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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71화 (71/300)

71화

바벨탑의 숨겨진 요소.

몇 개는 플레이어가 ‘최초 입장’ 할 때만 발동한다.

예를 들면 7층의 핏빛 악귀처럼 말이야.

“Uoooo!!!!!”

쾅! 쾅! 핏빛 악귀는 신들린 듯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방패는 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진 지 오래.

“티, 팀장님, 이대로는…….”

“숨겨진 요소라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서정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팀의 리더가 당황한 티를 내면 안 되지.

“크아악!”

핏빛 악귀가 아래에서 위로 쓸어 올리듯이 스윙을 치자, 탱커의 방패가 위로 추켜세워졌다.

수 미터 위로 떠오른 탱커의 몸뚱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지면에 추락하고는 축 늘어졌다.

미션에서 탈락 처리가 안 된 걸 보면 숨은 붙어 있는 모양이군.

파랗게 질린 흑호 팀.

“Uoooo!!”

핏빛 악귀가 승리의 함성을 내뱉고 있을 때.

“어스 스파이크.”

투콰콰콰- 지면에서 솟구친 바위 다발이 핏빛 악귀의 육신을 수 미터 뒤로 밀어냈다.

땅이 갈라지면서 자욱한 연기가 솟아난다.

“해, 해치웠나?”

서정민의 중얼거림이 귓가에 아른거릴 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 일부가 산산조각 났다.

나부끼는 흙먼지 사이로 핏빛 악귀의 모습이 비쳐진다.

갑주에 생채기가 난 것이 전부.

어스 스파이크를 막은 건 지면에 꽂혀있는 금쇄봉이었다.

마법에 실린 힘을 받아 낸 탓에 뒤로 쭉 밀려나 버린 핏빛 악귀.

놈의 무시무시한 괴력에 어스 스파이크에 실린 힘이 대부분 상쇄되었다.

“Uooo?”

그래. 웃어 둘 수 있을 때 많이 웃어라.

이젠 그 기괴한 웃음소리 듣기가 어려울 테니까.

필요한 건 10미터라는 거리뿐.

[맹렬한 돌진을 사용합니다.]

땅을 차면서 정면으로 핏빛 악귀에게 돌진했다.

처음부터 어스 스파이크가 먹힐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

악귀의 눈동자가 내 움직임을 쫓더니, 금쇄봉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봉 주위로 아른거리는 붉은 아우라.

충격 일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퍼트리는 [핏빛 메아리]다.

정면공격.

맹렬한 돌진은 한번 발동하면 임의로 취소할 수 없다.

“Uoooo!”

자식. 아직도 웃고 있네.

단전에 뭉쳐진 내공이 의지에 곧장 반응했다.

운류보의 보법대로 움직이는 다리.

마나와 내공, 작동 원리가 반대인 스킬을 동시에 운용하니 몸이 삐거덕거렸다.

한 치 차이로 몸을 스친 금쇄봉.

쿵! 어깨로 핏빛 악귀를 들이받자, 놈의 몸뚱이가 파르르 떨렸다.

2초 경직.

핏빛 악귀가 멈춰 있는 동안, 왼발을 축 삼아서 한 바퀴 회전했다.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합니다.]

[탐욕의 가호로 손톱을 강화합니다.]

길어진 손톱으로 펼친 혈조공 3초식.

혈호폭풍조가 핏빛 악귀의 갑주를 우그러트린다.

마찰 부위에서 불똥이 튀고, 내공이 집중된 부위는 찢어지면서 틈을 드러냈다.

“Uooo?”

몸을 움찔거리는 악귀 녀석.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혈조공 1초식으로 벌어진 틈을 푹 찔렀다.

피 대신 흘러나오는 붉은 기류.

연속적으로 무공을 전개하자 핏빛 악귀의 몸뚱이가 조금씩 흔들렸다.

놈의 경직이 풀리기 직전.

괴력으로 벌어진 지점을 치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수 미터 뒤로 밀려났다.

“Uooo.”

충격이 꽤 컸을 텐데도 밀려나면서 자세가 안 흐트러지는군.

“거기, 흑호 팀.”

“예, 예!”

“끼어들지 말고, 보조만 해 줘요.”

핏빛 악귀가 출현하면 미션 내용도 바뀐다.

한 명이라도 사망 판정을 받으면 곧바로 미션 실패!

재도전을 하면 핏빛 악귀의 출현 조건인 ‘첫 도전’이 아니라서 다시는 볼 수 없다.

괜히 돕는답시고 전투에 끼어들었다가 금쇄봉에 제대로 맞으면 거기서 끝.

