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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90화 (90/300)

90화

승급전에서 우승하고 이틀이 지났다.

-모두 괄목하여라. 세상이 그대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쁘구나.

닉스는 앙증맞은 손으로 태블릿 화면을 가리켰다.

[한국, 승급전에서 플레이어 강국인 중국을 꺾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다!]

[승급전의 주역은 누구? 유진호 플레이어의 모든 것.]

[유진호, 튜토리얼부터 승급전까지. 승승장구하는 이유를 파헤치다.]

…….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솜사탕 먹으면서 그거 누르지 마. 끈적거린단 말이야.”

-여의 행복을 방해하지 말거라!

한 손에는 태블릿을.

다른 손으로는 분홍색 솜사탕을 들고 있는데, 태블릿 화면 곳곳에 녹아 버린 설탕이 붙어 있었다.

부탁이니 솜사탕을 먹거나 태블릿을 보거나.

둘 중 하나만 해 주지 않을래?

“하핫, 소환수님께서 활기차시군요.”

호쾌하게 웃는 한수창 팀장.

“그만 좀 활기찼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이야기했다.

-여는 소환수 같은 저급한 존재가 아니니라!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니까. 여신님은 지영이랑 놀고 있어.”

-흥, 그대는 여를 배알하는 자세를 다시 배워야겠구나.

닉스는 볼을 부풀린 채, 훈련장으로 뾸뾸거리며 날아갔다.

“그, 진호 님.”

“정말로 여신이냐고요?”

“예. 평범한 소환수로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유폐되긴 했지만 진짜입니다.”

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헙, 하고 탄성을 내뱉는 한수창.

“극비 정보 아닙니까?”

“아직까지는 팀장님 말고 아무한테도 말 안 했죠.”

“입단속은 확실히 하겠습니다.”

한수창은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고는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이쪽 패를 너무 쉽게 까는 거 아니냐고?

이 사람은 회귀 전의 기억으로 보아하건대,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오히려 ‘너만 알려 준다.’라는 식으로 신뢰를 사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다.

유능하기도 하고.

“참, 오늘은 몇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마침 잘됐네요. 나도 부탁할 사항이 몇 가지 있었거든요.”

“협회를 너무 부려 먹으시는 거 아닙니까?”

한수창은 짧게 푸념을 한 후, 입가에서 미소를 거두었다.

“실은 구룡방에서 요청이 하나 왔습니다.”

“더 할 말이 있대요? 하여간 뒤끝 하나 길다니까.”

“그것이…… 핑 레이가 진호 님의 팀에서 활동하고 싶답니다.”

응?

뜻밖의 이야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룡방에서 그런 제안을요?”

“예. 한국에서 플레이어로 활동하려면 협회의 승인이 있어야 하니까요.”

한수창은 그 말을 하면서 곤혹감을 숨기지 않았다.

협회 입장에서도 구룡방의 노림수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눈치.

“혹시라도 진호 님을…….”

“제가 그쪽으로 스카우트될 일은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회귀했다고 해서 과거의 일을 모두 기억하는 건 아니다.

하물며, 이 시기에 타국의 사건까지 모두 떠올리지는 못하거든.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한두 개 기억하는 게 전부.

회귀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익숙한 곳에 있는 게 최선이다.

“커흠, 다행입니다.”

“협회에서는 어떻게 할 겁니까?”

“거절할 명분이 없으니. 통과시켜야죠.”

어쩐지.

댓바람부터 나를 찾아온 목적이 이거였구먼.

협회는 나를 한번 떠본 후에 핑 레이의 입국 여부를 결정할 속셈이었다.

이번 승급전 이후, 해외에서도 나를 주목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방증.

“특무대 쪽 활동은 없습니까?”

“예. 진호 님의 힘을 빌릴 사건은 없습니다.”

“어쨌든 세금도 감면받으니 일 있으면 연락 주세요.”

“지금 하시는 일만 해도 국위선양을 하고 계시니까 특무대 활동을 너무 의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뭐, 그렇게 말한다면 나도 편하고 좋지.

