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68화 (68/300)

68화

서현민.

백호 길드의 마스터는 뜻밖의 보고에 미간을 찌푸렸다.

“형님, 아니 서정민 플레이어가 길드의 이름으로 유진호를 섭외했다고?”

“예. 팀워크 훈련 일자는 내일이라고 합니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서현민.

“둘째 형님. 나 몰래 재미있는 일을 꾸미고 계셨군.”

그의 눈동자에서 고뇌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바벨탑이 전 세계 각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직후, LS그룹의 총수인 서무진은 바벨탑의 가능성을 읽고 플레이어 영입에 많은 자금을 들였다.

그러던 중에 오너 가문에서 처음으로 플레이어가 된 게 막내인 서현민.

-플레이어 길드를 만들어라. 그룹 차원에서 지원해 주마.

서무진은 집안에 생긴 호재를 놓치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막내라는 이유로 그룹 내에서 발언권이 적었지만, 탑의 초대장을 받은 후로는 남매들 사이에서의 입지가 역전되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거기에, 서현민의 수완도 뛰어났다.

서현민의 등급은 골드.

국내 최고 수준인 플래티넘에 비해서는 모자랐다.

그럼에도, 백호 길드가 국내에서 손에 꼽히는 길드로 자리매김한 건 뛰어난 운영 능력 덕분이었다.

한데 최근에 가문에서 두 번째 플레이어가 탄생했다.

둘째 형인 서정민이다.

‘형님이 나를 의식하는 건 알고 있다.’

대기업 오너 가문의 자녀로 태어난 이상, 경쟁을 피할 수 없다.

운이 좋게도, 서정민은 뛰어난 고유 능력을 타고났다.

[고속 연산].

원거리 딜러 포지션에서는 최상급으로 분류되는 재능이다.

그 덕에 길드는 물론이요, LS그룹 차원에서 엄청난 지원을 받는 중이다.

‘골치가 아프군.’

떠오르는 신예인 진호의 명성을 역이용.

백호 길드의 유명세를 올리겠다는 계획은 대의명분이 확실했다.

리스크도 크지 않은 편.

진호가 참여하지 않으면 모를까.

서정민이 이끄는 팀은 반년 이상 저층을 반복적으로 돌아서 한계 레벨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 덕에 [언랭크]의 한계를 넘어섰다.

진즉에 아이언 등급 승급전을 치르고 11층 이상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은 실력자들.

서현민은 두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같은 시각.

LS그룹 총수의 둘째 아들이자, 길드 마스터의 형인 서정민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제안을 받아들였단 말이지?”

“예. 도련님.”

“좋아. 너한테는 따로 보상을 해 주지.”

“도련님의 행보에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임유리는 고개를 숙인 후, 물러났다.

“다 들었지?”

서정민은 등 뒤에 대기 중인 플레이어들을 흘겨보았다.

“예, 도련님.”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하는 4인.

그가 탑의 초대를 받고 난 후, 기업의 지원을 동원해서 섭외한 팀원들이다.

하나같이 뛰어난 고유 능력과 뛰어난 전투 센스를 지닌 이들.

본격적으로 탑을 오르기 전, 백호 길드 소속 일류 트레이너의 지도하에 훈련도 받았다.

대외적인 활동은 일부러 자제했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만 놓고 보면 불사조나 화랑 길드에서 양성한 신예들보다 더 뛰어났다 .

서정민의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갔다.

‘안 그래도 데뷔 무대를 어떻게 꾸며야 하나 고민했는데, 잘됐어.’

막내인 서현민에게는 큰 단점이 하나 있다.

불사조나 화랑과 달리, 길드 마스터의 기량이 부족하다는 점.

탑 초창기 플레이어임에도, 아직 골드 등급에 머무르는 것이 그 증거였다.

반면에 서정민은 뛰어난 고유 능력을 부여받았다.

더 뛰어난 플레이어가 된다!

그렇게 되면 서현민이 이룬 모든 것을 가로채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서정민은 웃음을 삼킨 채, 팀원들을 다시 바라봤다.

“팀 흑호의 데뷔 무대다. 실수하는 일 없도록.”

“예! 팀장님!”

팀원들은 각오를 불태우며 훈련을 재개했다.

* * *

다음 날.

백호 길드에서는 해가 뜨기 무섭게 원룸 앞으로 차량을 보냈다.

“모시러 왔습니다.”

“예예.”

난 평상복 차림으로 세단 뒷자리에 탑승했다.

임유리가 의아한 기색으로 내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따로 장비는 없으십니까?”

