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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70화 (70/300)

70화

패잔병처럼 땅에 널브러진 흑호 팀원들.

비 오는 날에 먼지가 날 정도로 신명 나게 두들겨 맞았다.

“잘 알았다, 너희들의 실력.”

“끄으, 끅.”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주먹을 쥐자 흑호 팀원들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효과 확실하네.

대련을 마친 후, 백호 길드 소속 서포터 여럿이 팀원들을 치료했다.

“크게 다친 곳이 없어.”

“그렇게나 심하게 당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치유 마법을 펼치는 서포터들.

닉스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혀를 찼다.

-참으로 곤란하게 되었구나.

“뭐가?”

-치유사들의 반응을 보아라. 엄살을 부린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는구나.

“엄살 아니야.”

-저치들이 멀쩡하다고 하지 않느냐?

“당연하지. 뼈 안 상하면서 아프게 때리려고 고생했어.”

플레이어의 정점인 군주.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가장 많이 싸워 본 건 같은 플레이어, 즉 인간이다.

회귀 전, 바벨탑을 오르면서 무수한 플레이어들과 경쟁을 벌인 덕분이다.

“내가 어디를 때려야 아픈지. 또 몸은 안 상하는지를 기가 막히게 잘 알거든.”

-더 이해가 안 가는구나. 그대가 손속에 자비를 두었다는 뜻이거늘.

“같이 7층 공략해야 할 팀원들이잖아. 뼈 상하면 안 되지.”

-그대는 계획이 다 있구나.

닉스는 혀를 내둘렀다.

내가 적당하게 손을 써 둔 덕에 현장 수습이 금방 끝났다.

흑호 팀원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힐끗거렸다.

당분간은 약발이 먹히겠군.

시간이 지나면 두려움보다 보복심리가 더 커지겠지만.

흑호 팀과 호흡을 맞추는 건 7층 공략뿐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서 기가 안 꺾인 녀석은 딱 하나 있군.

“서정민 팀장님.”

“에, 예.”

“말씀 편하게 하신다며.”

“생각해 보니 외부 사람이라서 말이죠.”

분노와 당혹감, 그리고 두려움.

서정민의 망막 너머로 온갖 감정이 비쳤다.

대기업 오너 집안의 둘째가 이렇게까지 두들겨 맞는 건 처음이겠지.

백호 길드에서 트레이닝을 받았어도 마구 폭력을 쓰지는 않았을 거니까.

-그렇다면 저자가 보복을 획책하지 않겠느냐?

“하고 싶으면 하라지.”

난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실은 아무 계책 없이 저지른 게 아니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내 수준으로는 대기업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막 나갈 수 있는 건, 저 집안의 내부 사정을 대충이나마 알아서다.

길드 마스터인 서현민이 대련 상황을 들으면 엄청 좋아할걸?

장소가 장소인지라, 닉스한테 모든 걸 설명해 줄 수가 없는 게 아쉬웠다.

“그렇다면야. 저도 공대를 해야겠네요.”

쩝, 아쉽구먼.

한번 어루만져 주었다고 생각보다 자존심을 빠르게 굽혔다.

서정민이 먼저 선을 넘어주면 이쪽도 할 말이 있는데.

-뒤에서 대기 중인 자들이 그대를 뜨거운 눈으로 보고 있구나.

서정민의 보디가드.

모두 [실버] 등급의 실력자다.

현재의 내 수준으로는 모든 힘을 동원해도 한 명이나 꺾을 수 있으려나.

대련 후, 본격적으로 팀워크 훈련을 했다.

내 역할은 근접 딜러.

부상(?)으로 빠진 흑호 팀 플레이어의 포지션이다.

“영진이보다 더 잘하잖아!”

“따로 팀 훈련을 받은 건가?”

“훈련을 받아도 그렇지. 우리 포메이션을 알 리 없는데…….”

경악하는 흑호 팀.

닉스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치들은 그대를 너무 얕본 것 같도다.

얕보기는요.

다 인생 2회차라서 가능한 거지.

탑의 미션 중에는 5인이나 10인 등, 팀 단위로 진행해야 하는 미션이 꽤 있다.

포식의 페널티 때문에 홀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이 팀에 참여한 적도 많거든.

막공(무작위 매칭 팀)을 얼마나 뛰었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군……요.”

못마땅한 기색으로 말하는 서정민.

트집을 잡고 싶은데, 내가 흑호 팀의 흐름에 위화감 없이 스며들어서 할 말이 없는 모양이다.

기자들도 눈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변수를 못 만들겠지.

