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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03화 (103/300)

103화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연기를 닮은 새카만 구름의 중심지는 마지막 제단이었다.

“저치들은 이제 숨길 생각도 없나 보구나.”

닉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암흑 마나.

흑마법사들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암흑 마나의 농도가 비이상적으로 상승했습니다.]

[신체 능력이 10% 감소합니다.]

[마나 소모가 20% 증가합니다.]

[악 계열 성좌를 수호성으로 섬기거나, 암흑 마나를 다루면 페널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암흑 마나라.

그 힘도 언젠가 다루어 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나와 암흑 마나는 대칭을 이루는 힘.

암흑 마나를 받아들여도, 용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마력이 그 힘을 뿌리 뽑을 것이니.

“숨쉬기가 불편해요, 스승님.”

지영이는 살짝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카를라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불편한 기색이 표정에서 살짝 드러났고.

“흥. 이쯤이야 위대한 중화의 기예, 무공을 익혔으니 괜찮다.”

팀원 중 나를 빼고 체력이 제일 좋은 핑 레이는 짐짓 여유로운 척을 했다.

“참으로 고약한지고.”

의외인 건 닉스였다.

코를 찡그리기만 할 뿐, 암흑 마나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괜찮아?”

“삿된 기운 따위는 여를 넘볼 수 없느니라.”

“냄새까지는 어떻게 못 하나 보네.”

암흑 마나의 영향에서 자유롭다라……. 다른 이상 현상을 마주했을 때도 마찬가지려나.

난 카를라와 핑 레이를 훑어보았다.

“지금 물러나도 보상은 괜찮을 거다. 그래도 갈 거냐?”

구출한 인질들을 베이스캠프 안쪽 통로로 보내면 그대로 미션이 종료된다.

더 욕심을 낼 것이냐.

아니면 지금의 성과에 만족하고 물러날 것인가.

“팀장님의 지시대로.”

짧게 대답하는 카를라.

“여기까지 왔는데. 당연히 끝을 봐야지……요.”

핑 레이는 여전히 괴상한 말투로 말했지만, 둘의 뜻은 같았다.

“고객님, 마지막 제단은 방비가 두꺼우니 이 상품을 써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넌 조용히 있어.”

“흐윽. 괜히 전속 계약을 했어.”

모르스 녀석.

은근슬쩍 호객 행위를 끼얹고 있네.

말로는 저렇게 투덜거리지만.

내가 괴물 사체 손질을 부탁하거나 애매한 보상들을 팔아넘기면서 수수료를 두둑하게 챙기는 중이다.

구태여 안 팔아도, 나한테 받은 걸 웃돈 주고 탑에 공급하면서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단 말이지.

“너. 그러면 재미없다.”

“진호 님은 피도 눈물도 없는 분입니다.”

입술을 내민 채로 투덜거리는 모르스를 뒤로하고 마지막 제단으로 향했다.

* * *

먹구름으로 감싸인 12번째 제단.

거리를 좁히자, 어슴푸레 윤곽만 보이던 구조물이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지영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피라미드인가요?”

“피라미드보다는 지구라트에 가까울걸.”

세계사에서는 바벨탑의 원형이라고 알려진 거대한 신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지구라트와 흡사한 구조다.

가장 오래된 신화의 흔적을 뒤집어서 악마를 불러낸다, 라.

선·악의 개념을 뒤집어 놓았다는 ‘클리포트’에 어울리는 행위다.

“저들을 보아라.”

“이 세상의 진리를 외면하는 자들을 벌하자.”

“제물을 돌려받아 이 세상을 악으로 물들여야 한다.”

새빨개진 눈으로 일행을 노려보는 흑마법사들.

“팀장, 님. 적의 수가 꽤 많은데 말이죠.”

핑 레이가 침을 삼켰다.

제단 아래에 배치된 키메라만 수백.

층층으로 된 제단 위에도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흑마법사 여럿이 대기하고 있다.

키메라 군대에 이어, 보라색 결계가 제단의 흑마법사들을 보호하는 상황.

섣불리 다가가면 무차별 마법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되겠지.

“방법이야 있어.”

“뭡니까?”

“올라운더인 내가 있잖아.”

핑 레이가 코를 벌름거린다.

하고 싶은 말이 꽤 많아 보이는데, 잘도 참는군.

“왜. 불만 있어?”

