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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35화 (35/300)

35화

“푸하-!”

수면 너머로 머리를 들이밀자,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밤이로구나.

“그러게.”

검게 물든 하늘.

반 이상 어둠에 잠식된 달이 눈에 들어온다.

[밤의 여신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회복력이 50% 상승합니다.]

닉스의 가호.

효과 확실하구먼.

“그나저나 달이 너무 기울었어.”

-노리는 것이 따로 있느냐?

“아니. 튜토리얼 스테이지가 끝날 때가 얼마 안 남아서.”

난 현황판을 펼쳤다.

종료까지 남은 기간은 4일.

극야의 힘을 연습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틀이나 지나 버린 건가.”

꼬르륵.

배가 고파서 수련을 멈추고 나온 건데.

늘 [포식]으로 배를 채우다 보니 튜토리얼 진행 중에 처음으로 허기를 느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1위를 빼앗길지도 모르니라!

“그 정도까진 아니고.”

나는 딱 잘라서 말했다.

여태까지 벌어 놓은 점수가 원체 높다 보니, 남은 기간 동안 손 하나 안 움직여도 1위가 확정이었다.

-하면 무엇이 문제더냐?

“이왕이

면 목표를 크게 잡아야지.”

튜토리얼 전체 1위.

현재 최고 기록을 보유한 플레이어가 누구였더라?

-엘렌 테일러

3,528점

“아, 얘였구나.”

-구면이더냐?

“이름만 들었어. 유명한 랭커거든.”

난 너스레를 떨었다.

엘렌 테일러.

회귀 전, 등을 맞대고 고신족과 싸웠던 동료이자 여섯 ‘군주’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초창기 플레이어로 내가 막 탑에 들어선 시기에도 명성을 떨치는 중이었다.

내 기억대로라면, 튜토리얼 최고기록이 바뀐 시기는 2032년 즈음일 텐데.

미안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교체 시기가 조금 더 빨라질 거야.

먼 미래의 동료를 떠올리면서 짧게 애도했다.

“극야의 첫 실전도 치러 봐야지.”

-후훗, 그대는 여의 계약자이니 잘 해낼 것이니라.

“우리 여신님 기대에 부응해 드려야겠군.”

난 장난스럽게 대꾸하고는 호수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는 것이더냐?

“극야의 위력을 시험해 볼 만한 녀석이 있는 곳으로.”

레인보우 아일랜드에서 서식하는 생물 중 대부분의 정수를 먹어 치웠다.

하지만 단 하나, 아직 사냥하지 못한 종족이 있다.

‘앤트 라이온.’

튜토리얼 첫날에 마주한 괴물.

그 당시에는 앤트 라이온을 사냥할 엄두도 못 냈다.

모래 함정을 피해 가며 잊힌 신전 찾기에 바빴지.

이제는 다르다.

“이 섬에서 손꼽히는 괴물. 저 물고기보다도 셀 거야.”

-그렇다고 해도 땅에 있으면 그대의 적수가 되지는 못할 것 아니더냐.

“반대로 말하면 극야를 시험하기에 딱 좋은 상대지.”

-과연. 그대는 참으로 현명하도다.

사소한 것에도 감탄하는 닉스.

뭐, 누군가한테 신뢰를 받는다는 건 좋잖아.

나는 동쪽으로 걸었다.

* * *

[현재 당신의 위치는 황무지입니다.]

[황무지 - 체력 소모량 10% 증가]

둥근 엉겅퀴가 굴러다니는 곳.

튜토리얼 첫날 이후로는 처음이다.

챙! 챙!

콰앙-!

충격음과 폭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제 며칠 안 남았어.”

“하나라도 더 사냥해야 해!”

철갑 아르마딜로나 슬라임을 사냥하는 플레이어들.

첫날에는 오지원 일행 빼고는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튜토리얼 2주 차에 들어섰다고, 다들 사냥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나는 플레이어들을 쭉 지나쳐서 황무지 안으로 들어갔다.

사아악.

황무지 한가운데에 움푹 파인 구멍.

깔때기(▽) 형태로 내려가는 유사 아래로, 날 선 뿔이 번뜩였다.

앤트 라이온의 턱.

생물체가 유사 안으로 들어오면 저 턱으로 찢어발기는 것이 놈의 사냥 방식이다.

-그러면 수렁 바깥에서 공격해야겠구나.

“앤트 라이온은 땅 아래에서 방어력 증가 보정을 받아. 사냥하려면 끄집어내야 해.”

