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2차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오크의 숫자는 첫 번째 공격 때와 동일했다.
차이점은 무장의 질.
손에는 녹슨 무기 대신 잘 관리가 된 글레이브를 쥐었고, 몸에 걸친 갑옷의 표면이 은은하게 빛났다.
“꾸에엑!!”
오크는 좋은 경험치였습니다.
[오크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정수 등급: 일반]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근력 + 3]
[체력 + 3]
[스킬 - 용솟음치는 힘이 추가됩니다.]
[용솟음치는 힘]
등급: ★
분류: 패시브
사용자의 순수 근력을 10% 늘려 준다.
정수를 흡수하는 순간, 전신이 파르르 떨렸다.
[용솟음치는 힘]의 효과.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더 질겨졌다.
후-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더럽게 아프네.”
-고통스럽다면서 왜 웃고 있느냐?
“기분 좋아서.”
-취향이 그쪽이로구나. 여가 참고하도록 하겠노라.
“……뭘 참고하는데?”
닉스는 내 질문에 답하는 대신, 먼 산을 바라봤다.
[오크의 ‘용솟음치는 힘’ 정수가 ‘괴력’에 반응합니다.]
[괴력의 근력 증폭률이 30% 상승합니다.]
오호, 괴력에 추가 효과까지.
‘힘’이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시너지가 작용한 듯했다.
3차 웨이브에서는 30/15마리씩.
4차 웨이브 땐 중갑으로 무장한 오크들이 몰려왔지만 손쉽게 격퇴했다.
[우 1문 - 842/1000]
4차 땐 좌·우가 모두 흔들려서 번갈아 가며 개입했다.
덕분에 킬 포인트를 획득했지만 요새의 내구도가 조금씩 깎여 나갔다.
“흐흐흐, 고객님이 불러 주신 보람이 있군요.”
즉석에서 오크의 시체를 분리 및 아이템도 수거하는 모르스.
오크의 가죽을 도축하는 건 독주머니 따는 것과 난이도가 천지 차이다.
돈을 못 버는 건 아쉽지만 탑의 화폐인 cp라도 얻는 게 낫겠지.
“적당히 남겨 먹어라.”
“무슨 말씀이신지…….”
“너 상회 등급 올리는 데 실적 필요한 만큼만 손대라고.”
“크흠.”
모르스는 헛기침하며 내 시선을 외면했다.
미드론 상회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상인들은 거래 실적에 따라 등급이 상승한다.
더 높은 등급일수록 혜택과 취급 가능한 물건이 많아지며, 상회 최고 레벨에 도달하면 탑의 구속에서 해방된다.
모르스가 꿈꾸는 것도 그거겠지.
회귀 전에도 자유를 얻겠다고 엄청나게 활동했던 녀석이니까.
저 녀석의 등급이 올라가면 나한테도 이득이니.
선을 넘지 않는 부분에서는 이득을 취하는 것을 용인할 생각이다.
어차피 내가 해당 미션에서만 사용 가능한 소모품을 살 일 같은 건 없을 테니, 이렇게라도 주머니를 채우게 해 줘야지.
[5차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어느덧 막바지에 다다른 4층 미션.
모르스는 오크의 가죽을 벗기다 말고 요새 위로 올라갔다.
“고객님, 이번에도 힘내세요!”
-저 아이는 참으로 경망스럽구나.
“죽진 않아도 고통은 느끼니까.”
상인은 바벨탑의 시스템상 ‘불사’다.
말 그대로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죽일 수 없다.
하지만 죽진 않아도 고통은 느낀다.
오크한테 두들겨 맞으면 팔다리야 멀쩡해도 통증까진 무효화 못한다는 뜻.
“쿠르륵!”
오크 특유의 콧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후훗, 빨리 미션을 마무리하고 솜사탕 먹으러 가자꾸나.
“예예.”
나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 * *
오크 군대는 모두 32마리.
남루한 로브를 뒤집어쓴 오크 마법사가 추가되었다.
저래 봬도 보스 취급 받는 몬스터란 말이지.
두 마법사는 날 보자마자 지팡이를 겨누었다.
지팡이 끝에 맺힌 마법진.
“어스 스파이크.”
쿠르르릉!
