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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42화 (42/300)

42화

목책에 널브러진 고블린 무리의 사체를 [포식]으로 먹어치운 후,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산 아래쪽을 내달렸다.

-어디를 가는 것이더냐?

“이왕 휘저을 거면 여기저기 다 쑤시는 게 나아.”

-지금처럼 전초기지들을 부술 생각이로구나.

“생존자 하나씩은 남겨 두고 말이야.”

목책 하나 부쉈다고 해서 블루 고블린들이 전부 모이는 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고블린의 영역 여기저기를 찔러 대야지.

팀원들의 실력이 뛰어나면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겠지만, 랜덤 매칭으로 구해진 팀한테 그 정도 역할을 기대하면 안 된다.

방해나 안 하면 다행이지.

플랜 A가 좌절되었다고 해서 포기할 것 같진 않고.

1층 미션은 블루 고블린을 이용하는 방법 외에도 공략법이 몇 가지 더 있다.

대표적인 게 플랜 B.

레드 고블린이 포획해 놓은 늙은 트롤을 풀어주는 거다.

살갑게 인사하던 아저씨가 머리를 조금이라도 굴리는 사람이라면 플랜 B를 노릴 텐데.

“공략 속도를 좀 올려야겠어.”

신준석한테 받은 무공.

운류보의 구결대로 내공을 운용했다.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파팟!

달리는 속도가 두 배, 아니 세 배는 빨라졌다.

휙휙 지나가는 주변 풍경.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면 나무와 충돌할지도 모르겠다.

“딱 좋아.”

내 [민첩] 수치로는 빨라진 속도를 겨우 제어하는 게 가능했다.

급격한 환경 변화까지 반응하긴 어려운 수준.

하나, 나한테는 [육감] 스킬이 있었다.

[육감이 위험을 감지합니다.]

눈보다도 빠르게 위험을 읽어 내는 육감.

그 감각에 몸을 맡긴 채로 양다리를 움직이니 산 곳곳에 자리 잡은 나무를 요리조리 피했다.

-그대의 동체 시력으로는 불가능한 움직임일 터인데.

“내가 감이 조금 좋아서.”

모든 플레이어가 [육감]을 얻었다고 해서 이런 움직임을 펼치는 건 아니다.

[육감]을 이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도 모두 경험!

-여가 계약자는 참 잘 고른 것 같으니라.

감탄하는 여신님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산을 누비면서 고블린 무리를 찾아다녔다.

약 3분쯤 경신법을 운용하자, 내공이 절반이나 소모되었다.

경신법은 전투를 보조하는 역할.

보통 내공 소모가 크지 않은 편인데…….

시스템 설명대로, 운류보는 동급 경신법에 비해 내공 소모가 큰 편이었다.

이건 적당히 써야겠네.

운류보를 너무 펼치면 막상 전투에 돌입했을 때 혈조공을 전개할 내공이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블루 고블린을 상대할 때야 괜찮지만.

혹시라도 강적을 마주하는 상황이 찾아오면 이야기가 다르잖아?

“저기에 있군.”

마침 전진기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3분 전에 박살 냈던 기지와 비슷한 규모.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민첩한 뒷발]로 가속하면서 목책 안으로 파고들었다.

콰앙!

지면에 발을 딛는 순간, 흙먼지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가시 갑피의 내구도가 2% 소모되었습니다.]

내 힘을 못 버티고 갑피 내구도가 깎일 줄은 몰랐네.

“끼익?”

“끽. 무슨 일이냐.”

당황한 블루 고블린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내가 달려드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일까, 침입자가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하긴, 내 모습도 흙먼지에 가려져 있을 테니 모를 만도 하겠어.

내공이 모자라겠어.

운류보의 내공 소모가 원체 크다 보니, 혈조공은 잡몹 학살 때는 봉인해 둬야겠다.

두 번째 전투는 처음보다 더 시시했다.

중력의 흐름을 거스른 채로 춤추는 어둠의 칼날.

고블린을 베는 정도로는 [극야]의 힘이 거의 소모되지 않았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무리를 휩쓴 셈.

칼날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느라 정신력이 조금 소모된 게 전부다.

-여의 힘에 빠르게 익숙해지는구나.

닉스는 기쁜 투로 중얼거렸다.

첫 전투 때와 동일하게 고블린 한 마리를 놔준 후, [포식]으로 사체들을 모두 가루로 만들었다.

[블루 고블린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일반]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마비 독이 추가됩니다.]

[마비 독]

등급: ★

분류: 액티브

혈액에 마비 성분을 섞는다.

마비 성분을 포함시킨 피는 상대에게 직접 먹이거나 접촉시키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내 피에 ‘마비’ 속성을 부여하는 스킬.

회귀 전에도 포식했던 정수이지만, 단독으로는 쓸 데가 없다.

