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데모닉 파워]
등급: ★★★★★
분류: 액티브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를 하나로 모은다.
이때 지정한 능력치를 제외한 모든 스텟은 1이 된다.
마나를 소모한다.
*지속 시간: 60초
큭, 크크크.
웃음이 굳게 닫힌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세르게이 녀석, 제대로 알려 줬네.’
파괴 군주가 지닌 최강의 패.
모 아니면 도식의 스킬이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기사회생의 조커가 될 수 있다.
‘나처럼 직업군의 경계가 모호한 사람한테는 더더욱 좋아.’
고 등급 스킬들은 직업군 제한이 붙는다.
마력이 높다고 해서 무작정 마법을 펼칠 수 없다는 뜻.
한데, 나는 괴물들의 정수에서 마법 스킬을 추출해 낼 수 있다.
그뿐이랴.
힘을 쓸 일이 필요할 때에는 데모닉 파워로 근력에 몰아줘도 된다.
전생에서는 익히지 못한 스킬.
세르게이 녀석도 흉내 내 볼 겸, 한번 시험해 볼까.
“데모닉 파워.”
[데모닉 파워를 사용합니다.]
[사용자의 모든 능력치가 마력으로 치환됩니다.]
[마력: 184.2 → 752]
표기되는 스텟은 752.
여기에 [천재]의 능력이 더해지면 20%가 추가돼서 902까지 오른다.
“큭.”
짧은 신음이 튀어나왔다.
어깨를 강하게 누르는 무기력감.
마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확 줄어든 후유증이다.
-계약자여, 괜찮으냐?
“스킬 후유증으로 힘이 좀 빠진 것뿐이야.”
닉스를 안심시키고는 늘어난 마력을 재배열했다.
[어스 스파이크를 사용합니다.]
콰콰콰콰!
인근 땅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린다.
평소보다 몇 배나 강력해진 위력!
어스 스파이크가 건물 기둥과 충돌하는 순간, 쾅! 소리와 함께 기둥이 산산조각 났다.
-그대여, 스킬의 위력이 훨씬 강해진 것 같다만?
“모든 능력치를 마력으로 치환해서 그래.”
이번에는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화르륵! 완성된 파이어볼이 밑동만 남은 기둥으로 쏘아졌다.
폭발음과 함께 남은 기둥까지도 가루로 화했다.
-어스 스파이크처럼 위력이 극적으로 올라가지는 않는구나.
“채널링 스킬이 아니라서. 수치가 올라가는 만큼 효과를 그대로 보는 게 아니야.”
어스 스파이크는 지속적으로 마력을 불어넣기 때문에 늘어난 스텟의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반면에 파이어볼은 전개에 소모되는 마나가 그대로거든.
마지막으로 시험해 볼 건 마나 사슴한테서 얻은 스킬, 에너지 볼트다.
[에너지 볼트를 사용합니다.]
[최대치까지 마력을 충전했습니다.]
내 기억보다 몇 배나 커진 푸른 구체.
지면에 던지자 수 미터나 되는 구멍이 생겼다.
‘최대까지 충전하면 파이어볼보다 더 강해 보이는군.’
난 턱을 만지작거렸다.
초급 레벨의 마법도 이 정도 위력이라면.
앞으로 정수를 추출해서 더 강력한 마법을 익히면 어느 정도로 위력을 증폭시킬 수 있을까.
비단 마법만이 아니다.
민첩을 증폭시켜서 도주할 때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고.
그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쓸 수가 있다.
“기대되네.”
데모닉 파워를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 생각할수록 입가의 웃음기가 진해졌다.
-또 시작이로구나.
닉스의 한숨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60초가 지나자, 신체 능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스킬 후유증 같은 건 없었다.
지정한 능력치 빼고 모두 1로 변하는 거 자체가 엄청난 리스크였으니까.
데모닉 파워의 지속 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6층 매칭을 선택했다.
-큰 전투를 막 치렀는데 괜찮겠느냐?
“보다시피 멀쩡해.”
허세가 아니었다.
가짜와의 전투에서 입은 피해는 거의 없었다.
작은 찰과상 몇 개가 전부.
그나마도 대지모신의 가호와 재생을 사용해서 모두 치유해 버렸다.
스킬의 혜택을 보는 건 가짜만이 아니거든.
“몸도 풀렸겠다. 바로 다음 미션 진행해야지.”
