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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99화 (99/300)

99화

대앵-! 대앵-!

재야의 종이 울리고, 2026년의 아침이 밝았다.

회귀하고 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새해.

멸망의 시대에는 잠들 때마다 다음 날을 볼 수 있을까 걱정해야 했는데.

“헤어진 연인이라도 생각하는 것이더냐?”

돌연 닉스가 뜬금없는 질문을 툭 던졌다.

“뭔 소리야.”

“그대의 눈이 촉촉해졌느니라.”

“일단 헤어질 사람이 있었는지부터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냐?”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지금까지 살아온 탓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댁에서 자란 덕에 나름대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삶의 여유가 없었기에 연애 같은 건 생각도 못 했지.

“미안하구나. 여가 그대의 사정도 모르고…….”

“괜찮아. 다 지난 일인걸.”

고개를 푹 숙이는 닉스.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따지고 보면 연애를 안 해 봤다는 것도 회귀 전의 이야기다.

[포식] 능력의 진가를 알아낸 후로는 정상급 플레이어로 활동, 부와 명예를 모두 얻었으니까.

“하나, 지금은 여가 그대의 곁에 있으니 안심하여라.”

닉스의 손이 내 손등 위에 포개어진다.

따뜻하네.

호문쿨루스에게도 체온이 있을 줄이야.

하긴, 닉스가 생활하는 걸 보면 영락없이 사람과 똑같았다.

“당연한 말을. 우리는 계약을 했잖아.”

“후훗, 그렇지.”

닉스의 입가에 감도는 쓴웃음.

뭐지?

내가 계약 내용을 유리하게 작성한 걸 알아챈 건 아니겠지.

한참 동안 TV에서 나오는 제야의 종 소리를 듣고 있을 때.

“뭐야. 왜 둘이서 그러고 있어요?!”

지영이가 따라 올라왔다.

리모델링을 완전히 마친 팀 건물.

그녀는 아예 짐을 싸고 팀 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중이다.

“남의 집에 불쑥불쑥 들어오는 거 아니다.”

“여기는 로비잖아요.”

“굳이 따지면 내 건물이거든?”

“그러면 방 빼라고 하시든지요.”

베- 메롱을 하고는 옆에 앉아 버리는 지영이.

리모델링 콘셉트를 왜 이렇게 잡았는지 후회가 되네.

우리는 각 층마다 있는 로비에서 TV를 보는 중이었다.

팀 건물의 콘셉트는 옛날 기숙사.

각층 중앙 계단이 있는 곳마다 로비를 설치, 방으로 가려면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

팀원들끼리 얼굴도 좀 보고 친해지라고 설계한 건데.

“그러니까 왜 방에 있는 TV를 빼셨어요?”

“왜긴. 이 여신님 때문이지.”

난 손을 포개 놓은 닉스를 노려보았다.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현대에 적응하는 닉스.

영체일 땐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는 게 고작이었건만.

호문쿨루스에 빙의하고 나니 리모컨을 손에서 놓질 않았다.

그녀의 주 관심사는 드라마.

훈련 마치고 올 때마다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화가 나요. 안 나요?

결국에는 내 방에 달아 놓은 TV를 없애 버렸다.

“그러는 넌 왜 나왔냐.”

“이왕이면 종소리 같이 듣는 게 좋잖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등 뒤에서 울리는 목소리.

이번에는 김영수가 로비로 나왔다.

“영수 형님은 집에 내려가시지.”

“아이들도 다 커서 제가 없어도 됩니다.”

“주말부부는 할 만해요?”

“아내가 신경을 써 줘서 괜찮습니다.”

너털웃음을 짓는 김영수.

“주말부부는 신께서 내려주신 축복이라던데.”

“너는 결혼 이전에 연인부터 만들고 그런 소리 해라.”

“스승님한테 그런 소리 듣기 싫거든요?”

쟤는 솔로면서 기혼자한테 저런 소리를 하고 그러니.

그렇지만.

일행과 함께할 때, 웃음이 절로 지어지는 게 느껴졌다.

회귀하고 난 뒤에 만든 작은 변화.

능력의 쓰임새를 몰라서 방황의 시기를 보내던 지영이가 1인분 몫을 해내고 있고.

김영수도 본래의 시간선보다 빠르게 자신의 능력을 살리는 중이다.

지금은 작은 날갯짓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폭풍이 되어 전 세계, 나아가 탑의 질서까지 흔들어 놓을 변화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마음을 내려놓고 쉬자.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다.

* * *

연초가 되자마자 기쁜 소식이 하나 생겼다.

“스, 스승님, 됐어요! 해냈다고요!!”

허공에 고정된 진동 결계.

언뜻 보기에는 한 장인 것 같지만.

마력의 파동을 읽어 보면 결계 네 장이 포개어져 있다.

지영이는 내가 준 숙제를 완벽하게 해냈다.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보름 만에 해낼 줄이야.