“아 참, 저번에 맡기신 아이템들은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케이딘 수정요?”

“예. 수수료 빼고 243억이 나왔더군요.”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3달 전만 해도 통장 잔고가 1천만 원이었는데.

몇 배로 불어난 건지 모르겠네.

“마침 잘됐네요. 그럼 이 건물, 그냥 매매로 돌리죠.”

“예. 그건 제 선에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티라노사우루스의 화석 좀 구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한수창의 얼굴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티, 티라노요?”

“예. 공룡 화석요.”

“알겠습니다.”

궁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유를 묻지는 않는군.

역시 공과 사가 확실한 양반이라니까.

대화를 마친 후, 한수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진호 님은 바로 11층에 도전하십니까?”

“그래야죠. 승급도 했으니.”

“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뭐죠?”

“진호 님이 이끄는 팀 이름요. 들은 바가 없어서 말입니다.”

사람을 모으기만 했지, 정작 팀 이름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지영이나 김영수도 팀 이름은 모르고 있을 거다.

“역천(逆天).”

“팀 이름이 역천……입니까?”

“바벨탑을 공략하는 팀 이름에 어울리잖아요.”

회귀 후 늘 생각한 팀, 그리고 길드명이다.

“스케일이 크군요.”

한수창은 난감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었다.

* * *

한수창을 보낸 후.

나는 훈련장으로 내려왔다.

“스승님, 오늘 훈련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오늘은 개인 훈련.”

“네에?”

“난 11층에 도전해야지.”

“그러면 저도 바벨탑에 접속할래요.”

“너는 당분간 탑 도전 금지.”

“왜, 왜요?!”

“11층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올라가야 해.”

아이언 등급으로 승급했기에, 1 - 9층 미션은 더 이상 출입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준비가 안 된 상태로 11층에 보낼 수도 없고.

“아아, 스승니이임.”

“첫 도전 때 보상이 제일 커. 그러니까 당분간은 능력 계발에 힘쓰자.”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빤히 보는 지영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영수 형님이랑 스파링 좀 해. 인형술은 좀 익숙해지셨어요?”

“생각보다 잘 맞습니다. 원래 제 기술인 것처럼 척척 움직이더군요.”

“그렇다고 2차 전직을 인형사 쪽으로 하진 마세요.”

“아직 브론즈 승급전도 못 통과했는걸요.”

2차 전직 장소는 탑 25층이다.

김영수의 말마따나 이른 이야기이긴 하지.

하지만.

내 기억대로라면, 김영수는 인형을 다룬 이후로 가파르게 성장한다.

자칫 인형술에 너무 매료되어 버리면 곤란하니까.

두 사람이 대련을 벌이는 동안.

나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탑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도전하느냐?

“승산 계산은 다 끝났으니까.”

오른손을 꽉 말아 쥐었다가 다시 폈다.

잘 벼려진 칼처럼 날카로워진 신체 감각.

언랭크 승급전을 마친 후, 이틀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쉰 덕분이다.

[바벨탑 접속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합니다.]

[현재 사용자가 머무는 공간은 안정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접속됩니다.]

[도전 가능한 층계는 11층입니다.]

[11층에 도전하시겠습니까?]

[Y/N]

당연히 예스지.

Y 버튼을 누르자, 전처럼 매칭 대기시간 없이 바벨탑으로 이동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 하얀 대리석으로 된 커다란 건물이 나타났다.

입구에는 ‘수련관’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새겨져 있고.

그 뒤로 [체술]이나 [마법] 같은 간판을 달아 놓은 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벨탑 - 11층]

[수련관에 입장했습니다.]

[미션 - 적성 훈련]

수련관은 갓 아이언 등급에 오른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특전입니다.

이곳에서는 자신의 특기를 갈고닦거나 새로운 분야를 훈련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여 보상을 받으십시오.

▶ 목표: 수련관 테마 하나 통과

-꽤 평화로운 테마로구나.

“대부분은 여기를 쉬어 가는 미션이라고 생각하지.”

-저 수련관이라는 곳의 시험을 꼭 통과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그게 함정이다.”