6층 미션은 글로벌 매칭.
[20/20]
전 세계 대상이라서인지 금방 인원수가 채워졌다.
화아악-!
밝은 빛이 시야를 가렸다.
* * *
6층 미션 시작 장소는 벌판이었다.
정면을 보면 고지대에 자리 잡은 요새가 눈에 들어왔고, 등 뒤에는 목책과 천막 몇 개가 어설프게 설치되어 있었다.
[바벨탑 6층]
[바룬 평원에 입장했습니다.]
[미션 - 요새 공성전]
파이론 마법 연맹에서는 전투용 골렘을 동원해서 바룬 요새를 무단으로 점거했습니다.
요새 안에는 골렘 제조 공장을 건설, 인근 산자락에서 채굴한 자원으로 전투용 골렘을 생산하는 중입니다.
바룬 요새에 있는 공장을 파괴하십시오.
파이론 연맹에서는 주기적으로 골렘을 내보내서 플레이어를 방해하려 할 것입니다.
공성 측 본진이 함락당하면 패배합니다.
▶ 목표: 골렘 제조 공장 파괴.
▶ 서브 미션: 공성 병기 제작.
▶ 제한: 24시간.
-산간지대에 있는 요새를 공략해야 하나 보구나.
“응.”
닉스가 오른손으로 천막을 가리켰다.
-저 거적때기는 무엇이더냐?
“우리 본진.”
참고로 저 천막이 파손되면 곧장 미션 실패 판정이 뜬다.
닉스는 천막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여가 바람을 후 불기만 해도 쓰러지게 생겼구나.
“응. 그래서 방어 인원을 항시 둬야해.”
-참으로 하잘것없구나.
핀잔하는 닉스.
나는 가볍게 웃고는 팀원들을 훑어보았다.
글로벌 매칭이라 그런지 팀원들의 인종이 다채로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서포터 직업군이 없다고?”
“이번 미션, 빨리 클리어하기는 틀렸네.”
“클리어가 뭐야. 요새를 넘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
팀원들의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았다.
나는 미션 현황을 확인했다.
[글로벌 팀(231)]
[팀 구성]
근접 딜러 - 10
탱커 - 4
원거리 딜러 - 5
서포터 - 0
엑스트라 - 1
과연.
분위기가 안 좋을 만하네.
-무슨 일로 저리 한탄하는 것이더냐?
“서포터가 없어서 그래.”
-그것만 가지고 저렇게까지 낙심할 것인지 궁금하구나.
“이번 미션에서는 서포터 직업군만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어.”
나는 서브 미션을 띄웠다.
▶ 서브 미션: 공성 병기 제작
요새 공격에 필요한 공성 병기를 제작하십시오.
공성 병기의 재료는 평원 주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다리 - 단단한 나무 0/5
*공성추 - 담금질을 한 철 0/3, 단단한 나무 0/40(서포터 필요)
-공성추를 제작하려면 서포터 직업군이 필요한 거로구나.
“뭐, 사다리를 타는 방법도 있지만…….”
-있지만?
“꽤 힘들거든.”
고지대에 위치한 요새.
벽에 사다리를 걸쳐도 올라가기가 어려운 구조다.
그뿐이랴.
방어 결계가 요새를 보호하고 있어서 마법을 쏴도 벽 위에 있는 경비대에게 제대로 피해를 입힐 수 없다.
“공성전이라는 건 공격 측이 불리하잖아.”
통상적으로 공성 측은 수성 측보다 3배 많은 병력을 투입해야 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 상식은 탑에서도 통용되었다.
-하면 답이 없다는 말이느냐?
“그렇진 않지만…… 아, 공격이 시작되는군.”
나는 요새를 가리켰다.
구구궁! 문이 좌우로 열리더니, 돌 인간들이 천막을 향해 천천히 전진했다.
크기는 약 2미터.
주먹이나 돌칼을 무기로 하는 자율 병기, 전투 골렘 E타입이다.
-이번 미션은 공성전이라고 들었다만.
“설명에 보면 주기적으로 공격을 나온다고 했잖아.”
-이상하구나. 방어 측이 유리한데 스스로 전력을 소모하려 하다니.
“요새에 대기시킬 수 있는 숫자는 최대 500기. 그걸 소모하려고 나오는 거야.”
