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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57화 (57/300)

57화

[최고 기여도를 갱신한 플레이어가 탄생했습니다.]

[보상으로 푸른 허브가 주어집니다.]

[푸른 허브]

등급: 유니크

분류: 잡화

고밀도의 마나를 품고 있는 잎입니다. 섭취 시 마나가 늘어나며, 마법 촉매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푸른빛이 감도는 잎사귀.

“나쁘진 않네.”

망설이지 않고 입에 털어 넣었다.

입가에 감도는 쓴 향.

잠시 후, 쓰디쓴 맛이 사라지고 청량한 느낌이 목구멍 아래로 내려갔다.

[마력이 21 늘어났습니다.]

4레벨에 해당하는 스텟 포인트.

마력 관련 영약은 [용의 심장] 때문에 상대적으로 효과를 덜 보는 느낌이지만,

쌓아 놓은 스텟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아.

나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보상까지 받은 후, 접속을 종료했다.

하루 2회의 도전 횟수도 모두 소모했으니, 바벨탑에 더 머무를 이유도 없지.

현실로 돌아와서는 밀려 있는 문자를 대충 확인했다.

-계약자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는구나.

“다 영양가 없는 이야기야.”

-후훗, 너무 오만한 것 아니더냐?

“능력이 있으면 이래도 되지.”

성좌들에게도.

또한, 길드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내 몸값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오를 테니까.

엄지로 화면을 쓱쓱 문지르면서 문자를 확인하던 중, 손가락을 멈췄다.

[한수창 팀장]

“이 아저씨가 연락을 했네.”

내용을 훑어보니, 저번에 이야기했던 협회 용병 관련해서 논의할 게 있단다.

얼굴 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 제안에 대한 해답을 벌써 준비해 놓은 건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몇 번 수신음이 울리더니 금세 전화가 연결되었다.

-유진호 플레이어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문자 주셨던데요.”

-예. 저번에 말씀하신 용병 건, 상부의 승인이 났습니다.

“관련 부처가 없다고 하셨는데. 용케 됐네요?”

-진호 님이 말씀해주신 걸 바탕으로 기획안을 올렸더니 윗선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주셨습니다.

“긍정적이라면…….”

-특무대. 외부 협력 인원들을 총괄하는 부처입니다.

특무대라.

이 이름은 현생에서도 바뀌질 않는구먼.

회귀 전에 특무대를 창설한 게 한수창이니, 같은 이름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나저나 특무대 창설 기간을 2년이나 앞당겼군.

아이디어야 내가 줬다고 하지만 나랑 본 지 며칠도 안 됐는데 이만큼이나 일을 진척시키다니, 역시 한수창이야.

비각성자면서도 본인의 수완으로 부협회장이 된 입지적인 인물답다.

“이렇게 빨리 새 부처가 생길 줄은 몰랐는데요.”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하핫, 모두 진호 님 덕분입니다.

“있지도 않는 부서 만들어 달라고 깽판 친 건데.”

-실은 플레이어분들을 협회로 모시기 위해서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제 말을 듣고 영감이 떠올랐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한수창은 이전부터 플레이어 범죄를 내부 인력만 가지고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지금은 유력 길드 몇몇한테 사회적인 혜택을 보장해 주면서 동원하는 식으로 인력난을 해소했지만, 특정 길드에게 일을 온전히 맡겼다가 낭패를 본 일도 더러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한 길드가 의뢰를 진행하면 저희가 과정을 모니터링하기가 힘들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겠죠.”

-이렇게 진호 님처럼 외부 인사들을 여럿 두면 자체적인 팀 운용도 가능해질 거고요.

한수창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제가 말씀드린 사항이 모두 통과된 건가요?”

-안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린 겁니다.

한수창은 잠시 말을 쉬더니.

-특무대 설립이 확정된 건 아니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들어 봅시다.”

-김우성 협회장님께서 진호 님을 직접 뵙고, 그 후에 결정하시기로 했습니다.

“협회장님이요?”

김우성이라고 하면, 플레이어 협회의 초대 회장이다.

초창기에 탑에 들어갔던 플레이어이기도 하고.

생각도 못한 거물이 튀어나왔군.

“좋습니다. 팀장님이 일정 한번 잡아 주시죠.”

