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플레이어의 힘을 아무 곳에서나 펼쳤다가는 기물 파손하기 십상.
방어 마법을 유지 중인 트레이닝 센터에서 수련해야 탈이 안 생긴다.
‘돈 모이면 개인 수련장 하나 만들어야지.’
플레이어 트레이닝 센터는 일반적인 헬스장처럼 흔하지 않다.
아무리 가까워도 지하철로 30분 거리.
옷을 대충 걸쳐 입고 집 근처에 있는 트레이닝 센터를 찾아갔다.
“저희 센터를 이용하시는 건 처음이십니까?”
“예. 작은 사이즈로 6시간 대실이요.”
“알겠습니다. 근데 혹시…… 유진호 플레이어 님 아닙니까?”
“맞는데요.”
트레이닝 센터 사장은 두 눈을 껌뻑거리더니 와-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유진호 플레이어님이 저희 센터에 오셔서 정말 영광입니다.”
“뭘 영광까지야.”
“실례가 안 되면 서명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회귀 전에는 수도 없이 겪은 상황.
난 능숙하게 A4 용지에 서명을 휘갈겼다.
“감사합니다. 이건 저희 센터의 기념으로 삼겠습니다!”
센터 사장님은 첫 방문 기념이랍시고 무료 이용권을 쥐여 주었다.
공짜로 이용하게 해 준다는데, 이건 사양할 필요가 없지.
-호오, 그대를 알아보는 자가 있구나.
“앞으로 더 늘어날 거야.”
-여의 계약자라면 당연한 일이니, 더 분발해서 명성을 떨치어라.
“분부대로 합죠.”
닉스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30평 너비의 공간.
방 곳곳에는 마법 회로가 쳐져 있다.
충격을 흡수하는 방어 마법이다.
「트레이닝 센터 이용 전, 테스트를 실시하겠습니다.」
「문 옆에 있는 샌드백을 타격해 주십시오.」
방의 내구력은 사이즈에 따라 달라진다.
힘 조절을 잘못했다가 방어 마법을 날려 버리면 마법진을 다시 새겨야 하기에, 트레이닝 센터 이용 전에는 힘 체크가 필수였다.
부숴 먹으면 수리비 전액을 물어야 한다는 조항도 있고 말이야.
‘오늘은 극야를 수련하려 온 거니까.’
극야의 힘을 주먹 형태로 구현.
샌드백을 있는 힘껏 쳤다.
마법적 조치가 가해진 샌드백이 충격량을 계산했다.
「3등급 이내입니다. 현재 공간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계약자여, 반드시 전력으로 쳐야 할 이유가 있느냐?
그야 힘을 아껴서 치면 등급을 속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부수면 내가 다 변상해야 해.”
-적당히 힘을 조절하면 되지 않느냐.
“힘 조절하면 트레이닝 센터를 온 이유가 없지. 그리고 부숴서 변상하면 솜사탕 수천 개는 살 돈일걸?”
-여가 잘못했다.
닉스한테는 화폐 단위=솜사탕으로 확실하게 인식이 된 모양이다.
솜사탕 효과 확실하구먼.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극야의 힘을 느끼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정수리에 뭉친 짙은 어둠.
극야의 힘이 느껴진다.
‘처음 포식했을 때보다 엄청 늘어나긴 했네.’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는 극야의 양이 늘어났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극야 스텟이 늘어났다 한들, 구현 가능한 수치가 많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극야의 힘을 관조해보니, 전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어둠이 느껴졌다.
-과연. 필멸자라고는 볼 수 없을 만한 성장세로구나.
“다 보너스 스텟발이지.”
나는 정수리에 응축되어 있는 어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엉켜 버린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듯.
스스슷!
내 의지를 반영시킨 어둠이 신체 바깥으로 구현되었다.
발밑을 검게 물들인 극야의 힘.
정수리에 자리를 잡은 어둠과 비교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쯧, 나는 혀를 찼다.
‘집중해도 출력이 크게 늘어나지가 않아.’
극야의 힘은 아직까지 전투에서 보조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독주머니 수확 같은 단련으로 미세한 컨트롤은 늘어났지만, 정작 출력 자체가 높지 않아서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가 어렵다.
‘안토니오 녀석은 이렇게 찔끔찔끔 쓰지 않았단 말이지.’
