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산산조각 난 골렘들.
무력시위로는 딱 좋은 상대였다.
-저들이 모두 그대의 말에 집중하는구나.
“유치하긴 해도 효과적이지.”
-한데, 저들의 정수는 섭취하지 않는 것이더냐?
닉스는 쓰러진 골렘의 파편들을 가리켰다.
“이 녀석들은 무생물이라서.”
무생물에게도 정수가 깃들기는 한다.
일전에 포식했던 가이아의 정수나 우투리처럼 말이지.
한데, 공장에서 찍듯 만들어진 골렘 따위에는 그만큼의 ‘격’이 스며들지 않는다.
잠깐만.
‘프레데터로 전직하면 포식 범위가 넓어진다고 했잖아?’
밑져야 본전이라고, 손해 볼 건 없었다.
산산조각 난 골렘의 몸뚱이에 손을 얹고는 포식을 사용했다.
[전투 골렘 - E타입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일반]
[포식한 정수: 2.7%]
이게 된다고?!
난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비명이 목구멍 너머로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회귀 전 스캐빈저로 전직했을 때는 보지 못했던 효과다.
“여신님.”
가라앉은 목소리로 부르니 닉스가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더냐?
“대박이야.”
닉스는 가루가 된 골렘의 핵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엣헴. 보아라, 이게 바로 여의 통찰력이니라!
이라고 말하고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쓰러트린 골렘 숫자는 50기.
정수를 채우기에는 충분한 숫자다.
“여기 마정석은 다 내 겁니다?”
골렘들의 파편을 가리키자, 다들 넋이 빠진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팀원들에게 힘 과시를 하려고 벌인 행동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웃음을 입에 건 채로 골렘 파편들을 포식했다.
35마리째를 포식하는 순간.
[포식한 정수: 100%]
[근력 + 2]
[맷집 + 3]
[스킬 - 돌 피부가 추가됩니다.]
[스톤 스킨]
등급: ★
분류: 액티브
사용자의 피부를 돌처럼 단단하게 만든다.
전개 시 민첩이 20% 감소한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전투 골렘의 정수에서 추출한 스킬이 추가되었다.
갑피와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지만 둘이 호환되지는 않았다.
피부 바깥으로 단단한 외피를 만드는 [가시 갑피].
반면 스톤 스킨은 피부 자체를 단단하게 만들어서인 듯했다.
‘오히려 좋아.’
가시 갑피와 스톤 스킨을 중복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
한계 이상의 피해를 받아서 갑피가 깨져도 [스톤 스킨]으로 완화하는 게 가능하다.
그나저나.
정수를 흡수하고도 골렘 파편이 꽤 남아 버렸군.
골렘 잔해에서 건질 거라고는 마력 노심뿐인데…….
부산물 채집 키트로는 뜯어내기 어려울뿐더러 바깥에선 큰 가치를 지니지도 않았다.
탑 초창기에는 꽤 비쌌다고 하던데 말이지.
“모르스.”
-진호 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움 상인 모르스가 공간을 가르고 나타나자, 플레이어들이 놀란 기색으로 바라봤다.
“6층에서 상인이 나오는 건 랜덤이잖아.”
“아니. 그것보다 저 플레이어, 지금 상인을 부른 건데?”
“소문으로만 듣던 전속 상인 아닌가.”
“무슨 6층 미션에 도전하는 플레이어한테 전속이 붙어?!”
플레이어 중 일부는 모르스를 불러낸 게 나라는 걸 알아채고는 경악 섞인 눈빛으로 바라봤다.
“유진호 님, 이번에는 어떤 상품을 찾으십니까?”
“저기 골렘들 잔해에서 마력 노심 좀 캐라.”
“열다섯이면 인건비도 안 나오는뎁쇼.”
“성질 급하기는. 네 일거리는 금방 만들어 줄게.”
“아이고, 저야 진호 님만 믿죠.”
모르스는 과장되게 손을 비비더니 골렘 잔해에서 노심을 빠르게 분리했다.
하여간 손재주 하나는 좋단 말이야.
마력 노심 분리가 끝나갈 무렵.
한 팀으로 묶인 플레이어들도 전투 준비를 마쳤다.
“이제부터 작전을 설명한다.”
잠시 후, 플레이어 무리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
내 계획은 단순했다.
