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침이 날아드는 간격이 조금씩 빨라진다.
처음은 10초.
조금 지나니까 5초.
나중에는 연속적으로 발사되거나, 양쪽 혈을 동시에 짚기도 했다.
역시 삼재기공으로는 다 반응할 수 없군.
[신력을 단전으로 이동시킵니다.]
[내공 감응도가 상승합니다.]
가이아의 정수를 포식하면서 얻은 신력.
좁쌀만 한 크기라서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제격이었다.
지금은 마나 감응도보다 내공 운용능력을 증폭시켜야 할 때!
삼재기공을 다시 운용하자, 전보다 2배 이상 빨라진 속도로 움직였다.
나는 혈도에 박힌 침을 튕겨 내는 데 집중했다.
무아지경.
시간의 흐름을 잊고 수련관의 시험에 몰두한 지 얼마쯤 지났을까.
몸을 두들기던 침이 더 이상 날아들지 않았다.
[전신 세맥이 깨어납니다.]
[기(氣)의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무공 성취 속도가 30% 올라갑니다.]
[내공 소모량이 20% 감소합니다.]
“후-.”
짧은 한숨과 함께 감았던 눈을 떴다.
“성공이군.”
한결 부드러워진 내공의 흐름.
수련관에서 날아드는 침은 단순히 대상자를 괴롭히려고 한 게 아니다.
혈도를 자극하는 대법.
내공으로 침을 튕겨 낼수록, 기가 몸을 일깨우면서 보다 무공에 적합한 신체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여가 보기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만.
“장기적으로 봐야지.”
무공 성취 속도 30% 상승이야 체감이 잘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공 소모 감소는 이야기가 다르지.
특히 암영추혼검처럼 내공이 많이 들어가는 무공을 펼칠 때 엄청나게 체감이 될 것이다.
“삼재기공 효율이 너무 안 좋아서 큰일 날 뻔했네.”
옷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쳤다.
회귀 전의 나는 이류 무공인 천성공(千成公)을 익힌 상태로 11층에 도전했다.
그때도 한 번에 통과한 건 아니었고.
셀 수 없는 실패와 재도전 끝에 무공 수련관을 완벽하게 통과했다.
회귀 전의 감각으로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신력이 아니었으면 미끄러질 뻔했군.
-후훗, 재미있구나.
“갑자기 왜 웃어?”
-그대가 낭패감을 드러내는 건 아주 드문 일이니, 이 어찌 재미가 없겠느냐.
“내가 고생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보기가 좋습니까.”
-그럼에도 모든 고난을 이겨 내지 않았더냐?
잘도 빠져나가는군.
쳇, 혀를 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메인 미션 - 적성 훈련을 통과했습니다.
▶ 첫 시도에서 완벽하게 수련관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 무공 수련관에서는 재도전을 해도 보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 보상으로 수련관의 무공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최초 도전에서 수련관을 완벽하게 클리어했으므로, 무공 하나를 추가 선택 가능합니다.
“미친.”
격한 감탄사가 입술을 비집고 절로 튀어나왔다.
추가 보상이 나올 줄은 알았지만, 무공 선택권 하나가 더 생길 줄이야.
이렇게 되면 계획이 확 앞당겨지겠는걸.
-본래 생각해 둔 무공이 있느냐?
“백수제왕무.”
나는 망설임 없이 첫 번째 무공을 선택했다.
하늘에서 툭 떨어진 비급.
회귀 전에도 이 무공을 골랐었지.
[백수제왕무(百獸帝王武)]
등급: ★★★★
분류: 액티브
성취: 1성(0%)
야수의 움직임을 인간의 육신으로 재해석, 내공으로 파괴력을 극대화시킨 무공이다.
전반부 12초식과 후반부 12초식으로 구성되었다.
무공 성취가 5성 이상이 되어야 후반부를 펼칠 수 있다.
*전개 시 내공 필요.
“이제야 제대로 된 무공을 익혔군.”
머릿속에 새겨지는 지식.
과거 익혔던 백수제왕무와 동일한 초식들이다.
만족감에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이름이 꽤 특이하구나.
“혈조공처럼 동물의 움직임과 흡사한 구조야.”
-포식자가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체계화한다라. 무공이라는 것도 참으로 흥미롭도다.
“다만 이 무공은 조금 더 특이하긴 해.”
