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철붕어 사냥은 계속되었다.
-한 마리가 또 오느니라.
“오케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철붕어.
나는 [탐욕의 가호]로 인근의 물을 침식했다.
부글부글- 철붕어가 헤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로 들이받았다.
[갑피의 내구도가 28% 소모되었습니다.]
확연하게 줄어든 충격.
푸른 물 사이로 퍼진 검붉은 실선이 철붕어의 전신 주위를 뒤덮었다.
-그 불쾌한 녀석의 가호를 이런 식으로 활용할 줄이야.
감탄하는 닉스.
나는 [탐욕의 가호]로 주변의 물을 침식, 마나를 부여해서 쿠션으로 활용했다.
철붕어의 돌진력을 0으로 만들진 못해도, 내 몸에 전해지는 충격을 상당 부분 흘려 낼 수 있었다.
‘뭐든 쓰기 나름이니까.’
품 안에 안긴 철붕어를 짓눌렀다.
잡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가까이 붙기만 하면 철붕어를 사냥하는 것쯤…….
‘식은 죽 먹기야.’
우드득!
[괴력]으로 비늘을 짓누르자, 섬뜩한 소리가 퍼져 나왔다.
바동거리는 철붕어.
얼마 동안 팔딱거리더니 지느러미를 축 늘어뜨렸다.
‘마지막 녀석도 무사히 사냥했군.’
품 안에 들어온 철붕어의 사체에 [포식]을 사용했다.
[철붕어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체력 + 3]
[맷집 + 3]
[스킬 - 철비늘이 추가됩니다.]
[철비늘]
등급: ★
분류: 액티브
철로 된 비늘로 몸을 방어한다.
소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쯧, 나는 혀를 찼다.
-꽝이로구나.
여신님,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대?
근데 말이야.
전에도 말했지만 정수는 버릴 데가 하나도 없거든요.
[철붕어의 정수가 ‘가시 갑피’에 공명합니다.]
[갑피의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역시.
비슷한 계열이라 그런지, 능력이 통합되었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까.
마나 소모가 더 올라갔지만, [용의 심장] 덕에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대의 능력은 끊임없이 발전하는구나.
뭐, 그런 셈이지.
수중에서는 대꾸가 불가능하니, 떠오른 말을 마음속에 꾹 누른 채 호수 위로 올라갔다.
“진호 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환호하는 오지원.
나를 부르는 호칭이 플레이어에서 존칭으로 은근슬쩍 바뀌었다.
“안 가고 뭐 하냐?”
“예?”
“그러다가 박종원한테 따라잡히겠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건 좋은데 말이야.
형이 막 물장구를 치고 나와서 엄청 피곤하거든?
“아! 그렇군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오지원은 자리를 박찼다.
“나한테 줄 거 있다고 했잖아.”
“그랬죠. 여기 있습니다.”
여분의 옷을 받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급히 호숫가를 떠나는 오지원.
-그대는 무정하구나.
“뭐가?”
-본녀가 보기에, 저 치는 그대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것 같다만.
“저 녀석이 애도 아니고. 일일이 신경 써 줄 시간이 없어.”
나는 옷가지를 걸쳐 입으면서 대꾸했다.
어중간한 녀석들과 힘을 합쳐서는 고신족을 이길 수 없다.
최소한 미래의 하이 랭커급은 되어야지.
“예를 들면…….”
난 아무 생각 없이 호숫가를 둘러보았다.
그때.
우연히 어떤 플레이어와 눈이 마주쳤다.
“쟤가 왜 여기에 있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
시선의 끝에는 단발머리의 여인이 걸려 있었다.
-저 여인 말이더냐.
“여신님, 잠깐만.”
나는 당혹감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피로감에 찌든 단발머리의 여인.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회귀 전의 기억이 맞다면…….
‘통곡의 벽?’
눈을 마주친 여인.
이지영은 먼 미래에서 한국의 하이 랭커로 명성을 떨치게 될 플레이어다.
잠깐만.
네가 왜 여기서 나와?
* * *
-계약자여, 저 여인과 구면이더냐?
“아마도.”
나는 떨떠름한 투로 대답했다.
현생에서는 초면이지만, 회귀 전을 기준으로 하면 꽤 낯이 익거든.
