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67화 (67/300)

67화

붉은 스포츠카가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조수석에 앉은 여인, 홍예슬이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왜 그랬어?”

“뭐가.”

“날 구해 줬다고 해도 그렇지. 너무 과한 요구였잖아.”

홍예슬의 눈가에 은은한 노기가 감돌았다.

그녀 때문에 홍윤수가 손해를 봤다고 생각해서다.

“손해를 볼 건 없는 제안이다.”

“오빠!”

“널 구해 준 보답이라고 그런 거 아니야.”

홍윤수는 진지하게 대꾸했다.

“진심이야?”

“야망이 크잖아. 실력도 나름대로 검증을 해 나가는 중이고.”

“초반에 반짝하다가 사그라진 플레이어가 얼마나 많은데.”

“30층까지 최고 경신. 성공하기만 하면 내가 고개를 숙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대체 무슨 생각인지.”

홍예슬은 짧게 한숨을 쉬던 중,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만약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 우리 팀에 안 넣는 거지.”

“천년설삼도 줘 버렸잖아.”

“잊었니? 그건 원래부터 주기로 한 거야.”

“그야…….”

“폐가에서는 희생자들의 유골도 발견됐어. 너, 정말로 큰일 날 뻔했다고.”

“알아. 그래서 더 부담스러운 거야.”

“유진호 플레이어한테 필요 이상으로 베푸는 것 같아서?”

“그래.”

홍윤수는 빙그레 웃었다.

“아까도 말했잖아.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이다.”

1분 전에 한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하게 말하는 홍윤수.

머릿속에는 방금 전에 본 사내의 형상이 계속 아른거렸다.

‘유진호, 라.’

홍윤수는 5층에서 [윈드 워커]라는 직업을 얻었다.

바람의 힘을 다루는 근접 딜러 직업.

원소 계열 마법사보다도 바람의 흐름에 예민하며, 상대의 기질이나 힘 같은 것도 감지할 수 있다.

‘보통이 아니었어.’

홍윤수는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플레이어다.

정·재계의 거물이라도 경시할 수 없는 위치.

한데, 진호는 그런 자신을 보고도 호흡이 평온했다.

안정된 기도.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소환수의 기척도 독특했다.

‘이질적으로 무거운 공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진한 어둠.

정말로 탑의 저층에서 얻은 사역마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탑을 오르는 과정에서 여러 인물들을 마주쳤지만, 닉스처럼 이질적인 공기를 휘감은 존재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말하는 것만 보면 믿음이 하나도 안 간다.’

30층까지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다?

플레이어의 기량에 천운이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서 기록 공략을 위해 천문학적인 금전과 인력을 들여서 전문적인 팀을 짜도 간간이 바뀌는 게 최고 기록이니.

진호가 그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그럼에도.

‘왜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홍윤수는 이성에 반하는 상념에 고개를 휘휘 저었다.

끼이이!

움직임이 너무 격해서일까.

붉은 스포츠카가 순간 좌우로 움직였다.

“오, 오빠, 앞에 보고!”

“그렇지. 미안.”

홍윤수는 짧게 사과하고는 운전에 집중했다.

진호에 대해 의도적으로 떠올리지 않으려는 듯이.

* * *

“이야. 생각도 못 했던 수확이네.”

-그렇게도 좋느냐?

“아무렴. 당연한 걸 왜 물어.”

나는 목함을 보면서 연신 웃음을 흘렸다.

천년설삼은 먼 미래에도 구하기 힘든 영약이다.

아니지. 미래에는 더 구하기 힘들어진다고 해야겠구나.

나는 방바닥에 엉덩이를 댔다.

“여신님.”

-알고 있느니라.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터이니 안심하여라.

“좀 이따 보자고.”

목함을 열자, 아까 맡았던 청량한 향이 코를 간질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천년설삼을 입에 넣었다.

와그작-!

어금니로 설삼의 몸뚱이를 짓이길 때마다 자연지기를 잔뜩 머금은 액체가 새어 나왔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즙.

지금이다.

나는 삼재기공을 운용했다.

천년설삼에 깃든 어마어마한 기운이 혈도를 따라 전신으로 회전한다.

‘와, 장난 아니네.’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혈도에 밀려드는 자연지기.

빈약한 내공으로는 천년설삼의 기운을 인도하는 게 고작이다.