데모닉 파워로 모든 능력치를 마력으로 치환.
최대 화력을 퍼부어서 요새 정문을 박살 내는 것이다.
“공성추 없이 문을 부술 수 있습니까?”
“마법 위력만 충분하다면.”
요새 정문을 반드시 공성추로 뚫을 필요는 없다.
방어 마법으로 보호를 받는 문을 파괴할 만큼 위력적인 마법을 쏟아부을 수만 있다면 말이야.
“골렘들이 나를 방해하려고 나올 때 막아 주면 된다.”
“예…….”
팀원들은 꺼림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문까지는 약 50미터.
벽 위에 선 골렘들의 공격 범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거리다.
[데모닉 파워를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가 마력으로 치환됩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여신님.”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닉스가 정수리에 손을 얹자, 밤의 축복이 몸에 깃들었다.
모든 능력치가 40% 상승되는 버프.
데모닉 파워 때문에 혜택을 받는 건 마력뿐이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수배로 증폭된 마력을 재배열했다.
“어스 스파이크.”
시동어와 함께 지면이 반으로 갈라졌다.
갈라진 틈 사이에서 솟구치는 커다란 바위들.
팀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6층에서 이럽션이라고?!”
“대지 마법에서도 꽤 높은 수준이잖아.”
“아니야. 시동어는 어스 스파이크라고 했단 말이야.”
“저 마법의 어딜 보면 그 말이 나오냐?”
지면에서 튀어나온 바위 다발이 요새 정문을 두들겼다.
콰앙-! 어스 스파이크와 충돌한 문 곳곳이 움푹 파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
[리페어]
정문 전체가 초록색으로 물든다.
푹 파인 부위에서 묘한 소리가 나더니, 조금씩 펴진다.
“역시 한 번 가지고는 부족하나.”
어스 스파이크만으로 문을 열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곧바로 파이어볼을 전개.
복구 중인 정문으로 투척했다.
그 순간 닫혀 있던 문이 좌우로 젖혀지고, 그 사이로 골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골렘 무리는 정면으로 날아드는 파이어볼을 몸뚱이로 받아 냈다.
매캐한 연기 아래에 깔린 골렘 파편들.
골렘들이 몸을 바친 탓에 정문에 그을음 하나 묻히지 못했다.
“역시 쉽게 보내 주지는 않는다는 거군.”
-참으로 태평하구나.
“뭐, 예상 못 했던 것도 아니니까.”
골렘들이 열린 문 사이로 꾸역꾸역 몰려나왔다.
문과의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에 금세 내가 있는 곳까지 다가왔다.
“제길. 당신 말 믿고 하는 거니까 확실히 책임지십쇼.”
“서포터가 없는 시점에서 어차피 가능성이 없었어.”
“문 좀 제발 박살 내 줘요!”
팀원들이 골렘들의 공세를 막아섰다.
후- 짧게 한숨을 쉬고는 다음 마법을 준비했다.
‘어스 스파이크로는 안 돼.’
문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전투 골렘들.
어스 스파이크를 재차 사용하면 골렘들에게 가로막혀서 힘 대부분을 소진할 게 뻔했다.
파이어볼도 마찬가지.
선택지는 처음부터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에너지 볼트를 사용합니다.]
[최대치까지 마력을 충전했습니다.]
과충전된 에너지 볼트가 허공을 가르면서 날아갔다.
골렘 한둘이 도약해서 마탄을 막으려 했지만, 가슴팍에 큰 구멍을 남긴 채 바닥에 쓰러졌다.
파이어볼과 달리 중도에 충돌해도 목표까지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에너지 볼트.
닫힌 채로 수리 중인 문과 충돌하는 순간.
펑! 정문이 한계를 넘어선 충격을 받고 산산조각 났다.
“요새 정문이 부서졌다!”
“정말로 공성추 없이 문을 부술 줄이야.”
“돌진! 문을 수리하기 전에 넘어가야 한다!”
팀원들은 목에 핏대를 세운 채 전투 골렘들을 밀어붙였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다시금 마력을 재배열, 어스 스파이크를 펼쳤다.
구구구궁!
줄지어 몰려오던 골렘들이 우수수 파괴되었다.