요새 내부에는 골렘 생산 공장이 있다.
병력을 비워 두면 재생산을 하기에, 골렘 수용량이 다 차면 저런 식으로 공세를 펼친다.
“웨이브다!”
“제길. 일단 막아.”
“어쨌든 도전 횟수를 날려 먹을 수는 없잖아.”
플레이어들은 몰려오는 골렘들을 보더니 마지못해 전투 준비를 갖추었다.
개판이구먼.
-팀이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구나.
“언제는 도움이 됐나.”
난 실실 웃었다.
웨이브 시기는 랜덤이다.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오히려 잘됐다.
‘플레이어들 의견을 모으려고 애써 고민할 필요가 없잖아.’
탑을 오르는 과정에서 내 주장을 내세울 때 무력시위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미션에서 판도 깔아 줬겠다.
사양할 이유가 없지.
나는 플레이어 무리 사이를 비집으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저기요. 초보인 것 같은데 진형 유지 안 하면 탈락이에요.”
백인 플레이어 한 명이 내 단독행동을 만류했다.
친절도 해라.
손을 휘휘 젓는 걸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골렘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적. 발견.」
「제거 시퀀스에 들어간다.」
붉은 안광을 흩뿌리면서 팔을 뒤로 젖히는 골렘.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놈한테 주먹을 쥐고는.
[괴력을 사용합니다.]
전력으로 골렘의 몸통을 후려쳤다.
콰앙! 330% 증폭된 일격을 맞은 골렘의 가슴팍에 주먹보다 2배 정도 되는 구멍이 뻥 뚫렸다.
「작동. 정지.」
쿵.
바닥에 쓰러지는 전투 골렘.
“다 덤벼.”
나는 오른손을 까딱였다.
* * *
루이스 윌리엄은 6층만 수십 번 클리어 한 베테랑 플레이어다.
왜 더 높이 올라가지 않고 6층을 반복하느냐면…….
‘6층의 보상이 좋아서 그렇지.’
바룬 요새 뒤에는 레어메탈 광산이 있다.
미션을 클리어해도 얼마간은 머무를 수 있기에, 이 광산에서만 채굴 가능한 광물을 얻기 위해 6층을 반복 도전했다.
그래서일까.
미션을 시작하자마자 팀원 리스트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팀은 망했네.’
요새를 공략하려면 성문을 뚫어야 한다.
사다리로 벽을 넘어서 공략하는 건 랜덤 매칭으로 만나는 팀원 수준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도전 횟수 한 번 날렸다고 생각해야지.’
루이스는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미션에 실패하는 건 탑을 오르는 중에 지겹도록 겪은 일이다.
그렇지만 막상 첫 웨이브가 몰려온 직후, 루이스의 생각은 180도 뒤집어졌다.
“What the…….”
홀로 골렘 무리와 맞서는 플레이어.
진호의 존재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손톱]
[탐욕의 가호]
[혈조공]
진호가 한 번 손을 뻗으면 돌로 만들어진 골렘의 몸뚱이가 찢겨 나갔다.
“무기를 안 들고 골렘을 산산조각 낸다고?”
“Jesus…….”
넋 나간 표정으로 진호의 활약상을 지켜보는 플레이어들.
루이스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전장을 바라봤다.
간혹 골렘의 공격이 진호를 타격하는 일도 발생했다.
탱커 계열 플레이어도 경시하기 어려운 위력.
그렇지만, 진호는 아픈 내색 하나 비치지 않고 골렘을 파괴했다.
여러 정수가 겹쳐진 [가시 갑피] 덕분이었다.
진호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50기에 가까운 골렘들을 모조리 파괴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저 사람이 있으면 성벽 공략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6층 미션에서 서포터가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건 벽 공략의 난이도 때문이다.
사다리에 의지해서 벽을 타고 올라가서 골렘들을 쓰러트린다?
골렘의 전투 능력은 승급을 마친 플레이어들도 경시하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루이스는 진호의 활약상에 6층 클리어 가능성을 보았다.
그때.
“당신들, 이번 미션 클리어하고 싶지?”
진호는 등을 돌려서 루이스를 포함한 팀원들을 바라봤다.
모든 이들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골렘들을 상대로 보여 준 활약상이 워낙 인상적인 덕분이다.
“클리어하고 싶으면 내 등만 따라와.”
팀원들은 진호의 말에 압도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