“아닙니다.”

“하긴. 넌 내가 마법을 쓰는 걸 못 봤겠네.”

승급전에서 딱 한 번, [데모닉 파워]를 사용한 적이 있다.

그때는 핑 레이가 사망 판정을 받아서 전장 밖으로 튕겨 나 있었으니.

내 마법 실력은 중국 측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로만 들었을 거다.

“후후훗, 저치는 그대를 과소평가하는구나.”

묘한 미소를 짓는 닉스.

핑 레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좋아.

무슨 맛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알겠다면, 그렇게 해 줘야지.

“앞으로 방어 대형을 1분 동안 유지한다.”

[데모닉 파워를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가 마력으로 치환됩니다.]

마침 새로운 마법도 익혔겠다.

탐욕의 가호의 새로운 활용 방법도 터득했으니 실전에서 제대로 써먹어 봐야지.

나른해지는 육신.

그에 비해, 정신만큼은 어느 때보다 또렷해졌다.

순식간에 재배열되는 마나.

허공에 맺힌 마법진에 새하얀 결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2성 스킬, 아이스 스피어.

파이어볼보다 범위가 좁지만 관통력이 뛰어난 마법이다.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아이스 스피어를 뒤덮는 검붉은 마력.

금방이라도 사출될 것 같은 얼음 창을 탐욕의 가호로 묶어 둔 후, 재차 아이스 스피어를 사용했다.

허공에 맺힌 얼음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하니.

“악적들이 술수를 부린다.”

“막아라.”

“저 악적을 찢어발겨라!”

흑마법사들이 먼저 공격 명령을 내렸다.

“그이이이!”

“그잇!”

괴이한 소리를 토해 내며 달려드는 키메라들.

그 순간, 공간 일부가 뒤틀렸다.

압축과 해방.

등 뒤의 공간을 틀면서 추진력으로 전환한 카를라가 선두를 맡은 키메라를 반으로 갈랐다.

낫이 진동한다.

그녀의 고유 능력인 [공간 조작]으로 강화시킨 일격.

키메라는 특유의 재생 능력을 쓸 기회도 없이 좌우로 갈라졌다.

“이런 괴물들 따위.”

핑 레이도 전장에 합류.

키메라들의 팔과 다리를 베었다.

“불완전한 피조물들이여. 그대들의 고통을 덜어 주겠노라.”

닉스가 손짓하자, 극야의 힘이 키메라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콰직!

극야에 갇힌 채 짓눌린 키메라.

앞장서서 달려오던 키메라들이 고깃덩어리로 화했다.

“핑 레이, 너무 앞서가지 마라.”

나는 마력을 재배열하는 와중에도 지시를 내렸다.

그래도 제법 합이 맞기 시작하는군.

내 개입이 없어도 서로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정도가 되었다.

지영이도 가만히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진동 결계]

육각형으로 된 방어막이 키메라들의 동선을 제한한다.

눈앞에 벽이 나타나면 부수기보다 돌아가기를 택하는 게 본능.

진동 결계에 충돌하면 그것대로 시간을 버는 거고.

빙 둘러서 움직이면 이쪽의 의도대로 괴물들의 동선을 유도할 수 있다.

“편안해.”

“결계로 적의 동선을 이렇게 컨트롤한다고?!”

카를라와 핑 레이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두 사람은 지영이와 팀을 맺는 게 처음일 테니.

모를 수도 있겠군.

“스승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하는 거예요.”

지영이는 공을 모두 나한테로 돌렸다.

내 가르침보다는 결계를 다루는 능력이 대단한 거지만.

전장을 보는 시야는 나한테서 배운 게 맞으니,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데모닉 파워]를 사용하고 20초 정도가 지났을 때.

허공에는 아이스 스피어 10개가 탐욕의 가호에 붙들린 채, 발사를 기다렸다.

“이 정도면 되겠군.”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여태 묶어놓은 아이스 스피어를 일제히 발사.

날카롭게 벼려 놓은 얼음 창이 제단 여기저기로 날아간다.

“아이스 스피어의 궤적이 왜 저러는 거야?!”

막 키메라의 목을 썰어 버리던 핑 레이가 비명 섞인 음성을 토해 냈다.

본래는 직선코스로만 쏘아지는 아이스 스피어.

내가 사출시킨 얼음 창들은 유도미사일처럼 곡선으로 움직이며 제단 곳곳에 파고들었다.