설마하니.
그녀가 나와 같은 회차 플레이어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호오, 그대와 어떤 인연으로 엮였는지…….
“잠깐만.”
나는 닉스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상념에 빠졌다.
먼 훗날의 하이 랭커인 이지영.
멸망의 시대에서 호흡을 맞춰 본 적도 있기에, 그녀의 능력이 뭔지 잘 알았다.
‘이지영의 능력이라면 물고기 사냥이 훨씬 쉬워질 거야.’
믿었던 철붕어가 배신(?)을 한 상황.
폭군 메기는 철붕어보다 사냥 난이도가 더 높다.
얼마나 고생을 해야 할지 모르는데, 이지영이 힘을 보태 주면 훨씬 수월하게 폭군 메기를 사냥할 수 있을 거다.
참.
그러고 보니 이지영도 나처럼 고유 능력의 진가를 늦게 발견한 플레이어로 유명했다.
응용 난이도가 높은 이지영의 고유 능력.
하지만.
잘 다룰 수만 있다면 공방 어느 쪽으로든 활용이 가능했다.
만약, 내가 그녀의 고유 능력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을 알려 준다면…….
‘그녀는 더 빠르게 하이 랭커가 되겠지.’
이런 걸 보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고 하던가?
흐흐흐.
막 떠오른 기발한 아이디어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음흉하게 웃지 말거라. 복 달아난다.
“가만히 지켜보십쇼, 여신님.”
-당최 무슨 생각인지.
“나한테 다 생각이 있다니까.”
닉스의 볼멘소리를 뒤로한 채, 이지영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아, 혹시 유진호 플레이어?”
“알아봐 주니 영광이네요.”
“모를 리가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거든요.”
이지영의 눈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소문과는 조금 다르지만요.”
“무슨 소문?”
“찢어진 옷을 걸치고 다니는 변태라는 이야기요.”
뿌드득.
나는 이를 갈았다.
박종원, 이 새끼를 다음에 만나면 포션 정도로 안 끝날 거다.
“근데 이번 회차 플레이어 중 가장 잘나가시는 분이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나랑 일 하나 하시죠.”
이지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얼굴 위로 드러나는 노골적인 경계의 빛.
내 제안이 너무 쌩뚱맞았나?
“당신, 고유 능력으로 결계가 있지 않나요?”
“제 능력을 어떻게……?”
“우연히 사냥을 하다가 봤거든.”
나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거짓말은 아니지.
회귀 전에 이지영과 팀을 맺고 사냥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러면 아실 텐데요. 제 능력은 사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이지영은 기죽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결계에 특화된 능력.
그렇다고 전위에 나서서 탱킹을 맡을 수도 없다.
탱커 역할을 맡으려면 괴물들의 관심을 끌 스킬이 필요하거든.
단순히 방어력만 높아서는 후위로 향할 어그로를 묶는 게 불가능하다.
이지영의 초반 성장세가 느린 것도 그 이유다.
공격 스킬 전무.
돈으로 공격 관련 스킬 북을 구매하면 되지 않나? 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고유 능력 페널티로 방출 계열 스킬을 못 익히거든.’
이지영이 몇 년 동안 탑 저층을 전전한 이유다.
“속는 셈 치고 팀 해 보시죠. 손해 볼 건 없잖아요?”
나는 오른손을 불쑥 내밀었다.
플레이어끼리 팀을 맺는 동작이다.
의아한 눈빛으로 내 손을 바라보던 이지영은 이내.
“그러다가 후회해도 몰라요.”
못 이기는 척 악수를 했다.
[플레이어 이지영과 팀을 맺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응.”
“네.”
둘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 * *
나는 이지영을 대동한 채, 근처에 있는 나무로 향했다.
10미터 정도 크기의 나무.
이 정도면 실험용으로 충분하겠어.
“결계를 쳐 볼래요?”
“알았어요.”
이지영은 순순히 결계를 사용했다.
지이잉!
프리즘이 허공에 맺힌다.
육각 형태의 프리즘은 무지개를 코팅해 놓은 것처럼 화려한 빛을 흩뿌렸다.
결계에 손을 얹자.
