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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80화 (80/300)

80화

12월 10일.

승급전의 아침이 밝았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로구나!

“한국 시간으로 10시에 시작하니까. 아직 여유는 있어.”

승급전은 국가대항전으로 진행된다.

매달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로 분류되어 있는 여러 나라 중 3개국을 선정.

세 나라가 경쟁하는 방식이다.

나는 평소처럼 팀 건물로 향했다.

주거 시설만 완공되면 출퇴근할 필요도 없을 텐데.

귀찮구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던 중, 지영이한테 연락이 왔다.

“나다.”

-스승님, 큰일 났어요!

“기자들이라도 몰려왔나?”

-뭐야. 벌써 팀 훈련장 근처에 계신 거예요?!

“이 타이밍에 전화가 오면 그 일 말고는 없을 것 같아서.”

-저희한테도 이것저것 묻는데. 일단 영수 아저씨가 시간을 벌고 있어요.

기자들이 내 집이나 팀 훈련장으로 몰려들 건 예상했다.

한국 대 중국.

두 나라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 되어 버렸으니,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잖아.

-당연한 걸 예측 못 해서 죄송하네요.

“괜찮아. 노력하면 된다.”

-……예.

“금방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부지런들 하군.

여러 언론에서 나온 기자들.

그리고 팀원들도 말이야.

팀 훈련장 앞은 문전성시였다.

튜토리얼 직후에 마주했던 기자들과 비슷한 숫자.

아니, 그때보다 더 많아 보였다.

“유진호 플레이어다!”

“이번 승급전에 나서는 각오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중국의 플레이어 핑 레이가 유진호 헌터를 도발했는데요. 일각에선 이번 승급전이 한중 갈등을 야기하지 않을까…….”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귀를 먹먹하게 만든다.

-인기인이란 참으로 피곤하구나.

괜찮아. 이런 상황은 회귀 전에도 자주 겪었거든.

타인보다 앞장서는 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해야 할 말 또한 정해져 있다.

“핑 레이가 누구인지는 관심 없습니다.”

“예? 구룡방 길드에서 플레이어 협회에 정식으로…….”

“승급전에서 이기는 건 한국일 거니까요.”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무수히 울리던 셔터 소리도, 기자들의 질문도 일순간에 멎어 들었다.

3초 후.

“핑 레이를 무시했어!”

“구룡방의 차기 에이스를 들어 본 적 없다고…… 엄청나잖아!”

취재를 멈추고 기사 작성에 열을 올리는 기자들.

흔해 빠진 도발 멘트이지만, 당사자인 내가 그 말을 하면 무게가 달라진다.

언론은 탐스러운 먹잇감을 던져 줘야 조용해지는 법.

“특무대원님. 떡밥이 꽤 세지 않습니까?”

한수창이 조용히 따라붙었다.

“팀장님, 출근 안 하고 여기에는 왜 오셨습니까.”

“이럴 줄 알고 왔죠. 협회장님의 재가를 받고 온 겁니다.”

“전 협회 소속이 아니라 용병인데요?”

“흑호 팀 건도 있고, 이번 문제는 잘못하면 국제적인 이슈가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기자들 통제 부탁드립니다.”

나야 상관없지만.

김영수의 훈련을 방해하면 곤란했다.

협회에서 나온 요원들이 건물을 출입구를 감싼 덕에 더 이상 소란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와, 스승님 진짜 멋져요.”

“뭐가?”

“핑 레이라면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언랭크 플레이어잖아요.”

“그래 봐야 언랭크지.”

지영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뭐지. 끓어오르는 감정을 제어하는 모습인데, 그럴 일이 있나?

-그대도 언랭크인 것을 잊고 있느냐.

“소환수님 말이 맞아요!”

의기투합하는 두 사람.

정말이지.

서로 으르렁대다가도 이럴 때만 합이 잘 맞는다.

“여신님, 내가 브론즈 등급이랑 싸워서 이긴 걸 잊으면 곤란해.”

바토리의 계약자, 정신호를 말하는 거다.

-흐응. 그런 일도 있었지.

“지, 진짜요?!”

닉스의 기를 눌러 주려고 한 말인데, 정작 당사자는 아무 반응 없고 지영이만 화들짝 놀랐다.

“협회 특무대 활동 찾아보면 나올 거다.”