-그럼 바로 모시러 가도 되겠습니까?

“아, 네네.”

나는 떨떠름한 투로 대답했다.

협회장이 그렇게 한가한 자리가 아닐 텐데.

내가 시간이 된다고 하자마자 바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기야, 그 양반 성격이면 그럴 만도 하군.

-그대의 세계에서 높은 사람인 모양이로구나.

“협회장이면 꽤 높지.”

-과연. 여의 계약자다우니라.

초대를 받은 건 나인데 왜 여신님이 뿌듯해하는지 모르겠다.

준비를 마친 후, 밖으로 나서니 협회 마크를 부착한 차량이 날 기다리는 중이었다.

검은 리무진.

날 영입하려고 했을 때보다 더 비싸 보이는 차다.

“진호 님, 모시러 왔습니다.”

아까 통화했던 협회 인물, 한수창 팀장이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빨리도 오셨네요.”

“협회장님께서 진호 님을 빨리 뵙고 싶어 하셔서 말이죠.”

“그럼 갑시다.”

난 문이 열려 있는 세단 뒷자리에 자연스럽게 탑승했다.

* * *

분당에 위치한 플레이어 협회.

종합 상가만큼이나 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도착했습니다.”

수행원이 문을 열어 주었다.

회귀하기 전에는 이런 대접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 생에서는 처음 겪는군.

“진호 님, 협회장님께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한수창의 뒤를 따라 건물 꼭대기에 있는 협회장실로 갔다.

꽤 많은 경비가 있었지만, 한수창이 사원증을 내밀자 바로 통과되었다.

“이야, 팀장님 덕에 편히 가네요.”

“협회장님을 뵈려면 절차가 복잡해서요.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꼬는 거 아니에요. 높으신 분 만나는 건데 당연하죠.”

난 손사래를 쳤다.

플레이어협회장이면 나름 공기업의 수장이다.

이 정도야 당연한 절차지.

회귀 전에는 대통령과도 종종 대담을 가졌는데, 그땐 지금보다 훨씬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다.

“협회장님, 유진호 특무대원을 데려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자동으로 열리는 문.

그 사이로, 시대의 거인이 눈에 들어온다.

190센티 정도 되는 신장.

하얗게 물든 머리 아래로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사내가 나를 바라보았다.

6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나이.

하지만 정장을 입고 있음에도, 단련된 육신의 맵시가 겉으로 드러났다.

“김우성일세. 편하게 말해도 되겠나?”

“편하게 불러 주시죠, 협회장님.”

“껄껄, 말이 통하는 친구로군. 이리 앉지.”

먼저 앉는 협회장.

나는 손님용 소파에 앉아서 협회장을 힐끗 보았다.

이렇게 만날 줄이야.

초대 협회장, 김우성에 대한 이야기는 회귀 전에 여럿 들었다.

탑 초창기 플레이어이자, 플레이어의 권익 및 질서 확립을 위해 힘쓴 사람.

그가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국내 플레이어들 중 타국으로 떠나는 숫자가 절반 정도 줄었을 거라는 이야기가 파다할 정도다.

요컨대,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지.

나하고는 접점이 많지 않아서 소문만 들었다.

회귀 전의 이야기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한번 대화를 나누어 볼까.

“튜토리얼부터 4층까지 모든 기록을 경신해 버린 초특급 루키.”

“제 이야기입니까?”

“그럼. 다 알고 있지 않나.”

“협회장님께서 읊어 주시니 부끄럽네요.”

“부끄러운 사람의 얼굴치고는 꽤 여유롭군.”

나는 대꾸하는 대신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능력 있는 친구가 협회에서 한자리를 맡아 준다고 하니 마음이 든든하네.”

“협회 소속이 되는 건 아닙니다만.”

“그렇지. 한수창 팀장한테 들으니 용병 제안을 했다고 하더구먼.”

너털웃음을 흘리는 협회장.

차를 마시고는 웃음기를 거둔 채 진지하게 말했다.

“용병 제안. 솔직히 의외였다네.”

“제가 어디에 속해 있는 걸 싫어해서 말이죠.”

“그래서 용병 활동을 하겠다?”

“예.”