회귀 전의 기억이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면 몸뚱이가 설삼의 자연지기에 찢겨나갔을걸.

무아지경에 빠진 채로 한참 동안 기운을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대주천을 거듭할수록, 설삼에 깃든 막대한 기운이 내공으로 치환되는 게 느껴진다.

얼마 정도 지났을까.

후- 짧은 한숨을 내뱉고는 눈을 떴다.

[내력: 37.1 → 98.5]

[삼재기공이 5성에 도달했습니다.]

[내공 소모가 10% 줄어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내공.

중국에서는 내공 60포인트를 1갑자라고 하던데 말이야.

그 기준점은 후일 무공 사용자들의 지표로 자리 잡게 된다.

무공 스텟은 레벨 업 보너스로 투자할 수 없기에, 더욱 가치가 높았다.

-큰 성과를 얻은 듯하구나.

“어떻게 알아?”

-강한 빛이 그대의 눈가에 아른거리느니라.

닉스의 말에 거울을 흘겨보니.

과연, 형형한 빛이 망막 위에 맺혀 있었다.

“그렇게까지 좋은 현상은 아닌데.”

-왜 그러느냐?

“흡수 못 한 기운이 방출되는 현상이거든.”

천년설삼에 담긴 자연지기는 내 생각보다도 더 강했다.

일부는 내공으로 녹여 내지 못해서 신체 곳곳에 스며들었다.

눈동자에 감돈 빛도 흡수 못 한 자연지기의 일부다.

당장 일깨우기는 어렵고.

내 무공 수위가 올라가야 전신 세맥에 스며든 자연지기를 일깨울 수 있을 거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나는 히죽 웃었다.

단전에 자리를 잡은 막대한 내공.

수치상으로는 마력의 절반 정도이지만, 실제 출력은 마력보다 훨씬 뛰어났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급격하게 늘어난 내공을 제대로 활용할 만한 상승 무공이 없다는 점?

혈조공은 삼류 무공.

달맞이 돌로 얻은 내공만 있어도 충분했다.

‘빨리 그 층에 가야겠어.’

탑 13층에 숨겨진 무공 비급.

그걸 얻으면 증대된 내공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거다.

아니지.

1갑자를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는 상시 운용하긴 어려우려나.

“참, 여신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어.”

-호오, 신대에는 온갖 공물을 받아온 여이니라. 충족시킬 자신이 있느냐?

“당연하지.”

방 한쪽에 놓인 택배를 뜯었다.

타원형 통을 달아 놓은 기계.

-볼품없이 생겼구나.

닉스의 평가는 짧고도 강렬했다.

“조금 있어 봐. 그 생각이 달라질 거야.”

난 자신만만하게 대꾸하곤, 설탕을 기계에 들이부었다.

덜컹- 덜컹- 기계 모터가 돌아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준비는 끝난 것 같군.

막대기를 들고 타원형 통에 붙은 문을 열어젖혀서 그 안에 불쑥 넣었다.

“내가 마법을 보여 주지.”

사아악!

하얀 실이 하나둘 막대에 달라붙기 시작한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닉스.

-그대여, 이건…….

“맞아. 솜사탕 기계다.”

-오, 오오오오!!!!

말했잖아.

그 생각, 달라질 거라고.

-어서 빨리. 여에게 솜사탕을 헌상하여라!

“어, 어어. 아직 안 됐는데 그렇게 흔들면 망가진단 말이야!”

쿠당탕!

닉스에게 제대로 된 솜사탕을 주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

* * *

다음 날.

난 7층에 바로 도전하는 대신, 플레이어 종합상가로 향했다.

욕망의 주머니도 용량이 무한하지는 않거든.

미션에서 챙긴 부산물들은 시간 될 때마다 처분해야 한다.

“이번에는 그렇게 많지 않군요?”

“뭐, 적당히 처분해 주십쇼.”

“예예.”

부산물 매매 상인에게 물량을 넘기고는 귀가하려고 할 때.

정장 차림의 여인이 내 앞에 섰다.

보아하니 나한테 볼일이 있는 모양인데…….

기억에 없는 사람이다

“뉘신지?”

“저는 백호 길드의 스카우터, 임유리라고 합니다.”

“백호면 국내 3대 길드 중 하나군요.”

“진호 님께 제안드릴 게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어요.”

“실례인 줄은 알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나는 임유리의 반응을 살펴볼 겸, 날카롭게 대꾸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연락을 드릴 방법이 없어서요.”