“내 몸이 무기라서요.”

“백호 길드에는 여러 장비가 있으니, 대여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요.”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쓸데없이 친절하긴.

판 깔아 놨는데 핑계를 대고 빠질까 봐 신경 쓰는 게 훤히 보였다.

훈련장에 도착했을 땐, 백호 길드의 마크를 단 플레이어 일행이 일찌감치 나와서 몸을 푸는 중이었다.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울리는 셔터 소리.

백호 길드에서 미리 섭외해 둔 기자들이다.

-그대가 왔다고 반겨 주는 모양이구나!

닉스는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를 보면서 좋아했다.

어제 설명한 건 다 까먹으셨구먼.

“일동. 휴식.”

사내가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니 훈련 중이던 플레이어들도 움직임을 멈췄다.

“유진호 플레이어?”

“네.”

나는 팀장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정장을 입은 자들이 손을 벌려서 진로를 막았지만.

“내 손님이다.”

사내가 한마디를 내뱉자, 경비들이 물러났다.

[독수리의 눈]으로 보니 다들 진한 붉은 아우라를 풍겼다.

최소 실버 등급은 되겠군.

“반갑습니다. 팀 흑호를 맡은 서정민입니다.”

서정민.

백호 길드장의 형이자, ‘흑호(黑虎)의 난’이라는 사고를 친 녀석이다.

백호 길드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다툼.

그 여파로 국내 3대 길드로 손꼽히던 백호의 세력이 팍 줄어들어서 끝내는 랭킹 밖으로 튕겨났었지?

예상대로다.

상황을 잘 이용하면 백호 길드장에게 빚을 지워 둘 수 있겠어.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 서정민.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 손을 마주 잡은 채로 같이 웃어 주었다.

“참, 나이는 내가 더 많아 보이는데 편하게 말하도록 하지.”

얼씨구.

자기 마음대로 말 놓는 거 보소.

네 마음대로 하세요.

서정민은 내 침묵을 승낙의 의미로 알아들었는지 대화를 이어 갔다.

“팀워크 훈련을 하기 전에 유진호 플레이어의 전투 능력을 확인해 보고 싶거든.”

“스펙이라도 읊어 드릴까요?”

“하하, 그건 프라이버시잖아. 우리 팀도 마찬가지라고.”

서정민은 짐짓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는.

“그런 의미에서 대련 어때.”

곧장 본론을 꺼냈다.

“대련이라면.”

“유진호 플레이어도 5층을 넘었으니 포지션이 있을 거잖아.”

탱커 / 근거리 딜러 / 원거리 딜러 같은 직업군.

그러니까.

내가 맡은 포지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를 묻는 거다.

“이번에 부상당한 팀원을 빼면 올 포지션이거든.”

“어느 포지션이든 상관없이 전투 능력을 테스트할 수 있다든 말?”

“하하하. 이 친구, 말이 아주 잘 통하잖아.”

“난 직업군이 이레귤러라서 포지션이 따로 없습니다.”

“그래도 특화된 포지션이 하나쯤은 있지 않나?”

“전장에서는 어느 쪽이든 다 커버가 가능한 직업이라서.”

서정민의 눈매가 살짝 일그러졌다.

“유명하다고 하더니. 꽤나 자신만만하군.”

“그러면 검증을 해 봐야지. 안 그렇습니까, 팀장님?”

서정민의 뒤에 있던 일행.

팀 흑호 소속 플레이어들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좋네. 애초에 내 명성만을 노리고 이런 무대를 만들었으니.

슬슬 본심을 드러낼 때도 됐지.

팀원들이 호승심을 드러냈는데도 서정민이 나서지 않는 걸 보면 노리는 게 뻔했다.

“그러지 말고 네 명 전부 덤비지 그래?”

태연한 목소리로 내뱉은 말.

흑호 팀 전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일행을 휘감은 적막감.

내가 꺼낸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지를 헷갈리는 듯했다.

서정민이 한발 늦게 입을 떼었다.

“자네, 유머 감각이 있군. 그러지 말고 한 명씩······.”

“모든 포지션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럼 4명이 나서서 시험하면 되지.”

“제정신인가. 유진호 플레이어!”

“아, 그리고 먼저 말 놨으니까 이쪽도 편하게 한다.”

난 흑호 팀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들어와.”

언제 하나하나 다 패냐.

한 번에 상대해 주마.

* * *

-방어막 기동.

-레벨 5 이하의 충격은 완전 무효화됩니다.