이야, 탱커들이 앞장서 준 덕에 화력에만 집중할 수 있구먼.
진형 후위에서 마법을 난사하고 있을 때.
[데모닉 파워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전신에서 활력이 솟구쳤다.
모든 능력치가 원래대로 돌아온 후유증(?)이다.
“간만에 꿀 좀 빠나 했더니 아쉽네.”
-어허, 후방에 있는 건 그대와 어울리지 않거늘.
“그건 맞는 말이야.”
닉스의 말을 긍정하고는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전투 골렘 E타입의 정수야 모두 포식했지만, 여전히 경험치는 얻을 수 있거든.
내 직업이 경험치를 좀 많이 요구해서 양보할 수 없단 말이지.
츠캉!
쭉 튀어나온 손톱을 탐욕의 가호로 강화, 거침없이 골렘들을 파괴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정문. 보강이 필요하다.」
「적. 계속 침입.」
「배제한다.」
골렘들은 요새 안으로 파고들려는 날 저지하려 했다.
“지금 누구를 저지한다는 거야?”
내공을 실은 손톱.
혈호폭풍조가 허공을 휘젓자, 그 궤적에 휘말린 골렘 몇 기가 일격에 조각나 버렸다.
“형이 신기록 세워야 하니까 빨리 끝내자.”
「임무 수행. 불가능.」
「기능 정지.」
골렘들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쉽게 요새 안으로 진입.
두 눈을 좌우로 돌리면서 요새 내부를 훑어보았다.
“찾았다.”
요새 안쪽에 있는 골렘 공장.
저것들만 부수면 미션 클리어다.
더 시간 끌 필요 없지.
나는 다시 한번 지면을 박찼다.
* * *
산 위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
골렘 공장을 파괴한 흔적이다.
▶ 메인 미션 - 요새 공성전을 통과했습니다.
▶ 클리어 시간: 56분 21초.
▶ 글로벌 팀(231)이 6층 클리어 최단 시간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글로번 팀(231) 전원에게 상회 자유 이용권이 주어집니다.]
[상회 자유 이용권]
등급: 레어
분류: 소모품
미드론 상회 소속 상인을 불러내는 계약서입니다.
해당 미션에서 사용 가능한 아이템 중 하나를 무료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미션 관련 아이템 무료 구매라.
-아쉬운 표정이로구나.
“뭐, 그렇지.”
나는 이미 전속 상인을 두었기에, 언제든지 모르스를 불러낼 수 있다.
원하는 타이밍에 상인을 불러내는 것은 큰 메리트가 없단 말이지.
미션 수행 중에 한 번.
변수를 차단하는 보험 하나가 생긴 셈 쳐야겠다.
“고맙습니다, 유진호 님.”
“당신 덕분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팀원들은 모두 허리를 숙였다.
아무렴.
상회 자유 이용권이 나한테는 큰 의미가 없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다르다.
이번 미션만 해도 상인이 안 나왔잖아.
“자, 쌉니다요. 레어 메탈을 채굴할 수 있는 곡괭이가 단돈 100cp!”
내가 모르스를 불러 주지 않았으면 부수입도 얻지 못했을걸.
-저치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더냐?
“요새 위에는 레어 메탈 광산이 있어. 저기서 채굴하는 거지.”
레어 메탈.
지구에서 나는 철보다 내구도와 탄성이 뛰어난 광물이다.
플레이어들이 6층을 반복적으로 도전하는 이유가 저 레어 메탈 때문이다.
-그대도 캐지 그러느냐.
“시간 낭비야.”
광산에서 레어 메탈을 캐는 건 확률 싸움이다.
정해진 횟수만큼 곡괭이를 휘두르면 광물을 얻을 수 있는데, 레어 메탈이 반드시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거 할 시간에 수련이나 더 하는 게 나아.”
-후후훗, 역시 여의 계약자니라.
무공.
극야의 힘.
[포식]으로 얻은 능력은 모두 숙련도가 100%이지만, 저 둘은 아니다.
특히 극야는 레벨을 올릴 때마다 스텟을 투자했지만, 그에 비해 다룰 수 있는 힘은 미비했다.
“극야도 제대로 다루면 엄청날 거야.”
-여의 힘은 그대를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니라!
“그러니까 수련하러 가야지.”
나는 바벨탑과의 접속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