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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47화 (47/300)

47화

1시간 후.

팀원들은 지친 기색으로 독주머니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자발적인 협조 덕에 쉽게 끝났군.”

나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팀원들이 입술을 오므리는 걸 보니, 내 칭찬에 감동한 모양이다.

-그대여, 군락은 이미 함락시킨 것 아니더냐?

“응.”

-한데 왜 미션이 끝나지 않느냐.

“족장의 옥좌를 부숴야 군락을 무너트린 걸로 인정되거든.”

나는 일부러 홉 고블린의 옥좌를 부수지 않았다.

독주머니도 다 안 땄는데 미션을 끝내 버리면 곤란하잖아?

-수확은 다 끝난 것 같다만.

“볼일 다 봤으면 박살 내야지.”

실체화된 극야의 힘.

암흑 칼날들이 엉성하게 만들어진 옥좌를 산산조각 냈다.

▶메인 미션 - 레드 고블린 토벌을 통과했습니다.

▶어떤 세력의 도움도 받지 않고 레드 고블린 군락을 무너트렸습니다.

▶클리어 시간: 4시간 21분 35초.

▶글로벌 팀(463)이 1층 클리어 최단시간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글로벌 팀(463) 전원에게 초심자의 행운이 깃듭니다.]

[팀 전원에게 C급 성좌 계약서가 주어집니다.]

[초심자의 행운]

-모든 능력치 + 15

-경험치 획득 양 30% 증가.

-미션 클리어 시 보상 증가.

-언랭크 등급에서만 적용. 승급전에서는 적용되지 않음.

[C급 성좌 계약서]

등급: 유니크

분류: 소모품

바벨탑에서 C급으로 분류된 성좌 중 무작위로 한 명과 계약을 맺게 해 주는 계약서입니다.

해당 성좌는 플레이어에게 가호를 부여합니다.

*양도 불가

“와! 우리 팀이 최단시간을 경신했대요!”

“모두 유진호 플레이어 덕분이야.”

“저 트롤, 아니 저분 덕에 보상을 얻었어.”

“성좌와의 계약을 주선해 주는 아이템이라니!”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팀원들.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C급 성좌 계약서]를 훑어봤다.

-그대도 수호성으로 둘 존재를 고려하는 것이더냐?

“설마.”

-가호도 받을 수 있으니, 계약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저 계약서로 나오는 성좌 수준이라고 해야 뻔해.”

C급 성좌.

하늘의 뭇별에 이름을 새긴 성좌들 중 가장 수준이 떨어지는 이들이다.

필멸자면서도 영웅적인 행보로 추앙을 받은 이들.

혹은 신화의 말단에 있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신들이 C급으로 분류된다.

헤라클레스에게 망신을 당한 강물의 신 아켈로오스.

북풍의 신 보레아스처럼 격이 떨어지는 이들은 모두 C급이다.

-하긴, 그대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여가 보기에도 대단하더구나.

만마전의 주인, 바알.

하늘의 악.

둘 다 탑에서 등급을 매기기를 거부한 성좌다.

굳이 구분하자면 ‘신왕’급이라고 해야겠지.

아레스는 S급.

명색이 신왕 제우스의 적자이자, 올림포스의 전쟁 신이다.

-그들 모두 계약자를 원하는 것 같다만.

“저번에도 말했잖아. 난 성좌랑 계약 맺을 생각이 없어.”

성좌의 힘 일부를 나누어 주는 ‘가호’.

또한 여러 가지 아이템이나 스킬 등, 보상을 주지만.

성좌를 모시게 되면 내 행동에도 제약이 하나둘 걸린다.

회귀 전의 지식을 활용해서 움직이는 것도 번거로워질 테고.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셈!

“나한테는 여신님이 있는데, 누구랑 계약하겠어?”

그 사실을 닉스에게 설명할 수는 없으니, 대충 둘러댔다.

-계약자여, 여를 그렇게나 깊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느니라!

“처음 듣는 것처럼 말하기는. 저번에도 한 말이거든요?”

-여가 계약자 하나는 참으로 잘 두었느니라!

입이 귓가에 걸릴 정도로 웃는 닉스.

선의의 거짓말이란, 이런 거다.

▶미션 기여도

1. 유진호 - 27,935점

2. 해리 디아즈 - 12점

3. 피터 브룩스 - 9점

…….