두 번은 없는 기회인데,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잖아?

“본격적으로 놀아 보자고.”

팔뚝을 걷으면서 핏빛 악귀를 노려보았다.

* * *

[악귀의 분노]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 핏빛 악귀.

통상보다 3배 빠르고 강하지만, 뭔가를 얻었으면 반대로 잃는 것도 있는 법.

“Uoooo!!!”

정면공격을 고집하는 악귀.

악귀의 분노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식령 소환] 같은 디버프 스킬을 쓸 수 없다.

디버프를 포기하고 공격에 모든 것을 투자한 상태.

“위험합니다. 캐슬…….”

“끼면 더 방해돼.”

의식을 찾은 탱커가 전투에 난입하려고 하자, 바로 막았다.

네가 끼어들면 핏빛 악귀의 공격 목표가 둘로 늘잖아.

악귀는 눈앞에 있는 적을 우선적으로 공격한다.

일반적인 언랭크 플레이어라면, 핏빛 악귀의 압도적인 화력에 짓눌리겠지만.

나는 상대하기가 더 편하지.

특별히 어그로 관리를 해 줄 필요가 없거든.

놈의 뛰어난 돌파력이 도리어 마이너스가 된 셈!

“머드 트랩.”

질척이는 땅이 핏빛 악귀를 붙든다.

[탐욕의 가호]로 강화된 진창은 분노로 강화된 악귀마저도 쉽게 떨치지 못했다.

한순간 둔해진 악귀의 움직임.

어둠 지배로 금쇄봉을 칭칭 묶고는 간격 안으로 파고들어서 혈조공을 펼쳤다.

쭉 찢어진 갑주 사이에 생긴 고랑.

혈조공의 흔적이다.

“Uoooo!!!”

핏빛 악귀가 금쇄봉을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렀다.

콰아앙, 지면을 일그러트린 마력이 흐트러진다.

저 쇠몽둥이만큼은 무시를 못 하겠군.

핏빛 악귀의 속도가 3배가 빨라졌어도 회피는 가능했다.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하면 뼈가 하나 정도는 부러지겠지만.

[아이스 필러]

[초고속 연산]

[형태 변환 - 분리 & 관통]

얼음 기둥이 뭉개진 진흙 사이에서 삐져나온다.

본래는 큰 얼음으로 대상을 속박하는 마법이지만, 형태 변환을 거치니 수십으로 갈라졌다.

끝은 송곳처럼 날카로운데, 가시 여러 개가 핏빛 악귀의 전신에 빼곡하게 박혔다.

악귀의 항마력이 높아서 얼음 가시가 안으로 파고들진 않았지만.

저저적!

접촉 부위에서 냉기가 새어 나오더니 놈의 몸뚱이를 붙들었다.

“나이스 어시스트.”

“다, 다행이군요.”

멋쩍게 대꾸하는 서정민.

내 움직임에 맞춰서 보조하는 게 어색한 모양이다.

“하드 아머!”

방어구의 성능을 올려 주는 스킬.

[가시 갑피]에는 적용이 안 되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지속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걸리는 버프 스킬들.

백호 길드에서 작정하고 키운 유망주다운 솜씨다.

탱커와 근접 딜러도 핏빛 악귀의 시선을 끌지 않는 선에서 레이드를 도왔다.

[핏빛 도취]

붉은 기운이 금쇄봉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근처의 사냥감을 끌어 모으는 스킬.

저걸 사용한다는 건, 핏빛 악귀도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는 거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군.

“Uoooo!!”

핏빛 악귀가 금쇄봉을 휘두를 때마다 무게중심이 흐트러진다.

내공을 전신으로 순환, 중심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지만.

카앙!

처음으로 금쇄봉이 몸에 닿는 걸 허용했다.

[가시 갑피의 내구도가 42% 소모되었습니다.]

한순간 시야가 노랗게 물들 정도의 위력.

갑피가 금쇄봉의 힘을 상당수 흡수했는데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고통이다.

“Uooooo!!!”

핏빛 악귀가 손을 꽉 말아쥐더니,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악귀에게로 흘러간다.

피 착취.

사냥감의 피를 마셔서 생명력을 회복하는 스킬이다.

“그렇게는 안 되지.”

[산성 피를 사용합니다.]

딥 슬라임의 스킬이 피부 바깥으로 흘러나온 피의 성질을 변화시켰다.

핏빛 악귀는 오른손으로 내 피를 흡수하고는.

“Uooo?!!”

짧은 비명을 지르면서 팔을 마구 털었다.