상승무공일수록 한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남궁세가의 제왕검형은 오로지 ‘검(劍)’을 휘두르는 데 주안점을 둔다.
반대로 하북팽가의 혼원벽력도는 도(刀)의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대부분의 무공은 무(武)의 궁극을 보기 위해 한길을 팠다.
백수제왕무는 앞에서 언급한 무공과 정반대의 방향을 추구했다.
무공의 근본.
온갖 맹수들의 움직임을 극한으로 추구해서 무공으로 승화하자!
인간에게는 날카로운 손톱이나 이빨이 없지만.
맹수보다 더 빠르고 강한 힘을 내게 해 주는 내공이 있으니까.
-역발상이로구나.
“그래서 한 분야를 파기보다 여러 방식으로 맹수의 움직임을 구현했어.”
총 24개 초식에는 권(拳)·장(掌)·조(爪)·각(脚)·지(指)법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여러 무공을 총망라한 기예.
반대로 말하면 한 분야를 극한까지 파고든 일반적인 무공에 비해 깊이가 부족했다.
-그럼에도 이 무공을 선택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백수제왕무는 맹수의 움직임을 재해석한 거니까. 나랑 잘 맞아.”
무공을 펼치는 주체는 인간이다.
제아무리 고강한 내공을 품거나 외공을 극한까지 단련했다고 한들, 그 육체는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든.
나는 다르다.
여러 생물들의 정수를 포식.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있다.
“백수제왕무의 힘을 제대로 끌어내려면 갈 길이 멀었지만.”
-여의 계약자라면 그쯤은 어렵지 않게 해내야 한다.
“예이, 분부대로 합죠.”
과장스럽게 허리를 숙이곤 무공 목록을 확인했다.
수련관의 보상은 일류에서 절정에 속한 비급.
내 성명절기로 백수제왕무를 선택했으니, 이젠 무공에 걸맞은 심법을 골라야 한다.
[양가창법]
[칠성마검]
[주전강결도]
[거령도법]
[명옥공]
…….
수십에 달하는 비급.
그중 대부분은 무기를 기반으로 한 무공이었다.
장법이나 조법도 간간이 있지만 백수제왕무를 익힌 입장에서 탐이 나진 않았고.
역시 심법을 찾아봐야 하나?
난 비급 리스트를 빠르게 넘기면서 내공심법 위주로 검색했다.
그러던 중.
“이거 괜찮겠는데.”
내 눈이 한 무공에 고정되었다.
수라마령심공(修羅魔靈心公).
-한데 왜 이리 표정이 어둡느냐?
“잘 선택한 건지 모르겠어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수라마령심공은 절정의 심득을 담은 마공이다.
수라(修羅)라는 흉흉한 이름을 앞에 붙여 놓은 걸 보면 짐작이 가겠지?
사실 정파의 무공과 마공 중에서 궁합이 좋은 건 당연히 마공이다.
여러 정수를 포식해서 끊임없이 신체를 개변시키는 고유 능력.
[포식]과 정파의 무공은 상성이 안 좋거든.
다만, 수라마령심공은 마공 중에서도 익히기가 꽤 까다로웠다.
“기혈이 잘 닦이지 않은 상태로 심법을 운용했다간 내공이 폭주할 수도 있어.”
-만일 폭주하면 어찌 되느냐?
“전신 세맥이 갈기갈기 찢겨서 죽겠지.”
-꽤 담백하게 말하는구나.
“여기서는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니까.”
위험부담이나 혈맥이 찢겨지면서 겪을 고통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기껏 절정의 무공을 얻어 놓고 빛 좋은 개살구처럼 써먹지 못하면 어쩌나 고민하는 것뿐.
하지만 결국 수라마령심공을 선택했다.
“못 먹어도 고다.”
나는 다시 바닥에 걸터앉고는 수라마령심공의 구결대로 내공을 운용했다.
삼재기공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공.
일주천을 마치자, 내공의 기운이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졌다.
삼재기공으로 쌓아올린 기(氣)는 제 길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시냇물 같다면.
수라마령심공의 구결대로 운용한 내공은 거센 파도가 몰아치듯, 무자비한 기세로 나아갔다.
쿵! 쿵! 쿵!
몸이 들썩인다.
