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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83화 (83/300)

83화

중국 측 플레이어 대부분을 쓰러트렸을 무렵.

천안(千眼)이 묘한 기운을 감지했다.

인근을 검게 물들이는 아우라.

그 중심에는 핑 레이가 있었다.

-참으로 흉측하구나. 목불인견이 따로 없도다.

혀를 차는 닉스.

“그러게.”

나는 맞장구를 쳤다.

도드라진 핏줄과 뒤집어진 두 눈동자.

입가 너머로 흘러나온 침이 지면을 축축하게 물들인다.

두 배, 아니 세 배는 부푼 근육이 꿈틀거리는데, 보디빌더처럼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징그러웠다.

“으엑. 스승님, 저거 괜찮아요?”

“마공의 효과다.”

“마공요?”

“무협 소설 보면 마교라고 나오잖냐. 그쪽 무공이야.”

“스승님은 아시는 것도 많으시네요.”

“보면 알지.”

지영이한테는 대충 둘러댔지만.

실은 핑 레이가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흡성대법.

핑 레이가 세트의 가호와 함께 중국 암흑가에서 군림하게 해 준 무공이다.

타인의 내공과 스텟 일부를 빼앗는 흉악한 마공!

저걸 벌써 익혔을 줄이야.

탑에서 마주한 거라서 단전을 폐하지 못하는 게 아쉽군.

“크아아아!!”

핑 레이는 눈이 뒤집힌 채로 달려들었다.

[고유 능력 - 분신]

다섯으로 나누어진 핑 레이.

내공을 역회전시킨 만큼, 분신들도 강해졌다.

-저치, 참으로 위태로워 보이는구나.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다.”

역혈기공은 기혈과 내공의 흐름을 뒤집어서 증폭시키는 뒤틀린 운용 방법이다.

육체와 내공 능력을 증폭시키는 대신 몸뚱이가 망가지는 금단의 비술.

후유증이 크지만, 미션에서 입은 타격은 실제로 이어지지 않으니 거리낌 없이 썼겠지.

“2분 정도 버티면 자멸할걸.”

-한데 그대는 인내할 생각이 없지 않느냐?

“내 마음을 너무 잘 아는군.”

침묵 중인 성좌들.

하지만.

두 나라의 유망주가 처음으로 맞붙은 상황을 지켜보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했다.

그러니, 여기서 놈을 꺾는다.

핑 레이가 허무하게 패배하면 세트의 권속이 될 가능성도 급격하게 낮아진다.

정면으로 상대하려면 이쪽도 체급을 맞춰 줘야겠군.

[악귀의 분노를 사용합니다.]

[근력과 민첩이 200% 늘어납니다.]

[어떤 경직 효과도 무시합니다.]

[상대를 타격 시, 피해의 10%에 해당하는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지속 시간은 60초입니다.]

60초면 충분하지.

곧장 맹렬한 돌진을 사용,

거리가 홱 좁혀지는 동시에 분신 하나를 소멸시켰다.

“크르르르!”

“말도 제대로 못하는 걸 보면 흡성대법의 성취가 낮나 봐.”

“크르르?!”

“왜 그렇게 화들짝 놀라나. 내가 못 알아볼 줄 알았나?”

놈이 먼 미래에서 ‘죽음의 손’으로 불리게 된 이유.

흡성대법으로 무공 사용자들의 내공을 탐하면서 생긴 호칭이다.

“크르르르르!”

“대화가 통하지를 않으니 재미가 없네.”

육감과 천안의 조화.

힘이 약한 분신의 공격은 가시 갑피와 스톤 스킨으로 받아 내고, 본체는 날카로운 손톱과 혈조공의 연계로 몰아붙였다.

삼류 무공에 불과한 혈조공이지만, 탐욕의 가호로 강화한 날카로운 손톱 덕에 정면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남은 건 스펙과 전투 감각뿐.

“크르르르르!!”

핑 레이의 몸뚱이가 피로 젖어 들었다.

온갖 영약을 먹으면서 스펙을 키운 모양인데.

나 또한 천년설삼이나 달맞이 돌 같은 영약을 먹었고.

결정적으로 [포식]을 꾸준히 사용하면서 능력치가 레벨을 초월한 지 오래였다.

100레벨 플레이어보다 높은 스펙.

푸욱! 칼날이 갑피를 뚫으면서 어깨에 기다란 상흔을 새겨 놓았다.