“정말이네…….”

왠지 분해 보인다?

난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김영수에게로 향했다.

“수고했습니다, 형님.”

“뭘요. 팀장님이 오실 때까지 시간만 끌었죠.”

“지영이만 있었으면 곤란했을 겁니다.”

“뭐, 저야 예전에 취재진들 등쌀을 겪어 보지 않았습니까.”

허허허- 하고 너털웃음을 흘리는 김영수.

“마침 취재진도 왔으니 말씀드리죠. 지영이도 들어.”

“저도요?”

“응. 이제 취재진이 몰려드는 일이 많아질 겁니다.”

지영과 영수.

낭중지추라고, 두 사람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될 거다.

회귀 전에도 그랬으니까.

“그러니 익숙해지세요. 이 상황을.”

취재진을 마냥 부담스러워해서는 안 된다.

때에 따라서는 내 이득을 위해 언론도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네, 스승님.”

두 사람은 내 말에 담긴 뜻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처럼 오전 일과를 보낸 후.

시간이 되자 휴대전화에 손을 뻗었다.

[바벨탑 접속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합니다.]

[현재 사용자가 머무는 공간은 안정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접속됩니다.]

[현재 아이언 승급전이 활성화되어있습니다.]

[10층에 도전하시겠습니까?]

[Y/N]

“스승님, 아이언 승급전을 누르면 되나요?”

“어. 같은 서버로 배정될 거다.”

지영이 꿀꺽, 하고 침을 목울대 너머로 삼켰다.

하긴, 긴장되겠지.

팀 건물 앞에 기자들이 진 치고 있던 걸 봐서 그런가, 얼굴이 하얘져 있다.

“나만 따라오면 돼.”

“네, 네!”

“튜토리얼 때처럼.”

지영은 짧게 심호흡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만 믿을게요.”

“그럼 접속하자.”

“예!”

우리는 동시에 바벨탑 접속 버튼을 눌렀다.

* * *

[바벨탑 - 10층]

[승급 대기실에 입장했습니다.]

하얀 방.

아니지. 이 정도 넓이면 방보다는 강당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하얀 벽이 사면을 막고 있고, 하늘은 회색으로 된 천장으로 뒤덮여 있다.

곳곳에서 빛이 번쩍이고.

이번 승급전에 참여한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스승님, 여기서 승급전을 치르나요?”

“아직. 말 그대로 대기실이야.”

난 팔짱을 낀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특별히 눈에 띄는 상대는 없군.

하얀 공간으로 소환되는 플레이어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준비해라.”

지영은 물어보는 대신, 진동 결계를 펼쳤다.

[이번 승급전은 한국 / 중국(동부) / 라오스입니다.]

[승급전에 참여한 플레이어 숫자가 가장 적은 국가는 라오스입니다.]

[한국과 중국의 참여 인원이 라오스의 플레이어 숫자에 맞춰 조정됩니다.]

[210/100]

[100명이 남을 때까지 살아남으십시오.]

대기실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이 상황을 짐작하고 저 아이에게 전투를 준비시킨 것이더냐?

“라오스는 인구가 적어. 700만이던가.”

-플레이어의 숫자가 두 나라에 비해 적겠구나.

“그런 셈이지.”

반대로 중국 같은 나라는 인구가 원체 많다 보니 승급전을 치를 땐 지역별로 나눈다.

한국 / 중국(동부1) / 라오스

일본 / 중국(서부2) / 인도(동부3)

이런 식으로 말이지.

소소한 장점으로 동부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순번 정도는 정할 수 있다는 점?

-그 말인즉슨, 핑 레이라는 자가 계약자를 피할 수도 있다는 뜻이로구나.

“자기가 먼저 시비 걸어 놓고 안 오지는 않겠지.”

만약 나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접속했으면, 그것대로 걸작이겠군.

“스승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대기.”

승급전의 테마는 국가 대항.

아군 전투력이 높을수록, 1등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두각을 드러내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떨어트릴 이유가 없거든.

“이봐, 당신이 요새 이름 좀 떨치는 유진호야?”

이렇게 시비를 거는 인간만 없다면야.

가슴팍에 동일한 길드 엠블럼을 새겨 놓은 플레이어 일행이 히죽거리면서 다가온다.

눈가에 아른거리는 투기.

