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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74화 (74/300)

74화

덜커덩- 덜커덩-.

쭉 뻗은 레일을 달리는 기차.

나는 턱을 괸 채 바깥 풍경을 흘겨보았다.

-두 번째 팀원은 누구더냐?

“글쎄…….”

“스승님, 저도 궁금해요.”

맞은편에 앉은 이지영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아이는 왜 따라온 것인지.

“이제부터 한 팀이잖아. 안 그래요, 스승님?”

둘이 재밌게 노네.

이지영이 따라올 줄은 나도 몰랐다.

팀 제안이 갑작스러울 텐데, 이렇게나 적극적으로 나서다니.

튜토리얼에서 고유 능력의 활용방법을 알려 준 게 그만큼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래서 이번에 만날 분은 누구인가요?”

-어서 말해 보아라.

서로한테 으르렁거릴 땐 언제고.

은근히 죽이 잘 맞네.

“김영수. 5년 차 아이언 플레이어다.”

“5년 차인데 아이언이면…….”

“아직 빛을 못 본 거지. 능력이 지휘 계통이거든.”

-지휘라는 건 무슨 능력이기에?

이지영이 닉스를 보면서 콧대를 높였다.

“엣헴. 소환수님, 지휘 계통은 다수의 플레이어에게 버프를 걸어 주는 능력이야.”

-여가 듣기에는 유용해 보인다만.

“지휘의 버프 효과가 크지 않거든. 그렇죠, 스승님?”

“뭐, 그렇지.”

현시점에서는 말이야.

김영수의 고유 능력은 [대군 지휘].

대규모 인원을 통솔하거나 버프를 제공하는 데 특화되었다.

버프 효과가 커지려면 50명 이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탑 미션 중에 그만한 인원이 한 팀으로 묶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기껏해야 승급전이나 [다이아몬드] 등급 이상으로 올라가서 다른 차원의 플레이어와 경쟁할 때 정도?

-여의 계약자가 정한 일이니. 다 계획이 있을 것이니라.

곧바로 납득하는 닉스.

너무 신뢰받는데?

“저도요.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에 탑을 오르고 있는걸요.”

이지영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나야 미래를 알고 행동하니까 그런 거지만.

이 사람, 아니 신과 인간은 뭘 근거로 믿는 건지 원.

하지만 신뢰받는 것도 나쁘진 않다.

따지고 보면 닉스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안 늦었군.”

-도착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 있지 않느냐?

“아, 그런 게 있어.”

나는 멋쩍게 웃고는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김영수가 활약한 곳은 영국.

원래대로라면, 그는 올해 말이나 연초에 영국으로 이민을 간다.

문제는 그 뒤로 [게이트 브레이크]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

탑의 미션과 달리, 게이트는 팀 단위 활동이 반쯤 강제된다.

규모가 큰 게이트는 못해도 수십 명 단위로 공략해야 하고.

탑의 동기화가 20%를 넘는 순간부터는 플레이어의 힘=치안 유지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지휘] 계통 능력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수십 명에게 버프를 줄 수 있으니.

그중에서도 김영수의 능력은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지휘 계통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영국으로 이민 가기 전에 잡아 둬야지.

-우리 열차는 잠시 후 구미, 구미역에 도착합니다. 놓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슬슬 내릴 준비 하자.”

“네. 스승님.”

-여는 무엇을 도우면 되느냐?

여신님은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겁니다.

* * *

부지런하게 움직였더니 약속 시간보다 30분 빨리 도착했다.

그래. 분명히 일찍 왔는데…….

“혹시 유진호 플레이어님 맞으십니까?”

정장을 입은 40대 사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예. 맞습니다.”

“기사에 나온 사진 덕분에 알아봤습니다.”

“김영수 플레이어님 맞죠?”

“예예.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왜 당신은 30분 전에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다가 왜 이렇게 격식을 차리고 있어?

회귀 전에는 늘 허리를 펴고 다녀서 교정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뒤따라 온 이지영이 난감하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꽤 일찍 나오셨네요.”

“예예. 마침 시간이 남아서 일찍 왔습니다.”

