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82화 (82/300)

82화

중국 측 플레이어 10명은 띄엄띄엄 선 채로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스승님, 이제 어쩌죠?”

“뭘 어쩌긴.”

“죽어도 60분 후면 부활한다고 하지만요. 그 수정체를 들고 가야 마을을 턴 의미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돌아가야지.”

이 녀석, 마음가짐이 틀려먹었어.

귀환을 전제로 싸워야지, 이미 진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하냐?

“오히려 좋아.”

“지금 상황이요?”

“핑 레이가 눈앞에 나타났잖아.”

“으으.”

낮게 신음을 흘리는 지영.

-후후훗, 그대의 제자는 믿음이 부족한 모양이구나.

닉스가 턱을 괸 채로 중얼거렸다.

여신님도 내 걱정을 꽤 많이 하지 않았던가?

저벅저벅-.

“크큭, 빵쯔 놈들이 겁도 없이 여기까지 기어들어 왔구나.”

핑 레이. 중국의 유망주이자, 회귀 전에는 대륙의 암흑가를 장악했던 거두가 내 앞에 섰다.

이야, 지영이도 그렇지만, 저 녀석이 젊은 모습을 보니 또 색다르구먼.

감회에 젖은 눈동자로 핑 레이를 빤히 바라보자.

“빵즈, 설마 겁이 나서 말도 안 나오나?”

녀석이 개소리를 내뱉었다.

“다행이군. 젊게 생겼어도 말하는 건 내 기억대로라서.”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네놈이 재활용할 수 없는 일반 쓰레기라는 거다.”

“이…… 건방진 빵즈 주제에!!!”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빵즈, 빵즈. 그것뿐인가 봐.”

오른손을 들어서 까딱였다.

“싸움은 주둥이로 하는 거 아니다.”

“좋다. 이 몸이 직접 네놈에게 고통을 안겨 주마!”

핑 레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싸구려 도발에 척척 넘어와 주는군.

“이건 내 싸움이다. 누구도 나서지 마라!”

지면을 박차는 핑 레이.

놈의 육신이 흐릿해지더니, 눈 한 번 깜짝이자 순식간에 셋으로 나누어졌다.

-꽤 실감 나는 허상이로구나.

“아냐. 모두 실체가 있는 거다.”

핑 레이의 고유 능력, 분신.

체력과 마력을 소모해서 원본의 1/3에 해당하는 스펙을 지닌 잔상을 만드는 능력이다.

핑 레이는 길이가 다른 칼 두 자루를 양손에 쥔 채로 거리를 좁혔다.

꿈틀- 심장이나 목덜미, 얼굴 등 급소에 해당하는 부위들이 일제히 따끔거린다.

육감의 경고.

[쌍수호박]

[당랑검&초열검]

셋으로 나뉜 핑 레이가 일사불란하게 칼을 휘두른다.

본체 기준으로 1/3의 능력치를 지닌 분신.

검격의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지만, 핑 레이는 그걸 역이용해서 속도를 맞추고 내 움직임을 얽매려 했다.

나는 목덜미와 심장처럼 ‘즉사’의 가능성이 있는 약점을 그대로 내줬다.

앞으로 한 발을 내딛자.

카가가각!

칼 네 자루가 급소 위를 덮은 [가시 갑피]를 가격했다.

마찰열과 함께 불똥이 튀었지만, 갑피는 살짝 금이 간 것 외에 멀쩡했다.

푹! 도리어 갑피에 달린 가시가 셋으로 나누어진 핑 레이의 팔과 허벅지를 찔렀다.

“맨몸으로 내 공격을 버텨 냈다고?!”

“그 정도의 힘으로는 날파리 하나 못 잡겠다.”

발끝에서 솟구친 검은 칼날.

극야의 힘으로 빚어낸 날카로운 검이 핑 레이(본체)의 공격을 옆으로 틀어 버렸다.

“에잇, 위대한 중화의 무공이 사술 따위에 밀릴 성싶으냐!”

“탑에서 나온 무공 출처가 중국이라고 누가 그러디?”

그와 동시에, 왼팔이 기괴한 방향으로 꺾였다.

혈조공 4초식.

호미조가 칼날의 궤적 사이를 파고들더니 핑 레이의 목덜미로 파고들었다.

길어진 손톱이 놈을 찌르려는 순간.

핑 레이가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몸을 흐느적거렸다.