“그러면 탑에 도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야호!!”

“11층에서는 마나의 시험을 치르도록 해.”

한번 분야를 정하면 다른 방으로 들어갈 수 없다.

“방어가 아니라요?”

“너한테는 그쪽이 더 어울려.”

내 판단이 아니라, 후일 통곡의 벽으로 활동했던 이지영이 했던 말이다.

-결계의 방어력은 덧대는 걸로 얼마든지 올릴 수 있는데. 차라리 공격력 증폭이라도 하게 마나 부스트를 얻을걸.

-마나 부스트가 있었으면 더 빨리 강해질 수 있었을 거다.

살다 보면 한두 번쯤 실수를 하지 않는가.

통곡의 벽은 11층의 선택이 아쉬워서인지 그 말을 자주 했다.

이번 생에서는 그런 후회를 할 일이 없을 거다.

내 손으로 그렇게 만들어 주지.

“클리어하면 보상으로 마나 부스트를 받아라.”

“넵, 스승님!”

“그리고 첫 시도에 성공한다면 보상을 하나 더 고를 수 있어.”

“한 번에 수련관을 통과하는 게 가능할까요?”

“그러라고 훈련을 한 거다.”

나는 지영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보장하마. 너는 통과할 수 있어.”

“스승님께서 주신 신뢰에 보답하겠어요.”

물론 나조차도 100% 성공한다고는 확신할 수 없다.

네 장을 운용하고도 실패하면 단기간에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보상을 두 번 받는 것을 노려서 탑에도 못 오르게 하고 훈련을 반복했지만.

이번 도전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존재했다.

하지만.

미래의 지영이, 통곡의 벽을 알고 있기에 확실하게 믿었다.

그러니까.

“두 번째 보상은 그래비티 바인드.”

지영이의 고유 능력은 방출계 스킬을 못 배우게 할 뿐.

중력 같은 섭리에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마법이야,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으으음, 처음 듣는 마법이에요.”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까.”

그래비티 바인드는 3성 스킬인데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중력 계열 마법 중에서는 지명도가 떨어지거든.

상대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광역 디버프.

마법 범위가 넓지만 ‘웨이트 그래비티’처럼 중력을 엄청나게 강화시키는 게 아니라서 완전 무력화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왜 배우게 하냐고?

회귀 전, 통곡의 벽을 진동 결계와 연계로 즐겨 썼으니까.

“스승님께서 배우라고 하시면 이유가 있겠죠. 알겠습니다!”

“나를 너무 신뢰하는 거 아니냐?”

“제 가능성을 이끌어 주신 게 스승님이잖아요.”

배시시 웃는 지영이.

“그럼 보증 좀…….”

“11층 도전하러 갑니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폰을 누르더니 바벨탑으로 들어가 버렸다.

옆에서 TV를 보던 닉스가 시선을 돌리더니.

“보증이라는 것이 무엇이더냐?”

“누가 해 달라고 하면 무조건 거부해야 하는 거.”

“그렇구나. 매일 새로운 지식을 배워 나가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

저렇게 두면 조만간 시까지 쓰겠어, 아주.

얼마 후.

지영이가 복귀했다.

“스승님, 제가…… 그게……..”

얘는 왜 이렇게 울먹이고 있어?

실패했어도 돈이나 CP로 구매하면 되는 일인데.

마나 부스트는 억만금을 줘도 구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비티 바인드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4성 스킬인 만큼 최소가 백억 단위지만.

주머니 두둑한 호구, 아니. 길드 관계자들도 있으니 투자 좀 해 달라고 하면 되는…….

“제가 해냈어요!”

“응?”

“스승님께서 응원해 주신 덕분이에요!”

지영이가 환호성과 함께 내 손을 잡고는 방방 뛰었다.

“네가 노력한 덕이지.”

“아니에요. 스승님이 아니었으면 분명 첫 시도에 성공 못 했을 거예요.”

미래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쉬이 동의할 수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지영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호오, 성공했구나.”

“닉스도 내가 성공하는 걸 기도해 줬지?”

“여는 위대한 밤의 여신.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는 것은 신자들의 몫이니라.”

“과대망상은 나중에 하시고요.”

닉스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는 지영.

내가 그녀를 여신이라고 칭하고, 닉스 스스로도 스스로를 높여 부르며 신이라 자칭하지만.

팀원들 중에는 그 누구도 닉스가 여신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

당연하지.

탑이 등장한 이후, 성좌의 이적을 눈으로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펼쳐졌다.

전 세계 각지의 토속신앙이 부활하였으며.

본래에도 강한 세를 지녔던 유명 종교들은 재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 커졌다.

“여는 진짜 여신인데…….”

닉스는 코를 훌쩍였다.

뭐, 내 입장에서도 과대망상증을 지닌 소환수라고 하는 게 편했다.

“머리도 안 감고 그런 말 해 봐야 신용이 없지.”