쩌엉! 프리즘 주위를 뒤덮은 진동이 강한 반탄력을 발산하면서 확 밀어냈다.
“아, 죄송해요. 제 결계는 피아 구분 없이 밀어내는 효과가 있어요.”
“괜찮아요.”
미안할 게 뭐 있나.
회귀 전의 기억이랑 똑같아서 반갑기만 하구먼.
사용자의 주변, 혹은 일정 범위 안에서 결계를 자유자재로 고정시키는 능력.
‘고유 능력 이름이 진동 결계였지?’
진동 결계.
이지영이 펼친 결계는 일정 주기로 미세한 진동을 퍼트리는데, 그 파동이 결계의 내구력을 올려 준다.
뭐, 그녀의 능력이 그게 전부였다면 ‘통곡의 벽’이라는 이명이 안 붙었겠지.
설명만 보면 방어에 특화된 것 같지만…….
‘진동 결계의 진짜 활용 방법은 방어가 아니야.’
결계의 작동 방식은 미세한 진동을 일으켜서 공격을 밀어내는 거다.
이지영은 한발 더 나아가, 결계를 적의 앞뒤로 쳐서 짓누르는 식으로 운용했다.
무언가를 결계 사이에 끼워 두면 진동이 제곱으로 증폭된다.
거기서 발생하는 엄청난 마찰 에너지!
결계 사이에 들어온 존재는 무한히 증폭되는 진동에 버티지 못하고 원자단위로 분해되었다.
“그 결계, 좌표를 고정해서 허공에도 전개 가능하죠?”
이지영의 눈동자 위로 의구심의 빛이 감돌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는 눈빛.
-본녀도 꽤 궁금하구나. 저 여인은 계약자를 처음 보는 것 같다만.
어허, 여신님도 조용히 계세요.
나중에 다 설명……해 줄 일은 없겠구나.
아무 말 없이 이지영을 쭉 바라보자, 그녀가 한숨을 푹 쉬면서 입을 열었다.
“마나 소모가 2배지만요.”
“그러면 저 나무의 앞뒤를 감싸는 느낌으로 결계를 사용해 볼래요?”
“시키면야.”
이지영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결계를 전개했다.
지이잉! 지잉!
나무 앞뒤로 펼쳐진 진동 결계.
그 순간, 결계 사이에 낀 나무가 잘게 떨기 시작했다.
“으읏, 이 반발력은 대체?!”
“이지영 씨, 해제하지 말고 버텨 봐요.”
증폭된 진동은 나무의 표면을 흔들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서 수백 조각으로 쪼개 버렸다.
쿵! 밑동을 잃어버린 나무가 좌측으로 쓰러진다.
“하악, 학.”
거친 호흡을 내뱉으면서 주저앉는 이지영.
결계의 형태를 유지하느라 엄청 힘들었을 거다.
연쇄 작용을 제어하는 건 쉽지 않거든.
이지영의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었으면 결계끼리의 반발력에 눌려서 실패했을 거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더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말로 대단하구나. 진동을 증폭시켜서 물체를 산산조각 내다니!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는 닉스.
이지영의 고유 능력, 진동 결계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방금 제가 뭘 본 거죠?!”
“당신의 결계, 방어로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와, 와…….”
넋이 빠진 표정을 짓는 이지영.
스리슬쩍 말을 놓았는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하긴.
결계의 새 응용 방법을 알려 줬는데 반말이 대수겠어?
이지영은 거칠게 숨을 내뱉으면서도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쉬지?”
“아니에요. 스승님 앞에서 어떻게 편히 있을 수 있겠어요!”
엥? 내가 언제부터 당신 스승이 되었냐.
이상하네.
내 기억 속의 이지영은 엄청 차가우면서 염세적인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회 초년생을 보는 것 같다.
‘이 정도면 써먹을 수 있겠어.’
폭군 메기 사냥.
이지영의 결계 능력을 활용하면 철붕어 때보다 훨씬 쉽게 정수를 모을 수 있을 것 같다.
흐흐.
목구멍 너머로 올라오는 웃음을 꾹 누른 채, 입가만 슬쩍 위로 올렸다.
-또 음흉하게 웃는구나.
닉스의 한탄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