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40화 (40/300)

40화

“여신님.”

-…….

“저기요, 닉스 여신님?”

-그런 여신은 여기에 없느니라.

대련을 마친 후, 볼을 부풀린 채 말을 피하는 닉스.

내가 대련에서 호되게 당한 것이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아니면 여신님이 도와준다고 한 걸 됐다고 해서 그런 건가.

“귀여운 구름이나 사려고 했는데. 아쉽네.”

-……구름?

“핑크색 구름 있잖아. 그거 엄청 맛있거든.”

-여는 그런 것에 관심 없느니라.

닉스는 고개를 홱 돌렸다.

마침 솜사탕을 파는 노점상이 가는 길에 있었다.

양손에 오색 빛깔 솜사탕을 쥔 채 뛰어가는 어린아이.

닉스의 시선이 아이의 손을 향한 채, 한참 동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어때, 사 줄까?”

-말하지 않았더냐. 고대에 갖가지 산해진미를 제물로 받은 것이 여이니라. 저런 생김새에 현혹될 줄 아느냐?

네.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지금 여신님 눈빛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걸?

난 닉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못 본 척하며 노점상으로 걸어갔다.

“솜사탕 두 개만 주세요.”

“예예.”

능숙하게 막대기를 젓는 아저씨.

작은 구멍에서 실 형태로 뿜어져 나온 설탕이 나무막대에 뭉치면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간다.

-오, 오오오.

고개를 돌린 채 힐끔거리는 닉스.

안 보는 척할 거면 목소리 관리라도 하지.

“손님,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완성된 솜사탕 두 개를 양손에 쥐었다.

-흠, 흐흠, 계약자여.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것이다만.

“뭔데?”

-그대가 먹기에는 양이 아주~ 아주 많아 보이는구나.

“아, 솜사탕? 이거 금방 먹어.”

-그렇지 않느니라. 구름 둘을 합치면 그대의 배보다도 더 크지 않더냐!

“나를 걱정해서 대신 먹어 주겠다, 그 말이야?”

-후후훗, 계약자를 이렇게나 생각해 주는 건 여 외에 누가 있겠느냐.

“참 눈물 나게 감사하네요.”

나는 못 이기는 척 솜사탕 하나를 닉스에게 넘겼다.

-절대로 여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니라. 다 그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니 오해하지 말거라.

우리 여신님, 오늘따라 혀가 꽤 길구먼.

닉스는 일장연설을 늘어놓은 후, 솜사탕을 베어 물었다.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설탕.

닉스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이, 이 맛은…….

“별로야?”

-그야말로 천상의 맛이로구나!!!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한 표정을 짓는 여신님.

솜사탕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하면서 먹어 댔다.

괜히 걱정했군.

닉스와 나란히 걸으면서 솜사탕을 먹던 중.

끼익!

의전용 차량이 길가에 섰다.

차량 앞에 붙어 있는 마크.

익숙한 느낌에 차를 빤히 보고 있자니, 회귀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협회.”

내 혼잣말을 듣기라도 한 걸까.

차량 문이 열리면서 안경을 쓴 남자가 나왔다.

내 쪽으로 쭉 걸어오는 사내.

“유진호 플레이어, 맞으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사내는 짧게 숨을 들이마신 후, 불쑥 손을 내밀었다.

[플레이어 협회]

[인사팀장 - 한수창]

“플레이어 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한수창입니다.”

호오, 이건 또 의외의 인물이군.

한수창.

회귀 전에도 안면이 꽤 있는 사람이다.

바벨탑에 들어가기 전에는 볼 생각이었는데, 먼저 찾아올 줄이야.

참 젊네.

신준석을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수십 년 전으로 돌아와서 옛 인연들을 보니 젊게 느껴졌다.

나는 한수창의 명함을 받고는 휴대전화 뒤에 꽂아 두었다.

“협회에서 제게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뛰어난 플레이어가 나왔다는 소문이 워낙 파다해서 말이죠, 하핫.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요.”

“그렇군요. 그럼…….”

내가 말을 끊으려고 하자, 한수창이 급히 입을 열었다.

“날도 찬데,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쪽이 사는 거죠?”

“예. 이럴 때 쓰라고 법카가 있는 거죠.”

여전히 유쾌한 사람이군.

긴장감을 꾹 누른 채, 내 비위를 맞추는 능력이 탁월하다.