꾸깃꾸깃한 종이.

빨대는 이빨 자국이 가득하다.

엄청나게 긴장한 모양이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일행과 김영수가 마주 앉았다.

“저, 유진호 플레이어님. 이번에 연락을 주신 게…….”

“미리 말씀드린 대로 팀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협회 쪽에서 어떻게 전달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 제가 들은 게 맞군요. 다행입니다.”

너털웃음을 짓는 김영수.

팀 권유에 저렇게나 기뻐할 줄은 몰랐다.

이지영도 그렇고, 회귀 전의 모습이 오버랩되다 보니 무척 어색했다.

“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고유 능력은 지휘 계통입니다.”

“예. 알고 연락을 드린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지휘 계열 직업군으로 전직해서 큰 도움을 못 드릴 것 같은데요.”

회귀 전에는 늘 거만하고 자존심을 높이 세웠던 사람인데.

환경이 이렇게나 중요한가 보다.

“5년 전 기사를 본 적 있거든요.”

“그때의 승급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꽤 인상적이어서.”

5년 전. 눈앞의 사내는 10층의 승급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국가들끼리 팀을 이뤄 진행하는 대규모 공성전.

참여 인원이 100명을 넘어서면서 김영수의 지휘 버프 효과도 극대화되었다.

결과는 압도적인 승리!

당시 여러 길드에서는 승급전 우승의 주역이었던 김영수에게 관심을 보냈었다.

“그때는 그랬죠.”

허허, 하고 웃는 김영수.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 버린 이야기다.

“전 미래를 보고 있습니다.”

“미래요?”

“탑의 상층부는 미지의 공간입니다. 위로 가면 어떤 미션이 나올지 모르니까요.”

“그러니까. 단체전이 있을 수도 있으니 제게 투자를 하겠다는 거군요.”

“잘 이해하셨네요.”

김영수의 눈동자가 의구심으로 물들어 간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이야기니까.

언랭크 플레이어가 60층 너머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지휘 계통 플레이어 섭외에 나선다?

뭐, 이런 반응도 예상 범위 내다.

“계약서를 보고 결정하시죠.”

미리 준비해 둔 팀원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지영한테 제시한 것과 100% 동일한 조건이다.

“1천만 원을 월급으로 준다고요?”

“따로 요구하는 건 없어요. 미션에서 나오는 건 김영수 플레이어 몫이고요.”

“그럼 유진호, 아니 팀장님은 뭐가 남습니까?”

“사람이죠.”

튜토리얼이 끝나고 1달도 안 돼서 30억을 넘게 벌었다.

운도 따라 주었고, 흑호 팀의 의뢰를 수행한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해지긴 했지.

그래도 앞으로 더 벌면 벌지, 못 벌지는 않을 거다.

세공되지 않은 원석인 두 사람도 조만간에 그렇게 될 것이고.

계약서를 꼼꼼히 읽는 김영수.

눈이 위아래로 몇 번이나 움직이는 걸 보면 독소조항이 있는지를 찾나 보다.

“……후. 이해는 안 가지만, 제가 손해를 볼 건 하나도 없군요.”

“서명하실래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팀장님.”

벌써 호칭이 바뀌었네.

자본의 힘은 역시 위대하다.

“팀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겁니까?”

“내일부터요. 오늘 가서 바로 짐 싸시면 됩니다.”

“음…… 가족들한테는 이야기해 둬야겠군요. 이렇게 주말부부가 될 줄이야.”

김영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입가가 씰룩이는 걸 보니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은데.

“팀원은 저……분이 끝인가요?”

“아저씨라고 해요. 대신 편하게 불러도 될까요?”

“네. 이제부터 자주 뵐 사이인데 말씀 편하게 하세요.”

빠르게 통성명을 나누는 두 사람.

길드 창설까지 쭉 갈 사이이니, 빨리 친해지면 좋지.

“참. 팀장님,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저희 조카가 팀장님을 엄청 좋아해서요. 혹시 사인 가능합니까?”

김영수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진다.

뭐가 부끄러운지 원.