“먹어 보니까 톡 쏘지?”

감히 누구 피를 빨아 먹으려고.

“힐!”

치유 주문이 상처에 스며든다.

자체적으로 [재생]까지 사용하니,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슨 치유 속도가 이렇게나 빠른 거야.”

작게 중얼거리는 서포터.

치유가 빠르면 좋은 거지, 왜 저런대.

전투 개시 후 30분이 지날 무렵, 핏빛 악귀의 몸에서 솟구치던 붉은 아우라가 연해졌다.

움직임은 여전히 재빠르고 직선적이었지만.

내 귓가는 흐트러진 악귀의 호흡을 놓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되겠네.”

입가가 절로 씰룩였다.

예상보다 수월하게 진행된 핏빛 악귀 레이드.

흑호 팀이 지원을 해 준 덕이다.

악귀의 수준은 바토리의 계약자인 정신호보다 한 수 아래.

20층 이상 올라간 [브론즈] 등급 플레이어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미안했다.

금쇄봉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만 주의하면 할 만하거든.

흑호 팀의 화력 및 버프 지원이 더해지니 어려울 게 없는 사냥이었다.

“Uooo…….”

가면에서 나오는 음성도 조금씩 작아진다.

“여신님.”

-기다리고 있었노라!

[밤의 축복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합니다.]

[극야의 회복 속도가 최대치로 올라갑니다.]

[버서크를 사용합니다.]

[근력과 민첩이 30% 증가합니다.]

승부수를 띄울 때가 왔다.

“한 번만 막아 줘요.”

발을 차면서 뒤로 물러나자, 탱커가 그 자리를 대신 맡았다.

악귀의 금쇄봉이 찌그러진 방패를 쾅, 하고 후려치니.

“으으으으!”

탱커가 안간힘을 쓰면서 버텼다.

좋아.

잘 버텼다.

10미터까지 멀어진 후, [맹렬한 돌진]으로 재차 거리를 좁혔다.

악귀가 금쇄봉을 들려고 하는 순간.

“넌 못 지나간다.”

[자력 방패]

우그러진 방패에서 초록빛이 새어 나오더니 악귀의 금쇄봉을 붙들었다.

작은 틈.

난 탱커가 만들어 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추겨 세운 어깨로 핏빛 악귀를 들이받자 Uooo…… 하고 신음을 흘리는 악귀.

그 자리에서 백 스텝을 사용, 10미터 뒤로 미끄러졌다가 재차 맹렬한 돌진을 사용했다.

한 번 사용하면 10초라는 쿨타임에 걸려서 반복적으로 펼칠 수 없지만.

“지금처럼 화력을 쏟아부을 때는 가릴 게 없지!”

충돌 순간, 핏빛 악귀의 몸뚱이가 다시 한번 들썩거렸다.

[경직이 중복으로 걸립니다.]

[동일 스킬 및 상태 이상에 내성이 적용됩니다. 경직 효과가 50% 감소합니다.]

이대로 끝내주마.

제 역할을 못 하는 갑주 사이로 괴력으로 강화한 주먹을 박아 넣고.

응축된 극야의 힘이 벌어진 상흔 사이로 파고든다.

핏빛 악귀 안으로 스며든 극야가 우둘투둘한 가시로 구현, 전신을 누비면서 내부부터 파괴했다.

들썩거리는 갑주.

내부를 휘젓는 극야의 힘에 핏빛 악귀의 몸뚱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 말을 신호탄으로 흑호 팀도 화력을 집중했다.

[제노사이드 커터]

[글레이셜 스파이크]

[실드 어택]

[멜팅 아머]

전력을 쏟아부은 공격.

나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후, [데모닉 파워]를 사용했다.

선택한 능력치는 마력.

“어스 스파이크!”

콰콰콰콰!

바위 다발이 땅거죽을 찢어발기면서 핏빛 악귀의 몸뚱이로 쇄도했다.

서리와 흙먼지가 일어나면서 눈을 가린다.

[막대한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뿌연 먼지가 걷히면서 핏빛 악귀의 모습이 드러났다.

제멋대로 꺾인 팔과 다리.

얼굴을 가린 붉은 가면과 낡은 검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느린 걸음으로 핏빛 악귀를 향해 다가갔다.

일부러 느리게 걸은 건 아니고.

[데모닉 파워]으로 모든 스텟을 마력에 돌려서다.

꿀꺽, 축 처진 핏빛 악귀의 사체를 보니 군침이 절로 도는군.

[포식을 사용합니다.]

나는 핏빛 악귀의 정수를 흡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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