브라질 암흑세계를 장악했던 희대의 범죄자, 안토니오가 손짓을 한번 하면 그림자가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어둠이 맺힌 곳에서는 여지없이 그림자로 된 칼날이 튀어나왔고, 놈의 그림자 조종술에 지배당하는 이들도 있었다.
‘극야의 컨트롤보다, 출력 자체를 올려야 한다.’
정수리에 깃든 심연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았지만.
극야의 힘을 더 끌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몇 번이고 극야를 구현하는 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스스스슷!
5.5에서 6, 그리고 7.
외부로 구현되는 극야의 양이 조금씩 늘어났다.
“이 정도로는 안 돼.”
후우- 짧게 한숨을 쉬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극야를 다루는 데 집중할수록, 포식으로 얻은 능력들을 다루는 데 소홀해진다.
집중 대비 효율이 안 좋아.
-무엇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
“여신님의 능력, 다루기가 너무 어려워.”
회귀 전에는 포식으로 여러 능력을 다루어 보았다.
염동력, 원소 마법, 무공 등.
갖가지 힘에 이어, 신들의 유물이나 유적에서 흡수한 가호도 다루어봤다.
‘이건 그중에서도 다루기가 제일 어렵단 말이야.’
최상의 운용 난이도.
개념신의 영역에 이른 닉스의 힘인 만큼 출력을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여신님, 극야를 다루는 요령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본디 어둠이라는 것은 여에게서 난 것. 요령이라고 한들…….
“예, 예.”
그렇지.
이 여신님은 밤이라는 개념을 빚어낸 신이다.
닉스에게 어둠이란, 숨 쉬듯 자연스럽게 다루는 것.
괜한 걸 물었군.
-하나, 그대를 도울 방도는 있는 듯하구나.
“어떻게?”
-여가 그대의 어둠을 다루었던 때를 기억나느냐.
“당연하지. 근데 그건 10일에 1번 쓸 수 있다고 했잖아.”
-극야를 직접 다루는 것이 아닌, 동화 정도라면 가능하니라.
아. 그러고 보니 닉스가 처음으로 극야의 힘을 내려 줬을 때도 같은 방법으로 수련을 도와줬었다.
“저번처럼 여신님이 아파하는 거라면 사양하지.”
-서, 설마. 여를 걱정해 주는 것이더냐?
격앙된 목소리로 대꾸하는 닉스.
음, 내가 여신님의 자존심을 긁었나?
“우린 파트너잖아.”
-파트너…… 그렇구나. 맞도다.
닉스의 목소리가 빠르게 가라앉았다.
변덕이 죽 끓듯이 하는구먼.
“내가 따로 할 건 없고?”
-긴장을 풀고 여의 존재를 받아들이면 되느니라.
닉스는 저번처럼 내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꿈틀.
그림자 위로 파문이 일렁인다.
‘느껴진다.’
내 어둠에 자리를 잡은 커다란 존재감.
닉스의 아우라다.
탑 1층에서 보여 준 것처럼 극야의 힘에 간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닉스의 존재감만으로, 어둠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좋아. 다시 해 보자.”
-그 기세이니라.
닉스의 응원이 머릿속을 붕붕 울렸다.
* * *
수련 1시간째.
뭉쳐 있는 극야의 힘을 조금 더 풀어낼 수 있었다.
3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는 풀어낸 힘을 외부로 구현해낼 수 있었고.
트레이닝 센터 대여 시간이 다 되어 갈 때 즈음에는…….
콰콰콰!
70에 이르는 극야의 힘 중, 50이나 구현해 낼 수 있었다.
“와.”
나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50에 해당하는 극야의 힘을 일시에 구현해 내자, 어둠으로 된 파도가 방을 뒤덮었다.
말 그대로 ‘구현’만 했을 뿐, 공격 의지를 싣지 않았기에 벽과 충돌하자 포말을 일으키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힘을 실었으면 트레이닝 센터를 박살 내 버렸겠지.
-단기간에 이만큼이나 어둠을 다루게 되었을 줄이야.
“다 여신님이 도와준 덕이야.”
내친김에 전투 때에도 어둠에 동화하는 게 가능하냐고 질문을 했다.
닉스는 고개를 좌우로 젓고는.
-그림자가 가만히 있을 때만 가능하니라.
……라며 일말의 가능성조차 남기지 않았다.
“쩝, 아쉽군.”
실전용은 아니라는 건가.