수련관의 시험으로 한껏 예민해진 감각이 통증에 비명을 내지른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통을 속으로 삼켰다.
-그대여, 조금만 버티어라!
닉스가 밤의 축복을 걸어 주었지만, 여전히 뒈질 것처럼 아팠다.
와, 이대로는 정말로 죽겠네.
수라마령심공.
현재의 내 수준으로는 익힐 수 없는 무공인가?
아냐. 포기할 수는 없어.
만약 여기서 수라마령심공을 익히는데 성공하면…… 백수제왕무나 암영추혼검을 훨씬 수월하게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재생을 사용합니다.]
[대지모신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밤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손상된 혈맥을 휘감는 재생의 힘.
거기에, 두 신의 가호가 깃들면서 내상이 빠르게 아물었다.
트롤급의 재생 속도는 아니지만, 어지간한 치유 스킬 정도는 된다는 말이야!
아니야.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수라마령심공의 영향을 받은 내공은 그 성질이 너무 포악해서 재생만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저 기운을 제압하려면 어떤 수를 써야 하지?
그때, 네스의 정수를 흡수하고 얻은 스킬, ‘여의주’가 떠올랐다.
단전처럼 내공을 담아 둘 수 있는 기관.
내공 일부를 여의주로 옮겨 놓으면 부담이 줄어들지 않을까?
콰콰콰콰!
폭주기관차처럼 전진하는 내공 일부를 여의주로 도인(導引)했다.
본래에는 단전을 거치면서 대주천을 해야 할 내공이지만.
비슷한 역할을 하는 여의주에 스며들자, 몸의 부담이 크게 줄어들었다.
[여의주가 강대한 기운을 받아들였습니다.]
[모든 기운을 흡수하지 못합니다. 외부로 방출합니다.]
그 정도면 됐다.
나는 반복적으로 여의주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당장에 필요한 것은 숨을 돌릴 수 있는 약간의 여유뿐.
여의주가 수라마령심공의 내공을 모두 담아 낼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일주천, 이주천, 그리고 삼주천.
수라마령심공의 구결대로 움직이던 내공이 서서히 안정을 찾기 시작한다.
몸의 들썩거림도 잦아들고, 끓어오르던 기혈이 평소처럼 가라앉았다.
[수라마령심공을 습득했습니다.]
[수라마령심공(修羅魔靈心公)]
등급: ★★★★
분류: 패시브
마교에서 극비리에 개발한 상급 마공이다.
수라마령심공을 익힐 수 있는 건 기골과 튼튼한 심맥을 타고난 극소수로, 눈에 띄는 특징은 없으나 신공절학에 버금갈 정도로 내공을 빠르게 쌓을 수 있다.
단, 초절정 이상의 경지에서는 내공을 쌓는 속도가 느려진다.
“아오, 진짜로 뒈지는 줄 알았네.”
-그대의 몰골을 보아하니 죽어도 이상하지 않으니라.
“내 모습이 어때서 그러는데?”
-직접 보면 알 것이니라.
닉스가 말한 대로 극야를 끌어올려서 거울 대신 내 얼굴을 비추었다.
“웩. 난리도 아니군.”
눈과 코, 그리고 입.
모공이란 모공에서 피가 새어나와 있었다.
재생을 안 썼으면 정말로 혈맥이 터져서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겨졌겠어.
-그렇게까지 고생한 보람은 있느냐?
“당연하지.”
나는 히죽 웃었다.
[내력: 98.5 → 207.9]
배 이상으로 늘어난 내공!
단전에 감도는 묵직한 감각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여의주와 재생, 그리고 두 신의 가호.
여태 쌓아올린 정수들이 아니었으면 혈맥이 찢겨지면서 온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피를 토해 내고 죽었을 거다.
뭐, 죽어 봐야 탑 밖으로 튕겨나가는 게 전부지만.
절정의 무공을 보상으로 받아 놓고 익히질 못하면 얼마나 억울해?
-하면 오늘은 더 도전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떠느냐.
“멀쩡해. 아니, 오히려 몸 좀 풀어야지.”
수라마령심공을 온전히 익힌 덕에 혈맥에 가해졌던 부담도 사라졌다.
내공도 늘어났고 새 무공까지 익혔겠다.
“12층에서 시험하면 딱이겠어.”
흐흐흐.
나는 음침한 웃음을 흘리면서 12층 도전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