[어둠 지배]의 거리도 10미터라서, 극야의 힘을 시험하려면 앤트 라이온에게 접근해야 한다.

난 망설임 없이 모래 함정으로 발을 디뎠다.

[앤트 라이온의 함정에 발을 디뎠습니다.]

[마찰계수가 80% 감소합니다.]

쭉 미끄러지는 몸.

앤트 라이온과의 거리가 시시각각 좁혀졌다.

20미터.

10미터.

그리고 5미터.

“키이이이!”

앤트 라이온이 모래구덩이를 박차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장수풍뎅이와 흡사한 모습.

기다란 두 턱과 둥근 머리.

머리보다 수 배 큰 타원형 몸뚱이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체고 10미터.

크기만 놓고 보면 폭군 메기보다도 한층 더 거대했다.

-으으, 징그럽게 생겼구나.

“이번에는 저 면상을 좀 봐 둬야 하니 참아 줘.”

근접전으로 가면 10초 안에 승부를 낼 자신이 있다.

내 육체는 연이은 포식으로 강해졌다.

강인해진 육체로 혈조공을 펼치면 앤트 라이온의 갑피쯤, 찢어발기는 것 정도는 금방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는 단순한 사냥이 아니다.

닉스의 힘.

[극야]를 시험할 무대다.

[어둠 지배를 사용합니다.]

[극야의 힘이 사용자의 의지대로 움직입니다.]

스스스슷!

검은 촉수 다섯 가닥이 발밑의 그림자에서 솟구쳤다.

각 촉수에 실린 힘은 [극야] 1포인트.

내가 한 번에 방출 가능한 [극야] 에너지는 최대 5에 해당하는 수치다.

“키이이이!”

몸을 바동거리는 앤트 라이온.

발목까지 잠긴 모래가 놈이 있는 방향으로 쑥쑥 내려간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거리.

-계약자여, 극야를 다룰 때는 평정심이 중요하니라.

닉스가 옆에서 조언을 했다.

이 정도로 당황했으면 세계가 멸망한 후에도 못 살아남았지.

나는 가볍게 웃고는 [극야]의 힘을 조종했다.

촤라락!

검은 촉수 하나가 앤트 라이온의 몸통을 휘감았다.

“키이이?”

“여기서는 부비부비 금지다.”

“키이이이이!”

더 거세게 몸을 움직이는 앤트 라이온.

검은 촉수가 파르르 떨렸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형상.

촉수를 구현하는 데 들어간 [극야]의 힘이 빠르게 소모되었다.

난 [극야]의 힘을 추가로 부여, 촉수가 풀리는 걸 막았다.

“역시 하나로는 부족하군.”

미리 생성시킨 촉수 두 개가 앤트 라이온을 붙들었다.

“키이이?!”

앤트 라이온은 발버둥을 멈추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두 턱을 쾅쾅, 부딪쳤지만 소리만 위협적일 뿐 나한테는 닿지 않았다.

“3에 해당하는 힘이면 앤트 라이온을 붙들 수 있다, 라.”

극야의 힘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다.

앤트 라이온이면 탑 저층에서 출몰하는 어지간한 괴물들보다 강했다.

튜토리얼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이 왜 피해다니겠나?

강하니까 그렇지.

한데, [극야]의 힘을 3포인트 써서 앤트 라이온을 붙들어 놓았다.

-대단하구나.

“그러게. 역시 여신님이 주신 힘이야.”

-여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니라.

응?

이 여신님이 또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나.

-단기간에 극야의 힘을 이렇게나 다룬 그대를 말하는 것이니라.

“의도가 뻔히 보이는 칭찬이지만 고마워.”

[극야]로 빚어낸 채찍을 유지하는 게 고작이구먼.

우리 여신님, 보면 은근히 나를 배려해 준단 말이야?

-아니니라. 여는 진심…….

“실전 좀 치르다 보면 금방 좋아질 거야.”

촤르륵!

남은 두 가닥을 나선 형태로 꼬았다.

삐죽하게 솟은 창.

나는 ‘의지’만으로 검은 창을 움직였다.

정면으로 날아가는 [극야]의 창.

나선 형태로 꼬아 놓은 창끝이 앤트 라이온의 뱃가죽과 충돌했다.

“키이잇!”

앤트 라이온의 배 한가운데에 생긴 커다란 구멍.

나선으로 꼬아 놓은 창이 만든 상처라고 보기에는 너무 컸다.