하지만.

늘 말하지만, 필요 없는 정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비 독’이 ‘산성 피’에 공명합니다.]

[혈액과 관련된 스킬의 효과가 3% 상승합니다.]

시너지 효과.

이번에는 ‘파이어’처럼 추가 효과가 적용되었다.

출혈이 일어났을 때 마비 독보다는 산성 피를 더 쓰겠지.

굳이 마비 독을 사용하지 않아도, 효율 증가 덕에 혜택을 누린 거나 마찬가지다.

전에는 이거 얻으려고 눈치 엄청 봤었는데.

포식 능력을 사용하면 괴물의 사체가 가루로 변한다.

고블린의 목 아래에 달린 독주머니는 바깥에서 꽤 돈이 되거든.

당시에 매칭된 팀원들에게 허리를 연신 숙인 덕에 블루 고블린의 사체에서 [마비 독] 정수를 추출하는 게 가능했다.

바뀌어 가는 미래.

새삼 그때와 다르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 * *

나는 산 동부 아랫자락을 쭉 훑었다.

괴멸시킨 전진기지만 열 개.

그 뒤로 기지를 하나 더 발견했지만, 텅 비어 있었다.

-저걸 보아라. 놈들이 도망친 것이 분명하니라!

기지 위로 쭉 이어지는 고블린의 흔적.

발자국 개수는 수십이나 되었다.

“계획대로네.”

네다섯 군데를 더 찾았지만 독침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가 말한 대로 되었구나.

“고블린의 본성이 원래 그래.”

-후훗, 여의 눈에는 그대가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느니라.

“…….”

이 여신님, 가끔 보면 은근히 예리하단 말이야.

난 닉스를 대동한 채, 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전진기지의 위치는 미션 때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부락은 늘 고정되어 있다.

그건 레드 고블린도 마찬가지.

산자락을 거닐어도 길을 잃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작은 괴물들이 백 단위로 모여 있느니라.

“그러네.”

산 중턱을 빙 두른 목책.

블루 고블린 군락은 영역 전체를 요새화해 놓았다.

무장한 고블린 군집이 얼기설기 엮어 놓은 목책 뒤에서 나를 노려보았다.

“끼익. 네가 침입자냐.”

고블린 군집의 가장 안쪽.

뼈로 된 지팡이를 든 고블린이 삿대질을 했다.

[블루 고블린 주술사]

군락의 지도자이자, 주술을 다루는 고블린.

육체 능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온갖 저주를 사용해서 적을 괴롭히는 녀석이다.

-족히 600은 되어 보이는구나.

“무리를 싹 모은 게 맞네.”

-혹, 힘이 들 것 같으면 바로 여에게 도움을 청하여라.

“여신님 덕에 든든합니다.”

난 정면으로 걸어갔다.

전략? 그런 게 왜 필요해.

고블린과 내 전투력은 그만큼 차이가 컸다.

1층의 괴물, 고블린의 신체 능력은 가시멧돼지나 실버 팽보다도 떨어진다.

그뿐이랴, 주 무기인 독은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가시 갑피]를 부수지 못하면 어떤 공격도 내 육신에 상처를 입히지 못할 거다.

600이나 되는 고블린을 죽일 생각을 하면 정신이 지치지 않느냐고?

멸망의 시대에는 더 끔찍한 것도 많이 봤어.

피융!

독침 수십 발이 몸을 두들겼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학습 능력 없는 놈들.”

[민첩한 뒷발]로 높이 도약.

고블린 군집 안으로 접근하려는 순간.

[정확한 사격]

즉시 발동형 스킬이 나한테 적용되었다.

끼릭, 퉁!

군락에 배치된 투석기가 활처럼 휘어지면서 매달은 돌을 던졌다.

투석기의 정확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하지만.

블루 고블린 주술사가 사용한 [정확한 사격] 덕에 무조건 명중하는 공격이 되었다.

[육감이 위험을 감지합니다.]

응. 나도 안다고.

집채만 한 크기의 바위가 쇄도한다.

방금 한 말은 취소해야겠다.

곧장 [어둠 지배]를 전개.

사각으로 막을 펼쳐서 바위가 날아드는 궤도에 배치했다.

쾅! 쾅!

바위와 충돌하자마자 얼마 못 버티고 깨어지는 어둠 막들.

[극야]의 힘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최대로 구현 가능한 극야의 힘은 5포인트.

그 에너지가 모두 소모되었으니.

다시금 극야로 막을 생성, 바위의 파괴력을 줄였다.

이 정도면 됐어.

나는 손을 말아 쥐었다.

지금은 혈조공 같은 무공을 쓸 때가 아니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바위 중심부에 꽂힌 주먹.

콰르릉, 반으로 갈라진 바위가 내 좌우로 스쳐 지나갔다.