[탐욕의 가호]는 단순히 무언가를 강화하는 게 끝이 아니다.

바알 녀석은 가호로 늪을 침식시키고는 이미지대로 형태를 부여, 자유자재로 다루었다.

나 역시 네스와의 전투에서 물을 형태 변환 했다.

마나와 정신력 소모가 크다는 게 소소한 단점이지만, 데모닉 파워로 모든 스텟을 마력으로 치환한 덕에 부담이 덜했다.

쾅! 콰앙!

아이스 스피어는 보라색 결계를 뚫어 내고 제단 내부에 파고들었다.

관통력에 치중된 마법.

파이어볼보다 범위는 좁지만, 넓게 펼쳐진 결계를 뚫는 데는 훨씬 유용했다.

“스승님, 방금 그건……?”

“보면 알아.”

데모닉 파워의 지속 시간은 1분.

그중 1/3이나 소모하면서 벌인 짓이다.

잠시 후.

구구구궁-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제단이 흔들리더니, 주위를 감싸던 결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결계를 상대로 힘자랑할 필요는 없어.”

[천안(千眼)]으로 마력의 흐름을 읽어 내서 결계 중심부가 어디인지 파악.

관통력에 특화된 아이스 스피어를 대량으로 전개, 결계의 핵을 타격했다.

그 과정에서 탐욕의 가호로 강화 및 방향 유도를 안 했으면 결계를 무너트릴 수 없었겠지.

보유한 능력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결과물이다.

[화염의 반지 - 내장 스킬: 파이어볼을 사용합니다.]

줄지어 서 있는 흑마법사들을 상대로는 이 마법이 제격이다.

제단으로 날아간 화염구가 폭발을 일으켰다.

“끄아아악!!”

“불, 불이다!”

“지옥의 겁화가 이런 느낌인가?”

폭발에 휩쓸린 흑마법사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엄살 피우는 거 보소.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일반인보다 원소 저항력이 높다.

화염구에 직격을 당했으면 모를까.

폭발의 여파로 솟구친 화염에 조금 닿았다고 죽을 것처럼 아파하긴.

“스승님, 정말로 아파 보이는데요?”

지영이가 흑마법사를 가리켰다.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 버린 흑마법사의 팔.

파이어볼에 스치기만 했는데, 몸 반쪽이 불구가 되어 버렸다.

아, 지금 [데모닉 파워]를 쓴 상태지.

“엄살이 아니겠네.”

방금 한 말은 취소하지.

조금만 기다려 봐. 내가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테니.

[아이스 스피어를 사용합니다.]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얼음 창.

막 비명을 지르던 흑마법사가 심장이 꿰뚫린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원거리에서 파이어볼과 아이스 스피어를 번갈아 가면서 전개했다.

키메라들이야 팀원들에게 맡기면 되니.

원거리의 적을 견제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블랙 아이스]

[크리스탈 커스]

[글라키에스]

얼음 속성에 어둠을 곁든 왜곡된 마법들이 빗발친다.

“스승님은 공격에 전념하세요!”

정면에 나타난 육각형 결계.

흑마법사 수십이 펼친 마법들은 지영이의 결계를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에잇.”

겹겹이 생성되는 결계.

한 번에 구현 가능한 개수가 정해져 있기에, 파괴되는 순간 곧바로 진동 결계를 재구성했다.

흑마법사들의 파상 공격을 막아 내면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지영이의 결계.

그만큼 집중력이 날카로워졌다는 말이겠지.

나는 지영이를 믿고 공격에 전념했다.

흑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전개하기도 했으나, 압도적인 마력 차이로 찍어 눌렀다.

[데모닉 파워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1분이 지났을 땐, 제단에 서 있던 흑마법사 중 절반이 넘는 숫자가 죽었다.

압도적인 화력.

그리고 지영이의 커버 덕분이다.

흑마법사들의 화력이 떨어지자, 키메라를 상대하던 일행도 한결 편해졌다.

잠시 후.

제단을 감싼 키메라 군대는 전멸, 남은 흑마법사들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내 눈치를 살폈다.

“크크, 가장 먼저 제단에 오르는 건 나다!”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계단을 밟는 핑 레이.

그 순간.

『누가 감히 더러운 발로 제단을 밟느냐!』

우렁찬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검은 벼락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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