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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00화 (100/300)

100화

그로부터 1주일 후.

마지막으로 18층 미션을 통과한 지영이를 포함, 팀원 넷이 19층 도전을 앞두게 되었다.

“그런데 스승님.”

“뭐.”

“같이 탑을 공략할 것처럼 기다리시더니 왜 혼자 가셨어요?”

“속도만 맞춰 준 거야. 같이 공략한다곤 안 했다.”

바벨탑에 기록된 모든 최고 기록을 내 이름으로 채워 넣는 것.

회귀하고 나서 생긴 내 목표다.

최초 도전은 추가 보너스도 있고.

그런데 팀을 맺어 버리면 공헌도가 쪼개지니, 혼자 다니는 게 최선이거든.

“나랑 다니면 네가 손해야.”

빈말이 아니다.

미션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했다.

팀 플레이가 강제되는 미션이나, 공헌도 대신 공동 점수로 돌아가는 거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미션에서는 지영이를 포함한 다른 팀원들과 같이 움직이면 오히려 손해였다.

“치. 그럼 뭣 하러 팀을 꾸리신 거예요?”

짐짓 화난 척하는 지영이.

이 팀장님이 다 큰 그림이 있어요.

조만간 세계에 들이닥칠 커다란 폭풍을 대비하려는 건데, 미리 말해 줄 수는 없잖아.

말해 줘도 못 믿을걸?

보름 동안 탑을 공략해서 얻은 수확을 정리하자면…….

14층에서는 좀비의 정수에서 시독(屍毒)을.

15층 미션에서는 조잡한 손재주와 치유 스킬인 힐을 얻었다.

16층은 미로 같은 동굴을 헤매면서 동굴인이라는 괴이한 생물체를 사냥, [감지] 스킬까지 얻었으니.

그중에서 가장 큰 이득이라고 하면 동굴인의 정수를 얻은 것이다.

[빅 배트의 정수가 동굴인의 정수와 공명합니다.]

[초음파 사용 시, 감지와 연동됩니다.]

[인지 능력이 강화됩니다.]

감지의 시너지 효과가 더해지면서 초음파로 받아들인 정보가 청각에서 시각으로 자동 변환되었다.

훨씬 더 직관적이 되었다는 거지.

동굴인의 정수를 얻겠다고 몇 번이나 미션을 반복한 보람이 있다.

17층과 18층은 플레이어들끼리 경쟁을 벌이는 거라서 특별한 정수를 얻지 못했지만.

[나찰의 흑요검]

등급: 레어[R] / 분류: 검

내구도: 500/500

죽인 대상의 영혼을 흡수하여 강해지는 검입니다.

오랫동안 사용할수록, 더 많은 영혼을 먹일수록 강해집니다.

최대 레전드 등급까지 강화가 가능합니다.

[불완전한 혈석]

등급: 유니크[U] / 분류: 촉매

내구도: 37/50

진리의 돌의 아류로, 생명력을 응축시켜서 만든 연금술 증폭 관련 광물입니다.

제작 과정에서 피가 부족했는지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혈석을 완성시키려면 갓 사냥한 생물의 피를 헌납해야 합니다.

최초 공략 보상으로 괜찮은 아이템들을 얻었다.

설명만 보면 하나씩 나사가 빠져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진호 님, 흑요검은 모쪼록 저희 구룡방 길드에게 판매하심이…….”

골드 문과 구룡방.

전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두 길드의 관계자들이 탐을 낼 정도다.

레전드 등급 아이템은 천억 이상을 호가하니까.

“돈 말고 다른 걸 받고 싶군요.”

“공룡의 화석 말입니까? 이미 대형께서 승인하신 사항입니다.”

주이션은 웬일로 엘렌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였다.

나찰의 흑요검은 ‘집중의 돌’과 마찬가지로 최고 기록 경신 때만 나오는 아이템이다.

전 세계에 100자루도 풀리지 않았으니.

흑요검을 업그레이드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계 또한 명확하지만 비싼 값을 치를 가치가 있는 무기다.

한발 늦은 엘렌.

그녀는 아쉽다는 눈빛을 금방 지우더니 바로 입을 떼었다.

“미스터 유, 같은 조건으로 혈석을 골드 문에서 구매하고 싶은데요.”

불완전한 혈석은 연금술 연구를 진일보시킬 강력한 촉매.

미국은 탑에서 나오는 여러 물질들로 연금술과 마도공학, 그리고 희귀한 금속들을 다루는 야금술을 다시 발전시키는 중이다.

수년 뒤라면 모를까.

현시점에서는 불완전한 혈석도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되도 못한 물건들을 왜 비싼 값에 사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가는구나.”