“참 아쉽군. 진호 군이 말한 용병 활동을 하면 협회에서 제시한 세금 공제 및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없는데 말이야.”

“혜택이 탐나면 길드에 들어가는 게 훨씬 낫겠죠.”

“그걸 아는 사람이 용병을 제안했다…….”

말끝을 흐리는 협회장.

나는 미소를 지은 채, 그 말에 대꾸했다.

“제 몸값을 결정짓기에는 아직 이르니까요.”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

내 몸값이다.

튜토리얼 후에 부른 1천억이라는 금액이 거품인가, 아니면 실효성이 있는 금액인가.

협회장이 그 이야기를 모를 리 없었다.

“과연. 협회의 프리랜서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몸값이 오르는 걸 기다릴 셈이군!”

난 협회장의 추론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미래를 알고 있기에 행한 일이지만, 그걸 설명하는 건 불가능했다.

협회장이 납득할 수 있는 선 안에서 제시한 명분.

다행히 별생각 없이 받아들인 듯했다.

“껄걸,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네.”

“특무대 창설에 제 면담을 넣어 두셨다고 들어서 말이죠.”

“전도유망한 친구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겸, 의뢰 하나를 맡기려고 말이야.”

호오, 본론은 이거였구먼.

꽤 직설적이네.

회귀 전에 들었던 김우성의 됨됨이와 큰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이렇게 바로 평가를 하는 겁니까?”

“기념비적인 특무대의 첫 의뢰라고 생각해 주게.”

김우성은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화성에서 13세 남학생이 실종되어…….

-경기도 수원에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끔찍한 살인이…….

살인, 혹은 실종.

그것도 모두 어린이들이었다.

나는 안색을 굳힌 채 기사를 훑어보았다.

행방불명된 위치가 대로변인데도, CCTV나 목격자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 범죄.”

“그래. 그것도 아주 질이 나쁜 녀석이지.”

스산한 빛이 김우성의 눈동자 위로 번뜩였다.

“탐색 스킬을 지닌 요원들이 현장에서 마력의 흔적을 발견했다네.”

“그 흔적, 제게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 이제부터는 자네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

거참,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시네.

협회장은 천으로 감싼 물건을 내밀었다.

“이거라네.”

천의 매듭을 풀자, 새빨간 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깐만, 이 형상은…….

그놈이다.

두근- 두근- 빨간 돌을 보는 순간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악(惡) 계열 성좌인 바토리 에르제베트의 흔적.

바토리는 한국을 뒤집어 놓았던 희대의 플레이어 범죄자, 정신호의 수호성이기도 했다.

“신원을 특정하지 못한 범죄이니, 다른 의뢰를 수행해도 된다네.”

“제게 선택권이 있습니까?”

“이 사건은 협회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거라 보여 준 거고, 실은 첫 의뢰로 준비한 게 따로 있지.”

-전북 익산시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

플레이어 출신 조폭이 시장 상권을 위협한다는 보고였다.

“이 정도는 해결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떤가.”

“협회장님 근심거리를 해결해 드리죠.”

“아무 증거도 없는데, 괜찮겠나.”

“증거는 여기 있지 않습니까.”

나는 빨간 돌을 가리켰다.

“그걸 보고 짐작 가는 게 있나?”

“마력의 잔향이 느껴지는군요.”

“잔향이라.”

그런 건 사실 없다.

후각과 관련된 정수를 포식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저 결정이 바토리의 능력을 펼칠 때 나타나는 부산물이라는 말은 못 했다.

잘 알려진 것도 아니니까.

또한.

저 결정만 가지고 바토리의 계약자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는 짐짓 있어 보이는 척, 결정의 냄새를 맡았다.

스치듯이 읽었던 수사 일지.

정신호.

바토리를 계약자로 둔 희대의 살인마.

회귀 전에 놈의 범행 수법을 정리한 일지를 본 적이 있다.

안 좋은 의미로 인상적이라서 꽤 자세한 부분까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이맘때쯤 놈이 있을 곳은…….

근데 좀 부담스럽군.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지켜보는 협회장.

파편 가지고 블러핑을 치는 게 효과가 너무 좋은 모양이다.

“협회장님.”

“잡을 수 있겠나?”

“하루면 충분합니다.”

나는 확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의뢰, 받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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