인체의 구조상으로 불가능한 움직임.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몸이 휘어지면서 호미조를 흘려보냈다.

난 당황하지 않고 혈조공 첫 초식을 펼쳤다.

사선으로 그어지는 손톱.

점이 아닌, 선으로 펼쳐지는 공격까지는 피할 수 없었는지 핑 레이의 가슴팍을 덮고 있던 옷자락에 기다란 상흔이 새겨졌다.

“그 손놀림. 네놈! 무공이라도 익힌 거냐?”

“첫수를 보고 알아챘어야지.”

“빵즈 주제에 중화민족의 무공을 다룰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무공은 너희 거 아니라니까.”

말귀를 못 알아먹네.

왼 다리를 축 삼아 270도로 회전, 동시에 오른팔을 크게 휘둘렀다.

혈조공 3초식.

혈호폭풍조.

핑 레이가 쌍검을 X 자로 교차하면서 앞으로 내밀었다.

역시 경험이 부족하군.

[쌍수호박] 같은 스킬을 익혀 놓고, 막상 궁지에 몰리니 제대로 쓰지를 못한다.

내공이 오른쪽 검에만 깃든 거 봐라.

최소 이류에서 일류, 스킬로 치면 3성급이지만 한 손으로 펼치면 온전한 위력을 낼 수 없다.

쌍검이라는 게 원래 200%가 아니라 잘해야 140~150%의 위력을 내거든.

채앵!

손톱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핑 레이의 몸뚱이가 뒤로 밀려났다.

양팔을 움찔 대는 게 혈호폭풍조에 실린 힘을 모두 흘려 내지 못한 듯했다.

“내가 정면에서 밀리다니.”

“왜. 뭐가 잘 안 돼?”

[화염의 반지 - 내장 스킬: 파이어볼을 사용합니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콰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솟아오르는 매캐한 연기.

핑 레이는 기묘한 걸음걸이로 새카만 기류를 뚫으면서 재차 거리를 좁혔다.

“으아아아!”

이번에는 핑 레이가 다섯으로 늘어났다.

그런데 말이야.

생긴 게 같아도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어.

[천안(千眼)을 사용합니다.]

독수리의 눈과 관찰안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스킬.

최하급이기는 하나, 마안(魔眼)의 영역에 발을 디딘 눈동자다.

분신의 스펙은 본체의 1/3.

강·약을 구분하는 독수리의 눈만으로도 본체가 뭔지 분간할 수 있다.

나는 마력을 재배열했다.

[어스 스파이크를 사용합니다.]

들썩이는 지면.

날 선 돌기둥이 다섯 인영 중, 본체 쪽으로 전진한다.

사색이 된 핑 레이.

“분신들이여, 막아라.”

같은 속도로 뛰던 분신들이 돌기둥에 몸을 던졌지만.

내공이 실린 검격으로도 어스 스파이크를 막아 내지는 못했다.

지속적으로 마력을 불어넣는 채널링 스킬.

[용의 심장] 덕에 마나는 넘쳐나거든.

어스 스파이크는 힘을 유지하면서 핑 레이 본체를 노렸다.

타타탓, 핑 레이의 발이 현란하게 움직이더니 뒤로 쭉 밀려났다.

땅바닥에 새겨진 족적.

내공을 실은 발걸음이다.

어스 스파이크를 피하려고 경공까지 쓸 줄이야.

“거리를 벌린 거, 실수한 거야.”

마나 공급을 끊어 낸 후.

곧바로 지면을 차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맹렬한 돌진을 사용합니다.]

놈이 물러나 준 덕에 10미터라는 거리가 확보되었다.

삽시간에 가까워진 거리.

하얗게 질린 핑 레이의 얼굴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도, 도와줘!”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

핑 레이의 몸에서 빛이 터져 나오더니, 거리를 두고 있던 탱커와 바꿔치기 되었다.

일전에도 본 적 있는 스킬, [캐슬링]이다.

꽉 말아 쥔 주먹이 탱커의 안면을 강타하는 순간.

경직 효과로 놈의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방어 스킬을 펼치지 못하고 [맹렬한 돌진]에 당한 탱커.

2초면 충분했다.

사두조로 갑주 사이의 틈을 노려서 급소를 찌르자, 탱커의 몸이 가루로 변했다.

“권영문이 일격에 당할 줄이야.”

“그보다 핑 레이가 밀리고 있잖아.”