▶유진호 플레이어가 1층 미션 기여도 최고 점수를 경신했습니다.

최단기록에 이어 기여도 최고 점수까지.

세르게이 녀석이 말한 조건을 겨우 충족시켰다.

발에 땀 나도록 뛴 보람이 있군.

[최단 기록 및 최고 기여도를 갱신한 플레이어가 탄생했습니다.]

[보상으로 2,000cp가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집중의 돌이 주어집니다.]

CP는 탑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말한다.

주 사용처는 미션의 보상으로도 얻을 수 없는 이계의 아이템 구매.

다음으로 집중의 돌을 확인했다.

[집중의 돌]

등급: 유니크

분류: 잡화

사용자의 집중력을 올려 주는 돌이다. 장비로 가공할 경우, 집중 효과에서 보정을 받을 수 있다.

집중의 돌.

1층 미션에서 최고 기록을 경신한 플레이어한테 주어지는 아이템이다.

-집중력 증가라. 나쁘진 않은 옵션이로구나.

“뭐, 쓸 만한 정도지.”

가공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 광물.

집중력을 늘려 주는 장비는 마법 계열 플레이어에게 각광을 받는다.

유니크 등급 광물이니 실력 있는 장인의 손길을 타면 레전드 등급까지도 노려 볼 수 있을걸?

하지만.

이 아이템의 진가는 따로 있어.

나는 과거의 경쟁자이자 동료, 세르게이의 말을 떠올렸다.

-집중의 돌을 들고 5층으로 가면 데모닉 파워를 얻을 수 있을 거다.

데모닉 파워.

보유 스텟 전부를 하나의 능력치에 몰아주는 기술이다.

세르게이는 대단위 마법을 펼칠 때마다 [데모닉 파워]로 위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 덕분에 생긴 이명이 파괴 군주.

네놈의 스킬, 내가 잘 써먹어 주마.

나는 [포식] 능력 덕에 동 레벨 플레이어에 비해 스텟이 압도적으로 높다.

사용자의 모든 스텟을 하나로 몰아주는 [데모닉 파워].

나라면 원 스킬 보유자인 세르게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 거다.

자존심 센 그 녀석이 자신만의 비밀을 알려 준 것도 그 이유겠지.

『올림포스의 전쟁 신이 1층 미션 결과를 보고 흡족해합니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가호의 사용 방법을 흥미로운 눈으로 살펴봅니다.』

『하늘의 악이 당신의 걸음걸이를 매의 눈으로 살펴봅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성좌들이 다시금 메시지를 보냈다.

1층 미션 결과가 만신전에도 알려진 모양.

그뿐이랴, 여태 나를 들여다본 적 없는 성좌들도 메시지를 보냈다.

『미노아의 샛별이 당신에게 수호성 제안을 건넵니다.』

『북풍의 주인이 당신에게 수호성 제안을…….』

『미르가르드의 농부가…….』

…….

비처럼 쏟아지는 수호성 제안!

대부분은 C급으로 분류되는 성좌들이다.

-과연, 그대의 말대로구나.

흐뭇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닉스.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웃음을 참고 있는 것 같다.

그나저나 수호성 계약을 제안하는 성좌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회귀 전의 나는 슬로 스타터였다.

대기만성.

좋게 보면 그릇이 커지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초반에 성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열렬한 성좌들의 반응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올림포스의 전쟁 신이 눈을 부라립니다!』

『올림포스의 전쟁 신은 당신에게 수호성을 제안하는 성좌에게 자신의 명예를 건 결투를 신청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북풍의 주인이 수호성 제안을 철회합니다.』

『미르가르드의…….』

빠르게 사라지는 수호성 제안.

나는 미소를 삼켰다.

귀찮은 일을 덜었군.

막상 아레스 본인도 바알이나 ‘하늘의 악’이라는 성좌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지만.

당분간은 성좌의 구애 메시지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바벨탑 앱의 메뉴를 활성화시켰다.

바깥에서는 인증을 한 단말기로만 실행 가능한 앱 기능.

탑 안에서야, 호출만 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

[1층 재도전]

-반복해서 도전할 경우에는 보상이 10%로 하락합니다.

[2층 도전]

-최초 도전입니다. 미션 성공 시 보상이 추가됩니다.

