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근접 딜러의 주 무기는 단검.
일격이탈, 혹은 짧은 순간에 화력을 퍼붓는 유형일 거다.
-상대의 전투 스타일에 따라 대응 방침도 다르겠구나.
“뭐, 공통점도 있어.”
-그게 무엇이더냐?
“방어력이 약해.”
짧게 대꾸하고는 내공을 움직였다.
혈조공의 첫 초식으로 근접 딜러를 낚아채려는 순간.
[스파인 체술]
[어택 슬라이딩]
촤아악- 빙판에서 미끄러지듯 근접 딜러의 육체가 뒤로 이동했다.
“흥. 의외의 한 수를 숨겨 두었다고 해도 누가 맞아 줄 거라고 생각했…….”
“말이 길다.”
지면을 박차면서 맹렬한 돌진을 사용.
혈조공을 피해 뒤로 물러난 근접 딜러와의 거리를 한달음에 좁혔다.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뻐끔거리는 근접 딜러.
그 대답으로 주먹을 선사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10미터 이상 튕겨 나가는 근접 딜러.
어택 슬라이드로 알아서 거리를 벌려준 덕에 200% 추가 대미지와 경직 효과가 그대로 적용되었다.
방어구 위에 감돌던 초록색 빛은 일격으로 소멸.
서포터의 보조 마법이 없었으면 맹렬한 돌진만으로 치명상을 입었을 거다.
한 번 더 공격하면 이번 대련에서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겠는데?
“이거나 먹어라!”
서정민이 재배열을 마친 마력을 해방했다.
[아이시클 애로]
[초고속 연산]
[형태 변환 - 이중 나선]
이중으로 꼬인 얼음 화살이 통상적인 주문보다 2배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갑피로 받아 내기 어렵겠군.
즉각적으로 다리에 내공을 흘려보냈다.
운류보의 묘는 어느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것.
걸음 속도를 올리면서 움직이는 방향을 수정, 한 끗 차이로 얼음 화살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내 마법을 피하다니!”
이를 가는 서정민.
분노를 드러내는 것과는 별개로, 연달아 마력을 움직였다.
[아이스 코팅]
[그리스]
지면 위를 물들이는 서리.
그 위로 마찰계수를 0으로 만드는 마법까지 사용했다.
초고속 연산 능력을 잘도 써먹는군.
곧장 운류보를 중단, 제자리에 멈췄다.
무공이라고 해도 마법의 효과에 완전 면역인 건 아니거든.
운류보의 성취가 더 높으면 모르겠지만, 고작 1성으로는 이중 마법에 중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흐아압!”
진탕에서 발을 뺀 탱커 녀석이 일직선으로 달려든다.
동시에 서포터가 준비한 회복 마법을 전개, 근접 딜러의 체력을 회복시킨다.
꽤 합이 잘 맞는 파티네.
-여의 축복이 필요해 보이는구나.
“응. 아니야.”
내가 사용을 안 한 스킬이 몇 개인데, 벌써 도움을 요청해?
이렇게 재미있는 싸움인데.
즐길 수 있을 때까지는 해 봐야지.
탐욕의 가호를 빙판에 흘려보내서 교차 배열된 두 마법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파직!
[아이스 코팅]과 [그리스]가 반발하면서 스파크가 튀었다.
순차적으로 전개했으면 부딪치지 않았을 텐데.
마법 효과를 증폭시킨답시고 초고속 연산으로 성질이 다른 마력을 묶어둔 게 실수였다.
“이, 이익. 아이시클 샤워!”
작은 고드름 수십 개가 날아든다.
냉기를 휘감고 있어서 몸에 닿으면 움직임이 둔화되는 공격.
방어보다는 피하는 게 낫지만.
나는 돌진을 선택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정수리에서 풀려나서 실체화된 어둠이 몇 갈래로 쪼개지더니 고드름 다발을 튕겨 냈다.
흑호 팀의 최대 화력은 서정민.
대련에서 변수를 없애려면 저 녀석부터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마침 서정민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도 하니.
공세의 템포를 좀 올려 볼까!
“네 상대는 나다.”
[캐슬링]
서정민과의 거리가 5미터 정도로 좁혀졌을 때, 번쩍거리는 빛이 시야를 방해했다.
극야로 빛의 잔상을 걷어 냈을 땐 방패를 든 탱커가 눈앞에 있었다.
“은호 군, 나이스 어시스트.”
“팀장님, 저만 믿으십쇼.”
어쭈.
날 앞에 두고 지들끼리 이야기하고 있네.