닉스는 애달파하는 두 사람을 보며 중얼거렸다.

“거 여신님, 남 거래하는 데 토 달지 마쇼.”

“필멸자들이란.”

“솜사탕 3일 압수.”

“그건 여와의 신성한 계약이니라!”

“솜사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줄 아십니까?”

“여가 잠들기 전까지는 공물을 받는 것이 당연하였도다.”

“아, 그럼 그때로 돌아가시든지.”

닉스는 육체를 얻었어도, 여전히 솜사탕을 선호했다.

캐비어나 푸아그라 같은 걸 좋아하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지.

그나저나.

탑을 오르던 중, 뜻밖의 부작용이 하나 나타났다.

[시독과 마비 독, 산성 피가 충돌합니다.]

성질이 겹치는 정수가 반드시 시너지를 발휘하진 않는다.

마비 독과 산성, 그리고 시독.

좀비의 시독과 고블린의 피는 ‘독’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여 있지만, 발현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

딥 슬라임의 산성 피는 저 둘과 아예 섞이지가 않고.

“아오, 속 쓰려.”

난 배를 만지작거렸다.

포식해 놓은 정수들이 반발을 일으킬 때, 첫 번째 반응이 배탈이다.

과민성대장증후군도 아니고.

뭐, 이 정도 속 쓰림이면 아직 괜찮다는 거지.

닉스가 입술을 오므렸다.

“진실로 괜찮으냐?”

“안 괜찮고 할 게 뭐 있어.”

“그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것이 이번만큼은 틀렸구나.”

“모든 정수는 도움이 된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그 결과가 이 모양이거늘.”

“방법이 다 있어요.”

그래. 예전의 나는 포식의 부작용 때문에 몸을 사리기도 했었다.

정수들을 통제할 그 방법을 더 빨리 떠올렸더라면…….

골드 문과 구룡방에서도 힘을 보태겠다.

조만간에 흡수한 정수들을 재조정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를 가려는 것이더냐?”

“19층 공략해야지.”

팀 권장 미션.

드디어 역천 팀을 구성하고 처음으로 단체 활동을 할 때가 되었다.

* * *

카를라와 핑 레이는 18층에서 공략을 멈춘 채, 반복 미션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나야 작정하고 미션에 매달리면 금방 올라갈 수 있지만, 지영이가 18층까지 클리어할 시간이 필요했다.

“팀장님 말이라면.”

레벨 100이 머지않은 카를라.

승급전에 도전할 조건을 거의 충족한 마당이라 한 번 정도는 이의를 제기할 만한데, 불만 없이 내 말에 수긍했다.

반면, 나랑 같은 시기에 승급한 핑 레이는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투덜거렸지만.

“도대체 왜 내가 빵, 아니 저 여자를 기다려야 하나……요?”

“응. 형이랑 대련 좀 하자.”

“아니. 알아들었으니까 말로 좀!”

“좀? 말이 짧네.”

“하시란 말입니다.”

“대화하고 있잖아, 몸의 대화.”

핑 레이는 그 뒤로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았다.

구룡방에서 감시 역으로 붙은 사내, 주이션은 이런 상황을 보면서도 항의를 하지 않았다.

“진호 님은 정말 대단하시군요. 저보다 더 핑 레이를 잘 가르치실 줄이야.”

아이러니하게도, 핑 레이의 실력은 나한테서 두들겨 맞으면서 가파르게 상승했다.

조금이라도 안 맞으려고 몸을 움직이다 보니, 동선이 더 효율적으로 변했다.

그래 봐야 나한테는 안 됐지만.

“이야, 많이 늘었네.”

“못 보던 초식이 갑자기 왜?!”

백수제왕무와 수라마령심공.

절정의 무공과 심법이 더해지니, 내 무공 수준은 혈조공을 사용할 때보다 월등히 올라갔다.

내공 소모가 심한 게 흠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19층을 앞둔 팀원들.

이미 19층을 클리어한 김영수를 제외하고, 나머지 4인만으로 도전할 것을 선언했다.

“잠깐만요, 미스터 유.”

“말씀하시죠.”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얼마든지. 투자도 받았는걸요.”

“19층은 5인 팀 미션인 거. 알고 계시죠?”

“예. 팀에 영수 형님이 있긴 하지만 이미 클리어를 하셔서요.”

무작위 매칭이 아닌, 스쿼드를 맺고 진입할 때 다회차 플레이어가 껴 있으면 최초 도전 보상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19층 미션은 굉장히 어려워요. 5인을 채우기를 권장해요.”

“인원이 모자라면 구룡방에서 한 명을 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진호 님.”

주이션도 거들었다.