“부탁이라기에 긴장했는데 별거 아니네요. 근데 제가 종이가 없어서.”

“그럼 제 명함에 부탁드리겠습니다.”

난 익숙하게 사인을 남겼다.

회귀 전에는 숨 쉬듯이 사인을 했거든.

계약을 마친 후, 두 사람은 상경할 준비를 한다며 돌아갔다.

-미리 생각해 둔 팀원은 더 없느냐?

“당장은. 다른 팀이나 길드에서 사람을 빼 오긴 어려우니까.”

한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플레이어.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인물이 더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섭외가 불가능했다.

-후훗, 계약자가 꾸리는 팀이라. 기대가 되는구나.

닉스는 내 어깨에 올라탄 채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쉴 시간은 없었다.

-말씀하신 조건에 맞는 건물을 몇 개 섭외했습니다.

“일 처리 한번 빠르네요.”

-다른 분도 아니고 유진호 특무대원님인걸요.

“리스트는 문자로 보내 주세요.”

-예.

팀 전용.

나아가서는 길드 창설까지 염두하고 건물을 구해야 한다.

현재 가진 돈으로는 내 기준에 맞는 건물을 매매로 구할 수 없으니.

대신 전·월세 개념으로 다달이 돈을 주는 식으로 쓸 만한 건물을 구해 보기로 했다.

한수창이 보내 준 건물 리스트를 돌던 중, 제법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전자상가가 들어섰던 건물.

총 5층, 넓이는 약 150평이다.

1층과 2층은 트레이닝 센터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무실이나 숙소로 쓰면 되겠어.

내친김에 두 층에 훈련용 방어 마법 설치도 의뢰했다.

-괜찮겠느냐?

“뭐가.”

-그대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돈을 모은 것 같거늘.

“원래는 공룡의 화석을 구하려고 했지.”

-한데, 그대 외의 사람들에게 이렇게나 투자해도 되는 것이더냐?

“한 손으로는 열 손을 못 막는 법이니까.”

원시종의 화석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동료를 모아 멸망의 시대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숙소 공사가 끝나면 원룸에서 나와야지.

훈련소도 마련했겠다, 굳이 대학교 근처에서 지낼 이유가 하나도 없다.

“돈 나갈 일투성이네.”

빠르게 떨어지는 통장 잔고.

버는 건 어려워도 돈 쓰는 건 이렇게나 쉽구먼.

다음 날이 되자, 두 사람이 서울로 올라왔다.

이지영과 김영수.

둘은 이제 막 내부 공사 중인 건물을 보면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스승님, 이게 우리 팀 건물인 거예요?”

“그래. 입주하려면 1주에서 2주 걸리겠지만.”

숙박시설은 공사가 오래 걸린다.

그동안에는 방을 잡아 주든 해야지.

반면에 훈련용 방어막 설치는 며칠 안에 끝난다고 하니.

“장소 좀 옮기죠.”

“여기에서 팀 브리핑을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당황한 기색을 띠는 김영수.

“에이, 오늘은 그냥 팀 건물 보여드리려고 한 거예요. 이제 훈련하러 가야죠.”

일행을 데리고 저번에 갔던 트레이닝 센터를 방문했다.

“오, 또 오셨군요!”

이번에도 나를 알아보는 사장님.

방어막 공사가 끝나면 올 일이 없을 텐데.

괜히 미안해지는군.

“가장 큰 사이즈로 부탁드립니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의 인사를 뒤로하고 트레이닝 센터로 들어왔다.

일행이 모두 입장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발동되는 결계 마법.

이 정도면 훈련용으로 딱이야.

“스승님, 오늘은 저부터 봐주시나요?”

“아니. 영수 형님부터.”

“팀장님, 그렇게 높여서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 식구잖아요. 그게 편합니다.”

“그러시다면…….”

김영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섰다.

“우선 형님의 정보부터 공유 좀 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상태 창!”

반투명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역시 내 기억대로군.

조금만 투자하면 대규모 전투뿐 아니라 팀, 아니. 솔로잉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어.

나는 생각을 정리한 후, 입술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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