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히든 미션 - 클리포트의 제단을 모두 분쇄하라, 를 통과했습니다.
▶구출한 인원: 150/150
▶전원 구출에 성공했습니다.
▶19층 최고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정말로 인질을 모두 구했어.”
망연자실해하며 입을 쩍 벌린 핑 레이.
카를라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낫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스승님과 함께하면 뭐든 할 수 있어요!”
헤픈 웃음을 짓는 지영이.
“여가 참여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이니라.”
반면에 닉스는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모습만 보면 여지없이 여신님이 맞는데.
일정만 끝나면 왜 소파와 혼연일체가 된 채로 TV에 속박되는 건지.
뭐, 이번에는 닉스의 도움도 많이 받았으니까 넘어가자.
▶보상으로 오리하르콘 3kg가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50,000cp가 주어집니다.
미친.
2층 히든 미션을 독차지했을 때 오리하르콘 1kg가 나왔는데.
넷이서 공략했는데도 3kg나 준다고?
도합 12kg.
아이언 등급의 미션 치고는 과한 보상이다.
“하, 하하하. 오리하르콘이다!!”
광소를 터트리는 핑 레이.
오리하르콘은 플래티넘 등급, 다시 말해 50층 구간에서도 취하기가 어려웠다.
현대의 대장장이들은 제대로 가공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광물.
제 값어치를 받을 수야 없겠지만.
구룡방에 헌납하면 장 우페이가 흡족해하겠지.
내 옆으로 다가온 닉스.
“그대여, 혹 무언가를 잊지 않았느냐?”
“아, 그러네.”
“후후훗, 잊지 않…….”
“정수 포식해야지.”
마른 가죽만 남기고 소멸한 가아그셰블라의 가지.
회귀 전, 나는 ‘가아그셰블라의 가지’를 보지 못했다.
19층에서 전원을 구출할 만큼의 실력이 안 됐거든.
하지만.
내 생각이 맞는다면, 놈의 정수를 흡수했을 때 추가될 스킬이야 뻔했다.
[가아그셰블라의 가지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고대]
[마력 + 17]
[스킬 - 다크매터 코어가 추가됩니다.]
[다크매터 코어]
등급: ★★★
분류: 패시브
마나와 반대되는 성질인 암흑 마나를 생성하는 기관입니다.
사용자의 마나를 엔진에 보내면 암흑 마나로 치환됩니다.
*치환 비 - 1:0.7
다크매터 코어.
역시 내 예상대로군.
“왜 그리 웃느냐?”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미래의 지식을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악마 추종자들이 속한 단체, ‘클리포트’.
세계, 나아가 온 차원의 질서라고 알려진 ‘세피로트의 나무’의 개념을 반전시킨 게 클리포트다.
선과 악의 개념이 뒤집히고, 질서 대신 혼란과 공포가 미덕으로 뿌리내리는 세계를 추구하는 자들.
총 10개의 클리파가 하나가 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클리포트의 나무’다.
가아그셰블라는 클리포트의 나무 중 하나를 구성하는 ‘클리파’.
XX의 가지라고 하는 네임드 몬스터들은 포식했을 때 다크매터 코어를 주거든.
바벨탑을 올라가다 보면 종종 부닥트리게 될 적이다.
[용의 심장이 다크매터 코어와 충돌합니다.]
[마력 노심(下)이 다크매터 코어와 충돌합니다.]
파지지직!
마나와 암흑 마나는 상극.
이미 마나 운용에 도움을 주는 정수가 둘이나 있다 보니, 반발이 일어났다.
“그대여, 안색이 안 좋구나.”
“속이 좀 쓰린 것뿐이야.”
다크매터 코어를 운용하면 모를까.
체내에 기관을 생성하는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당장이야 암흑 마나를 다룰 일도 없고.
“새로운 힘을 얻었으니, 복된 일이로구나.”
“여신님이 말해 준 덕이지.”
“한데 그것 외에도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으니라.”
“기억이 안 나는데.”
새빨개진 닉스의 얼굴.
오리하르콘을 힐끗거리는데 츄르를 앞에 둔 고양이 같았다.
후환이 두려우니, 이제 그만 약 올려야겠군.
