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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98화 (98/300)

98화

대련을 중지한 후.

나는 닉스를 데리고 바깥으로 나왔다.

“미안하군. 이런 부탁을 해서.”

“저 말고는 부탁할 사람도 없으셨잖아요.”

동행한 지영이 헤헤, 하고 웃었다.

그녀가 이번 외출에 일행으로 낀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여성 의류에 대해 잘 모르니까!

여신님에게 맞는 옷을 사 줘야 하는데, 그건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무언가를 걸치는 건 너무 불편하니라.”

“부탁이니까 한국에 있으면 한국 법을 따라 줘.”

“흐응, 여의 자비를 바라는 것이더냐.”

예비용 호문쿨루스에 닉스를 불어넣은 게 실수였을까?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소환, 아니지. 뭐라고 불러요?”

“닉스. 닉스라고 부르거라.”

“완전히 외국인 느낌!”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누는 닉스와 지영이.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두 사람은 의외로 잘 어울렸다.

서로가 부정할 뿐이지.

당분간은 닉스를 지영이한테 맡겨 둘까.

오늘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런 건지, 눈꺼풀이 무거웠다.

“스승님, 저금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그냥 발 닿는 대로 가는 건데?”

“와, 이건 좀 너무하시네요.”

내가 뭘요.

닉스가 입을 옷가지를 사러 나온 것뿐인데 이렇게나 비난을 받아야 하니?!

“이번 일은 저한테 맡겨 주세요.”

굉장히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지영이.

뭐, 내가 옷을 골라 주기도 어려운데 차라리 잘됐지.

“오냐. 이 카드로 사 줘.”

“법인이에요?”

“팀 결성은 법인 안 되거든?”

“아무튼 스승님 카드잖아요. 잘 쓰겠습니다.”

낮게 웃는 지영이를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대는 함께 가지 않느냐?”

“닉스, 오늘은 나랑 같이 다니면 돼.”

“여에게는 계약자가 있거늘.”

“나한테 맡겼잖아. 너무 그러지 말고 다녀오자.”

영체로 있을 때는 지영이를 몰아붙이더만.

호문쿨루스에 들어간 뒤로는 반대로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별일은 없겠지.

닉스의 옷가지를 사 오는 건 지영이에게 맡기고, 팀 훈련소로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보는 이들.

“부탁이니까 아무것도 묻지 마.”

나는 한마디로 일축했다.

하. 콩쥐팥쥐로에서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을 파헤친 이후로 가장 피곤한 날이야.

핑 레이와 카를라, 그리고 김영수를 훈련시키고 있을 때.

“스승님, 저희 왔어요!”

지영이가 문을 활짝 열면서 활기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오늘 처음 보는 것도 아니면서 새삼스럽기는.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여인.

나는 잠깐 동안 두 눈을 의심했다.

“저기요, 여신님 맞지?”

“농이 심하구나. 마치 못 알아보는 것처럼.”

블랙 원피스에 가디건.

신경을 쓴 듯, 안 쓴 것 같은 묘한 옷차림인데 닉스가 입어서 그런지 아우라가 남달랐다.

못 본 사이에 완전히 현대인 다 됐네.

“그렇게 옷 입으면서 거울도 안 봤나.”

“의복이라는 것은 결국 외면일 뿐. 여가 보는 것은 내면이니라.”

“그래서 리자드맨을 보면 흉측하다고 하셨나?”

“늪에 사는 종자들은 도무지 좋아하려고 해도 마음이 안 가는 것을 어찌하겠느냐.”

닉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 하는지 얼굴에 다 쓰여 있구먼.

옷 문제도 해결되었겠다.

팀원들을 한자리에 모은 후, 닉스를 소개했다.

“나랑 계약을 맺은 존재. 닉스다.”

“모자란 여의 계약자가 신세를 지는 것을 보았도다. 잘 부탁하지.”

보통 반대로 말해야 하는 거 아니니?

닉스의 말에 풋, 하고 웃는 지영.

다른 사람들은 내 눈치를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아니군.

카를라는 여전히 무표정하구나.

“탑에서 얻은 기연으로 육체를 얻었는데, 앞으로 팀에서 같이 활동할 거다.”

