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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31화 (31/300)

31화

네스는 혈산군처럼 활동 영역이 고정된 보스 몬스터다.

호수 중심부.

[미드론 상회]가 있는 섬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저쪽에서 여의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역시, 이쪽이었군.”

난 두 눈에 힘을 팍 주고 호수를 살펴보았다.

물가에 아른거리는 커다란 그림자.

거대 뱀, 네스다.

몸길이는 약 20미터.

아나콘다보다도 기다란 몸뚱이가 수면 아래를 유유히 돌아다닌다.

[독수리의 눈을 사용합니다.]

[상대가 당신보다 조금 더 강합니다.]

네스의 몸뚱이에 감도는 붉은색 아우라.

혈산군이나 늪지의 마왕 때보다는 색이 훨씬 옅었다.

네스가 둘보다 약하다기보다는, 그만큼 내가 강해졌다는 의미!

-계약자여, 승산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바알 때보다는 나아.”

-참으로 믿음직스럽구나.

“내 목숨을 반쯤은 걸어야 한다는 말인데?”

-…….

늪지의 마왕이나 바알을 상대할 땐 질척이긴 해도 땅이었지.

거대 뱀을 사냥하려면 호수로 가야 한다.

[대지모신의 가호]도 무효화가 될뿐더러, [아가미] 스킬이 있어도 물의 저항력을 완화시키는 정도다.

수중전이라는 페널티를 모두 감수하고 사냥해야 한다는 것.

“말했잖아, 여신님 힘을 일깨우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저 뱀이 그렇게나 강적이었구나.

“승산이 없으면 시작도 안 했겠지만 말이야.”

-오오. 역시 여의 계약자니라!

네스의 동선을 확인한 후, 상인들을 만나러 갔다.

엘프, 드워프, 그리고 노움.

세 상인은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웃었다.

“어서 오게, 손님!”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겠습니다.”

“워, 월석, 더 사시려고요?”

자본주의에 입각한 훌륭한 반응이군.

-그대는 참으로 인기가 많구나.

여신님, 이런 반응은 인기 있는 게 아니라 호구를 발견했다는 겁니다.

효용성이 거의 없는 월석을 32개나 사 갔으니, 상인들이 호구 취급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엘프 상인 앞에 섰다.

“고객님, 특별히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축복받은 물푸레나무 잎 있습니까?”

“물고기 사냥을 하시나 보군요.”

“뭐, 그렇죠.”

정확히는 뱀이지만.

굳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겠지.

엘프는 푸른색을 띤 잎을 내밀었다.

[축복받은 물푸레나무 잎사귀]

등급: 노멀

분류: 소모품

물속에서 움직일 때 물의 저항력을 30% 감소시켜 준다.

수면 위로 올라오면 잎사귀의 마법력이 바닥난다.

*지속 시간: 60분

*레인보우 아일랜드에서만 사용 가능.

“잎사귀는 개당 20포인트입니다, 고객님.”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엘프.

사실 저 잎사귀는 과거에 구매했던 월석처럼 인기가 없는 소모품이다.

꽤 길어 보이는 지속 시간.

자세히 보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잎사귀의 효과가 사라진다.

설명에서는 60분 동안 유지된다고 해도, 실제로는 1분에서 2분 정도만 써먹을 수 있는 거다.

전형적인 미끼 상품.

혹은 함정 카드다.

엘프가 저런 눈빛으로 보는 것도 당연하지.

‘나한테는 다르지만.’

폭군 메기의 정수에서 [아가미] 스킬을 얻어 냈다.

물 안에서 숨을 쉴 수 있기에, 잎사귀의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아가미]가 없었으면 10개 이상 구매해야겠지.

그렇게 해도, 네스와 전투를 벌일 때 상당히 불리했을 거다.

-플랜 B가 이 잎사귀를 여러 개 구매하는 것이었더냐?

난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꾸했다.

“세 개 주세요.”

난 미련 없이 포인트를 지불했다.

“미드론 상회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봐, 손님. 저번에도 보니 맨손이더만 무기는 필요 없나?”

“워, 월석 말고 다른 잡, 화도 있어요.”

두 상인의 눈동자에서는 탐욕이 뚝뚝 흘러내렸다.

무기나 방어구야, 튜토리얼에서 흡수한 정수 덕에 필요가 없었다.

나는 노움 상인 앞에 섰다.

“뭐, 뭘로, 드릴까요?”

“워터마크 세 개만 주시죠.”