-저치들은 당연한 것을 가지고 놀라는구나.

무심한 닉스의 말을 듣고 얼굴이 새빨개진 핑 레이.

“저 연놈들을 살려 보내지 마라!”

“이럴 줄 알았지.”

일대일은 무슨.

제 밑천이 드러나니 바로 본색을 드러낸다.

“스승님!”

“넌 방어에 치중해.”

10 대 2.

몸풀기로는 딱이군.

그랜드 몰에 이어 핑 레이까지 상대했지만, 아직도 몸이 덜 풀린 것 같아서 말이야.

“여신님.”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밤의 축복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극야의 회복 속도가 최대치로 올라갑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 보자고.

* * *

핑 레이는 연신 눈꺼풀을 들었다가 내렸다.

‘이건 악몽이야.’

두 눈을 감았다가 떴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으아악!”

중국 측 플레이어 하나가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가루로 변했다.

승급전을 대비해서 엄선한 플레이어들.

언랭크에서는 비견할 데가 없는 이들이건만, 진호 앞에서는 힘 하나 쓰지 못했다.

[포효에 노출되었습니다.]

[근력과 민첩이 10% 감소합니다. 20초 동안 지속됩니다.]

[머드 트랩의 범위 안에 들어왔습니다.]

[근력과 민첩이 30% 감소합니다.]

…….

각종 디버프.

소리를 매개로 하는 포효는 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지면 일부를 늪지로 만드는 머드 트랩이야 눈으로 보고 피하면 된다지만.

진호는 디버프를 벗어나려고 진형을 무너트렸을 때를 놓치지 않고 몰아붙였다.

“플레임 윈드!”

어스 스파이크와 동일한 매커니즘을 지닌 화염계열 마법.

플레임 윈드가 수 미터 높이로 치솟자, 진호가 왼손을 내밀었다.

소용돌이치면서 반지로 흡수되는 화염.

마나 업소브다.

“화끈해서 맛있네.”

진호는 씩 웃고는 오른손에 끼워놓은 [화염의 반지]를 재차 발동시켰다.

폭발하는 화염구.

중국 측 플레이어 몇 명이 파이어볼에 휘말렸다.

“끄아악!”

“힐러! 힐러!”

죽음은 면했는지 비명을 지르는 플레이어들.

아니, 그들에게는 사망 판정이 오히려 자비였을지도 모른다.

“콜 라이트닝!”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

진호는 탐식의 입을 발동시키는 대신, 한 발자국 물러났다.

콰르르릉! 한 치 차이로 진호를 스친 번개가 땅을 검게 물들였다.

핑 레이는 그 장면을 잡아내고는.

“놈의 마법 흡수도 무한하지는 않다. 몰아붙여!”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탐식의 입]의 약점을 간파하는 눈썰미, 그가 중국의 유망주로 꼽힌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나빴을 뿐.

“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진동 결계 x 2]

이지영도 구경만 하지는 않았다.

결계 하나는 자신을 보호하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둘을 공격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포개지는 순간 증폭되는 진동.

수십 배로 커진 진동은 사이에 낀 플레이어를 말 그대로 분쇄해 버렸다.

“으아……※§¢∂!”

잘게 다져진 고깃덩이로 화하는 중국 측 플레이어.

방어력 관련 스킬을 익히고 중갑을 착용한 탱커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압도적인 진호의 활약상에 묻혀서 티가 나지 않는 것뿐이지.

지영은 회귀 전에 ‘통곡의 벽’이라고 불렸던 능력을 아낌없이 펼쳤다.

‘이런 식으로 질 수는 없어.’

핑 레이는 핏발 선 눈으로 진호를 노려보았다.

구룡방의 수장인 장 우페이에게 직접 건의해서 만든 기회다.

만약 이 무대에서 패배하면.

핑 레이의 미래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대형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아.’

까득, 이가 세게 맞물렸다.

이제는 앞뒤를 가릴 수 없는 상황!

핑 레이는 내공을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장의 수단.

그 ‘마공’을 사용해서라도 진호를 쓰러트려야 했다.

60분 후에 부활한다?

이제 와서는 중요하지 않은 사항이다.

비장의 수단이 진호에게 통용될지, 아니면 헛된 발악일지 확인해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흡성대법(吸星大法)]

[역혈기공(易血氣空)]

역회전하는 내공.

새파란 혈관이 핑 레이의 피부 위로 도드라지게 튀어나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