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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76화 (76/300)

76화

[바벨탑 - 8층]

[지하 미궁에 입장했습니다.]

[미션 - 탈출]

이 미궁에서 나가려면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미궁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는 탈출 열쇠를 찾으십시오.

여기서 벗어나려면 열쇠 다섯 개를 다 모으거나 심처에 있는 가디언을 쓰러트려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플레이어와 힘을 합치거나 물리칠 수 있습니다.

협력하거나 경쟁하거나.

어느 쪽을 택하든 당신의 자유입니다.

▶ 목표: 열쇠 다섯 개 찾기 / 가디언 제거.

▶ 탈출까지 소모된 시간 - 00:00:00

검회색으로 된 벽.

사면이 막혀 있어서 오로지 전진하거나 뒤로 가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는 통로다.

-이곳은 제법 마음에 드는구나.

“너무 어두침침한 곳을 좋아하지 마.”

-어둠은 곧 안식이니라.

취향 한번 확고하시군.

통로는 빛 한 점 없는 어둠으로 잠겨 있다.

정석적인 공략 방법은 야명주나 마나 랜턴, 혹은 라이트 같은 시야 확보 스킬을 준비하는 것이지만.

[초음파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것보다 유용한 ‘빅 배트’의 정수가 있다.

귓가를 쫑긋거리니, 통로 앞뒤의 구조가 시각화되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앞쪽이군.”

-이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느냐?

“보는 건 아니고 듣는 거야.”

초음파를 읽어 내느라 씰룩이는 귓불을 가리켰다.

-참으로 신통하구나.

“익숙해지면 쓸 만해.”

-직접 보는 것이 더 편하지 않느냐?

“그거야 맞지.”

청각을 시각으로 받아들이려면 정보를 한 번 가공해야 한다.

시각으로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것보다는 불편하지.

“여신님의 가호를 활용하려면 빛이 없는 편이 나아.”

닉스가 극야의 힘과 함께 내려 준 축복.

[밤의 여신의 가호]는 빛이 없는 공간에서 활성화된다.

회복력 50% 상승.

극야 및 어둠 관련 스킬의 위력도 대폭 늘어난다.

-그대도 어둠의 안락함을 깨닫기 시작하는구나.

“안락은 무슨.”

픽 웃고는 통로를 걸었다.

-너무 과감하게 이동하는 것 아니더냐?

“과감하고 말고 할 게 있나.”

-혹, 길을 헤매지 않을까 염려가 되는구나.

“여기도 나름 규칙이 있어.”

총 80가지 패턴에서 몇 가지를 무작위로 조합하는 방식.

나도 그 패턴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미궁의 ‘길’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규칙 정도는 안다.

철컥! 막 밟은 벽돌이 아래로 처진다.

[육감이 위험을 감지합니다.]

옆구리를 갑피로 휘감은 직후, 팅,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 하나가 튕겨 났다.

초록색으로 반들거리는 화살촉.

-무언가를 발라 놨구나.

“독이야.”

-한데, 미궁의 규칙이라는 건 무슨 수로 간파하느냐?

“함정의 종류.”

몇 번 더 맞아 보면 알겠군.

나는 어둠으로 잠긴 통로를 거침없이 나아갔다.

발목을 노리는 와이어.

정수리로 떨어지는 송곳.

그 외에도 기관 방식으로 작동하는 함정들이 내 전진을 방해했다.

“기관 진식 위주면 베타 타입이네.”

-돌파하기 어려운 패턴이느냐?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지.”

화살이나 창 같은 날카로운 투척 장비를 사출하는 함정.

촉에는 여러 독이 발라져 있어서 스치기만 해도 상태 이상에 노출된다.

“이 정도 관통력이야, 스톤 스킨을 쓸 것도 없어.”

-상성에서 유리하구나.

갑피는 화살처럼 일점으로 힘이 집중된 공격에 강하지만, 철퇴나 망치 같은 둔기 유형에 약하다.

알파 타입이었으면 스톤 스킨을 사용하거나 회피에 신경을 써야 했을 텐데.

이번은 운이 좋군.

나는 [가시 갑피]를 두른 채, 쭉 뻗은 통로를 질주했다.

자잘한 함정은 갑피의 방어력으로 버티고, 위험하다 싶은 건 극야의 힘을 일으켜서 박살 냈다.

“코너 옆에 사람이 있군.”

-협력하겠느냐?

“설마.”

보상은 혼자 먹는 게 최고지.