난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혈조공으로 핑 레이에게 비슷한 상처를 입혔다.

츄아악, 손톱이 놈의 피를 흡수한다.

악귀의 분노 상태에서 적용되는 생명력 흡수 효과.

“크르르르!!”

핑 레이는 돌연 지면을 차면서 쌍검을 크게 휘둘렀다.

빈틈투성이인 자세.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동귀어진을 할 셈인가보다.

지근거리에서의 돌진.

백 스텝을 사용하면 회피야 가능하지만.

나는 정면 싸움을 고집했다.

푸아아악!

핑 레이의 칼날은 내 가슴팍에 꽂혔고.

길게 늘어난 손톱이 녀석의 목덜미에 기다란 고랑을 새겼다.

“크르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는 핑 레이.

“무승부라고 생각하냐?”

[갈취의 반지 - 내장 스킬: 라이프 드레인을 사용합니다.]

[접촉한 상대의 생명력을 흡수합니다.]

옆에 있던 분신을 낚아챈 후, 놈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가슴팍에 박힌 칼날을 밀어내며 재생하는 새 살.

“이따 또 보자고.”

핑 레이는 원망 섞인 눈으로 날 보다가 가루로 화했다.

남은 중국 측 플레이어들을 모두 정리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제 돌아가면 되겠네요?”

“돌아가긴. 하나 더 먹으러 가야지.”

중국 측 영역에는 괴물 군락이 두 개 더 있다.

라오스 쪽 전장과 가까운 2시 방향을 공략하긴 어렵겠지만.

우리나라 영역에서 멀지 않은 10시 방향 군락은 먹고 가야 하지 않겠어?

“아, 진짜 스승님…….”

칭얼거리는 지영이의 목소리를 배경음 삼아 다음 군락으로 향했다.

* * *

[한국 팀 – 유진호 플레이어가 그랜드 몰 B 군락의 수정을 획득했습니다.]

[지배의 수정으로 복귀하면 하수인의 방어력이 영구적으로 10% 상승합니다.]

두 번째 마을을 박살 낸 후.

주요 전장인 협곡으로 향했다.

“이상하다.”

“뭐가?”

“저희가 날뛰고 있는데 중국 측에서 반응이 없잖아요.”

지영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놈들의 전력에 공백이 생겼으니까.”

총원 100명 중에 10명이나 1시간 동안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수치상으로는 10%지만, 핑 레이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그 이상 피해를 본 것이다.

-그래도 이상하구나. 이쪽은 숫자가 적으니, 잠시 협곡을 비우더라도 그대를 노릴 만하지 않느냐?

“우리 숫자를 안다면 말이야.”

미션에서 사망 판정을 받으면 60분 동안 별개의 공간에서 대기해야 한다.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불가.

중국 놈들, 한국에서 얼마나 넘어왔는지도 모를 거다.

“스승님, 중국이 이대로 우리를 보내 줄까요?”

“그럴 리가.”

“아직까지 반응이 없잖아요.”

“나머지 전력 중 대부분을 협곡에 배치했을 거다.”

라오스는 한국과 중국, 두 나라에 비해 플레이어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우측 협곡에 최소한으로 병력을 배치.

나머지는 한국과 대치 중인 협곡에 몰려왔을 거다.

“협곡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면 포탑이나 하수인의 지원도 받을 수 있을 거니.”

-오호라. 전력 분산도 막고 방어 측의 이점까지 살리는 방책이로구나.

“뭐, 아닐 수도 있지.”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난 중국 측 플레이어들이 그렇게 움직였으리라 확신했다.

중국은 일방적으로 손해 보는 것을 참지 않는다.

적의 전력을 알 수 없다고 해서 그냥 놓아줄 리 없거든.

“스승님 말씀대로라면 지금이 위험한 때네요.”

“타이밍을 맞추면 아군과 합류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난 말끝을 흐렸다.

처음부터 연계를 상정하지 않고 움직였으니.

한국 측 플레이어들이 이쪽의 행동에 맞춰 주는 걸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될 테니.”

“네. 스승님만 믿을게요.”

-어떤 수로 난관을 돌파할지 기대가 되는구나.

쭉 늘어선 산자락에 붙어서 이동하다 보니 금세 협곡 근처에 도달했다.

채앵! 챙!

먼 곳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

협곡 안쪽에서는 전투가 한창인 모양이다.

“스승님의 예상이 맞았네요.”

