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그로부터 2시간 후.
[라오스 측의 지배 수정이 파괴되었습니다.]
[한국 진형이 최후의 승자로 선출됩니다.]
[한국 - 100% 승급]
[라오스 - 66% 승급]
[중국 - 33% 승급]
압도적인 1등.
중국을 무너트린 후에는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파죽지세로 라오스 쪽 라인을 공략, 지배 수정까지 파괴했다.
-그래도 아까는 너무 무리했느니라.
닉스가 핀잔을 했다.
중국 측 지배 수정이 깨어지기 직전.
난 생명력이 다해서 사망했다.
“다 믿는 수가 있으니까 무리 좀 했지.”
-그대의 능력이 뛰어난 건 알고 있느니라. 하나…….
“날 믿은 게 아닌데?”
-그럼 무엇을 근거로 움직였느냐?
“여신님이 있잖아.”
닉스가 극야에 동화한 상태라면 플래티넘 등급인 홍윤수나 신준석한테도 한 방 먹여 줄 자신이 있다.
-웬일로 빈말을 줄줄이 늘어놓는구나. 언제는 여에게 헌납할 솜사탕 줄인다고 하더니.
“진심인데?”
-…….
닉스는 입을 꾹 다물더니 돌연 고개를 홱 돌렸다.
으음, 솜사탕만으로는 부족했나.
닉스의 표정을 살필 겸 몸을 돌리려고 할 때.
지영이가 다가왔다.
“스승님! 우리나라가 1등을 했어요!”
“너는 당연한 걸로 너무 들뜨지 마라.”
“그래도요. 이게 다 스승님이 중국 진형을 무너트려서 가능한 일인걸요.”
“네가 버텨 줘서 잘 풀린 거야.”
지영이는 내 기대 이상으로 전선을 유지시켰다.
중국 측에서 핑 레이가 선두로 나서서 협곡을 뚫으려고 했지만.
첫날에 그의 전투 스타일을 이미 봐 둔 덕에 효과적으로 결계를 전개, 핑 레이를 막았다.
그뿐이랴?
전투 중에 소모되는 마나를 철저하게 관리, 연합군이 차륜전으로 바꿨을 때도 쓰러지지 않았단다.
승리의 주역!
“아쉽겠어.”
“뭐가요?”
“나만 아니었으면 MVP를 받았을지도 모르는데.”
“두고 보세요. 그러다가 제가 1위를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지영이는 허리에 손을 얹으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이번 승급전의 MVP를 선정합니다.]
[MVP는 유진호 플레이어입니다.]
[하늘의 악이 영성을 추가로 지불하여 유진호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보상을 강화하려 합니다.]
[탑의 시스템이 정당한지를 고려합니다.]
[성좌의 이름을 건 제안이니, 합당하다고 판단합니다.]
[하늘의 악의 제안을 수용합니다.]
[강화된 보상이 지급됩니다.]
▶ 보상: 암영추혼검(暗影追魂劍)
[암영추혼검(暗影追魂劍)]
등급: ★★★★
분류: 액티브
성취: 1성[0%]
그림자에 내공과 사용자의 염을 부여해서 검을 만든다.
*전개 시 내공 스텟 필요.
응. 아니야.
당연하게도 MVP는 내가 되었다.
“쳇.”
“나름 기대를 했나 보네?”
“한 번 정도는 스승님을 이겨 보나 했죠.”
“아직 갈 길이 멀다.”
“네. 이 갈면서 정진하겠습니다.”
삐진 척하는 지영이에게 웃음을 지어주고는 보상을 확인했다.
영검이라.
이런 무공도 있었던가?
책자를 둘러보고 있자, 닉스가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림자를 다루는 무공이라.
“솔직히 나한테 필요할지는 모르겠네.”
4성 등급 스킬.
절정에 해당하는 무공이다.
국내 무공 사용자 중 가장 센 신준석조차도, 현시점에서는 폭호신권 외에 절정의 무공을 익히지 못했다.
무공을 광적으로 모은다는 중국에서도 몇 없을걸?
언랭크인데도 흡성대법을 익힌 핑 레이가 독특한 거다.
-그대여, 저 무공이라는 것을 한 번 익혀 보아라.
“여신님은 이게 뭔지 알아?”
-모른다.
“모르는 것 치고는 꽤 당당하게 말하네.”