흑호 팀의 출범식과 함께 내 명성을 날로 먹으려고 부른 취재진.

그 계획이 오히려 제 발을 붙드는 족쇄가 되어 버렸다.

“이제 7층 공략하러 가시죠.”

난 빙그레 웃으면서 은근히 압박을 넣었다.

* * *

[바벨탑 - 7층]

[배틀 콜로세움]

[미션 - 강적과의 전투(1)]

배틀 콜로세움에 등장하는 강적과 맞서 싸워라.

콜로세움의 보스 몬스터는 단독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난적이다.

팀원들은 각자의 특기를 살려서 강적을 공략해야 한다.

▶ 목표: 악귀 처치

7층 미션 장소는 커다란 공동이다.

넓이는 약 100평.

공동 중심부에는 도깨비와 비슷한 생김새의 가면을 쓴 괴인이 낡은 칼을 든 채, 일행을 노려보았다.

1/3 지점에 그어진 붉은 선.

저길 넘는 순간 보스 레이드가 시작된다.

-참으로 괴상망측한 가면이로구나.

“오니라고, 일본의 요괴를 본떠 만든 가면이래.”

-호오, 동방의 요괴라. 흥미롭구나.

닉스는 두 눈을 반짝였다.

강적과의 전투.

7층은 보스 레이드라는 테마에 알맞게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

흑호 팀 서포터는 입술을 달싹이면서 보조 마법을 걸어 주었다.

[레서 스트랭스가 적용됩니다. 근력이 10% 상승합니다.]

[어질리티 업의 효과로 반응 속도가 30% 올라갑니다.]

…….

보조 마법만 다섯 개.

각각의 증폭률은 높지 않지만 겹겹이 쌓이면서 효과가 증대되었다.

“모두 위치 잡고. 포메이션 A로 간다.”

진형을 갖춘 흑호 팀.

서정민은 나를 흘겨보았다.

“유진호 플레이어는 재량에 맡기겠습니다.”

“네.”

“악귀 레이드. 시작.”

선두를 맡은 탱커가 붉은 선을 넘는 순간.

멈춰 있던 악귀의 눈동자에서 붉은 안광이 새어 나왔다.

“으오오오오!!!”

악귀의 시선이 흑호 팀 탱커에게로 향한다.

투콱!

악귀가 돌진하자, 탱커가 방패를 추켜세웠다.

[공격 흡수]

대련에서 사용했던 범위 방어 기술이다.

회색 막 위로 떨어지는 낡은 칼.

새빨간 기운이 파도처럼 넘실대면서 좌우로 퍼져 나간다.

피격 시 인근 플레이어에게도 충격을 전달하는 스킬, [피의 메아리]다.

퍼져 나간 충격은 공격 흡수의 효과로 탱커에게 돌아갔다.

“큭.”

“잘했다, 은호.”

서정민은 초고속 연산으로 빠르게 마나를 재배열, 아이시클 애로를 전개했다.

형태 변환으로 이중 나선 형태를 띤 얼음 화살이 악귀의 어깨에 박혔다.

푸우욱!

낡은 갑주를 부수고 안쪽으로 파고든 얼음 화살.

악귀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으으으으오!”

“지금이야. 밀어붙여!”

근접 딜러가 악귀의 간격 안으로 파고든다.

번쩍이는 단검.

갑주가 미처 가리지 못한 틈을 찔러 대니, 악귀의 몸에서 붉은 기류가 샘솟았다.

“으오오오오!!”

악귀는 비명인지 괴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러 대면서 연신 팔을 움직였다.

[천벌]

1분 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상대를 추격하는 스킬.

악귀의 목표는 단검을 쥔 근접 딜러였다.

충돌 직전, 근접 딜러와 탱커의 위치가 바뀌었고 낡은 검은 강철보다 단단한 방패에 가로막혔다.

악귀의 등 뒤를 점한 근접 딜러.

단검 계열 스킬인 [루나틱 슬래시]로 훤히 드러난 등을 난도질했다.

“으오오오.”

짧은 신음을 내면서 몸을 돌리는 악귀.

대미지를 입혀도 움직임이 둔해지지 않았다.

공격밖에 모르는 악귀의 특성!

나는 흑호 팀의 포지션에 맞춰서 무리하지 않는 선으로 피해를 입혔다.

[식령 소환]

가면의 입 부위에서 하얀 기류.

집어삼킨 원혼을 밖으로 꺼내는 스킬이다.

연달아 나온 식령의 수는 다섯.

식령들은 각 팀원에게로 스며들었다.