나는 과장스러운 몸동작으로 오리하르콘을 내밀었다.
“여신님께 오리하르콘을 진상하나이다.”
“흐응,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그대의 정성을 보아 받아 주겠느니라.”
입가가 귀에 걸릴 정도로 환하게 웃는 닉스.
오리하르콘을 달라고 왜 말을 못 하니?
닉스는 내 말이 바뀔까 두려웠는지, 몸을 돌리고는 곧바로 오리하르콘을 흡수했다.
저 단단한 광물이 호문쿨루스에 스며들다니.
흡수 과정을 두 번째로 보는 건데도 신기하네.
오리하르콘 3킬로그램을 모두 흡수한 닉스는 돌연 극야로 전신을 휘감았다.
뭘 하나 지켜봤더니, 닉스의 육체가 쪼그라들었다.
요정 크기로 줄어든 몸.
이전에 자주 봤던 영체였다.
-후후훗, 이 모습을 취한 것도 오래간만이구나.
“뭐야, 호문쿨루스의 육체는 어쩌고?”
-카오스의 파편으로 존재력을 늘린 덕에 영체와 실체화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느니라.
오호.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내 극야에 동화했다가 호문쿨루스의 육체로 돌아와서 전투를 도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비장의 수로 쓸 수 있겠어.
-밤의 축복의 쿨타임도 줄어들었으니, 참고하여라.
10분으로 줄어든 재사용 시간.
이젠 밤의 축복을 자주 사용해도 되겠어.
“스승님, 이 기세면 바로 브론즈 승급전에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요?”
“아서라. 레벨도 안 되면서 무슨.”
20층에 도전하려면 레벨 100을 맞춰야 한다.
모든 승급전은 해당 구간에서 올릴 수 있는 최대 레벨을 달성한 후에야 도전이 가능했다.
“그러면 19층이나 다시 돌까.”
툭 던진 말.
“좋죠.”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
“팀장님의 지시라면.”
세 사람은 별말 없이 내 의견에 따랐다.
팀의 호흡을 맞추기에는 이보다 적절한 미션이 어디 있을까.
레벨도 올리고 cp도 벌 겸, 당분간은 19층을 반복적으로 도전해야겠다.
* * *
최초 공략 보너스도 받았겠다.
반복 미션을 수행할 때는 마지막 팀원인 김영수도 참여했다.
“모자람이 많지만 이해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90도로 인사하는 김영수.
“흥. 몇 년째 아이언에서 못 벗어나는 자가 팀원이라…… 으아악!!”
나는 핑 레이의 발을 지그시 밟았다.
“우리 팀에 남아 있고 싶으면 토 달지 마라.”
“으그그그. 알겠습니다.”
“형님, 이 녀석 말은 흘러서 들으십쇼.”
“아닙니다. 폐가 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지요.”
김영수는 멋쩍게 웃었다.
5인을 모두 채워 입장하니 김영수의 고유 능력, [군단 지휘]가 발동되었다.
[군단 지휘의 효과로 투지가 상승합니다.]
[군단 지휘의 효과로 고통 내성이 적용됩니다.]
[백인장이 통솔 중입니다. 투지가 대폭 상승합니다.]
김영수가 다루는 인형은 5기.
팀원 다섯에 인형까지 더해서 10명에 해당하는 버프가 적용되었다.
이 맛에 지휘 능력자를 두지.
팀원들은 내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인형을 다루는 김영수만 손이 조금 꼬일 뿐.
김영수도 팀플레이에 적응해 나갔다.
팀플레이 훈련 겸 레벨을 올리려고 시작된 19층 릴레이 도전.
1주일이 지났을 때, 어느새 레벨이 76까지 올라갔다.
다른 팀원들의 레벨도 가파르게 상승했으니.
아이언 등급 최대 레벨에 도달한 김영수만 그 혜택을 못 본 게 아쉬울 뿐이다.
“Wow.”
짧은 감탄사를 내뱉는 엘렌.
“누구는 삭신이 쑤시는데 무슨 와우입니까?”
“내가 아는 어떤 플레이어도, 미스터 유만큼 빠르게 성장하진 않았으니까요.”