-여의 감이 그렇게 말하느니라.
“그렇다면 익혀 볼게.”
여신님의 감은 믿을 만했다.
고신족들에게 봉인당한 여파로 대부분의 힘을 잃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여신’이다.
그것도 밤이라는 개념을 다루는 강력한 신!
나는 망설임 없이 책장의 첫 페이지를 펼쳤다.
자동으로 번역되는 한자.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비급이 가루가 되었다.
[암영추혼검을 습득했습니다.]
상승무학에 속하는 암영추혼검.
본래의 내 경지로는 펼칠 수 없는 무학이다.
검에 의념을 싣는다거나 형태가 정해지지 않은 그림자에 내공을 싣는 등.
신준석이라고 해도 암영추혼검을 익히자마자 곧장 펼치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암영추혼검을 사용합니다.]
파츠츠츠!
길게 늘어난 그림자가 한 자루의 검으로 형태를 바꾼다.
난 회귀하기 전, 이미 신공절학에 담긴 무학까지도 모조리 깨쳤었다.
포식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게 무공이었거든.
고작(?)해야 절정의 무공 정도는 아무리 처음 접했다고 해도 금방 익힐 수 있다.
“음, 그럭저럭이군.”
그림자에 의념을 싣고, 내공으로 검을 구현하는 무공.
내가 직접 휘두르거나 그림자에서 다이렉트로 소환해서 상대를 찔러도 된다.
문제가 있다면 이 무공이 [극야]의 하위 호환이라는 거지.
『올림포스의 전쟁신이 하늘의 악을 가리키며 박장대소합니다.』
『올림포스의 전쟁신은 성좌 계약만 맺으면 그보다 더 뛰어난 스킬 북과 아이템을 하사해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하늘의 악이 침묵합니다.』
『오아시스의 주인은 이 상황을 관망합니다.』
내 표정을 읽고 아레스가 흥분해서 날뛰었다.
입바른 소리만 하지 말고 하늘의 악이나 바알처럼 후원이나 해 주지.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대인인 척하는 좀생이인 건 여전하구먼.
-계약자여, 다시 한번 검을 구현해 보아라.
“그림자 검을?”
-맞도다. 하나, 이번에는 그림자 대신 극야를 사용해 보아라.
오호.
닉스의 목소리가 살짝 들떠 있다.
무언가를 느낀 모양인데.
좋아. 그럼 시키는 대로 해 주지!
파츠츠츠! 이번에는 극야의 힘을 실체화시킴과 동시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 순간.
암영추혼검으로 빚어낸 검의 의념이 수배로 증폭되었다.
-과연, 탁월한 안목이로구나.
“뭘 말하는 거야?”
-그대에게 무공 비급을 내려준 성좌 말이니라.
암영추혼검의 매개체는 그림자.
빛이 사물을 비추었을 때 생기는 어둠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속성, 아니 그보다 더 상위 개념인 밤이라면 어떨까.
“훨씬 강하겠지.”
-하늘의 악이라는 성좌는 이 상황을 예측하고 비급을 준 것 같구나.
나는 극야로 구현해 낸 암영추혼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촤아아악!
공기가 좌우로 밀려나면서 찢겨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강이나 오러 블레이드에 버금가는 위력.
이제 막 아이언 등급에 발을 디딘 플레이어가 쓰기에는 과분한 기술이다.
그만큼 내공 소모가 엄청나서 채 1분도 유지하지 못하지만.
유사시에 꺼낼 수 있는 비장의 패라고 여기면 된다.
『하늘의 악이 만족스럽게 웃습니다.』
『올림포스의 전쟁신이 하늘의 악늘 노려봅니다.』
하늘의 악.
정말이지, 안목이 대단한 성좌군.
“성좌님, 이번에 내려주신 선물은 잘 쓰죠.”
회귀 전에는 다루지 못했던 힘.
극야는 지금도 발전을 이루고 있다.
* * *
바벨탑 어플과의 연결을 끊자, 팀 건물로 돌아왔다.
마침 인형을 조종하던 김영수가 나를 발견.
“돌아오셨군요, 팀장님!”
“예.”
“그 핑 레이를 꺾으셨군요.”
“어떻게 아셨죠?”
“팀장님의 표정만 봐도 알지요.”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한발 늦게 바벨탑에서 돌아온 지영이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럴 게 아니라 축하 파티라도 해요!”
