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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2화 (22/300)

22화

나는 삼림지대로 돌아왔다.

그림자 보주가 산산조각 났어도, 통로를 메운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건 함정이 발동되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 덕분에 돌아가는 길은 편안했다.

-오오!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곳이로구나!

“감상은 조용히 해 줘, 여신님.”

-후훗, 여가 가호를 못 내려준다고 마음이 상한 것이더냐?

“어.”

나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밤의 여신, 닉스와 계약을 맺었지만 빛 좋은 개살구였다.

막 깨어난 후유증인 걸까.

닉스는 어떤 힘도 사용할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림자 보주 안에 깃든 정수를 포식해 버릴걸!

-계약자여, 방금 불경한 생각을 한 것 같다만.

주먹 크기만 한 시커먼 연기가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양손을 휘저으면서 연기를 흩트려 놓았지만, 금세 뭉쳐서 다시 내 시야를 방해했다.

“여신님, 나 괴롭히지 말고 바깥 구경이나 해.”

-계약자가 심술을 부리니 여도 똑같이 해 준 것뿐이니라.

뭉클거리는 연기에서 새어 나온 목소리.

저 연기가 ‘닉스’였다.

나하고 계약을 한 덕에 유폐된 공간에서 벗어나서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나.

그 대신 연기 형태로는 어떤 물리‧영적인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하-.

진한 한숨이 입술 사이를 비집었다.

무거운 짐이 생긴 기분이군.

-너무 근심하지 말거라. 이 섬의 중심부에 가면 여의 힘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니라.

“그 말만 3번째 듣거든?”

고신족들은 닉스가 주관하는 영역인 ‘어둠’으로 바벨탑을 구축했다.

그 핵이 위치한 게 레인보우 아일랜드의 중심부.

호수 지하에 있는 공동이란다.

내가 [그림자 보주]를 자극한 덕분에 그 위치를 알게 되었다나.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장소였다.

호수의 지배자, 네스의 거처.

레인보우 아일랜드에서 가장 강력한 보스 몬스터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일명 ‘졸업 과제’로 불리는 괴물이다.

놈을 쓰러트리면 호수 지하의 공동에서 [유니크] 등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거기로 가면 힘을 좀 회복하는 거 맞지?”

-그러하니라. 계약을 이행하려면 반드시 그곳으로 가야 하니라.

나한테 유리한 계약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반대였다.

옛 성현의 말씀이 틀린 거 없다고, 이래서 도장 찍기 전에는 잘 확인하라고 하나 보다.

“보채지 좀 마십쇼. 지금 호수로 갔다가는 물고기 밥 되기 좋으니까.”

-흐음. 계약자여, 신력을 다루기에 꽤 강한 줄 알았다만 여의 생각보다 약하구나.

“약해서 미안하게 됐수다.”

-그렇다면 언제쯤에 여의 힘이 봉인된 곳으로 갈 생각이더냐?

“일단 좀 강해져야지.”

-여기에서 머무를 수 있는 건 2주밖에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응.”

-여는 남은 기한이 짧아서 걱정이 되는구나.

“걱정하지 마.”

나는 손을 꽉 말아 쥐었다.

강해지는 방법은 잘 알고 있거든.

* * *

[현재 당신의 위치는 늪지입니다.]

[늪 - 상태 이상 ‘슬로’ 적용.]

질퍽- 초록색을 띤 늪지대에 진입하는 순간, 물컹거리는 감각이 발을 휘감았다.

“으, 이래서 늪은 좋아할 수가 없어.”

점액질이 다리를 붙든 감각.

거기에, 필드 특유의 효과가 적용되었다.

민첩 20%을 깎는 디버프.

늪지대에 진입하니, 노란색 기운이 전신을 휘감았다.

다른 지형보다 2배나 높은 페널티.

그뿐이랴. 지형 디버프와 별개로, 늪지 특유의 점성이 움직임을 제한했다.

‘여기랑 화산은 플레이어들한테도 기피 지역이지.’

늘 열기로 뒤덮여 있는 화산 지대.

그리고 운신 제약 페널티가 붙어 있는 늪지.

두 지역은 튜토리얼 공략에서도 순위권 경쟁을 하지 않는 이상, 굳이 추천하지 않았다.

-여긴 참으로 불결한 곳이로구나.

“더럽기는 해.”

-그대도 더러워졌느니라.

“여신님도 진흙 맛 좀 볼래?”

-사양하겠다.

늪에 손을 벋어서 진흙을 쥐자, 연기가 급격하게 멀어졌다.

저 여신님,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빠르단 말이야.

철퍽, 철퍽.

난 다리에 힘을 주면서 늪지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을 뗄 때마다 눌어붙는 진흙.

힘이 부족하면 중심을 잃고 늪에 고꾸라질 수도 있다.

내 스텟이 높아서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

“이이잉!”

시끄러운 날갯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흡혈 모기.

성인 남성의 팔뚝만 한 크기에 제 몸뚱이 크기의 침을 입에 달아놓은 녀석이다.

말 그대로 ‘흡혈’을 하는 괴물.

보스 몬스터인 탈론 플레임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비행 속도도 꽤 빠른 편이다.

“이이잉!”

흡혈 모기가 지그재그로 비행하면서 날아들었다.

앞으로 곧게 세운 침.

한번 찔리면 상당한 피를 헌납해야 한다.

