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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88화 (88/300)

88화

11 대 90의 전투.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이제야 위기감이 느껴지느냐?

“딱히 그렇진 않은데.”

-그대는 위험에 처했을 때면 기분 나쁘게 웃는 버릇이 있느니라.

닉스의 말을 들은 후에야,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미친놈 소리 듣기 딱인 버릇이네.

“이제야 좀 해볼 만하잖아.”

바토리의 계약자인 정신호를 쓰러트린 후.

한동안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포식으로 늘린 압도적인 스펙.

거기에 여러 스킬을 적재적소에서 전개하니, 위험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흑호 팀이나 핏빛 악귀.

악마의 눈을 상대할 때도 그랬다.

그랬는데…….

90명이나 되는 적들이 살의를 품고 달려드는 걸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참으로 가학적인 성격이로구나.

거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

“버프나 주시죠.”

[밤의 축복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극야의 회복 속도가 최대치로 올라갑니다.]

-이번에는 여도 그대를 돕겠느니라.

내 극야에 동화하는 닉스.

이질적인 기운이 정수리를 간질인다.

“제대로 해 주세요, 여신님.”

-여만 믿어라.

가시 갑피로 전신을 두른 채, 중국 플레이어 집단의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1, 2중대는 유진호를 막고 3중대가 하수인들을 정리한다.”

핑 레이의 지시가 떨어지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중국 플레이어들.

무슨 군대도 아니고 중대 타령을 하고 그러냐?

[머드 트랩을 사용합니다.]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스컬 핸드를 사용합니다.]

우회하는 중국인들 앞에 늪을 깔아두고.

탐욕의 가호로 점성을 강화.

그 아래에는 스컬 핸드를 펼쳐 놓았다.

“거기 늪 끼고 붙들어 주쇼.”

수적으로 불리해도 시간을 버는 것쯤은 해 줄 수 있겠지.

“우리를 앞에 두고 여유가 넘치는구나, 유진호!”

핑 레이의 노호성을 신호탄 삼아 형형색색의 마탄들이 날아들었다.

[버스트 플레어]

[일렉트릭 오브]

[워터 자벨린]

…….

최소 2성에서 3성급.

언랭크면서 1성 스킬을 하나도 안 쓰냐.

-가장 강력한 마탄 빼고는 여가 막아 주겠노라.

스스슷!

극야의 힘이 수십 가닥으로 나누어지더니, 눈앞에 들이닥친 마탄들과 충돌했다.

빗겨 나가는 마탄들.

과거 내가 마법 공격을 도탄(跳彈)시켰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극야를 운용했다.

마법에 실린 파괴력을 정면에서 상쇄하려면 동등한 힘이 필요하지만.

진로를 바꾸는 것쯤은 그보다 적은 힘으로 충분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마법들의 에너지를 읽어 내서 쳐 내는 게 대단할 뿐!

극야 일부가 소모되었지만 [밤의 축복] 덕분에 금세 회복되었다.

-저 화염은 쳐 내기 어려우니라.

“그쯤이야.”

나는 오른손을 뻗었다.

[탐식의 입 - 내장 스킬: 마나 업소브를 사용합니다.]

꿀꺽, 반지에서 흘러나온 사이한 기운이 버스트 플레어를 삼켰다.

좁혀진 거리.

선두 그룹과의 간격이 30미터 남았을 때 맹렬한 돌진을 사용했다.

탱커의 방패를 주먹으로 가격하자, 놈의 손이 아래로 처졌다.

일격으로 쓰러트리지는 못했군.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탱커는 경직 상태에 빠져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역시 중국 애들 수준이 높네.”

-칭찬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느냐!

성미 한번 급하시네.

난 손끝을 길게 모은 채로 드러난 탱커의 가슴팍을 찔렀다.

방패보다는 얇지만, 마찬가지로 철갑으로 만든 갑주.

[관통을 사용합니다.]

[충격 일부가 상대의 방어력을 무시하고 전달됩니다.]

가슴팍을 찔린 탱커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잠시 후, 회색 가루로 변해 버린 탱커.

“펑쉐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당해 버리다니.”

“너무 당황하지 마라. 놈은 가까이에 있으니, 감싸!”

몰려드는 중국 플레이어들.

닉스가 극야를 넓게 펼치면서 가까이에 있는 적들을 힘껏 밀쳐 냈다.

-저치들의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는구나.

“오히려 좋아.”

중국 플레이어들이 나한테 집착할수록, 방어 라인은 엉망이 될 거다.

날 빠르게 쓰러트리고 하수인들을 마저 정리할 생각이겠지만.