[지구로 돌아가기]

-접속했던 공간으로 돌아갑니다.

한번 통과한 미션이라고 해도, 재도전은 가능했다.

보다시피 페널티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문제지.

-이제 솜사탕을 먹으러 가는 것이더냐?

“몸도 안 풀렸는데 그러지 맙시다.”

바벨탑에 접속하고 채 하루도 안 지났다.

하루가 뭐야, 반나절도 안 됐는데.

“이따 나가서 많이 사 줄 테니까 지금은 좀 참아.”

-아쉽지만 그대의 말을 믿겠노라.

칭얼대는 닉스를 달래고는 2층 버튼을 눌렀다.

* * *

진호가 2층에 도전할 무렵.

『1층 미션의 최단기록 및 최고 기여도 기록이 경신되었습니다.』

『글로벌 팀(463)의 멤버 전원의 이름이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었습니다.』

『명예의 전당은 바벨탑 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탑의 공지 사항이 전 세계에 나타났다.

하늘에 떠 있는 글자는 해당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어서 누구나 읽을 수 있었다.

“네 기록을 깨는 사람이 나올 줄이야.”

“저는 그저 운이 좋았던 것뿐이에요. 마스터.”

“1층의 최고 기록이 수년 동안 갱신되지 않은 게 운이라고?”

허리까지 닿는 금발이 인상적인 여인.

미국의 플레이어 랭킹 1위, 엘렌 테일러는 사내의 말에 답하는 대신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길드 마스터는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윌리엄이라고 불러 주지.”

“길드 마스터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윌리엄 록펠러.

미국에서 손에 꼽히는 플레이어 길드, 골드 문(Gold Moon)의 길드 마스터다.

“이 남자, 1위를 하려고 작정했어.”

“작정요?”

“다른 플레이어들의 기여도가 엄청 낮잖아.”

“그러네요.”

엘렌은 명예의 전당을 훑어보고는 윌리엄의 말을 긍정했다.

“너는 어떤 식으로 1층을 공략했었지?”

“마스터가 엄선해 준 플레이어들과 호흡을 맞췄었죠.”

윌리엄은 골드 문의 재원을 아낌없이 투자, 엘렌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팀을 꾸렸다.

탱커 1.

버프 계열 3.

극단적인 인원 배치.

엘렌의 기량에 모든 것을 건 팀이었다.

“자책하지 마. 그땐 탑의 정보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윌리엄은 손을 휘휘 저었다.

초창기 플레이어 중 한 명인 엘렌.

그 당시만 해도 바벨탑 저층 공략은 지금처럼 체계적이지 않았다.

직접 부딪쳐 가면서 올라가야 하는 환경.

엘렌은 그런 악조건을 이겨내고 1층 미션에서 최고 기록을 세웠다.

“미국 랭커 1위가 그렇게 겸손을 떨어서 쓰겠나.”

“다 마스터의 지원 덕분인걸요.”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 지원을 받고도 힘 못 쓰는 애들은 혀 깨물고 죽어야지.”

고개를 좌우로 젓는 엘렌.

“참,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

“진호 유라는 플레이어, 글로벌 매칭이다.”

“글로벌 매칭인데…… 기여도 분배가 이렇게 되었다고요?”

황급히 놀란 엘렌은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잠시 후.

허- 하고 한숨을 내뱉는 엘렌.

“정말이네요.”

“무작위로 맺어진 팀으로 이만한 성과를 냈다는 거다.”

“이 사람, 가능성이 보이네요.”

“그래서 너를 부른 거야.”

윌리엄은 모니터를 돌려서 기사 하나를 보여 줬다.

[튜토리얼 기록을 갈아치운 플레이어, 진호 유(Jinho Yoo). 몸값으로 1억 달러를 제시해…….]

화면에는 진호의 사진과 인터뷰 내용이 짤막하게 담겨 있었다.

“진심일까요?”

“아니. 길드 가입을 안 하겠다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마스터께서는 포기한 것 같지 않은데요.”

윌리엄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한국으로 가 줄 수 있겠나?”

“진호 유를 만나 보라는 말씀이시죠?”

“전 랭킹 1위와 현 랭킹 1위. 그림이 좀 살잖아.”

“마스터의 뜻이라면.”

“아, 당장은 아니야. 한국의 동향도 살펴봐야지.”

윌리엄의 눈가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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