수련관에는 여러 보물이 숨겨져 있다.

각 테마에서 제시하는 시험을 끝까지 통과하면 아이언 등급에서 얻기 힘든 진귀한 영약이나 스킬 북, 혹은 아이템을 준다.

현시점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정보.

〔제가 마법의 나침반을 얻은 게 바로 11층 수련관이었습니다.〕

〔수련관에서 주어진 시험을 완벽하게 클리어하면 특별 보상이 주어지더라고요.〕

저 사실을 밝힌 것도 탐험가 로렌트다.

이건 로렌트가 최초 발견이라기 보단, 이미 정보를 선점한 랭커들이 안 밝혔다고 봐야겠지.

정보를 선점한다는 게 이래서 중요하다.

-또 음흉한 생각을 하는구나.

“요새 들어서 구박이 늘었는데. 꽤 재미가 좀 있나 봐?”

-여는 진실을 말한 것뿐이니라.

비겁하게 팩트로 치다니.

닉스 앞에서는 표정 관리 좀 해야겠다.

-하면 그대는 저 많은 분야 중에서 수련관을 택할 것이더냐?

“다 정해 뒀어.”

나는 망설임 없이 [武功]이라고 적혀진 간판의 문을 두들겼다.

끼이익-.

문이 좌우로 젖혀진다.

안으로 향하는 길.

빛 한 점 없는 어둠만이 있는 길이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발을 디뎠다.

-다른 수련관도 이렇게 빛을 볼 수 없느냐?

“무공만 그럴걸.”

-참으로 마음에 드는 장소로구나.

수련장으로 들어선 순간.

열렸던 문이 자동으로 닫히면서 완전히 어둠에 잠겼다.

정면으로는 커다란 벽이.

옆에는 작은 항아리가 나타났다.

-갑자기 공간이 줄어들다니.

“무공 수련관의 테마는 면벽 수련이거든.”

나는 바닥에 걸터앉은 후, 양다리를 꼬았다.

가부좌(跏趺坐).

운기행공을 할 때 기본자세다.

[무공 수련관은 당신의 내공 운용능력을 시험합니다.]

[혈도로 파고드는 침을 인지하고 당신의 내공으로 신체를 보호하십시오.]

[기준점에 도달하지 못해도 재도전이 가능합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까?]

“당연하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전신의 감각을 날카롭게 세웠다.

얼마쯤 지났을까.

두근, 육감이 반응하는 것과 동시에 침이 날아들었다.

-조심하여라. 작은 물체가 그대를 노리니라.

“쳐 내면 안 돼.”

곡지혈(曲池穴)에 꽂히는 바늘.

솜씨가 어찌나 교묘하던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통증으로 침이 날아드는 위치를 파악하려고 했다간 늦겠지.

나는 단전에 깃든 내공을 재빨리 운용했다.

혈도에 파고든 침이 삼재기공의 내공과 마주치는 순간.

태앵-! 바깥으로 튕겨 나갔다.

-손대지도 않았거늘. 어이하여 저 작은 물건이 튕겨나는고?

“내 내공으로 침을 몰아냈어.”

-설마. 시험이라는 게 그런 것이었구나.

닉스가 중얼거리고 있을 때.

두 번째 침이 혈도로 쏘아졌다.

푹!

이번에는 목 뒤에 위치한 천주혈(天柱穴)에 박혔다.

신경이 모두 지나가는 부분이라서 짚이면 온몸이 마비되는 혈.

대표적인 점혈법 위치이기도 하다.

나는 곧바로 내공을 운용, 목덜미에 박힌 침을 몰아냈다.

조금만 늦었으면 마비가 돼서 침을 질질 흘렸겠어.

-이번에는 머리로 날아드는구나.

닉스의 경고와 함께 정수리에 꽂히는 침.

수련관의 침들은 사혈(死穴) 같은 치명적인 부위도 노렸다.

탑의 미션인 만큼 실제로 죽지는 않지만, 침을 제때 튕겨 내지 못하면 엄청 아프겠지?

팅! 티잉!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침.

무공 수련관의 시험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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