그나저나 캐슬링이라.
언랭크 주제에 3성 스킬을 자력으로 얻었을 것 같지는 않고.
흑호 팀을 꾸린답시고 길드, 혹은 LS그룹 본사에서 지원받은 모양이다.
“넌 못 지나간다.”
탱커는 서정민을 위기에서 구해 낸 걸로 자신이 생겼는지,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방패에서 아른거리는 기운.
대상을 지정, 3미터 이상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탱킹 스킬인 [자력 방패]다.
혈조공으로는 저런 두꺼운 방패를 뚫어 내기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꽉 말아 쥔 주먹.
[가시 갑피]와 [스톤 스킨]을 전개, 이중으로 감쌌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근력 수치 + 330%의 피해를 입힙니다.]
우지직!
방패 표면 일부가 괴력으로 강화된 힘을 못 버티고 찌그러졌다.
“큭!”
신음을 흘리면서 뒤로 튕겨 나는 탱커.
오호.
피격 순간, 방패를 살짝 비틀어서 주먹에 실린 힘 일부를 흘려보냈다.
요령이 좋은걸?
근데 말이야.
아직도 [자력 방패]가 발동 중이라는 건 잊어버린 모양이다.
우웅! 스스로 발동시킨 기술의 효과로 튕겨 나던 중에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당겨졌다.
트램펄린을 타는 애들 같네.
추가타를 먹이려는 순간, 우윳빛 막이 탱커의 전신을 감쌌다.
마나 배리어.
서포터가 전개한 방어 마법이다.
주먹이 방어막을 부수는 동안, 탱커가 정신을 차리더니 스킬을 해제하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거나 받아라!”
자력 방패에 붙들려 있는 동안, 근접 딜러가 시야의 사각으로 파고들더니 단검을 휘둘렀다.
육감으로 살기를 읽었기에 피하는 것쯤은…….
[트릭 어택]
순간적으로 여러 군데를 찌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감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었다.
오호, 제법이잖아.
난 회피를 포기, [가시 갑피]로 전신을 감쌌다.
단검이 노리는 곳은 복부.
카각! 갑피와 칼날이 부딪치는 순간, 마찰열과 함께 불똥이 여기저기로 튀었다.
소모된 내구력은 20% 정도.
이 정도야 받아 낼 만하지.
[오만의 단검 - 내장 스킬: 넉백]
미증유의 힘이 갑피와 충돌한 칼날에서 솟구친다.
상대를 밀치는 파동.
나는 그 힘에 저항하는 대신,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끔 중심을 잡았다.
“이 틈에 태세를 정비한다.”
포메이션을 다시 잡는 흑호 팀.
그래. 대련이 쉽게 끝나면 재미가 없지.
나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 * *
서정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흑호 팀.
LS그룹 본사의 지원까지 끌어와서 키운 정예 팀이다.
투자한 금액만 수백억 단위!
각종 영약과 [유니크] 등급 아이템으로 무장을 시켰고, 백호 길드에서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들에게 훈련을 받았다.
7층 최고 기록 경신을 위해 도전을 멈춘 거지, 브론즈 등급 팀과의 대련에서도 압도하는 수준.
그런데.
“어째서냐!”
서정민은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뭐가?”
“유명세를 떨친다고 해도 고작해야 언랭크인데!”
“당신네 팀도 언랭크인 건 마찬가지면서.”
픽, 하고 비웃음을 내뱉는 진호.
[초고속 연산]
[글레이셜 스파이크]
[추가 속성 부여 - 가이드 타깃]
마법 계열 고유 능력 중 최상위로 분류되는 초고속 연산.
서정민은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한계를 넘어선 마법을 펼쳤다.
대상 지정 유도 성질까지 부여했기에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진호는 한발 늦게 화염구를 투척했다.
허공에서 충돌한 냉기와 불꽃.
3성급 스킬인 글레이셜 스파이크가 파이어볼을 소멸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진호의 등 뒤를 쫓았다.
“아, 그런 스타일?”
진호는 다시 한번 손을 펼쳤다.
[마나 업소브]
반지에서 솟구친 요사스러운 빛이 원뿔 형태의 얼음을 휘감는다.
검붉은 빛은 서정민이 재배열한 마력 배열을 무너트리더니 꿀꺽, 삼켜 버렸다.
“왜. 뭐가 잘 안 되나 봐.”
“마법 흡수라고 해도 한계는 있을 거다!”
다시금 냉기 마력을 재배열하는 서정민.
그 순간.
“준비 시간이 긴 마법은 안전이 확보되었을 때 쓰는 거다.”