“저기, 팀장……님.”

“핑 레이. 질문할 게 있나?”

“역천 팀은 다섯 명 기준으로 모집했잖아, 요.”

예리한 질문이군.

팀 단위로 미션을 진행할 때, 최대 다섯 명까지 한 그룹으로 묶을 수가 있다.

닉스가 끼면 한 명을 방출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럴 일은 없을 거다. 닉스는 플레이어가 아니니까.”

시스템의 혜택을 받는다고 해서 모두 플레이어는 아니다.

내 상태 창을 보면 이름 옆에 [플레이어]라는 표시가 나타나잖아?

닉스는 그런 표기가 되어 있지 않으니 인원수 제한에 걸리는 일도 없다.

“다른 질문은 없나.”

팀원들을 둘러보았지만,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진 않았다.

“길드 관계자분들은, 괜찮으신가요?”

“팀장님의 의사가 중요한 거죠.”

“구룡방 길드는 자잘한 일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엘렌과 주이션이 번갈아 가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내 말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모습.

두 사람은 시선이 향하는 곳을 감출 생각도 없는지, 노골적으로 닉스를 관찰하는 중이었다.

소환수가 육체를 얻고 돌아다니는 케이스.

궁금할 만도 하지.

어디 한번 언랭크 등급 쪽을 열심히 조사해 봐라.

[기초 수련장 - 불지옥 난이도]를 통과하기는커녕 조건이 뭔지 알아내지도 못할걸?

* * *

닉스는 육신을 얻은 후, 팀 건물을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과연. 직접 걷는 건 느낌이 다르구나.”

싱그러운 웃음을 짓는 닉스.

가장 큰 변화는 영체일 때보다 더 감정 표현이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현대 문명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

“당분간은 고생 좀 해 주라.”

“걱정 마세요. 닉스는 많이 안 돌아다니던데요.”

“그러다가 지하철이라도 타면?”

“에이, 움직이는 게 완전 고양이 패턴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팀 건물을 중심으로 조금씩 활동 영역을 넓혀 간다는 이야기.

지영이는 주먹을 말아 쥐며 위로했다.

“여신님.”

“어인 일이냐?”

소파에 드러누운 채 TV를 보는 닉스.

……현대 문명에 익숙해지는 것도 시간문제처럼 느껴지는걸.

“빈둥거리지 말고 탑이나 가자.”

“호오, 육체를 얻고 나서 처음이로구나.”

“밥값은 해야지.”

그래.

닉스가 육체를 얻으면서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바로 식사다.

“필멸자란 참으로 귀찮구나. 음식을 먹어서 힘을 보충해야 하다니.”

“놀고만 있으면 밥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아.”

“알겠노라. 그대를 도울 겸, 1인분 몫은 해 주도록 하마.”

참.

눈물 나는 자비심이네.

닉스를 대동한 채로 도전하는 건 12층.

지영이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라, 경험치와 cp 획득 및 실전에서 무공을 수련할 목적이었다.

이번 필드는 중세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성.

주위를 빙 둘러선 성곽 아래로 2층, 혹은 3층 높이의 중세 주택들이 늘어져 있다.

미션 시작과 동시에 보이는 플레이어 둘.

“저치는 여에게 맡기어라.”

“좋아. 기대하지.”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내 존재를 알아챈 플레이어가 반월 형태의 칼을 휘두르지만.

[백수제왕무 - 2초식]

[산군파랑조를 사용합니다.]

파도처럼 들이닥치는 검은 내공에 휩쓸려서 일격에 사망했다.

그러면 어디 여신님의 솜씨를 볼까?

내가 막 전투를 마칠 때, 마침 닉스도 상대와 마주했다.

“꿇어라.”

“예?”

멍한 표정을 짓는 플레이어.

닉스는 후, 하고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여신을 배알하는 자세가 안 된 아이로구나.”

극야의 힘이 넓게 퍼져 나간다.

수십으로 갈라진 극야는 몇 번이나 꼬아지면서 나선 형태의 창으로 변하더니.

그대로 눈앞의 플레이어에게 쏘아졌다.

“이게 뭐야?”

