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부산의 한 물류 창고.
“거기, 조심히 옮겨.”
“여기서 박람회라도 하는 건가?”
“뼈가 가득하네.”
인부들이 부지런히 오가면서 화석을 날랐다.
나는 뒷짐을 진 채, 반 정도 채워진 물류 창고를 훑어보았다.
킁, 킁킁.
농밀한 정수의 향이 코를 간질인다.
“마음에 드느냐?”
“응. 이 정도면 충분하겠어.”
인부들이 운반 중인 화석은 협회에서 낙찰받았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 돈을 맡겨 둔 거지만.
이 물류 창고에는 골드 문과 구룡방에서 구해 준 화석들도 있었다.
인부들의 말따라, 박람회를 할 목적도 아니라서 부위 별로 바닥에 늘어놓았지만.
그래도 장관이군.
이송 작업을 모두 마친 후, 물류 창고에 머무르던 인원을 모두 내보냈다.
“여신님은 혹시 모르니까 있어 줘.”
“무엇을 말이더냐?”
“이땐 외부의 자극에 취약해서.”
“후후훗, 여가 그대의 안위를 책임져 주마.”
나는 지층과 동화된 뼈, 다시 말해 화석에 손을 얹었다.
[포식을 사용합니다.]
손을 얹은 화석이 풍화작용을 일으켰다.
담아 두던 정수가 사라지면서 더 이상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흡수한 정수는 0.7%.
아직 남은 건 많으니까 괜찮아.
난 다음 화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달아 가루로 변한 화석들.
오래간만에 ‘돈’을 ‘똥’으로 만드는 능력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꽉 찼던 물류 창고.
포식을 사용할수록 빈자리가 생겨나고, 대신 먼지가 바닥에 가라앉았다.
[원시종 – 티라노사우루스의 정수를 포식했습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전설]
[스킬 – 압도하는 폭군이 추가됩니다.]
[압도하는 폭군]
등급: 4
분류: 패시브
근력, 맷집이 10%이 늘어난다.
육체에 간섭하는 온갖 스킬에 높은 저항력을 지닌다.
4성 스킬치고는 간단한 옵션.
근력과 맷집이 늘어나는 옵션도 괜찮지만.
이 정수의 핵심은 ‘디버프’에 높은 저항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냉혈으로 저항할 수 있는 건 정신계열 저주뿐.
육체에 간섭하는 디버프는 힘을 주어서 풀어내는 방법뿐이었는데.
[압도하는 폭군] 패시브가 추가되면서 디버프 스킬 대책이 모두 세워졌다.
“그 기묘한 돌들이 조금 남았구나.”
“마저 먹어야지.”
일부만 남아 버린 화석.
고고학적, 혹은 경제적인 가치는 0에 수렴했다.
정수를 포식하면 용의 심장 덕에 마력도 늘겠다, 남은 화석도 모두 가루로 만들었다.
“이제 모두 끝난 것이더냐?”
“실망하기는. 본론은 이제부터야.”
원시종의 정수, [압도적인 폭군]의 옵션도 중요하지만.
내가 화석들을 모은 건 다른 이유다.
튜토리얼 때부터 지금까지 쌓아온 수많은 정수들.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정수도 있지만, 산성 피와 시독처럼 비슷하면서도 섞이지 못하고 반발하는 성질도 있다.
회귀 전의 나는 육체의 과부하를 감당하지 못하고 포식을 잠시 멈추기도 했었다.
어리석은 짓이었지.
“흡수한 정수로 그릇을 재구성한다.”
신체 개변.
내가 만든 용어다.
“재구성이라 함은, 보디 체인지를 말하는 것이더냐?”
“그거랑 비슷한데 좀 달라.”
보디 체인지.
육체의 한계까지 마나를 받아들였을 때 재구성되는 현상이다.
필멸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초월의 경지에 이르는 첫 관문.
무공 사용자들은 환골탈태를 겪게 되는데, 내공과 마나라는 촉매 차이일 뿐 재구성과 초월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라는 건 동일했다.
“보디 체인지든 환골탈태든. 깨달음과 에너지가 수반되어야 가능하거든.”
“하면 그 신체 개변이란 것은 무엇이더냐?”
“지금까지 흡수한 정수로 내 육체를 개조하는 거다.”