“다른 이들이 모두 아니라고 해도, 그대만큼은 여의 편을 들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물론이죠. 그러니까 여신님이라고 하잖아.”

“흥. 되었느니라.”

토라진 척하기는.

지영이는 연달아 12층까지 쾌속으로 통과했다.

나처럼 최고 기록 경신을 노리는 게 아니라서 무난하게 1위로 생존.

13층을 오를 준비를 마쳤다.

다음 날.

난 지영이와 스쿼드를 등록, 13층에 첫발을 내디뎠다.

* * *

13층 미션의 주제는 세력 별 디펜스.

참여자 40명을 반으로 나누어서 두 세력으로 분단, 몰려드는 골렘들을 먼저 쓰러트리는 쪽이 이기는 미션이다.

“정수는 양보 못 하지.”

나는 최전선에 서서 골렘들을 도륙했다.

스캐빈저를 얻었을 땐 미션을 클리어 할 정도로만 움직였는데, 이젠 정수 포식이 되니 망설일 게 없었다.

“그대는 늘 앞장서는구나.”

“여신님은 지영이 옆에 있지, 왜 왔어?”

“잊고 있었느냐? 여도 경험치를 얻어야 하느니라.”

늦바람이 무섭다고, 닉스는 경험치 획득에 목을 매었다.

탑에 유폐된 힘을 되찾기까지는 오래 걸린다고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 또한 강해지겠다는 의욕이 충만했다.

[어둠 지배]

커튼처럼 얇게 펼쳐진 극야의 힘이 골렘 3기를 뒤덮는다.

단단한 골렘의 몸뚱이에는 타격이 가지 않는 모습.

“극야에는 이런 활용 방법도 있느니라.”

좌아악- 랩을 씌운 것처럼 극야가 골렘의 몸뚱이에 달라붙는다.

작은 틈 사이사이마다 파고든 극야는 내부에 설계해 놓은 마력 회로를 망가트렸다.

쿵, 쓰러지는 골렘.

나도 백수제왕무나 괴력을 연달아 펼쳐야 쓰러트릴 수 있는 괴물을 저렇게나 쉽게 쓰러트릴 줄이야.

“스승님! 뒤에도 있어요!”

카앙.

지영이의 결계가 집채만 한 주먹을 받아 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진동 결계 x 4]

골렘의 앞과 뒤를 감싸는 결계.

증폭되는 진동이 단단한 몸뚱이를 넘어서 내부까지 뒤흔들었다.

-작동. 이상.

골렘이 바동거렸지만, 얼마 못 버티고 우수수 무너졌다.

남은 18명은 멍한 표정으로 구경할 뿐.

어디에도 나설 틈이 없었다.

[스톤 골렘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일반

근력 + 2

맷집 + 4

스킬 – 단단해지기가 추가됩니다.

[단단해지기]

등급: 1

유형: 액티브

한 자리에 머무를수록 방어력이 상승한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장기전에서 유리한 스킬.

탱킹 관련이라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나름 쓸 만한 옵션이다.

[전투 골렘의 정수가 스톤 골렘의 정수에 공명합니다.]

[두 정수를 융합하여 새로운 스킬을 만들 수 있습니다.]

[락 스킨]

등급: 2

유형: 액티브

피부에 바위 같은 견고함을 부여한다.

한 자리에 머무를수록 피부의 방어력이 상승한다.

스톤 스킨과 단단해지기를 섞어놓은 스킬.

회귀하기 전에는 둘 다 취하지 못했던 정수이기에, 나도 처음 보는 시너지 효과다.

음, 효과는 좀 아쉽군.

나는 여태 주력 방어 스킬로 [가시 갑피]를 사용했다.

움직임에 방해도 되지 않고, 근접해온 적에게 피해를 입히기까지 하는 스킬.

반면, 스톤 스킨은 사용할 때 몸이 둔해지는 페널티가 있다.

락 스킨에는 민첩 감소가 없지만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탱커처럼 그 자리에서 버텨야 하고.

“팀 플레이에서는 좋은 게 아니더냐?”

“그거야 그렇지.”

“참 욕심이 많구나. 그대라는 자는.”

“이왕이면 기동성과 방어력, 둘 다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과한 욕심은 화를 불러오는 법이니라.”

뭐, 그래.

탱킹 스킬 하나 얻었다 생각하고 만족하자.

지금은 말이야.

13층 미션은 일행의 활약 덕에 금세 상대 진형을 밀어 버렸다.

팀 단위 미션이라서 최고 기록을 경신하지는 못했지만.

최초 도전에 공헌도를 압도적으로 쌓아서 cp를 두둑하게 받았다.

“여신님, 괜찮아?”

“후훗, 여를 너무 얕보는구나.”

코웃음을 치는 닉스.

“저도 얼마든지 더 올라갈 수 있어요.”

열정적인 건 지영이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지영이는 패스.”

“네…… 네?”

“이제부터는 따로 공략할 거야.”

지영이의 눈빛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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