미간을 찌푸리는 지영.

협곡 입구에는 중국 측 플레이어가 바글바글했다.

약 20명.

협곡 안에서 전투를 벌이는 이들을 포함하면 50~60명은 되지 않을까?

-무시할 수 없는 숫자로구나.

“지나가는 것쯤이야.”

-하나…….

닉스는 뒤를 힐끗거렸다.

[가시 갑피]와 [스톤 스킨]을 중복으로 사용하면 어지간한 공격에는 피해를 입지 않는다.

운류보와 전력 질주를 동시에 운용하면 추격자들을 떨쳐 내는 것도 어렵지 않지.

-그대의 제자까지 지키는 것은 무리이니라.

목소리를 낮추는 닉스.

참 배려심이 넘쳐나는 여신님이다.

그런데 말이지.

“절 놓고 가세요.”

여신님이 목소리를 낮춘 게 의미가 없었는지, 지영이도 비슷한 생각을 한 듯했다.

-그러지 말아라. 부딪쳐 볼 만하지 않겠느냐?

“전 괜찮아요. 어차피 60분 후면 미션에 다시 참여할 수 있잖아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하는 지영이.

“뭔 소리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면으로 돌파하면 그만이지.”

“우리는 둘뿐이잖아요. 오히려 스승님까지 당할 수도 있어요!”

“왜 그렇게 생각해?”

지영이를 희생시킬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데리고 오지도 않았다.

“우리 모두 살아 돌아가야 중국 놈들의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지 않겠어?”

얼빠진 표정을 짓는 지영이.

“어…….”

-그래야 여의 계약자지!

반면 닉스는 앙증맞은 주먹을 말아 쥐었다.

“지영아, 1분 버틸 수 있겠냐?”

“1분요?”

“어려울 것 같으면 말해.”

“딱 1분은 공세를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만 믿을게.”

그렇다면 플랜 A, 정공법으로 간다.

수풀을 지나 협곡으로 이어지는 길로 모습을 드러내니, 중국인들의 시선이 하나둘 내 쪽으로 향했다.

“저기 빵즈가 나타났다.”

“둘밖에 없는데?”

“뒤에 더 숨어 있을 거다. 기습을 조심해.”

중국 측 플레이어들은 반월 형태로 퍼지면서 나를 감쌌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에도 바로 덤비지 못하는 녀석들.

중국이 숫자가 많다지만.

우리 쪽도 유리한 게 하나 있다.

정보의 부재.

단둘이서 핑 레이를 포함한 10명을 쓰러트렸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격전지에 남은 전투의 흔적을 살펴보지 않는 이상에야.

그런 상상은 하지도 못할걸.

놈들이 경계를 한답시고 나서지 않을 때.

[데모닉 파워를 사용합니다.]

그 찰나의 틈이야말로, 중국 측 플레이어들의 포위망을 뚫어 낼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증폭된 마력을 반지에 불어넣었다.

전보다 두 배가량 커진 화염구가 중국 측 플레이어들 가운데에 떨어지더니.

콰아아앙-!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 진원지에 서 있던 플레이어는 가루로 화했고.

나머지 중국 플레이어들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로 튕겨 났다.

“이제 시작이야.”

[어스 스파이크를 사용합니다.]

수배로 커진 돌기둥이 앞으로 솟구친다.

탱커 진이 앞장섰지만, 정면에서 어스 스파이크를 맞은 녀석은 회색으로 물들더니 바로 아웃되었고.

여럿이 막아 낸 게 무색하게 추가 마력을 불어넣자 다시금 지면을 들쑤시며 전진했다.

미리 짜 둔 진형을 깨트리는 중국 측 무리.

[플레임 비트]

[윈드 커터]

[화이트 팽]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은 재배열 시간이 짧은 마법 위주로 펼쳤다.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본대(?)를 염려하다 보니 큰 기술을 쓸 수가 없겠지.

쇄애액!

위력이 약한 마법이라도, 그 숫자가 열을 넘어서니 위협적이었다.

불덩이와 바람 등, 여러 속성으로 구성된 마법들이 들이닥치려는 순간.

[진동 결계 x 3]

머리와 정면을 감싼 육각형 타일이 중국 측 마법 공격을 모조리 받아 냈다.

“저만 믿으세요, 스승님!”

결의에 찬 표정으로 진동 결계를 펼치는 지영이.

그래. 통곡의 벽의 실력, 어디 한번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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