땅이 좌우로 갈라진다.
벌어진 틈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크고 작은 돌창.
잘 벼려진 칼날처럼 날카롭고, 솟구치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파이어볼 이상의 위력.
나는 정면으로 손을 뻗었다.
“머드 트랩.”
늪지대로 변한 땅이 오크 마법사들의 마력을 붙들어 놓는다.
“쿠륵. 어째서 나아가지 못하는 거냐.”
“쿠르르. 인간. 마력. 강하다.”
지팡이를 쥔 채 부들거리는 오크 마법사들.
“운이 좋군.”
난 히죽 웃었다.
-무슨 재주를 부린 것이더냐?
“저 마법, 유지하는 동안에는 집중해야 하거든.”
어스 스파이크는 위력이 강한 대신, 집중을 풀면 바로 무효화되는 ‘채널링’ 스킬이다.
날 맞히려면 마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머드 트랩에 [탐욕의 가호]를 더해서 오크 마법사들의 마력을 붙잡아 버렸다.
-그 탐욕의 가호라는 걸 이렇게도 활용이 가능하구나.
“나도 설마 했는데 되더라고.”
그물처럼 퍼져나간 검붉은 마력.
탐욕의 가호는 지면 위로 솟구친 크고 작은 바위들을 휘감았다.
마법사들의 마력에 간섭하는 탐욕의 가호.
섣부르게 마법을 취소하면 마나 서클과 정신에 타격이 갈 거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가호의 신선한 응용 방식을 보고 박장대소합니다.』
『올림포스의 전쟁신이 당신에게 수호성 계약을 제안합니다.』
『올림포스의 전쟁신은 수호성 계약을 승낙할 경우, 가호 레벨을 2단계로 부여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바알이야 그렇다 쳐도, 왜 아레스가 난리를 치는 거야?
애가 타네.
난 웃음을 속으로 삼켰다.
바알의 가호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걸 보니 배가 꽤 아픈 모양이다.
못마땅하면 자기 가호라도 하나 내려 주지.
조건을 거는 걸 보니 쩨쩨하구먼.
『하늘의 악이 올림포스의 전쟁신을 보고 조소합니다.』
『하늘의 악은 가호를 다루는 모습이 부러우면 축복을 내려 주면 그만 아니냐며 타박합니다.』
『올림포스의 전쟁신이 분개합니다.』
“성좌님들, 여기서 싸우지 마시고 따로 볼일 보세요.”
나는 파리를 쫓아내듯 손을 휘휘 저었다.
-계약자여, 성좌에게 그리 말해도 되겠느냐?
“그야 여신님한테도 편하게 말하잖아.”
-여는 관대하다. 하나, 저 성좌들은 관용과 용서를 모르지 않느냐.
“내 주가가 높아서 괜찮아.”
주신급 성좌 둘, S급 성좌 하나.
그 외에도 수많은 성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레스는 대놓고 구애(?)를 하는 중이고, 바알과 ‘하늘의 악’도 내 활약상에 군침을 흘리는 상황.
선을 크게 넘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여신님은 조금 다르잖아.”
-뭐가 말이더냐?
“우리는 운명 공동체니까.”
난 강해지고, 닉스는 힘을 되찾는다.
각자 지닌 목표를 향해서 동행하는 동료였다.
뭐, 닉스가 개념신급 여신치고는 순수하고 털털한 것도 있고.
-우, 운명 공동체?!
닉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고는 저 멀리 날아갔다.
화 난 것 같진 않은데…….
내가 말실수라도 했나?
“쿠르륵. 마력 회수가 안 된다.”
“쿠륵. 마법으로 짓누른다.”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마나.
오크 마법사들이 어스 스파이크를 유지하니, 서로의 마력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멍청하긴.
“마력 양으로 싸움을 걸다니.”
오크 마법사들의 승부수는 나한테 호재였다.
용아병의 정수에서 얻은 스킬, [용의 심장] 덕에 마나 회복 속도가 월등하게 빨랐다.
마법을 유지하려고 수인(手印)을 맺거나 주문 영창할 필요도 없으니.
“쿠륵. 인간. 죽여라!”
오크 마법사 하나가 외쳤다.
마법사들을 빼면 네 번째 웨이브 때와 동일한 병력 구성.