과연, 너희의 계산대로 될까?

“가자, 여신님.”

-등 뒤는 여에게 맡기어라.

나는 포위 진형을 갖추어 가는 중국 진형을 다시 한번 흔들어 놓았다.

* * *

사방을 감싼 중국 플레이어.

눈에 독기를 품은 채, 포위망을 조금씩 좁혔다.

“이대로 빵즈를 붙잡는다.”

“놈의 발만 묶어 두면 금방 잡을 수 있어.”

그 숫자가 원체 많다 보니, 한 번 접근한 후로 포위망에서 빠져나가는 건 어려웠다.

후퇴할 생각도 없지만 말이야.

[민첩한 뒷발을 사용합니다.]

운류보, 전력 질주, 민첩한 뒷발, 재빠른 도주, 백 스텝.

내가 보유한 ‘이동’ 관련 스킬이다.

전력 질주의 경우에는 민첩한 뒷발과 재빠른 도주를 융합해서 만든 스킬이지만.

둘 다 여전히 별개의 스킬로도 활용 가능했다.

“제대로 포위해야지.”

폭발적인 도약력으로 무리의 틈을 파고든 후.

등을 보이고는 [재빠른 도주]로 중국 집단과의 거리를 벌렸다.

정수리가 따끔하군.

육감이 경고하기 무섭게, 하늘 위에서 벼락이 번쩍인다.

소나무처럼 굵은 번개가 떨어지기 직전.

맹렬한 돌진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플레이어에게 달려들었다.

“빵즈 따위가 태극의 오묘함을 이해할 수 있으랴?”

연체동물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양손.

강(强)을 이기는 것이 유(流)라고, 중국 플레이어는 태극권으로 내 힘을 흘려보내려 했다.

태극권의 특징은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과, 어딜 노리는지 알 수 없게 흔들리는 손끝이다.

[천안(千眼)을 사용합니다.]

[상대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옵니다.]

작은 근육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모두 볼 수 있는 천안.

내 전투 경험이 합해지면 미래예지에 가까운 효과를 발휘한다.

빈틈이 훤히 보이는군.

충돌 직전, 돌진 방향을 살짝 틀면서 태극권의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어떻게?!”

“그 잘난 무공도 만능은 아닌가 봐?”

양팔 사이로 파고든 주먹으로 중국 플레이어의 복부를 타격.

무방비로 공격에 노출된 플레이어가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가루로 화했다.

쇄애액!

그 순간, 등 뒤에 공격이 쏟아졌다.

[슬로우]

[홀드 퍼슨]

대상을 지정해서 즉시 발동되는 디버프 스킬.

발에 납덩어리를 달아놓은 것처럼 무거워져서 움직일 수 없었다.

백 스텝 같은 이동 스킬도 봉쇄.

풀어낼 때 즈음이면 이미 공격이 몸을 두들기고 있을 거다.

-후훗, 그대는 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구나.

발밑에서 솟구친 극야의 힘이 등짝으로 쇄도하는 마법 공격들을 모조리 튕겨 낸다.

드드드- 도탄된 마법들이 지면을 흔들고.

솟구치는 연기 사이로 중국 플레이어 무리가 달려든다.

“흐읍.”

천안(千眼)으로 저주의 파장을 읽어 낸 후, 내공을 발에 흘려보내서 마력의 패턴을 풀어 버렸다.

자유로워진 다리.

둔화의 저주는 여전히 몸을 붙들었지만 큰 지장까진 아니었다.

[천쇄격]

[담퇴]

[타구공법]

내공을 실어 낸 공격들이 일제히 들이닥친다.

혈조공으로 창의 궤적을 비틀고는 일보(一步)를 내민다.

더 가까워진 공격.

급소를 노리는 게 아니면 무시한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끝이 쇄골을 가격.

아릿한 통증과 함께 몸의 자세가 흔들렸지만 내공으로 충격을 완화시킨다.

뼈를 부러트릴 기세로 날아드는 봉을 맹호혈조로 튕겨 내고는.

기척을 죽인 채, 목덜미를 노리던 단도를 회피하면서 2초식으로 그 주인의 목울대에 손톱을 쑤셔 넣었다.

“끄륵, 끅.”

억울한 표정 짓기는.

너도 같은 수를 써 놓고 말이야.

[가시 갑피의 내구도가 모두 소모되었습니다.]

[해당 부위는 1분 동안 갑피를 재생성할 수 없습니다.]

[가시 갑피의 내구도가 7% 소모되었…….]

한 손이 열 손을 막아 낼 수는 없다고.