병장기를 휘두르지만 한 손으로 열 손을 못 막아 내듯, 극야의 힘이 파고드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손을 펼치는 닉스.

플레이어의 몸 안으로 파고든 극야 일부가 밖으로 방출되더니, 원형으로 퍼지면서 재차 대상을 감쌌다.

그리고.

콰득! 살과 뼈가 짓이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탄성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가 극야를 다루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응용력이다.

전체적인 출력이야, 닉스가 조금 앞서는 정도지만.

극야의 힘을 순식간에 수십 번 회전시켜서 관통력을 늘리고.

상대방이 반응하기도 전에 체내에 파고들어서 방어를 무력화해 버렸다.

마지막으로 극야 일부를 외부로 방출, 내부와 공명시켜서 짓눌러 버리다니.

“역시 여신님. 대단해.”

“몸풀기도 안 되었구나.”

닉스는 우쭐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얄밉기는 해도 지금은 칭찬해 줄 때이니 참자.

“참, 레벨은 올랐어?”

“그러고 보니 메시지가 귓가에 맴돌더구나.”

닉스는 상태 창을 훑어보더니.

“보너스 스텟이 다섯 개 생겼느니라.”

“역시. 레벨이 올라가는군.”

“그렇다면 모든 능력치를 여의 근본인 극야에…….”

곧장 스텟을 분배하려고 했다.

“잠깐만.”

“여에게 간언할 것이 있느냐?”

“너무 극야에만 의지하는 게 아닌가 해서.”

극야를 빼면 일반인과 다를 것이 없는 닉스의 신체 능력.

마법 사용자들도 방어구를 걸치기 위해 최소한의 근력이나 맷집에 스텟을 부여한다.

“극야가 공·방 일체형이긴 해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호오. 염려는 가상하나, 그 걱정이 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구나.”

[고유 능력: 극야]

극야를 몸에 동기화시켜 신체(神體) 일부를 구현합니다.

극야가 신체를 감싸고 있으면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대련에서 닉스의 움직임이 기민했던 게 능력 때문이었구나.

나는 단순하게 [극야]를 다루는 능력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도 못 한 옵션이 붙어 있었다.

“어떠느냐.”

“이런 능력이 있으면 극야에 다 투자해도 되겠네.”

“후후훗, 이것이 여의 능력이니라.”

우리는 그 뒤로도 쉼 없이 도시를 누볐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킬 카운트.

닉스의 레벨도 수직 상승 했다.

“믿기지가 않는구나.”

“뭐가?”

“이들이 그대와 같은 등급이라는 것 말이니라.”

닉스는 오른손으로 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더니.

“이렇게나 나약하거늘.”

라고 말하며 플레이어의 수준을 한탄했다.

탑에서 줄곧 나랑 같이 다니다 보니 눈높이가 너무 높아졌네.

[극야]로 강화한 닉스의 신체 능력은 아이언 등급의 평균 수준.

막 대단하진 않아도 내 움직임을 따라올 정도는 되었다.

“저기 둘. 스쿼드를 짠 건가?”

“스쿼드를 맺어도 그렇지. 킬 카운트가 공유될 리 없는데.”

“그런 거 따지기 전에 일단 협공해야 해!”

12층 미션은 늘 비슷한 패턴이었다.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싸우거나 숨거나 하지만.

내가 킬 카운트를 엄청나게 올리면 삼삼오오 힘을 합쳐 반격한다.

“오히려 좋아.”

100명 중 99명이 한 그룹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많아 봐야 대여섯 명으로 급조된 팀인데, 그 정도로는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거기에.

“저치들은 여를 배알하는 예의를 알고 있을까?”

육체를 얻은 닉스가 추가되었다.

“뭐라고 떠드는 거야!”

“여가 직접 천것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야겠구나.”

닉스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손동작은 의지를 발현하는 트리거.

동시에, 그녀의 몸을 감싼 극야 일부가 풀어지더니 사방을 밤으로 물들였다.

인정해야겠군.

닉스가 육체를 얻으면서, 내 전력이 엄청나게 상승했다는걸.

“호호, 여의 앞에 무릎을 조아리도록 하여라!”

다만.

……그놈의 예절 주입은 조금만 자제해 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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