결과는 이전 웨이브와 차이가 전혀 없었다.
“쿠륵, 어떻게…….”
오크 무리가 전멸하는 순간까지 지팡이 하나 까딱거리지 못한 마법사들.
놈들은 핏발이 선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았다.
“무리해서라도 마법을 끊었어야지.”
마력 양으로 승부하려고 했던 게 패인이다.
난 무방비하게 노출된 오크 마법사들의 숨통을 끊었다.
[오크 마법사의 정수를 흡수합니다.]
[정수 등급: 일반]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마력 + 5]
[스킬 - 어스 스파이크가 추가됩니다.]
[어스 스파이크]
등급: ★★
분류: 액티브
날카로운 바위로 적을 공격한다.
공격 범위에 비례해서 집중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특수종으로 취급되어서인지, 한 놈의 정수를 흡수하자마자 스킬을 얻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지팡이.
옆에 있는 녀석도 혹시 하는 마음에 정수를 흡수해 보았다.
[이미 수집을 완료한 정수입니다.]
각 개체는 [오크 마법사]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듯했다.
가루로 화한 사체에서 눈길을 거두었을 때.
“마법사가 지팡이를 떨어트렸는데요.”
모르스가 바닥에 나뒹군 지팡이를 가리켰다.
나는 지팡이의 옵션을 확인했다.
[오래된 떡갈나무 지팡이]
등급: 매직
분류: 지팡이
오랜 세월 동안 자라면서 대지의 마나를 흡수한 떡갈나무로 만든 지팡이입니다.
대지의 마나에 친화적입니다.
*마력 + 9
*마나 집속 시간 30% 감소
*대지 속성 마법 사용 시 마력 소모 15% 감소
“팔아야겠군.”
“헤헤, 저한테 말입니까?”
“얼마나 쳐줄 건데.”
“매직 등급이면 150cp 어떠십니까?”
“안 팔아.”
상회 놈들. 날강도 같은 건 회귀를 해도 안 바뀌는구나.
그 가격이면 종합 상가에서 경매로 팔고 말지.
“에이, 고객님. 야박하게 굴지 마시고…….”
“네 할 일이나 해라.”
좌·우측으로 몰려든 오크 무리들까지 모두 쓰러트리자, 미션이 종료되었다.
중앙으로 모인 플레이어들.
“유진호 플레이어가 과대평가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오히려 과소평가 아닙니까?”
“괜히 1천억을 말한 게 아니구나.”
“CP를 손해 봤지만 미션에서 업혀 갔으니.”
“오히려 이득이지.”
머쓱한 분위기 속에서 입바른 말들이 흘러나왔다.
[탑의 계약서] 내용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산되는 cp.
계약서값을 빼고도 240cp를 벌었다.
-미션 수행 보상으로 얻는 양에 비하면 적구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어.”
부수적인 수입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 메인 미션 - 세 갈래 방어전을 통과했습니다.
▶ 모든 요새를 지키면서 오크들의 공세를 막아 냈습니다.
[한국 서버 팀(13) 전원에게 철벽의 축복이 깃듭니다.]
[철벽의 축복]
-사용 횟수: 5
-방어력 + 70%
-지속 시간: 60분
-바벨탑 1 - 15층에서만 사용 가능.
[초심자의 행운]처럼 상시 적용이 아닌, 사용 횟수에 제한이 걸린 축복이다.
탑의 숨겨진 요소를 공략할 때 유용하겠군.
“와, cp를 엄청 얻었네요.”
“명예의 전당에 내 이름 올라간 거 실화인가?”
“진짜 운이 좋았어.”
플레이어들이 선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1층도 그렇고 무임승차하는 친구들이 많단 말이야.
계약서를 빌미로 cp를 조금 뜯어내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보상을 얻었으니.
▶ 미션 기여도
1. 유진호 - 247
2. 조영진 - 1
3. 오인균 - 1
…….
▶ 유진호 플레이어가 4층 미션 기여도 최고 점수를 경신했습니다.
총 262마리 중 247마리를 사냥.
당연하게도 오크 사냥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글로벌 서버 기준으로 최고 기여도를 갱신한 플레이어가 탄생했습니다.]
[보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