 죽는다니.”

지영이는 떨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 이게 탑과 게이트의 결정적인 차이지.

바벨탑은 죽음에 대한 부담감이 크지 않다.

정신이 붕괴될 만큼의 고통을 받으면 탑에서 차단해 주고.

실패, 혹은 죽어도 도전 횟수가 남아 있는 한 언제든지 재도전이 가능했다.

게이트는 다르다.

“다들 긴장해.”

난 짧게 말하면서 [가시 갑피]를 전개했다.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에서 몸을 일으키는 괴물들.

“그우어어.”

신체가 반쯤 기계로 된 언데드.

일명 사이보그 좀비다.

19층에서 조우한 키메라 구울도 그렇고.

요새 마개조한 언데드들을 자주 보는 기분이란 말이야?

“탑하고는 조금 다르지만 해야 할 일은 같습니다.”

나는 팀원들을 훑었다.

카를라를 뺀 이들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오른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갑작스럽게 열린 게이트.

탑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환경, 그리고 진짜 죽음까지.

너무나도 많은 이변이 생겼다.

게이트 입장 후에 나타난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겠지.

하지만.

“지금만큼은 제 오더를 정확하게 따라 주십시오.”

나는 어느 때보다도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는 게이트 공략에 혼자 나설 생각도 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기보다는 그편이 훨씬 편하니까.

그렇지만.

내 결론은 팀원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말씀이라면.”

김영수는 인형을 하나둘 꺼냈고.

“스승님, 지시를 내려 주세요.”

지영이도 두려움과 결의가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팀장님, 여기서 나가면 특별훈련은 없는 걸로?”

“콜.”

“그러면 힘을 내야지.”

핑 레이는 사이보그 좀비들에게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쌍검을 쥐었다.

[군단 지휘의 효과로 투지가 상승합니다.]

[군단 지휘의 효과로 고통 내성이 적용됩니다.]

[백인장이 통솔 중입니다. 투지가 대폭 상승합니다.]

팀이나 길드 단위로 움직일 때 빛을 발하는 김영수의 능력.

투지 상승이 중복으로 걸리면서 팀원들의 눈빛에서 생기가 감돌았다.

기계와 결합한 좀비라.

회귀 전에는 사이보그 좀비들이 인구 밀집 지역에 풀려서 바이러스를 전염시켰다.

급격하게 늘어나는 숫자.

게이트 브레이크 후, 생성되는 몬스터보다 전염이 퍼지면서 만들어진 좀비가 더 많았다.

그 비극은.

“이제 없어.”

누구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맹렬한 돌진을 사용합니다.]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그우어어어.”

사이보그 좀비 하나가 흐느적거리는 몸뚱이로 나를 잡으려 했다.

태앵!

좀비의 가슴팍을 두른 쇠를 두들기자, 충격음과 함께 사이보그 좀비가 휘청거렸다.

“이거 더럽게 단단하네.”

난 미간을 찌푸렸다.

철판 위에 새겨진 주먹 자국.

200%로 증폭된 힘으로 가격했는데도 사이보그 좀비에게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

“그우어.”

그뿐만 아니라 경직 시간도 50% 감소.

언데드라서 몸이 굳는 상태 이상에 높은 저항력을 지녔다.

“기계랑 섞이지 않은 부위를 노려라.”

“명령대로.”

카를라가 내 옆으로 따라붙으면서 낫을 크게 휘둘렀다.

서걱!

초승달을 닮은 낫에 걸린 사이보그 좀비의 목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목덜미에도 철판이 있었는데 용케도 그 부분을 피해서 휘둘렀다.

“내가 특별훈련을 면하려면 말이다.”

[쌍수호박]

[초열검&당랑검]

내공을 실어 낸 검 두 자루가 사이보그 좀비의 살점을 도려낸다.

푸아아악!

기다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썩은 피.

일격으로 심장이 파괴된 사이보그 좀비가 지면에 고꾸라졌다.

“그 개구리 같은 종자도 그렇고, 참으로 역겹구나.”

따악!

손가락을 튕기는 닉스.

극야의 힘이 바닥으로 쭉 펼쳐지더니, 나선으로 꼰 형태로 튀어 올랐다.

“그우우우.”

“그워어?”

극야에 꿰뚫린 사이보그 좀비들.

팔과 다리가 붙들린 채 바동거리다가 심장까지 파고든 극야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개전의 봉화를 피워 올린 것치고는 형편없구나.”

“팀원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한 거야.”

“후후훗, 그 말이 사실이라면 행동으로 증명하여라.”

어쭈, 이 여신님이 나를 도발하네?

반쯤은 저 말이 맞았지만, 사이보그 좀비의 기계 부분이 생각보다 더 단단하기도 했다.

손 놓고 있다가는 핑 레이 녀석이 엄청나게 약올리겠군.

“그럼 본 실력을 발휘해 주지.”

[백수제왕무 - 5초식]

[광서지를 사용합니다.]

손가락 끝에 내공을 집중.

철로 보호받는 사이보그 좀비의 가슴팍을 푹 찔렀다.

맹렬한 돌진으로 가격했을 땐 움푹 파이는 정도로 끝났지만.

광서지로 가격한 부위는 주먹 크기의 구멍이 났다.

“그어…….”

머리를 지면에 처박는 사이보그 좀비.

효과 하나는 확실한데 내공 소모가 꽤 컸다.

폐허가 된 도시.

쓰러트려야 할 좀비는 많았고, 일행은 소수다.

뭐, 내공 말고도 내가 다룰 수 있는 힘은 여러 개가 있으니까.

“다들 체력 안배 잘하면서 싸워라.”

팀원들이 여유를 잃지 않도록.

나는 사이보그 좀비들이 몰려드는 곳으로 달려가서 관심을 팍팍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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