“아직도 갈 길이 멀죠.”
고레벨이 될수록, 요구 경험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탑에 도전할 수 있는 건 하루 2회뿐.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는 더뎌지는데, 무한정 도전할 수 없으니 더 빠르게 치고 가는 게 불가능했다.
뭐, 그 제한도 게이트 브레이크가 터지는 순간부터는 의미가 사라지지만.
“아 참, 미스터 유에게 드릴 선물이 있답니다.”
엘렌은 눈을 찡긋거렸다.
“선물요?”
“저번에 구해 달라고 하신 거 있잖아요.”
설마,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을 말하는 건가?
“호호호, 미스터 유가 기뻐하시는 걸 보니 저도 보람차네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군요.”
“이번에 신세를 진 것도 있으니까요. 저희 마스터께서 힘을 꽤 쓰셨답니다.”
골드 문.
날 꽤나 의식하고 있군.
어디에 묻혀 있는지도 모르는 화석을 캐 왔을 리는 없고, 다른 박물관이나 부자한테서 사들였을 텐데.
꽤 많은 자금이 들었을 거다.
확신하는 이유는 회귀 전의 나도 화석 모은답시고 돈지랄을 엄청 했었거든.
“그런데 화석을 어디에 쓰시려고…….”
“이미 다 짐작했으면서 뭘 물어봐요?”
“호호호, 저는 미스터 유의 취향이라고만 생각했답니다.”
퍽이나 믿겠다.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이 내 고유 능력과 관계가 있다는 것쯤.
이미 짐작했을 거다.
구룡방도 마찬가지일 거고.
내 능력의 비밀을 알아낼 겸, 좋은 이미지도 심어 주려고 거금을 썼겠지.
하여간 부자들의 심리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로부터 하루 뒤.
“진호 님, 말씀하셨던 화석을 수배했습니다.”
구룡방에서도 반응이 왔다.
조금 놀라운 건…….
-진호 특무대원님! 드디어 경매를 낙찰받았습니다!
한수창 팀장도 비슷한 시기에 온전한 형태의 티라노사우루스 화석을 구했다는 것.
화석 구매에 소모된 건 내 자금이지만, 번거로운 일을 대신 처리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19층을 반복해서 도는 동안 차곡차곡 쌓이는 원시종의 화석.
이 정도 양이면 슬슬 시도해 볼 수 있겠군.
“오늘은 휴식. 훈련은 자율적으로 해.”
나는 팀원들을 해산시켰다.
옆으로 따라붙은 닉스.
“그대답지 않은 발언이로구나.”
“뭐가 나다운데?”
“악착같이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오늘은 내가 좀 바빠.”
“그 화석과 관련된 일이더냐?”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닉스한테 정말로 독심술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상태 창에도 없던데.
미심쩍은 마음을 뒤로한 채, 입을 떼었다.
“신체 개변을 진행할 거야.”
“개변?”
“더 많은 정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바꾸는 것.”
“여태 모아 온 원시종의 정수에 그런 효능이 있었더냐?”
“원시종의 정수는 단순한 그릇이다.”
현재의 육신은 나약했다.
여러 정수를 포식하고 레벨을 올리면서 강해졌지만.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하려는 건 육체에 걸린 한계점을 강제로 넓히는 행위.
인위적인 변화다.
시스템에서 제시하는 길이 아닌, 회귀 전의 내가 개척한 통로.
마침 [다크매터 코어]도 얻었겠다.
적절한 시기에 원시종의 정수들이 착착 모여들었다.
“호오, 인위적인 변화라.”
“여신님도 따라오려고?”
“여는 그대의 계약자이니 변화를 지켜볼 의무가 있느니라.”
의무는 무슨.
심심해서 따라오는 게 훤히 보이는구먼.
차라리 잘됐다.
신체 개변은 외부의 자극에 취약해진다.
운기행공이야, 원하는 타이밍에 중단할 수라도 있거든.
하지만 육체의 근본을 뜯어고치는 행위는 한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임의로 멈추는 게 불가능하다.
계약 관계로 엮인 닉스.
그녀만큼 내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나는 닉스를 대동한 채, 화석을 모아놓은 물류 창고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