닉스가 그림자에서 몸을 뺀 후, 다시 극야를 사용해 보니 약 20 정도 되는 어둠을 구현할 수 있었다.
‘꽤 많이 늘기는 했네.’
물론 20에 해당하는 힘을 구현하려면 꽤 집중해야 했다.
전투 중에 극야의 힘을 100% 발휘한다…….
갈 길이 멀구먼.
“극야 스텟을 늘릴 때마다 적응이 필요하겠어.”
-정진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여신님이 준 힘이잖아. 빨리 익숙해져야지.”
나는 극야의 힘을 갈무리했다.
“유진호 님, 다음에도 꼭 저희 센터를 이용해 주십쇼!”
트레이닝 센터 사장의 극진한 인사.
충분히 돈을 모으기 전에는 여기로 와야겠어.
건물 밖으로 나서자, 날이 꽤 어두워져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막 넘어간 태양.
길가에 설치된 조명들이 하나둘 빛을 발한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참으로 보람찬 하루였도다.
“아직 안 끝났는데?”
-할 일이 아직도 남았느냐.
“운기행공 해야지.”
남은 시간도 허투루 보낼 생각은 없었다.
삼재기공.
가장 급이 낮은 삼류(三流) 심법이지만, 조금이라도 내공을 쌓을 수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어.”
-무슨 뜻이더냐?
“큰 목표를 이루려면 차근차근 쌓아가야 한다는 말이야.”
-과연. 좋은 뜻이로구나. 그대와 잘 어울리느니라.
닉스는 무엇이 좋은지,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다만.”
-후후훗.
이 여신님, 왜 이렇게 하이 텐션인 거야?
그때, 부웅! 부웅! 하고는 주머니 틈에서 진동음이 새어 나왔다.
“이놈의 연락처는 조만간 바꾸든 해야지.”
-계약자를 찾는 것 같다만?
“요새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이 꼬여.”
모르는 번호.
보나 마나 길드 가입 권유겠지.
유명해지는 것도 귀찮단 말이야.
전화를 쥔 채로 걷다 보니, 금세 진동이 멎었다.
부웅!
아니군.
휴대전화가 연속으로 울리는 걸 보니 문자라도 남긴 모양이다.
뭔 내용인지 속아 보는 셈 치고 확인해 볼까.
[발신: 010-XXXX-XXXX]
아저씨. 저번에 구해 주셨던 학생, 홍예슬이에요.
저희 오빠도 플레이어인데, 아저씨한테 어떻게든 보답을 하고 싶다고 말해서 연락드려요.
잠깐만.
홍예슬이라면…… 홍윤수의 동생이잖아!
동명이인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오빠가 플레이어라는 걸 보면 정답인 모양이다.
내 연락처를 받아 갈 때만 해도 예의상으로 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먼저 연락을 할 줄이야.’
휴대전화를 확인하길 잘했다.
-지인이더냐?
“아, 지인은 아닌데. 중요한 연락이었어.”
홍윤수는 초창기 플레이어로, 이미 한국에서 명성을 떨치는 중이다.
-하면 연락이 왔을 때 바로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닉스의 말은 옳았다.
근데 일부러 통화를 안 받아 놓고 이쪽에서 전화 걸긴 조금 민망하거든요?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아저씨 맞나요?
“전 아저씨가 아니라 유진호입니다.”
-어쨌든 그때 구해 준 아저씨 맞잖아요. 전화 안 받으셔서 엉뚱한 연락처인 줄 알았어요.
홍예슬은 상큼한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10대의 활기라.
회귀 전, 멸망의 시대를 살아온 입장에서는 참 적응이 안 되는군.
-아저씨, 혹시 지금 시간 되세요?
“다른 일정은 없습니다만.”
-오빠아아아!!!!!
홍예슬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설마, 당장 보자는 건 아니겠지?
-아저씨, 저희 오빠가 뵙고 싶다는데 시간 좀 내줘요.
“…….”
나는 홍예슬의 추진력에 말문이 막혔다.
홍윤수와 연을 만들 생각으로 연락한 거지만, 이렇게나 빨리 진척될 줄이야.
‘오히려 좋아.’
랭커 홍윤수와 연을 맺는 건 계획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만남을 잘 활용하면 계획을 확 앞당길 수 있겠어.
-또 음흉한 미소를 짓는구나.
닉스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