진호가 지면을 박차면서 서정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캐슬…….”
“한 번 당하지. 두 번은 없어.”
진호의 그림자에서 솟구친 극야의 힘.
20에 해당하는 힘을 모두 구현, 어둠으로 된 벽을 세워서 탱커와 서정민 사이를 가로막았다.
캐슬링을 사용하려면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는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팀장님한테는 못 보낸다.”
앞에 있던 근접 딜러가 단검을 휘둘렀다.
[트릭 어택]
공격 방향을 교란시키는 스킬이 다시 한번 발동되었다.
진호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더니.
“같은 말 또 하게 만드네.”
수십 개나 되는 단검의 잔상 중에 하나를 주먹으로 쳐 냈다.
채애앵!
근접 딜러의 몸이 휘청거린다.
“어, 어떻게?”
“눈으로 보면 알아.”
근접 딜러에게 연이어 공격하는 대신 서정민을 노리는 진호.
서포터 플레이어가 디버프 스킬로 발을 묶는 동안 남은 팀원들도 다시 포지션을 잡았다.
연신 공세를 이어 가는 진호.
반면에 흑호 팀은 수적 우세에도 대련 내내 일방적으로 끌려다녔다.
취재하러 나온 기자들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저게 언랭크라고?”
“아이언, 아니 브론즈급 아닌가.”
“튜토리얼 기록이 바뀐 게 1주도 안 지났으니까. 언랭크 맞아.”
“스킬을 몇 개나 쓰고 있는 거야? 탱킹 기술에 원거리 공격, 거기에 디버프까지 걸잖아.”
머드 트랩이나 포효 같은 디버프.
혈조공이나 괴력 같은 근접 계열 스킬.
원거리 마법 공격에도 능했다.
기원조차 알 수 없는 극야의 힘까지 다루었으니.
진호는 대련 전에 말했던 ‘올라운더’ 포지션을 수행했다.
“이거…… 어떻게 기사를 내야 하는 거지?”
기자 한 명이 초조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서정민과 흑호 팀의 활약상을 띄워 주려고 대기시킨 기자들.
미리 작성한 내용이 휴지통으로 들어가게 생겼다.
대련을 시작한 지 30분이 넘자, 서정민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외쳤다.
“F 포메이션.”
파이널의 약자.
팀의 모든 기량을 쥐어짜 내는 최후의 수단이다.
“제 뒤로 오십쇼.”
탱커를 중심으로 밀집한 흑호 팀.
[철벽(鐵壁)]
[공격 흡수]
움직임을 멈추는 대신 방어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철벽.
반경 3미터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에너지를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공격 흡수도 전개했다.
두 탱킹 스킬을 동시에 사용하는 건 실버 등급 탱커도 구사하기 어려운 테크닉!
……일진대.
“그렇게 이 악물고 버티면 뚫기가 더 쉬워지잖아.”
방어력을 약화시키는 저주의 문장이 회색 막 위에 새겨진다.
약화의 문장.
블루 고블린 주술사의 정수에서 추출한 저주 스킬이다.
진호는 괴력으로 탱커가 펼친 막을 강타했다.
단 한 번을 버텨 내지 못하고 깨어진 [공격 흡수]와 [철벽].
철벽의 효과로 방어력이 늘었지만, 제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게 패착이 되었다.
“아까처럼 흘려 내지.”
“으아아!”
근접 딜러가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제노사이드 커터]
단검에 실린 노란 기운이 몇 배로 증폭된다.
칼날 진동을 수십 배로 증대시켜서 닿는 것을 모조리 잘라 내는 3성 스킬.
범위에 들어온 상대를 검의 궤도로 끌어오는 효과도 있다.
[혈조공]
[4초식 - 사두조]
기괴한 각도로 틀어진 팔이 단검에 실린 노란 기운을 지나친다.
근접 딜러가 비장의 수단을 펼치려고 할 때, 한발 먼저 펼친 무공이다.
진호는 길게 펼친 손끝으로 근접 딜러의 목덜미를 노렸다.
“좀 아플 거다.”
검을 휘두르다가 사두조에 맞아서 바닥에 나뒹구는 근접 딜러.
“컥, 커컥.”
목젖에 가해진 힘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한발 늦게 마력을 재배열하던 서포터도 가볍게 제압.
남은 건 서정민뿐이었다.
그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입을 뗐다.
“하, 항…….”
“대련, 아직 안 끝났잖아?”
오른손으로 서정민의 입을 틀어막는 진호.
스산한 웃음이 입가에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