쇄도하는 모든 공격을 쳐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에, 근접 계열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무공을 익힌 터라 위력이 더 강했다.

원래 무공이라는 기예가 지속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위력 자체는 나쁘지가 않거든.

깨어진 갑피를 노리는 공격.

서걱!

상처가 하나둘씩 늘기 시작한다.

-감히 여의 계약자에게 손을 댔겠다!

파도처럼 넓게 펼쳐지는 극야.

“닉스, 힘을 집중해.”

-포위당한 채로는 그대가 위험하니라.

“자잘한 피해는 무시한다.”

팔이 하나 날아가도.

허벅지가 한 움큼 뜯겨 나가더라도.

몸이 움직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

지금은 90명에 달하는 중국 플레이어들을 쓰러트리는 게 목표가 아니다.

승리 조건은 버티는 것.

그렇다면.

내 이빨이 얼마나 날카로운지를 보여 주는 게 효과적이지.

-그대의 바람대로.

확 가라앉은 닉스의 음성.

극야의 힘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더니, 나선 형태로 빙빙 꼬아졌다.

-여의 계약자를 아프게 한 죄의 무게를 그에 상응하는 고통으로 알려 주겠노라.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는 극야.

상하좌우 어느 각도에서든 자유롭게 움직이며 중국 플레이어들의 급소를 노린다.

“빵즈의 사술이다, 겁먹지 마라.”

“눈속임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몰아붙…….”

푸아악!

근거리 딜러에게 상처를 낸 극야가 수십 갈래로 쪼개지며 내부에 뿌리를 내린다.

“끄어어어!”

-여의 힘을 보고 사술이라고 하였느냐?

“타, 탑에서 이만한 고통이?!”

-전율하라. 이 밤이야말로, 여 그 자체이니라!

날뛰는 극야의 힘.

하마터면 닉스가 다루는 힘의 파장에 빠져들어서 전투 중이라는 것을 잊을 뻔했다.

내가 극야를 다루는 게 걸음마 수준이라면.

닉스의 솜씨는 100미터 달리기 올림픽 선수를 방불케 했다.

수준 차이가 그만큼 엄청나다는 것!

[중국 측 쌍둥이 수호 탑 A가 무너졌습니다.]

[중국 측 쌍둥이 수호 탑 B가 무너졌습니다.]

[지배 수정을 보호하던 방어막이 사라집니다. 이제 직접 공격이 가능합니다.]

중국 측 플레이어 대부분이 날 상대한답시고 뭉쳐 있는 동안 탑 두 개가 무너졌다.

아군도 생각보다 잘해 주는군.

내가 탐욕의 가호로 강화시킨 늪을 끼고 시간을 최대한으로 끌었다.

“빵즈는 무시하고 하수인들을 정리해라!”

핑 레이가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말이야.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나는 여태 아껴 두었던 악귀의 분노를 사용했다.

두 스킬의 효과는 겹치지 않기에, 능력치가 더 증폭되었다.

중국 플레이어 일부가 나를 무시하고 지배 수정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유인을 사용합니다.]

달려가던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강제 고정되었다.

잠깐의 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운류보와 전력 질주를 동시 전개.

푸른 선이 전장을 이탈하려던 플레이어의 몸뚱이를 훑었다.

혈조공 첫 초식, 맹호혈조다.

쾅! 콰쾅!

몸이 거듭되는 충격으로 들썩인다.

무리하게 움직여서 드러난 틈.

훤히 드러난 등으로 공격이 쏟아진 탓에 가시 갑피가 완전히 박살 났다.

-그대여, 등이…….

“참을 만해.”

악귀의 분노 덕에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다.

멸망의 시대에서는 이보다 더한 부상도 입었는걸.

“유진호오오!!!!”

괴성과 함께 불쑥 튀어나오는 플레이어.

핑 레이는 역혈기공까지 사용한 채로 달려들었다.

이건 좀 어렵겠는걸.

[재생]과 [대지모신의 가호], 거기에 악귀의 분노의 추가 효과인 생명력 흡수까지 발휘했는데도.

숨이 차오르고 온몸이 삐거덕거렸다.

핑 레이 하나면 모를까.

다른 중국 플레이어들도 합을 맞추어서 달려들었으니.

“아무래도 목숨을 걸어야겠군. 여신님은 괜찮아?”

-곧 한계이지만, 그대의 마지막을 함께할 정도는 되느니라.

“좋아.”

난 히죽 웃었다.

잠시 후.

붉은색으로 빛나던 중국의 지배 수정 표면 위로 기다란 금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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