-정해진 충격량을 초과할 경우, 방어막 기능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훈련장 내부가 연한 초록색 빛으로 뒤덮인다.

전에 사설 트레이닝 센터에서 봤던 방어 마법이다.

난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두둑, 근육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느낌이 목덜미에 전해진다.

-저치들이 그대를 이용하려고 했던 무도한 이들이로구나.

“여신님, 안 끼어들고 오래 참았네?”

-분위기를 보아하니 여가 가담해서는 안 될 것 같더구나.

“딱히 그런 건 아니었는데.”

-호호호, 그렇게 말한다면야 다음에는 망설이지 않고 가담하겠느니라.

닉스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었다.

-여의 도움은 필요 없느냐?

“당장은. 밀릴 것 같으면 바로 말할게.”

-알겠느니라.

닉스와 잡담을 나누고 있는 동안, 흑호 팀은 전투 준비를 끝마쳤다.

“유진호 플레이어,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나?”

“후회는 무슨.”

“아무래도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알려 줘야겠군.”

서정민은 진형 후위에서 갖은 폼을 잡았다.

그 하늘이 누군지.

대련을 해 보면 알 수 있겠지.

“하늘이라는 게 혹시 떠드는 재주를 말하는 건가?”

“이······ 시건방진 놈이!”

서정민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한껏 일그러진 얼굴 위로 경멸 가득한 눈동자가 번들거린다.

저 모습이 서정민이라는 작자의 본성이라는 거겠지.

“봐줄 것 없다. 흑호 팀! 유진호를 제압해!”

서정민의 외침을 신호탄으로 흑호 팀 전원이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모든 포지션을 한 명씩 포함한 안정적인 구성.

팀 후위에 있는 서포터가 버프 주문을 하나씩 걸었다.

[레서 스트랭스]

[어질리티 업]

[하드 아머]

겹겹이 쌓이는 보조 마법.

이 정도면 아이언 등급 서포터라고 해도 믿겠는걸.

나는 [화염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보석에 맺힌 불꽃.

손가락을 가볍게 퉁기자, 파이어볼이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마나 배리어.”

“아이스 월!”

우윳빛 막과 얼음으로 된 벽이 정면을 감싼다.

얼음 마법은 서정민.

배리어는 서포터 포지션의 플레이어의 솜씨다.

파이어볼이 막에 닿는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이 일어났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마나로 된 방어막을 부수고 뒤에 있는 얼음벽에 침투했지만.

벽을 감싼 냉기에 주춤하더니 절반 정도를 녹이고 사그라졌다.

“어스 스파이크.”

콰콰콰!

돌기둥 여럿이 솟구치면서 흑호 팀을 향해 나아간다.

“티, 팀장님, 저 마나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거친 숨을 내뱉는 서포터.

“내가 막는다. 호흡을 가다듬어.”

서정민도 내가 마력을 재배열하는 동안 놀고 있지만은 않았다.

허공에 감도는 하얀 기운.

냉기 마법을 준비할 때 발생하는 냉기다.

“아이스 필러!”

재배열된 마력이 해방된다.

마법의 좌표는 어스 스파이크의 진로.

바닥에서 솟구친 얼음 기둥이 내 마력을 옭아맸다.

[탐욕의 가호]로 머드 트랩을 물들여서 오크 마법사의 어스 스파이크를 묶어 놓은 것과 비슷한 원리.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마력 투입을 중단했다.

집중력이나 마력 싸움으로 이어가도 이길 수는 있겠지.

상대할 적이 서정민만 있다면 말이야.

“유진호의 마법 실력은 상당하다. 틈을 주지 마.”

“예!”

근거리 딜러와 탱커가 무리에서 이탈, 좌우로 갈라지면서 달려들었다.

[머드 트랩을 사용합니다.]

[반경 10미터가 진흙으로 변합니다.]

탱커의 앞에 머드 트랩을 깔아서 진로를 방해했다.

일그러진 습격 타이밍.

근거리 딜러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걸음 속도를 더 올렸다.

“앞에 막아 줄 사람도 없으면서 겁도 없이!”

지면을 박차는 근거리 딜러.

몸 전체가 은은한 붉은 빛으로 뒤덮인다.

근력과 민첩에 비례해서 파괴력을 늘려 주는 스킬, [용맹한 일격]이었지?

나를 원거리 딜러로 생각하고 거리를 좁힌 모양이다.

유감스럽게도 이쪽은 근접전이 주력이거든.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흑호 팀원을 바라보고는.

“어금니 꽉 깨물어라.”

오른손을 꽉 말아 쥐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