원래 저런 쪽으로 타고난 사람이니까.

귀찮은 일 하나를 덜었어.

안 그래도 협회 쪽에 끈을 하나 만들어 둘 생각이었는데, 회귀 전에 연이 있는 사람이 먼저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다.

난 한수창의 안내를 받아 근처 찻집으로 이동했다.

* * *

한옥 양식으로 지어 놓은 화려한 찻집.

-오, 아까 건물하고는 또 다른 멋스러움이 있는 곳이로구나.

닉스는 감탄한 기색으로 찻집을 둘러보았다.

입에 붙은 설탕만 좀 떼면 품위 있어 보일 텐데.

한수창은 앞서 걸으면서도 곁눈으로 닉스를 힐끗거렸다.

궁금하겠지.

현시점에서 닉스 같은 정령(?)을 지구에서 실체화시키고 다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거다.

“이곳은 쌍화탕의 깊이가 남다르기로 소문난 찻집입니다.”

“아메리카노로 주세요. 아이스로.”

유명이고 자시고.

쌍화탕은 내 취향에 안 맞았다.

아니면 찻집에 왔으니 미숫가루를 달라고 할 걸 그랬나?

한수창은 묘한 웃음을 짓더니 주문을 넣었다.

“참, 그럼 쌍화탕은 우리 여신님 몫으로 시켜 주시죠.”

-쌍화탕이 무엇이더냐?

“몸에 좋은 우리나라 전통 차.”

솜사탕도 맛보셨으니, 이젠 한국의 전통 차가 어떤 맛인지도 봐야지.

-과연, 기대해 보겠노라.

계산은 협회한테 맡기고 생색은 내가 내는군.

차가 준비되는 걸 기다리는 동안, 한수창은 내 눈을 직시했다.

“먼저는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점을 사과드립니다.”

“길가에서 불쑥 명함을 주신 것치곤, 꽤 늦은 말이네요.”

“저희 입장이 그만큼 급해서 말이지요.”

“협회가 급할 일이 있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협회에는 유진호 플레이어처럼 유능한 분이 필요합니다.”

오호, 단도직입적으로 찌르는구먼.

저 아저씨가 무대포로 지르는 것 같지만, 실은 굉장히 이성적이면서 사람 보는 눈도 뛰어났다.

비각성자 출신인데도 부협회장까지 올라갔던 입지전적인 인물.

나랑 몇 마디를 나눠 본 후, 돌려서 말하는 것보다 직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협회가 사람이 필요한 줄은 몰랐는데요.”

“최근 플레이어 범죄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라서 말입니다.”

탑을 오르면서 여러 이능을 가지게 된 플레이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

바벨탑이 나타난 후, 꾸준히 생겨나는 현상이다.

“그럼 협회에서는 뭘 해 줄 수 있죠?”

“탑에서 나오셨을 때 천억을 제시하셨던 걸로 압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협회에서는 그만한 금액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찾아오신 이유나 근거가 있을 텐데요?”

“계약금으로 30억. 그리고 부산물 처리 및 여러 세금 면제를 약속드리겠습니다.”

세금 면제라.

꽤 괜찮은 조건이다.

몸값이 많이 낮은 편이지만.

내가 1천억을 불렀지만, 유명 길드에서는 3백억에서 5백억 사이가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거다.

최소로 잡아도 3백인데, 그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지.

공기업에서 그 정도면 많은 지출이니까.

협회는 내 몸값으로 10억 이상으로는 못 부르게 했을 거다.

수직적인 공무원 집단의 일 처리가 늘 그런 식이지.

도리어 한수창이 30억이라는 금액을 확보한 게 더 대단했다.

“제가 이민을 가면 의미가 없어지는 혜택 아닙니까?”

“타 국가에서도 그 혜택을 받으실 수 있을지는 모르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나는 슬쩍 웃었다.

흠, 하고 헛기침을 하는 한수창.

이야, 이 아저씨가 말문이 막히는 건 얼마 못 봤는데.

내 기억 속의 모습에 비해서는 어수룩했다.

“방금 드린 제안이 협회에서 준비할 수 있는 조건 중에서는 최대입니다.”

한수창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반복했다.

현시점에서야 좀 어수룩하지만, 나중에는 부협회장까지 되는 사람이니.

그만 약 올려야겠어.

“좋습니다.”

“거절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그럼…… 예?”