나는 코너를 돈 직후, 곧장 맹렬한 돌진을 사용했다.

시야가 아닌, 초음파로 지형지물을 읽어 내기에 가능한 습격.

코너 근처에 있던 플레이어는 화들짝 놀라더니 한마디도 못 하고 경직 상태에 빠졌다.

“잘 가라.”

괴력으로 플레이어의 얼굴을 가격하니, 몸 전체가 가루로 변했다.

좌우로 갈라진 통로.

알파 패턴의 규칙에 따르면…….

“우측이군.”

망설임 없이 방향을 정했다.

얼마 정도 걸었을까.

대리석으로 된 커다란 문이 앞을 막아섰다.

-벌써 열쇠가 있는 방을 발견했느냐?

“나름 패턴이 있다고 말했잖아.”

문 앞에 서자, 육중한 소리와 함께 양옆으로 밀렸다.

10평 크기의 방.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상자 다섯 개가 공간을 꽉꽉 채웠다.

“열쇠는 저 안에 들어 있어.”

-운이 좋구나. 열쇠 다섯 개를 한 번에 구하다니!

글쎄요.

방 하나에서 열쇠를 모두 구할 수 있으면 다섯 개라고 명시해 둘 이유가 없었겠지.

나는 대꾸하는 대신 상자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키리리리리리!!!”

상자 뚜껑이 위로 젖혀지면서 괴이한 소리를 토해 냈다.

벌어진 상자의 위와 아래에는 날선 이빨이 촘촘하게 박혀 있고.

안쪽에는 말려 있던 긴 혀가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더니 내 팔을 휘감았다.

-히이익!

“얘도 함정이야.”

정확히는 함정 타입의 몬스터인 미믹이다.

상자 다섯 개 중 열쇠를 보관하고 있는 건 하나뿐.

나머지는 모두 미믹이다.

“키리리리리!”

강한 힘이 나를 상자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이대로 들어가면 날카로운 이빨들이 나를 맞이해 주겠지.

내 선택은…….

-그대여, 왜 저항하지 않고 괴물의 입에 팔을 넣느냐?!

“사냥하려고.”

미믹의 입 안쪽으로 팔이 들어갔을 때.

[화염의 반지: 내장 스킬 - 파이어볼을 사용합니다.]

[스톤 스킨을 사용합니다.]

오른손에 낀 반지의 내장 스킬을 타이밍에 맞춰 발동했다.

놈의 입안에서 폭발한 화염구.

폭발과 함께 상자가 요동치고, 벌어진 입가에서 매캐한 연기가 솟구쳤다.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혀를 내민 채 축 늘어진 미믹.

-그대여, 오른손은 괜찮으냐!

“응. 멀쩡해.”

살짝 데인 정도.

미믹의 배 속은 눈에 보이는 것과 달리, 꽤 깊다.

폭발 대부분은 녀석의 배에 흡수되어 버려서 열기 일부만 내 피부를 휘감았다.

그나마도 갑피와 스톤 스킨으로 대부분 흡수.

대지모신의 가호 덕에 금방 멀쩡해졌다.

“한 방으로 끝나서 다행이군.”

-설마…… 이 상황을 유도한 것이더냐?

“당연하지. 미믹은 방어력이 높아서 정공법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워.”

물리·마법 대미지에 모두 튼튼한 미믹.

내 수준으로도 5분 정도는 때려야 쓰러트릴 수 있을 거다.

유일한 약점은 저 입속.

먹잇감을 낚아채는 순간이야말로, 미믹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기다.

-그대는 참으로 무모하구나.

“좀만 참아 줘. 앞으로 3번은 더 해야 하니까.”

-그 전에 열쇠를 먼저 발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열쇠는 세 번째 상자에 있어.”

닉스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눈꺼풀을 껌뻑이더니.

-알면서도 그 괴물의 아가리에 손을 넣은 것이더냐!

“정수 먹어야 하니까.”

함정 타입의 몬스터.

다르게 말하면 ‘생물체’다.

[미믹의 정수를 흡수합니다.]

[포식한 정수 - 3.5%]

[정수 등급: 희귀]

흐흐흐.

정수는 양보 못 하지.

남은 미믹들도 쓰러트린 후, 가운데에 있는 상자를 열었다.

커다란 상자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열쇠.

“이제 하나 얻었고요.”

난 미궁의 길을 밝혀 줄 열쇠를 얻었다.