“그, 그건, 개당, 30 포인트예요.”

[워터마크]

등급: 노멀

분류: 소모품

물 안에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고정 형태의 판을 만든다.

*지속 시간: 60분

*레인보우 아일랜드에서만 사용 가능.

딱지 크기의 판.

물속에서 작동시키면 1제곱미터 넓이의 발판이 된다.

중심을 겨우 잡을 정도의 너비.

이건 네스와의 전투 중, 급박한 상황을 대비한 보험이다.

“볼 일이 있으면 또 봅시다.”

미련 가득한 드워프의 눈빛을 뒤로 한 채, 호수로 다시 진입했다.

준비는 끝났다.

남은 건 튜토리얼 스테이지의 졸업 과제를 해결하는 것뿐.

-계약자여, 힘을 내거라! 여가 응원하겠노라!

“예예. 감사합니다.”

닉스의 응원을 한 귀로 흘리면서 호수 안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육감이 살기를 감지합니다.]

솜털이 삐쭉 서는 느낌.

붉은 눈동자가 물 깊은 곳에서 번쩍였다.

호수의 지배자, 네스가 침입자를 인지한 것이다.

나는 막 구매한 잎사귀를 입에 물었다.

[축복받은 물푸레나무의 잎사귀를 사용합니다.]

[저항력 및 부력이 30% 감소합니다.]

좋아.

효과 확실하네.

[아가미]와 중첩되면서 물의 저항력을 50%나 반감시켰다.

“와라, 뱀 새끼야.”

붉은 빛이 시시각각 나를 향해 다가왔다.

* * *

거대 뱀 네스는 아나콘다와 흡사하게 생긴 괴물이다.

주 공격 패턴은 물기와 조이기.

다행인 점은 독사가 아니라는 것 정도이려나.

쉬쉿- 쉬이잇!

아가리를 크게 벌린 뱀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계약자여, 뱀이 온다!

비명을 지르듯 경고하는 닉스.

나는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지 오래였다.

“하아아아!!”

[포효를 사용합니다.]

네스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역시.

늪지의 마왕은 격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포효의 효과가 나지 않았지만, 뱀 새끼한테는 제대로 먹혔다.

나는 평형 자세로 발을 오므리면서 물을 밀어냈다.

한 치 차이로 빗나가는 네스의 돌진.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합니다.]

[탐욕의 가호로 손톱을 강화합니다.]

드드드드!

검붉은 마력이 날선 손톱을 휘감는다.

나는 [탐욕의 가호]로 침식한 손톱을 휘둘렀다.

아래쪽을 지나가던 네스의 기다란 몸뚱이가 손톱에 걸렸다.

푹!

탐욕의 가호로 한 단계 세진 손톱이 비늘을 어렵지 않게 헤집었다.

깨진 비늘 사이로 새어 나오는 초록색 피.

쉬이이잇!

네스가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요동치는 호수.

비늘 안쪽으로 파고든 손톱이 네스의 몸부림에 조금씩 밀려났다.

“어딜 도망가?”

[괴력을 사용합니다.]

나는 왼손으로 네스의 몸뚱이를 마저 붙들었다.

첫 공격에 괴력을 안 쓴 건, 과한 힘에 튕겨 나가지 않을까 해서다.

오른손으로 걸어 놨으니, 괴력 좀 쓴다고 밀리진 않겠지.

쉬이이잇!

네스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300%로 강화된 근력으로 몸에 구멍을 내 주니, 꽤 시원한 모양이다.

콰직!

클라이밍을 하듯, 양손으로 놈을 붙들고는 몸을 밀착했다.

네스의 굵기는 커다란 나무보다도 커서 양팔을 뻗었는데도 품에 안 들어왔다.

쉬이이잇!

몸을 털기를 포기한 네스.

이번에는 제자리에서 똬리를 틀더니 나를 휘감으려고 했다.

-뱀이 그대를 조이려 하느니라!

“알고 있어.”

기다란 몸뚱이가 나를 휘감기 직전.

[민첩한 뒷발을 사용합니다.]

그 몸을 발판 삼아서 세게 걷어찼다.

순식간에 벌어지는 거리.

똬리를 튼 네스는 붉은 눈으로 나를 포착하더니 다시금 몸을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에너지 볼트를 사용합니다.]

[과충전을 완료했습니다.]

한계까지 충전된 푸른 구체가 정면으로 쏘아졌다.