“아니. 바로 협회 소속이 되겠다는 건 아니고.”

“하, 하지만 방금 좋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대신 제안 하나 하죠.”

난 양손으로 깍지를 낀 채, 턱을 괴었다.

허리를 살짝 앞으로 숙이니 한수창도 긴장한 기색으로 나를 바라봤다.

“용병은 어떻습니까?”

“용병……요?”

한수창의 눈가에 의아함이 감돌았다.

“아니면 프리랜서. 명칭은 편하실 대로 하시고요.”

“그 말씀은…… 정식으로 소속을 두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요.”

“예. 외부 협력인 거죠.”

“협회에서는 외부 협력과 관련된 부처가 없습니다만.”

“이제 신설하면 되겠네요.”

한수창은 잠시 말을 멈췄다.

내 표정을 빠르게 훑는 그의 눈동자.

무슨 의도인지가 궁금하겠지.

플레이어 협회는 앞으로 더 커질 거다.

[동기화 - 18%]

탑과 세계의 동기화가 20%가 되는 순간, 전 세계 각지에서는 게이트가 나타난다.

탑에서만 존재했던 여러 괴물이 현실로 튀어나오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그 과정에서 협회의 입지가 대폭 상승.

게이트 관리 및 플레이어 범죄를 총괄하면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크게 확장한다.

몇몇 게이트는 탑에서도 얻기 힘든 보상들이 나오곤 하니.

플레이어 협회와 끈을 하나 만들어 두면.

곧 들이닥칠 커다란 변혁의 시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협회에 들어가면 직접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 않느냐고?

에이, 공기업이 봉도 아니고. 협회 소속이 되면 귀찮은 일투성이다.

이 정도 거리감이 딱 좋아.

“유진호 플레이어님.”

“네.”

“협회에 소속되지 않으신다면 앞서 말씀드린 혜택 중 대부분이 드리기 어렵습니다.”

“뭐, 용병이니까 하는 거에 따라서 또 조건이 달라질 수도 있잖아요?”

당장의 세금 혜택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진 않다.

탑 저층과 고층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천지 차이니까.

그보다는 플레이어 협회의 미래 가치를 생각하고 끈을 만들어 두는 게 더 중요했다.

1년도 남지 않은 게이트 사태.

그 시기가 되면 협회는 내 충실한 사냥개로 재탄생할 거다.

후우-.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는 한수창.

“외부 협력 문제는 상부의 허가가 필요해서, 제 독단으로 계약을 진행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튜토리얼 1위 플레이어가 반쯤 발을 걸치는 일이니 힘 좀 내 주시죠.”

“알겠습니다.”

내가 아는 한수창이라면.

협회 윗선을 어떻게든 설득시켜서 외부 협력 관련 부처를 만들 거다.

지금이야 좀 어수룩하지만, 근본은 능력 있는 양반이거든.

만약 일이 잘 안 풀려도 개인적으로 사용 가능한 인맥이 생긴 셈이니, 충분히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탁자에 놓인 쌍화탕 두 그릇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난 투박한 그릇 하나를 닉스 앞으로 쭉 당겼다.

-이것이 무엇이더냐.

“우리나라 전통 차. 귀빈한테만 주는 거야.

-후후훗, 그야말로 여에게 잘 어울리는 차로구나.

우아하게 숟가락을 드는 닉스.

한 모금을 넘기는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계약자여! 여를 독살할 셈이더냐!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우리나라 격언이야.”

암암. 쌍화탕에 들어가는 한약재가 얼마나 많은데?

닉스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러다가 울겠네.

나는 닉스가 붙들고 있는 숟가락을 뺏어서 대추를 퍼 줬다.

“이거 먹어 봐.”

-그대여. 여를 독살하려는 게 아니라면 그만하여라!

“아냐. 이건 좀 달 거야. 내가 언제 틀린 말 한 적 있어?”

-……믿어 보겠노라.

입술을 비죽 내민 채로 대추를 무는 닉스.

몸 크기가 작다 보니 한 번에 먹진 못하고 몇 번 나누어서 씹었다.

-오오, 그대의 말대로구나.

닉스는 대추를 입에 가득 넣은 채로 말했다.

한껏 부푼 볼이 그녀의 귀여움을 한층 강화시켰다.

이제야 이 여신님 취향을 알겠군.

더 효과적으로 부릴 수 있겠어.

나는 웃음을 꾹 삼켰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