보디 체인지나 환골탈태는 더 많은 기운을 받아들이기 위해 육체를 재구성한다.
필멸자의 육신에 일종의 소우주를 만들어 내는 과정.
반면 신체 개변은 포식한 정수들로 육체의 구성을 바꾸어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마개조하는 거다.
탈(脫)인간화.
인간을 관둔다고 해야 하나.
“그대가 하고자 하는 일을 시작하여라. 여가 지켜 주겠노라.”
“예예. 나 눈뜰 때까지는 건들지 마.”
난 바닥에 드러누웠다.
가부좌는 심법을 운용할 때나 도움이 되는 자세지, 신체 개변할 때는 불편하기만 하다.
뼈 하나하나.
세포, 근육에 이르기까지 모두 뜯어고칠 건데 다리를 꼬고 있어 봐. 얼마나 불편하겠어?
후- 짧게 심호흡하고는 내 육체를 들여다보았다.
* * *
크고 작은 별들.
여태까지 포식한 정수들이 형형색색의 빛을 흩뿌린다.
낮은 등급은 빛이 연했고.
대지모신이나 용아병의 정수는 태양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혹은.
파지지직!
[시독]과 [산성 피], 그리고 [마비 독]처럼 충돌하는 정수도 있었고.
저 녀석들 때문에 요새 배탈이 심하단 말이야.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정수들이 뿜어 대는 빛을 가로질렀다.
얼마쯤 내면을 들여다보았을까.
[원시종 – 티라노사우루스의 정수]
막 흡수한 정수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래.
신체 개변의 기반이 될 ‘그릇’이다.
나는 강렬한 빛을 흩뿌리는 원시종의 정수를 꽉 안았다.
수천만 년 전.
강인한 육체와 마력을 다루며 지구를 지배했던 종족, 공룡의 정수를 온몸으로 회전시킨다.
두둑, 두두둑!
티라노사우루스의 정수가 내 육체를 변화시킨다.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원시종의 인자.
정수를 받아들이면서 뼈가 더 굵어지고.
둥글둥글한 손톱과 발톱에서 예리함이 감돌기 시작한다.
“끄으으으.”
누구도 듣지 못할 마음의 소리.
진짜, 농담 안 하고 X나게 아프다.
손톱과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 놓고 그 위에 빨간약을 바르는 느낌!
인위적으로 육체의 인자를 바꾸는 행위는 개미가 전신에 달라붙어서 물어뜯는 것 같은 통증을 수반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해야지!
그 씹어 먹을 고신족들한테 복수하려면 이보다 더한 짓도 얼마든지 할 거다.
복수하려면 이딴 짓, 몇 번이든 더 할 수 있어!
까드득.
이가 갈리는 고통.
난 그 힘겨운 과정을 모두 버텨냈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린 채 고통을 감내하던 어느 순간.
[당신의 육체가 원시종의 인자를 받아들였습니다.]
[종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더 많은 힘을 육신에 담아 낼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고유 능력 활용법입니다.]
시스템의 알림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방금 전까지 전신을 강타하던 고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오히려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후, 이제 1단계는 끝났군.
‘그릇’이 갖추어졌으니, 이젠 물건을 담아 둬야지.
나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정수 중에 하나를 집었다.
초록색 빛을 흩뿌리는 구체.
3층에서 흡수한 오크의 정수다.
-쿠륵, 쿠르륵.
오크 특유의 콧소리를 보니 확실하군.
난 전신의 이미지를 떠올리곤, 오크의 정수를 근육에 불어넣었다.
근섬유 한 올 한 올이 오크의 정수를 받아들이면서 변화한다.
원시종의 정수로 만들어 낸 ‘그릇’.
그릇은 말 그대로 무언가를 담는 역할. 신체 개변을 했다고 해서 뭔가가 담기지는 않는다.
어떤 것을 담아 내느냐?
당연히 이제까지 흡수한 정수들이지!
[오크의 정수가 사용자의 근육에 스며듭니다.]
[근력이 10 증가합니다.]
[근육이 쉽게 지치지 않고 빠르게 회복됩니다.]
성공이군.
이어서 [뿔 토끼]의 정수를 허벅지에 부여했고, [용아병]의 힘으로 심장을 바꾸었다.