암암리에 마나를 끌어올리는 중인지, 형형색색의 마력이 움직이는 게 [관찰안]에 감지되었다.

“무슨 일이지?”

“아, 잠시 대화를 나누려고 왔지, 유진호 씨.”

“지영아.”

내가 말을 꺼내는 순간.

[진동 결계 x 3]

육각형 타일이 선두에 있는 플레이어의 몸을 감쌌다.

포개지는 결계.

진동 계수가 증폭되면서 그 사이에 낀 플레이어의 몸뚱이를 뒤흔들었다.

“크허억!”

피를 한 사발 토하는 플레이어.

눈,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군.

“이게 무슨 짓…….”

“너희가 원하는 대화잖아.”

[맹렬한 돌진을 사용합니다.]

한달음에 플레이어 무리의 중심으로 파고들고는 로브를 뒤집어쓴 녀석의 복부를 가격했다.

비명도 못 지르고 가루로 변하는 플레이어.

원거리 딜러가 있는 곳을 훤히 열어 두면 어떻게 하니?

“쓰러트려!”

“도망갈 길은 없다!”

한발 늦게 정신을 차린 플레이어들이 병장기를 휘둘렀다.

쯔쯔. 숫자만 믿고 방심하니까 그 꼴이지.

[악귀의 분노를 사용합니다.]

[근력·민첩이 200% 상승합니다.]

[충격에 의한 경직 효과 및 고통을 무시합니다.]

[타격 시 피해를 입힌 수치에서 10% 만큼을 흡수합니다.]

[60초 동안 지속됩니다.]

올올이 솟구치는 머리카락.

전신에서 붉은 아우라가 흘러나온다.

8층의 보스, 악귀 전용 스킬이 승급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아!!”

넘쳐나는 힘.

끓어오르는 마음을 담아서 포효를 외쳤다.

“광역 디버프 스킬이라고?!”

“그래 봐야 10% 감소야. 몰아치면 이겨!”

칼과 창, 그리고 도끼 등.

갖가지 병장기가 사방에서 몰려든다.

“스, 스승님!”

지영의 다급한 목소리.

-걱정하지 말거라. 여의 계약자는 약하지 않으니라.

닉스의 대답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그래. 이 정도도 못 이기면 어떻게 고신들과 싸울 수 있겠어?

티티팅! 병장기들이 갑피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났다.

스톤 스킨을 쓸 것도 없는 공격.

난 오른손으로 탱커의 가슴팍을 노렸다.

혈조공 4초식.

사두조다.

뱀이 먹이를 낚아채듯, 기민하게 움직인 손이 심장에 파고드는 순간.

“내 방어를 뚫을 수는 없을걸!”

[철벽]

[디펜시브 월]

탱커가 방어 스킬을 사용하면서 비열한 웃음을 지었다.

맨손이라고 얕보나 본데.

내가 그런 것도 예상 못 할 줄 알았나?

[관통을 사용합니다.]

사두조에 부여된 ‘관통’.

방어구 안쪽으로 피해를 전달하는 스킬이다.

풀 플레이트를 가격한 사두조.

내공이 더해진 충격 일부가 탱커의 내부를 강타했다.

“끄으…….”

한 줄기 신음과 함께 쓰러지는 탱커.

즉사는 면한 것 같다만, 충격이 심해서 움직이기는 힘들 거다.

“유진호오!!!!”

남의 존함을 욕처럼 부르네.

고함과 함께 등 뒤를 노리는 플레이어.

기습하려면 소리는 안 질러야지.

이래서 아마추어들이란.

몸을 돌려서 반격하려는 순간.

[진동 결계 x 3]

육각 방패가 칼날을 막아 내고.

뒤이어 고함을 지른 플레이어를 가둬 버렸다.

“나를 잊으면 곤란해.”

지영이의 서포트.

결계 전개 타이밍과 위치, 모두 적절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통곡의 벽’에 비해서는 아직 모자라지만.

시간만 있으면 그 이상으로도 성장할 수 있겠어.

“자, 잠깐만, 우리가 힘을 합쳐야 승급전에서 이길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너희 실력이면 도움도 안 돼.”

실력도 실력이지만.

믿을 수 없는 아군보다 위험한 건 없다.

그러니.

“다음 달을 노려라.”

난 입술 한쪽을 말아 올린 채, 주먹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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