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9화 (29/300)

29화

얼마 후.

난 이지영을 대동한 채 물가로 다가갔다.

“바, 바로 사냥인가요?”

“실전보다 좋은 훈련이 어디 있는데.”

“그래도 좀…….”

이지영은 말끝을 흐렸다.

회귀 전보다 젊은 모습이야 그렇다지만.

‘통곡의 벽’이라는 이명이 붙을 만큼 무자비하던 그녀가 사회 초년생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걸 보니 참 새롭구먼.

“아까 나보고 스승이라고 했잖아.”

“그랬죠.”

“의심 말고 믿어. 잘될 거야.”

쩍 벌어지는 이지영의 입.

근거도 없는데 너무 확실하게 말했나?

나는 이지영의 회귀 전 모습, 그러니까 미래를 보고 왔다.

그녀의 재능과 능력은 절대로 낮지 않다.

하이 랭커가 그냥 되는 줄 아나?

뛰어난 고유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만 가지고는 숱한 플레이어들을 제치고 하이 랭커로 우뚝 설 수 없다.

“저, 저, 한번 해 볼게요!”

이지영의 목소리에서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말하는 거 보니 실전에서도 괜찮겠어.

“결계 사거리는 최대 얼마야?”

“100미터에요.”

“좋아. 내가 사거리 안으로 물고기를 유인할 테니, 충돌하는 순간에 결계를 사용해.”

“네!”

풍덩-!

난 곧장 호수로 진입했다.

[초음파]를 수중에 퍼트리니, 괴물들의 위치가 읽혔다.

-계약자여, 본녀는 저 여인이 정말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구나.

어허, 조금만 있어 보십쇼.

이 여신님은 꼭 내가 말을 못 할 때만 대화를 걸더라.

나는 [탐욕의 가호]로 물을 침식, 근방에 잠든 메기를 자극했다.

동그란 눈을 뜨는 폭군 메기.

놈은 날 발견하더니 금세 달려들었다.

철붕어와 동일한 패턴.

하지만 속도가 1.5배 정도 빨랐다.

몸도 더 커서 돌진의 파괴력만 놓고 보면 철붕어의 두 배 이상 되지 않을까 짐작되었다.

난 [탐욕의 가호]로 인근의 물을 장악했다.

쭉쭉 빠져나가는 마나.

이렇게라도 해야 저 메기를 한순간이라도 붙들 수 있다.

‘폭군 메기는 일격이탈의 달인이니까.’

온몸이 매끈거리는 메기.

저놈은 철붕어처럼 들이받은 후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타격과 동시에 자리에서 이탈.

크게 원을 돌아서 다시 달려든다.

첫 돌진에서 잡지 못하면 사냥하기가 요원한 셈이다.

그렇기에.

‘이지영의 역할이 중요해.’

나는 양팔을 벌린 채, 폭군 메기가 달려들기를 기다렸다.

[가시 갑피의 내구도가 17% 감소했습니다.]

철붕어의 정수, [철비늘]로 강화된 가시 갑피.

덕분에 충격을 꽤 줄일 수 있었다.

나는 품에 들어온 폭군 메기에게로 양팔을 뻗었다.

미끈거리는 양손.

발을 디딜 곳 없는 수중이라서 더 힘을 주기도 힘들었다.

“꾸루룽.”

폭군 메기가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힘이야 내가 훨씬 세지만, 물 안이라는 페널티 때문에 폭군 메기를 붙들기가 어려웠다.

그 순간.

[진동 결계 x 2]

무지개 색을 띤 결계가 폭군 메기의 머리와 배에 생성되었다.

지이이잉!

결계가 발산하는 진동이 메기의 몸을 매질삼아서 증폭되었다.

-물고기의 움직임이 둔해졌느니라!

놀라는 닉스.

당연하지.

저 진동의 활용방법은 단순히 ‘파괴’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일정 간격으로 물체를 끼워 놓으면 분쇄하지는 못해도 움직임을 둔하게 할 수 있다.

디버프의 일종이지.

적을 분자 단위로 갈아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운용 방법이다.

떨 때는 언제고.

잘만 하는구먼!

‘미래의 하이 랭커는 역시 달라.’

나는 미소를 머금은 채,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했다.