“제 연락처는 이미 공공재 아닙니까?”

“확인을 안 하시던걸요.”

아, 생각 못 한 맹점을 찌르네.

보통이 아니군.

-이건 그대의 방만함 때문 아니더냐.

조용히 계세요, 여신님.

난 어깨를 붙든 닉스를 짧게 째려보고는, 다시 임유리를 직시했다.

“백호 길드 윗선에서 1천억이라는 금액을 납득한 겁니까?”

“아,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저희가 드린 제안은 가입 권유가 아닙니다.”

백호의 스카우트 담당이 나왔는데 길드 가입이 목적이 아니라.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흥미를 끄는 건 성공했다.

“진호 님, 어제 6층의 신기록을 경신하셨더군요.”

“별것 아닌 일이죠.”

“소문과 달리 겸손하시네요. 1층부터 모든 기록들을 다 경신하셨으면서요.”

“정말 별것 아니라서 하는 말인데.”

임유리의 눈가가 잘게 떨렸다.

방금 말은 내가 생각해도 좀 재수가 없었군.

“그렇게 말씀하시니, 이 제안을 드리기가 한결 편해졌네요.”

임유리는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 쪽으로 돌렸다.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화면으로 향했다.

“7층 공동 공략?”

“네. 이번에 저희 길드에서 훈련시킨 신예들을 투입해서 7층을 공략하려고 합니다.”

7층 미션은 한마디로 레이드다.

다섯 명으로 한 팀을 구성,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방식이다.

“백호의 신예 팀에 들어와 달라…….”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이해가 안 가는 부탁이군요.”

“근접 딜러 역할을 맡은 한 명이 최근 부상을 당해서요.”

입술을 질근 깨물면서 낭패감을 내비치는 임유리.

난 태블릿에 적힌 조건을 훑어보았다.

참여 시 성공 유무를 따지지 않고 20억 지불.

탑 7층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 유니크 등급 아이템을 하나 준다는 조건까지.

백호에서는 꽤 후한 조건을 제시했다.

“팀워크 훈련 항목은 뭐죠?”

“아, 바로 7층에 도전할 수는 없으니까요.”

임유리는 훈련 일정을 짧게 설명했다.

백호 길드의 신예들은 반년 동안 훈련을 받으면서 호흡을 맞춰 왔다고 한다.

그들의 연계에 100% 맞추지는 못해도 기본 훈련은 해야 한다는 거다.

“훈련 일정은 내일이고요.”

“뭐, 좋습니다.”

태블릿에 서명을 하니, 임유리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겠죠.”

나는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임유리가 떠나간 후.

닉스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계약자여, 너무 수상하지 않느냐?

“여신님 눈에는 뭐가 그렇게 수상쩍게 보였을까.”

-그 계약서 말이니라. 백호라는 단체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이거늘.

“백호에서는 나를 이 자리에 앉히기만 해도 이득이라서 그래.”

팀원 하나가 비었다는 건 100% 거짓말이다.

현시점만 해도 탑을 오르면서 입은 상처는 미션 종료 후 모두 치료되는데 부상을 입을 일이 뭐가 있겠어?

훈련을 아무리 세게 해도 그렇지.

-여는 이해가 안 가는구나.

“백호는 내 유명세를 이용하겠다는 거야.”

탑 저층의 기록들을 경신하는 플레이어와 한 팀을 이룬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뉴스거리다.

거기에, 백호의 신예 팀이 나보다 더 활약하면…….

“내 유명세까지도 흡수할 수 있지.”

-참으로 파렴치하구나. 그런 날강도 같은 짓을 획책하다니.

“백호 길드도 내부 사정이 꽤 복잡해서 그래.”

-그대는 따로 짐작 가는 게 있나보구나.

“조금?”

짐작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일을 알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다.

백호 길드.

아니지. 그 투자자이자 모기업인 LS그룹 오너 가문의 가정사라고 해야겠구나.

-한데, 그대는 왜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았으면서 제안을 받아들였느냐?

“왜기는. 자신 있으니까.”

백호에서 깔아 놓은 판.

7층 공략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주연과 조연이 바뀔 뿐.

거기에 말이야.

회귀 전의 기억이 맞으면 내부 사정을 이용할 수도 있거든.

나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흐흐.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자, 닉스가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