노리는 건 손톱이 낸 상처.

치익- 네스의 비늘이 에너지 볼트의 충격량을 대부분 흡수했다.

하지만 깨진 비늘 사이로 에너지 일부가 스며드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쉬이이잇!

비명을 지르는 네스.

-과연. 그대의 공격이 효과가 있도다.

“흥분하지 마. 이제 시작이니까.”

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 거대 뱀이 호들갑을 떨고 있어도, 실제로 입은 피해는 미미했다.

반면에 이쪽은 뱀의 조이기에 휘말리면 죽은 목숨이거든.

이 얼마나 불합리한 싸움이야?

-계약자여,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느냐.

“왜?”

-지금 웃고 있느니라.

닉스의 말을 듣고 보니, 입술 끝이 살짝 위로 올라와 있었다.

한 치라도 어긋나면 죽을 수 있다는 긴장감.

도박사가 판돈을 모두 걸고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

난 이 긴장감을 싫어하지 않았다.

“이런 걸 안 즐겼으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그대는 목숨을 걸었던 적이 많았던 것이더냐?

슬쩍 웃는 걸로 닉스의 말을 흘렸다.

회귀를 했다는 걸 이야기해 줄 수는 없으니, 그저 긍정하는 수밖에.

쉬잇! 쉬이이잇!

동여맸던 몸을 다 풀어낸 네스가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네스의 속도가 느려졌다고 해서 위험도가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위험해.’

놈의 머리끝이 좌우로 흔들렸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놓치지 않고 물어 버리겠다는 것이군.

한번 물리거나 조이기를 당하면 끝이다.

나는 도움닫기를 하듯, 양다리를 바짝 붙였다.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물을 침식하는 바알의 권능.

난 발끝에 닿은 물을 [탐욕]으로 붙든 후, 그대로 박찼다.

쿠션을 밟고 도약하는 감각.

푹신해서 제 속도를 낼 수는 없지만.

네스의 돌진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쯤은 가능했다.

[에너지 볼트를 사용합니다.]

네스가 몸을 트는 동안, 최대로 충전된 에너지 볼트를 한방 더 먹여 주었다.

쉬이이잇!

제자리에서 한껏 입을 벌리는 네스.

[워터 볼]

들이마신 물을 응축해서 고압력으로 내뱉는 기술이다.

쏘는 방향만 알 뿐, 눈에 보이지 않아서 피하기가 어려운 공격.

뭐, 일반적인 플레이어라면 말이야.

[육감이 살기를 감지합니다.]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감각.

-계약자여, 뭉쳐진 물이 정면으로 날아들고 있느니라!

나는 대각선으로 헤엄쳤다.

보이지 않는 공격.

워터 볼이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만든 파동만이 유일한 흔적이었다.

잠깐만.

“여신님 눈에는 저게 보여?”

-후훗, 여의 눈을 피해 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도다.

오호라. 우리 여신님, 생각보다 쓸 만하잖아!

네스가 [워터 볼]을 사용하면 회피만 하려고 했는데.

이러면 작전을 바꿔야지!

“저 뱀 새끼가 물 뱉을 때마다 이야기해 줄 수 있어?”

-그쯤이야 어렵지 않노라.

“각도, 그리고 노리는 위치도 말해 줘.”

-계약자여, 여를 믿거라.

좋아.

닉스가 처음으로 밥값을 해 주는군.

-정면이니라.

나는 물을 차면서 워터 볼을 회피, 네스한테 다가갔다.

-괴물에게 아무 대책 없이 다가가도 되는 것이더냐?

“저 녀석, 못 움직여.”

워터 볼을 사용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부풀어 오른 네스의 배.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안 보일 만큼 미세한 변화지만, 아까보다 확실하게 차올랐다.

“배 속에 물을 담아 두고 쏘는 거거든.”

-과연 여의 계약자로다.

상대의 정보를 미리 안다는 게 이래서 중요한 거다.

거대 뱀 네스의 정보는 이미 전 회차 플레이어들 덕에 밝혀진 상황.

내가 ‘회귀자’가 아니라고 해도 알 수 있는 정보들이다.

그 덕에, 네스 공략법을 짜는 건 쉬웠다.

움직임이 봉쇄된 네스.

닉스 덕에 워터 볼의 궤적을 읽을 수 있다면.

무방비 상태인 뱀 새끼한테 한 방 먹일 기회를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다.

나는 연신 물을 밀어내면서 네스와의 거리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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