날선 손톱 위에 드리우는 검붉은 기운.

[탐욕의 가호]가 침식할 수 있는 건 한 번에 하나의 성질뿐이다.

폭군 메기를 붙드는 역할은 결계로 대체했으니, 공격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사용해야지.

[혈조공을 사용합니다.]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무공의 위력이 감소합니다.]

손을 사용하는 조법(爪法)이라고 해도, 물 안에서 펼치면 제힘을 낼 수 없다.

무공이라는 게 팔과 다리를 모두 사용하는 거라서 말이야.

힘을 100% 낼 자세를 잡지 못하니 감수해야지.

파파팟!

[날카로운 손톱]으로 강화된 손이 미끈거리는 폭군 메기의 껍질을 마구 도려냈다.

푸른 물 사이로 퍼져 나가는 붉은 색.

철붕어 때와 달리 사냥 과정에서 유혈이 낭자했다.

몸을 비트는 폭군 메기.

처음에는 머리로 나를 들이받더니 아가리를 벌리더니 물기도 했다.

하지만.

[가시 갑피의 내구도가 8% 감소했습니다.]

[가시 갑피의 내구도가 7% 감소했습니다.]

철붕어의 정수로 한층 강해진 갑피는 충격 대부분을 흡수했다.

폭군 메기 녀석, 마음이 급해져서인지 아가리를 벌려서 나를 물었는데.

‘오히려 좋아.’

폭군 메기의 혀를 밟으니 자세가 한층 안정되었다.

더 현란한 궤적을 그리는 손톱.

얼마쯤 지났을까.

폭군 메기가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경험치 0.9%를 획득했습니다.]

메기의 사망을 알리는 시스템의 음성.

철붕어를 사냥할 때보다 배 이상 빠른 속도였다.

-정말 대단하구나. 그대의 안목은 언제나 정확한 것 같도다!

감탄하는 닉스.

뭘, 이 정도로 놀라기는.

나는 [포식]으로 폭군 메기의 사체를 갈아 버렸다.

* * *

[폭군 메기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아가미 추가됩니다.]

[아가미]

등급: ★

분류: 패시브

물에서 숨을 쉬게 해 준다. 물에서 움직일 때 저항력이 20% 감소한다.

-오오! 드디어 필요한 능력이 나왔느니라!

닉스가 환호했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능력.

저항력 일부가 줄어드는 부가 효과도 붙어 있다.

이 정도면 네스하고 수중전을 벌일 때 도움이 되겠어.

나는 시험 삼아 물속에서 입을 벌려보았다.

폐부로 스며드는 신선한 공기.

물을 가득 머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효과 좋네.”

물에서도 잘만 퍼지는 음성.

이제 닉스가 물속에서 떠들어도 대꾸할 수 있겠군.

-계약자여, 이제 그 네스라는 괴물을 쓰러트리러 가는 것이더냐?

“아직. 놈을 사냥하려면 준비가 더 필요해.”

-호수에서 더 포식할 정수는 없다고 하지 않았더냐.

“내 무기는 포식만 있는 게 아니야.”

오른손을 들어서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포식] 능력도 대단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미래의 지식이 모두 들어 있다.

정보는 곧 힘!

내 능력이 부족해도 정보를 활용하면 어떤 적이라도 이길 수 있다.

-계약자여, 저 여인도 네스 사냥에 참여하는 것이더냐?

“아니. 네스의 영역은 호수 안쪽이라 쟤를 데리고 갈 수가 없어.”

호수는 레인보우 아일랜드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다.

이지영이 나처럼 물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주전장은 결계의 최대 사거리보다 더 안쪽이기에, 그녀의 도움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그 사실을 이지영에게 말했다.

“그러면 여기까지겠네요.”

“일일 스승치고는 괜찮았지?”

“일일이라뇨. 진호 님은 저한테 영원한 스승님이에요.”

이지영은 90도 각도로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괜찮은 아이로다.

어쭈.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드는 것처럼 말하시더니, 금방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레벨은 얼마나 올랐어?”

“스승님의 은혜 덕에 17이 되었어요.”

참고로 그녀의 레벨은 나랑 팀을 맺기 전까지만 해도 7이었다.

반나절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레벨을 10이나 올린 이지영.