“파티를 할 겨를이나 있을까 모르겠다.”
“바쁘세요?”
“아니. 조금 있으면…….”
끼이이익!
급정거하는 차량의 브레이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바깥을 훑어보니, 취재진이 하나둘 팀 건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영이는 유리창 너머를 살펴보고는 사색이 되더니.
“설마. 아니라고 해 주세요.”
“미안하지만 맞아.”
“바벨탑 집계는 자정이잖아요!”
“승급전에 참여한 건 우리만이 아니잖아.”
내 말을 듣고는 아연실색해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벌써부터 언론을 그렇게 싫어하면 어떻게 하냐. 더한 일도 많을 건데.”
“아니, 그게 말이죠. 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 말입니다.”
난 지영이의 등을 잡고는 앞으로 밀었다.
“세상은 네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아.”
“그런 말씀 하시면서 웃지 마시라고요!”
“아. 알아챘네.”
“지영 씨, 나도 한번 겪어 보니까 별일 아니더라고.”
“위로가 1그램도 안 되거든요?!”
이제부터는 지영이도 언론의 주목을 받을 거다.
아니, 날 따라오다 보면 스포트라이트가 알아서 뒤따라오겠지.
그건 멀찍이서 어설픈 웃음을 띠우고 있는 김영수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이럴 일 많으니까. 예행연습 한다고 생각해.”
“으으, 진짜…… 난 몰라요.”
울상 짓는 지영이를 대동한 채, 모여들기 시작한 취재진 앞으로 나섰다.
* * *
진호 일행이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이고 있을 때.
동일한 시간, 다른 장소에서는 180도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장 우페이.
구룡방의 수장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툭툭 쳤다.
“보고는 그게 끝인가?”
“그렇습니다.”
“큰소리를 친 것 치고는 쭉정이 같은 결과물을 들고 왔군.”
“죄송…….”
“난 죄송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집무실 내부에 울려 퍼졌다.
맞은편에 선 핑 레이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육체를 억지로 붙들었다.
“결과는 자정이 되어야 알겠지만 네 보고대로면 변수는 없겠어.”
장 우페이의 눈빛이 천장으로 향했다.
툭- 툭-.
시계 초침이 움직이듯, 우페이의 손가락이 동일한 타이밍에 맞춰 팔걸이를 두들겼다.
‘내 투자가 실패할 줄이야.’
철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투자.
핑 레이 육성에 지불한 금액만 한화로 800억을 넘겼다.
언랭크 등급에서 착용 가능한 장비들 중 최상급만 구해 주었고.
온갖 영약에 절정 무공까지 구해 주었다.
그런데도 실패했다.
‘이런 변수, 오래간만이군.’
장 우페이의 눈동자 위로 이채가 감돌았다.
처음 핑 레이의 제안서를 받았을 때만 해도 승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다.
투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막상 결과를 보니 핑 레이가 힘 하나 못 써 보고 압도적인 패배를 경험했다.
“유진호라고 했던가?”
“예, 예.”
“만약 다시 붙어 본다면 승산은 있고?”
“대형께서 맡겨 주신다면 제 모든 것을 걸고 반드시…….”
“네 각오 말고. 가능성 말이다.”
“현재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핑 레이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투로 대꾸했다.
“자신의 수준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
한결 부드러워진 장 우페이의 목소리.
핑 레이는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숙였던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번 일은 불문으로 부치겠다.”
“가, 감사합니다, 대형!”
“이대로 너를 내치는 건 내 안목이 틀렸다는 방증이지 않겠나?”
“대형께서 저를 선택하신 것이 정답이었음을 반드시 증명하겠습니다!”
핑 레이는 힘차게 대답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로 유명한 구룡방의 수장.
이번 같은 일은 흔치 않았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지시를 하지.”
“뭐든 말씀만 하십시오.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네 사범들과 함께 한국으로 가라.”
“한국이라면…….”
“유진호와 접촉. 그 팀에 들어가라는 말이다.”
장 우페이는 입가에 마른 웃음을 걸었다.
이번 일을 무마시키면서 한국의 신예까지도 손에 넣을 수 있는 계책.
실패해도 부담이 전혀 없으며, 성공한다면 구룡방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올 계획이었다.
“유진호 포섭. 아니면 그자가 지닌 힘의 비밀을 알아내라.”
“존명!”
핑 레이는 포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