“빛이여, 우리를 보호하소서.”

식령 소환을 대비해 둔 서포터의 주문 덕에 저주의 기운을 금방 씻어 버렸다.

정석적인 악귀 공략법.

흑호 팀은 이번 레이드를 철저하게 준비한 듯했다.

전투가 시작되고 10분이 지난 시점.

정석적인 공략 덕분에 악귀를 상대하면서 위험한 상황은 한 번도 없었다.

-너무 얌전하구나.

“악귀가?”

-그대 말이니라.

뭐, 이대로 쭉 가면 변수 없이 악귀를 사냥하겠지.

이런 페이스라면, 내 도움 없이 국내 랭킹 최고 기록을 경신할 수도 있었을 거다.

그 뒤에 나한테 따라잡혔겠지만.

“조금만 기다려 봐.”

-호오, 이미 계획하는 바가 있구나.

카아앙! 낡은 검이 방패를 후려쳤다.

주춤거리는 탱커.

그 순간, 악귀의 가면이 아래로 쭉 벌어졌다.

Uoooooo-!!!!!

가면 틈 사이로 드러난 입에서 괴이한 고함이 튀어나왔다.

[악귀의 분노]

이전에도 종종 고함을 질러 댔지만…… 지금은 달랐다.

하얗게 산발한 머리가 올올이 하늘 위로 솟구치고, 붉은 기류가 전신에 넘실거린다.

손에 쥐고 있던 낡은 칼은 기기긱! 이라는 기괴한 소리를 동반하면서 형태를 바꾸었다.

무수한 징을 박은 기다란 쇠 봉.

폭주 상태로 진입한 악귀의 무기, 금쇄봉이다.

-악귀의 요력이 한층 강해졌느니라.

“변신하면 강해지는 게 국룰이지.”

-호오. 그렇구나. 한데 저 기술을 왜 바로 쓰지 않은 것이더냐?

“적에게 피해를 어느 정도 누적시켜야 변할 수 있거든.”

10분 만에 악귀의 분노를 사용하게 만들다니.

흑호 팀, 제법이야.

“1분 동안은 방어에 치중한다.”

서정민의 오더가 떨어지자, 흑호 팀이 포메이션을 바꿨다.

쾅! 쾅!

악귀는 금쇄봉을 힘차게 휘둘렀다.

비틀거리는 탱커.

혼자서는 금쇄봉에 담긴 힘을 감당하지 못했다.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흑호 팀.

-이대로 가면 팀원들이 모두 쓰러지겠느니라.

“저게 공략의 핵심이야.”

7층 공략의 핵심은 [악귀의 분노]다.

분노 상태의 악귀는 전투 능력이 3배 정도 상승한다.

통상적인 상태여도 버거운 상대인데, 몇 배나 강해지면?

-플레이어들의 수준으로는 못 버티겠구나.

“그래도 무한이 아니니까.”

[악귀의 분노]의 지속 시간은 길지 않다.

서정민이 언급한 1분.

그 시간만 버티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일부러 진형을 뒤로 물리면서 시간을 버는 거지.”

-그렇구나. 납득하였도다.

하지만.

[악귀의 분노]가 지속 시간이 끝난 뒤에도 유지되면 어떨까?

나는 등 뒤를 살짝 힐끗거렸다.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보는 닉스.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을 때, 나는 쉿, 하고 입을 막았다.

7층에 입장했을 때만 해도 밋밋했던 공동의 벽.

그곳에는…….

산(山)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스스스슷-!

현실로 구현된 극야의 힘이 바닥을 타고 뒤로 뻗어 나간다.

벽을 더듬는 시커먼 촉수 다발.

튀어나온 글자를 훑던 중, 버튼 하나가 보였다.

7층의 숨겨진 요소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는데, 왜 이제야 나타난 것이더냐?

“분노 상태 때만 글자가 나오게 해 놨거든.”

몇 배나 강해진 악귀를 상대하면서 뒤를 돌아볼 플레이어가 얼마나 있을까.

거기에 버튼 크기도 작잖아.

-못 알아보게끔 교묘하게 숨겨 놓았구나.

“그런 거지.”

이러니까 탑이 열리고 10년이 지났는데도 안 밝혀진 거다.

나는 극야의 힘으로 버튼을 눌렀다.

[공동 내부에 숨겨진 글자의 비밀을 찾았습니다.]

[악귀가 각성합니다.]

[악귀 → 핏빛 악귀]

[악귀의 분노 지속 시간이 없어집니다.]

핏빛 악귀.

넌 어떤 정수를 줄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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