폭군 메기가 강하긴 하나 보다.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게 아닌데도 경험치를 이렇게나 얻다니 말이야.

괴물 사체에서 부산물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지영은 그보다 더 값진 것을 얻은 표정이었다.

“팀 활동은 여기까지야.”

[플레이어 유진호가 팀을 탈퇴했습니다.]

[구성원이 부족합니다. 팀이 자동적으로 해체됩니다.]

이지영의 능력이 개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몇 년이나 앞당겨 주었다.

남은 건 그녀가 해야 할 몫.

“다음에 볼 때는 결계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있을 거예요.”

자신 있는 모습으로 떠나는 이지영.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통곡의 벽’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저 아이, 강해지겠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대가 시간을 들여 지도한 덕분이니라.

“지도하기는. 상부상조야.”

이지영을 도운 건 단순히 회귀 전의 추억 때문이 아니다.

폭군 메기를 수월하게 사냥하려면 그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냥을 마친 후.

난 호수 근처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댔다.

붉은 동굴에 이은 두 번째 휴식.

[대지모신의 가호]가 있다고 해도, 누적되는 피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암- 쩍 벌어진 입에서 하품이 흘러나왔다.

-그대도 피로를 느끼는구나.

“당연하지. 난 피가 흐르는 인간이잖아.”

-본녀는 그대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게 피가 아닌 줄 알았노라.

“진심이야?”

-후훗, 농담이니라.

닉스는 웃음을 흘렸다.

시시하긴.

-이제 호수의 지배자를 사냥하러 갈 차례더냐?

“점검 좀 하고.”

나는 상태 창을 활성화했다.

[플레이어 - 유진호]

나이: 23

능력: 포식

레벨: 13 → 27

종족: 인간

*능력치

근력: 63.2 → 114.5(+15)

민첩: 65.8 → 107.8(+12)

체력: 70.3 → 90.4

맷집: 77.9 → 95.6(+30)

마력: 99.1 → 120.1(+20)

내공: 22.2

신력: 1

[능력 - 포식]

생명이나 사물에 깃든 정수를 포식합니다.

*스킬

5성[★★★★★]

용의 심장

3성[★★★]

괴력 / 육감 / 냉혈

2성[★★]

독수리의 눈 / 가시 갑피 /포효 / 산성 피 / 머드 트랩 / 삼재기공 / 혈조공

1성[★]

날카로운 손톱 / 용해 / 민첩한 뒷발 / 아가미 / 파이어 / 블레이즈 / 에너지 볼트 / 재생 / 흡혈

*성좌

대지모신의 가호 - 랭크 1

탐욕의 가호 - 랭크 1

스텟 총합 500대.

아이템 보정을 뺀 수치다.

레벨 100 초반 플레이어에 버금가는 수준!

[포식]으로 흡수한 스킬도 어느덧 20개를 넘어섰다.

이 정도면 강적이었던 늪지의 마왕과 혈산군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승리할 자신이 있다.

레인보우 아일랜드에 있는 괴물들의 정수를 먹어 치운 결과물!

-계약자여, 궁금한 게 있느니라.

“뭔데?”

-네스라는 거대 뱀 있지 않느냐. 그 괴물을 그대만 노리리란 법은 없지 않더냐.

“자살 희망자라면 그러겠지.”

픽, 입에서 실소가 새어 나왔다.

호수의 지배자, 거대 뱀 네스.

놈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일명 ‘졸업 과제’로 불린다.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가장 센 괴물.

호수 안에서 벗어나는 일도 없어서 사냥을 하려면 지형 페널티도 감수해야 한다.

“놈은 말 그대로 튜토리얼의 최종 보스야.”

-그러하구나.

“혹시 모르니 확인이나 해 볼까?”

나는 스테이지 현황판을 활성화했다.

순위권 플레이어들의 점수가 얼마인지 보면, 이번 기수 수준이 눈에 보이거든.

왕년에는 튜토리얼 토토도 제법 맞춰 봤단 말이야.

튜토리얼 현황을 확인하던 중, 내 눈동자가 어느 한 곳에서 멈춰 섰다.

“여신님, 네스를 잡는 건 보류.”

-무슨 일이더냐?

“그 녀석보다 먼저 사냥해야 할 게 생겼어.”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