글쎄.

“저는 4인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엘렌과 주이션.

두 사람은 내 대답을 듣고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다.

하지만 선을 넘지는 않는군.

팀 운영에 개입하려고 하면 경고를 하려고 했는데.

아니면 한번 당해 보라는 의미로 말을 아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뭐, 그럴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니까.

“후훗, 여가 있으니 5인, 아니 6인이나 다름없도다.”

닉스의 전투 능력은 아이언 플레이어급.

아직 레벨이 낮아서 카를라나 핑 레이에 미치지는 못해도, 1인분 이상의 기량을 지녔다.

그래도 굳이 4명이 공략하는 게 이해가 가진 않겠지.

나도 사정이 있어서 그래.

1차 침식, 다른 말로 탑과 세계의 동기화가 20%에 도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늦어도 한 달 이내.

게이트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기 전, 팀원들이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게 19층이다.

어쭙잖은 사람 한 명 끼는 것보다 넷의 연계를 연습하는 게 우선이니까.

“한 가지는 말해두죠.”

바벨탑 어플을 활성화한 상태로 엘렌과 주이션에게 말했다.

“내 목표는 19층 올클리어입니다.”

19층 올클리어.

회귀 전에는 2028년, 미국의 팀 ‘매그니튜드’가 처음으로 올클리어에 성공했다.

저 엘렌이나 구룡방의 길드 마스터인 장 우페이도 실패한 일.

나는 그 역사를 2년 앞으로 당길 생각이다.

“그럼 시작하지.”

팀원들은 모두 바벨탑 어플을 켰다.

[플레이어끼리 스쿼드를 결성합니다.]

[최대 인원은 5명입니다.]

[개인으로 진행해야 하는 미션 / 최대 인원수가 스쿼드보다 적은 경우에는 해당 층계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팀원 4/5]

“다들 준비는 끝났지?”

“저, 스승님, 긴장해서 배가…….”

“응. 가서 화장실 가.”

나는 지영이의 볼멘소리를 무시하고 미션 도전 버튼을 눌렀다.

* * *

[바벨탑 - 19층]

[페이욘 삼림으로 이동했습니다.]

[메인 미션 – 악마 숭배자들]

비밀조직 클리포트의 악마 숭배자들이 페이욘 삼림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들은 악마를 이 세상으로 불러내기 위해 힘없는 민간인들을 납치, 비밀 의식을 시행하는 중입니다.

악마 숭배자들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을 구하고 의식을 막아 내십시오.

최소 50명 이상을 구출해야 악마 소환 의식을 막을 수 있습니다.

-목표: 민간인 구출

-특이 사항: 많은 사람을 구할수록 보상 증가.

추종자들은 제물을 돌려받으려고 베이스캠프를 공격하기도 함.

미션 시작점은 베이스캠프.

듬성듬성 세워 둔 통나무로 빙 둘러진 공간 안에는 천막과 화톳불이 있다.

“여신님, 누추해도 조금만 참아줘.”

“뭘 모르는구나.”

“무슨 말이야?”

“여가 머무는 곳은 모두 찬란하게 빛이 나느니라.”

그러니까, 자기가 베이스캠프에 있으니까 누추하지 않다는 거야?

나르시시즘에 가득 찬 배려라니.

참 닉스다운 표현 방식이다.

“팀장님,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핑 레이가 내 눈치를 살폈다.

“현황판 보고.”

나는 미션 진행 상황을 활성화했다.

[구출 인원: 0/150]

[현재 구출 가능한 제단: 2개]

[3번 제단 – 02:31:57]

[2번 제단 – 01:29:41]

제단의 위치가 표기된 지도.

1시간과 2시간이라.

“팀을 셋으로 나눈다.”

난 카를라와 핑 레이를 가리켰다.

“둘이 한 팀, 나랑 닉스가 한 팀 그리고 지영이.”

“공략해야 할 곳은 두 군데인데요?”

지영이가 묻자, 나는 바닥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기 지켜야지.”

방어에 특화된 지영의 능력이라면, 악마 추종자들이 와도 막아 낼 수 있으리라.

“한 가지 제안할 게 있습니다.”

눈을 빛내는 핑 레이.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데?

“말해 봐.”

“누가 먼저 제단을 공략하는지를 놓고 내기, 어떻습니까?”

오호라. 핑 레이 녀석, 실력 좀 늘었다고 자신이 생겼나 보다.

“좋아. 의욕 고취 겸, 하면 좋겠군.”

“이기면 대련을 1주일 면제해 주십시오.”

“만약 내가 이기면 넌 두 배로 굴린다. 괜찮지?”

“예.”

핑 레이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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