-어이하여 저렇게 큰 상처가 난 것이더냐?

“충돌 순간에 극야를 해방했어.”

-대단하구나. 이제 막 극야를 다루면서 어찌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고!

[극야]로 빚어낸 창이 앤트 라이온의 가죽을 뚫는 순간.

꼬아 놓았던 어둠의 힘을 해방했다.

“놈은 갑피가 튼튼한 거지, 내부도 단단하진 않아.”

-역시나 여의 계약자로다.

반쯤 전투불능이 된 앤트 라이온.

난 [극야]를 최대로 전개해서 놈의 숨통을 끊었다.

“힘 소모는 생각보다 안 크네.”

[극야]는 방출했다고 해서 모두 소모되지 않는다.

에너지의 손실이 있으면 모를까.

한번 방출한 [극야]의 힘을 거두면 그대로 재활용 가능했다.

처음에 앤트 라이온을 붙들 때 빼고는 [극야]의 소모가 거의 없었기에,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놈을 사냥한 셈이다.

“밤은 길고, 시험할 건 많군.”

괴물의 공격성이 극대화되는 밤.

일반적인 플레어이라면 이 시간에 사냥하기를 꺼려한다.

하나, 나한테는 [밤의 여신의 가호]가 있었다.

회복력 증가 보정을 받으니, 오히려 밤에 사냥하는 게 편했다.

-부지런히 움직이자꾸나.

닉스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이는 건 나인데. 왜 여신님이 신났어?”

-그대가 극야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니 기뻐서 그러느니라.

“아직 멀었는데.”

진심이었다.

앤트 라이온처럼 느린 상대야 괜찮지만, [극야]를 실전에서 완전히 다루어 내려면 갈 길이 멀었다.

참.

놈의 정수를 먹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앤트 라이온에게 포식을 사용합니다.]

[정수 등급: 일반]

가루로 화하는 앤트 라이온의 사체.

난 다음 먹이를 찾아 모래구덩이를 벗어났다.

* * *

앤트 라이온은 [극야]의 힘을 다루는 데 좋은 교보재였다.

강력한 힘.

그리고 단단한 갑피.

대신 속도가 느려서 힘을 끌어올릴 때 부담이 적었다.

“키이이…….”

앤트 라이온 한 마리가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뱃가죽과 등에 난 무수한 구멍.

[극야]의 흔적이다.

-이 정도면 기초 단계는 숙달한 것 같구나.

“후아, 이게 기초인가.”

-그래도 대단한 것이니라! 여에게 가르침을 구했던 성좌가 많았지만 그대와 같은 성과를 낸 이는 하나도 없느니라.

“어. 나도 대단한 거 알아.”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만.

[극야]의 활용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다섯 가닥을 뻗어 내서 방패로 덧대거나, 아니면 끝을 꼬아서 관통력을 극대화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에 닉스가 보여 준 ‘응집’까진 무리지만 말이야.

“3에 해당하는 힘 정도인가.”

-응집은 난이도가 높으니라. 천천히 하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될 터!

“뛰어난 스승이 옆에 붙어 있으니, 금방 하겠지.”

-후, 후후훗!

닉스는 고개를 돌리더니 또 웃음을 흘렸다.

왜 저러나 몰라.

[극야]의 기초 운용에도 익숙해졌겠다.

나는 두 번째 소득을 취했다.

[앤트 라이온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땅의 호흡이 추가됩니다.]

[땅의 호흡]

등급: ★

분류: 패시브

대지 관련 스킬의 효과를 7% 늘려 준다.

시너지 효과가 아닌, 처음부터 보조 성향을 띤 스킬이 나왔다.

땅 속성이면 이미 [머드 트랩]을 습득하기도 했고.

포식을 하다 보면 대지 관련 정수가 하나둘 늘어날 거다.

“나쁘지는 않네.”

-여가 보기에는 미약해 보이는 효과다만.

“티끌 모아 태산이야.”

늘 말하지만, 정수 중에는 버릴 게 없다.

거기에, 근력과 체력 스텟도 얻었으니 금상첨화다.

“이제 섬에 있는 정수를 다 먹었군.”

회귀 전만 해도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위업.

2회차 때에는 너무나도 쉽게 성공했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시작점.

파멸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을 근질거리게 했다.

-하면 조금 쉴 것이더냐?

“경험치 올려야지.”

쉴 시간이 어디 있나.

점수와 경험치.

둘 다 잡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직.

내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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