* * *

구구궁!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상자 다섯 개.

“여기는 꽝이네.”

-그걸 어떻게 아느냐?

“미믹인지 상자인지 구분하는 방법이 있어.”

상자 표면을 보면 안다.

미믹은 붉은 반점이 정수리(?) 부위에 찍혀 있고, 일반 상자는 아무것도 없거든.

“오히려 좋아.”

8층 미션은 시간이 많이 든다.

운 요소도 많이 따르는 데다, 고생하는 거에 비해 보상 cp가 높은 편도 아니고.

미믹의 정수를 100% 포식하면 반복해서 도전할 필요가 없다.

[미믹의 정수를 포식했습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희귀]

[근력 + 5]

[마력 + 5]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유인이 추가됩니다.]

[유인]

등급: ★★

분류: 액티브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는 마력 파장을 보낸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몇 번 허탕(?)을 치다 보니 금세 미믹의 정수를 100% 모았다.

-이상한 스킬이 추가되었구나.

“왜, 미믹의 정수가 얼마나 쓸 만한데.”

유인은 탱킹에서부터 적의 빈틈을 유도하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활용이 가능한 스킬이다.

보석 상자처럼 위장한 미믹다운 정수라고 해야겠지.

일반적인 탱킹 기술처럼 강제력은 없지만.

유인도 일종의 ‘상태 이상’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저항에 실패하면 자연스럽게 내 페이스로 말려든다.

“정신계열 스킬에 시너지 효과도 부여하니까.”

-한데 계약자여, 이대로는 최고 기록을 세우긴 어렵지 않겠느냐?

닉스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묻어났다.

8층 미션의 목표는 최단 시간 내에 탈출하는 것.

미믹의 정수를 100% 모았다는 것은 최소 30마리 이상을 사냥했다는 거니까, 운이 너무 없었다.

“걱정하지 마. 아직 미션 타이머가 안 가잖아.”

나는 미션 현황을 보여주었다.

0에서 흐르지 않은 시간.

탈출 미션이 활성화되는 건 미션에 참여한 플레이어가 열쇠 다섯 개를 모두 얻는 순간부터다.

[미궁에 숨겨진 모든 열쇠가 주인을 찾았습니다.]

[이제부터 모든 플레이어에게 열쇠의 위치가 안내됩니다.]

[모든 열쇠를 한자리에 모을 경우, 탈출구가 활성화됩니다.]

[미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플레이어는 15명입니다.]

타이밍 보소.

막 닉스한테 설명을 하는 순간, 탈출구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과연. 이래서 여유롭게 돌아다닌 것이로구나.

“열쇠를 빨리 찾으면 그것대로 좋고.”

8층에서 오래 머무른다고 추가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니.

미믹의 정수도 모을 겸, 운이 좋으면 열쇠를 빠르게 활성화시킬 수도 있으니까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플레이어의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라, 흥미롭도다.

“글쎄. 흥미롭다고 하기에는 미궁 내부가 쓸데없이 넓어서.”

-그대의 위치가 드러나니, 기다리기만 해도 열쇠를 모을 수 있지 않겠느냐?

“여긴 함정투성이잖아. 어느 쪽에 있는지 알아도 속도를 내긴 어려워.”

-그렇다면 일일이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겠구나.

“아니. 다른 방법이 하나 있지.”

열쇠를 벽에 대자, 포개져 있던 검회색 벽돌이 180도로 움직이면서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갈라지는 벽.

그 사이로, 여태까지 없었던 또 다른 통로가 나타났다.

“가디언 사냥.”

-솔직하게 말하여라. 처음부터 가디언을 노린 것 아니었느냐?

“우리끼리 솔직하고 말고 할 게 있나.”

-우, 우리끼리라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여신님.

파트너가 된 지도 꽤 됐는데, 아직은 우리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나 보다.

하여간 별나요.

쭉 뻗은 통로를 걷자, 여태 본 방보다 10배가량 큰 공간이 나왔다.

“콰이오우우우?”

둥근 몸뚱이.

한가운데에 박힌 커다란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인다.

몸뚱이를 지탱하는 건 여러 촉수 다발인데, 그 끝에 작은 눈들이 나를 바라본다.

악마의 눈, 미궁의 가디언이다.

-목불인견이로다.

“왜. 징그러워?”

-참으로 흉측한 모습이지 않은가!

“그럼 빨리 치워 드려야겠네.”

난 목을 좌우로 돌리면서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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