가시 갑피가 깨어지고 피가 솟구쳤지만, 저 큰 바위에 짓눌리는 건 피했다.

-출력의 한계를 그런 식으로 극복할 줄은 몰랐구나!

“극복까지는 아니고. 사소한 잔꾀야.”

-아니다. 그대가 스스로의 한계를 잘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임기응변이니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어야지.

-한데, 여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하지 않았더냐?!

“뭐, 이 정도쯤.”

진심이다.

상처 조금 입은 것 정도잖아.

거기에, 돌진 속도를 안 떨어트린 덕에 고블린 군집 사이로 파고들기까지 했다.

“끽!”

돌칼을 휘두르려던 고블린이 [가시 갑피]에 찔려서 비명을 내질렀다.

“이런 놈들한테 도움을 구하기는 좀 그래.”

서걱!

[날카로운 손톱]이 고블린의 몸뚱이를 훑고 지나갔다.

내공을 안 써도 고블린 정도는 한 번에 쓰러트릴 수 있다.

[블루 고블린에게 포식을 사용합니다.]

막 찢어발긴 사체를 포식.

블루 고블린의 정수는 100% 채웠지만, 포식으로 생명력을 채웠다.

바위를 깨면서 생긴 타박상이 조금 아물었다.

“아직 모자라.”

포식의 진가는 난전일수록 빛이 난다.

언데드나 골렘 같은 무생물이 아니라면, 어떤 사체든 흡수해서 부상을 회복할 수 있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스스슷!

암흑 칼날이 고블린 한 마리를 꿰어 버렸다.

끽, 소리를 내며 절명한 고블린.

나는 그 칼날을 쭉 당겨서 매달려 있는 사체에게도 포식을 사용했다.

그뿐이랴.

[재생을 사용합니다.]

넘쳐나는 마나로 재생 스킬도 사용했다.

“끽. 침으로 상처를 노려라.”

블루 고블린들은 주술사의 지시에 대롱을 다시 물었다.

한번 깨진 부위는 다시 갑피를 전개하기까지 1분을 기다려야 한다.

약점을 잘 노렸지만.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난 실체화시킨 극야 일부로 상처 부위를 감쌌다.

티팅! 팅!

대롱에서 쏘아진 침들은 어둠의 장막을 뚫어 내지 못했다.

-옷을 짜 보라고 한 것을 이렇게 응용하는구나!

감탄사를 터트리는 닉스.

좋은 학생은 배운 걸 활용하는 법이거든.

난 [어둠 지배]로 반경 10미터 안에 들어온 고블린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이러면 방해 못 하겠지?”

[에너지 볼트를 사용합니다.]

[과충전을 완료했습니다.]

두 배로 커진 푸른 구체를 방출.

후방에 있는 투석기의 받침대를 산산조각 냈다.

“키익!”

고블린 주술사가 지팡이를 흔들었다.

[공포의 낙인이 이마에 새겨집니다.]

[우울감에 젖어 듭니다.]

[나태의…….]

대처가 까다로운 정신 공격.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고블린 주술사를 마주했다면 고생깨나 했을 거다.

그래, 일반적이라면.

[냉혈 스킬이 발동됩니다. 냉정한 마음이 유지됩니다.]

…….

감정에 간섭하는 저주는 냉혈을 뚫어 내지 못했다.

상급 저주라면 모를까.

1층에 출몰하는 주술사의 저등급 저주는 내 정신을 오염시키지 못했다.

블루 고블린 군락이 죽음으로 물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끽, 끽!”

우득-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고블린 주술사의 목을 꺾었다.

-정말로 여의 도움 없이 전멸시켰구나.

“상성에서 앞섰으니까.”

이쪽은 절대로 뚫리지 않는 방패를 지녔다.

반면 고블린에게는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이 없었다.

결과는 부딪치기 전부터 나와 있던 셈.

-한데 이 고블린들, 조금 이상하구나.

“뭐가?”

-본능이나 적대감이 느껴지지만 생물로서 가져야 할 것들이 부분적으로 결락되어 있느니라.

“탑에서 사육하거나 만든 애들이니까.”

바벨탑은 여태껏 수십 개의 차원을 흡수했다.

탑에서 구현해 낸 괴물 중 다수는 지금까지 흡수했던 생물체들이다.

말 그대로 ‘미션’을 위해 만들어진 불완전한 생명체.

“그러니 동정 같은 건 안 해.”

얼마를 죽이든, 모두 고신족들에 닿기 위해서 계단을 쌓아 가는 과정이다.

-그대는 참으로 강인한 자로구나.

“사람 띄워 주긴.”

닉스의 말에 피식 웃고는 목이 꺾인 주술사의 사체를 집었다.

자, 너는 어떤 정수를 줄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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