시스템으로 보정을 받던 것보다 한층 강해진 효과!
육체 여기저기를 정수와 동기화, 그 능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건 큰 문제가 없었다.
이제부터가 본론.
비슷한 성질을 지녔으면서 반발하는 정수들을 한데 엮어야 한다.
산성 피 / 시독 / 마비 독
용의 심장 / 마나 노심(하) / 다크매터 코어
우선 피부터 해결해야겠네.
저 셋 중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건 산성 피다.
공교롭게도 세 정수를 포괄할 수 있는 성질이기도 하고.
나는 [산성 피]를 혈액에 담아 냈다.
[딥 슬라임의 정수가 피에 스며듭니다.]
[혈액이 산성을 띠게 됩니다.]
앞으로 헌혈은 틀렸군.
SF영화에서 나오는 괴물도 아니고, 이제는 피가 닿는 곳마다 구멍이 뚫리겠어.
피의 성질을 바꾸자, 두 정수가 더 이상 충돌하지 않았다.
몸풀기 운동(?)은 간단하게 끝났고.
이제 본제로 넘어가 보실까.
힘차게 뛰는 용의 심장.
내 육체와 일체화된 정수가 심장을 움직인다.
피에 섞인 마나가 전신을 순환, 몸에 쌓인 피로를 씻어 준다.
문제는 여기에 다크매터 코어를 섞어야 한다는 거지.
우선, 다크매터 코어와 마나 노심을 충돌시켰다.
마나 노심의 정수가 다크매터 코어에 침식, 마나가 암흑 마나로 전환되듯이 하나로 되었다.
그다음으로 검은색을 품은 정수를 심장에 부여하니.
두근-! 두근-!
용의 심장이 다크매터 코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저항했다.
급속도로 빨라지는 심장박동.
이대로 가면 심박 수가 너무 높아져서 뒈질지도 모르겠군.
예상했던 반응이다.
나는 다크매터 코어의 성질을 반전, 아까 전환했던 암흑 마나를 본래의 성질로 바꾸었다.
잦아드는 심박수.
용의 심장은 다크매터 코어를 저항감 없이 받아들였다.
[용의 심장이 다크매터 코어와 융합합니다.]
[혼원룡의 심장으로 변화했습니다.]
[혼원룡의 심장]
등급: ★★★★★
분류: 패시브
심장을 코어 삼아서 마나를 축적한다.
숨을 쉬기만 해도 마나가 회복되며, 마나 운용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암흑 마나를 생성하는 기관을 받아들여서 양면의 성질을 모두 띠게 되었다.
마나와 암흑 마나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마력 + 50
*마나 소모 -30%
후아.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반된 에너지원을 합치는 건 쉽지 않았다.
첫 시도가 안 되면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 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심장박동 수가 미친 듯이 올라가는 건 당연하고, 후유증으로 온몸의 심맥이 찢기는 고통을 느껴야 했을 거다.
두근-! 두근-!
상반된 힘을 지니게 된 용의 심장이 더 힘차게 뛰었다.
암흑 마나를 당장 쓸 일은 없겠지만.
바벨탑을 오르다 보면 더 많은 정수를 취하고, 암흑 마나로 펼치는 스킬이 늘어날 것이다.
또한 두 힘을 융합하면서 다음 경지로 나아갈 발판을 세우기도 했으니.
오늘은 참 얻은 게 많았다.
나는 관조하는 것을 멈춘 채, 의식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계약자여, 몸은 괜찮으냐?”
뿌옇던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흐릿했던 초점이 잡히는 순간,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건 닉스의 얼굴이었다.
“……여신님?”
“말하는 걸 보니 괜찮아 보이는구나.”
저, 저기요.
너무 가까이에 계신 것 같은데.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만큼의 거리.
나는 슬며시 뒤로 물러났다.
“당연히 멀쩡하지.”
“하도 경련이 심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거늘.”
“솔개는 환골탈태하려고 자기 털을 뽑는대.”
“그게 무슨 망언이더냐. 새가 스스로의 깃털을 뽑아내면 죽느니라.”
“…….”
그 이야기가 뻥인 걸 용케도 아는군.
어디.
그러면 개변까지 마친 육체가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 확인해 볼까.
“상태 창.”
곧, 반투명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