저게 튜토리얼에서 싫어하는 몬스터 1순위였지?

비행 유형에 속도도 빠르다.

근접을 허용하면 피를 빨려서 전투를 이어 가기가 어렵다.

잡긴 어려운데 돈이 되는 부산물도 없으니.

플레이어들이 싫어할 만했다.

나야 탈론 플레임도 사냥한 만큼 흡혈 모기의 속도가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만…….

[가시 갑피를 사용합니다.]

더 쉬운 사냥 방법이 있기에, 팔짱을 낀 채 흡혈 모기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잉!”

가까이 다가온 흡혈 모기가 침을 쭉 뻗었다.

팅! 갑피는 모기의 주둥이에 달려 있는 침을 튕겨 냈다.

소모된 내구도는 거의 없다.

침 자체의 공격력은 낮은 편이기에, [가시 갑피]로 충분했다.

“이이잉?”

좌우로 흔들리는 흡혈 모기.

술에 취한 사람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쭉 내지른 침이 갑피에 튕겨 나가면서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듯했다.

“오, 이거까지는 예상 못 했는데.”

혈조공을 쓸 것도 없다.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자, 흡혈 모기의 몸통이 팍- 하고 터져 버렸다.

[경험치 0.7%를 획득했습니다.]

내 근력 수치는 아이템 보정을 포함해서 90대.

일반적인 근접 계열 플레이어가 50레벨에 도달해야 얻을 수 있는 수치다.

맨손이라고는 해도, 맷집이 약한 흡혈 모기쯤 손가락으로도 쓰러트릴 수 있다.

-강해지려고 이곳에 온 것 아니더냐?

“맞아.”

-미물을 사냥하는 것만으로는 신체단련이 될 것 같지 않는다만.

“플레이어들은 괴물을 쓰러트리면 경험치를 얻거든.”

나는 [상태 창]을 닉스에게도 공유했다.

-신기하구나. 이런 시스템은 여의 기억에도 없느니라.

감탄사를 터트리는 닉스.

뭐, 그거 말고도 [포식] 능력이 있기는 하다만 굳이 설명하진 않았다.

“스릅, 스릅.”

늪 표면 위로 기포가 부글거리더니, 코모도 도마뱀을 닮은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흡혈 모기가 잉잉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냥감이 온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늪도마뱀.

길이가 3미터에 달하는 괴물이다.

-혀를 놀리는 것이 참으로 천박해 보이는구나.

“저 녀석은 혀를 조심해야해.”

느린 속도와 강력한 맷집, 그리고 독.

늪도마뱀의 특성이다.

날름거리는 혀에 닿으면 마비 독이 몸에 퍼진다.

맷집도 좋아서 어지간한 원거리 공격으로는 타격을 입히기도 힘들고.

팀 단위로 사냥해야 하는 괴물.

-혀의 움직임이 꽤 빨라 보인다만, 괜찮겠느냐?

“마침 잘됐잖아. 심심했는데.”

난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흡혈 모기를 상대하니 몸이 풀리다가 만 느낌이거든.

“쉬쉬쉿!”

늪도마뱀이 전진을 시작했다.

뒤뚱거리면서도 육중한 몸뚱이를 잘도 움직인다.

[에너지 볼트를 사용합니다.]

[최대치까지 마력을 충전했습니다.]

[냉혈]의 효과로 4초 만에 충전된 에너지 볼트.

평소보다 두 배가량 커진 푸른 구체가 늪도마뱀의 몸뚱이를 가격했다.

“쉬이잇?!”

늪도마뱀의 어깨 부위가 까맣게 타 버렸다.

“재생하긴 어려울 거다.”

나는 씩 웃었다.

늪도마뱀의 특성은 [독]과 [재생].

도마뱀이 꼬리가 잘려도 다시 나듯, 자잘한 상처는 늪에 몸을 담그고만 있어도 금세 회복해 버린다.

하지만 강한 열에 당한 상처까진 재생시키지 못할걸?

[에너지 볼트를 사용합니다.]

[최대치까지 마력을 충전했습니다.]

콰앙- 푸른 구체가 다시 한번 늪도마뱀의 몸뚱이를 흔들었다.

혓바늘에 있는 독이 위험하다면.

“안 닿으면 그만이지.”

-참으로 저열한 전투 방법이로구나.

“왜, 우리 여신님은 정정당당한 쪽이 취향인가?”

-그럴 리가. 밤은 모든 것을 포용하느니라.

“다행이네. 앞으로 이런 모습 많이 볼 거거든.”

나는 히죽 웃었다.

움직임이 굼뜬 늪도마뱀.

저 속도로 다가오면 평생 내 뒤꽁무니만 쫓을 거다.

“역시 날로 먹는 게 최고야.”

1분 후.

하얀 김이 늪도마뱀의 전신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경험치 4.2%를 획득했습니다.]

나는 흡혈 모기와 늪도마뱀의 사체에서 정수를 포식했다.

이 기세로만 가면 두 종족의 정수를 금세 100%까지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정수를 모으는 과정에서 레벨도 올랐다.

나는 곧장 보너스 스텟을 분배했다.

“쉽다, 쉬워.”

-이런 식으로 강해질 수 있다니.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기지가 않도다.

“고신족들의 수작질이야.”

차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격을 억지로 상승.

바벨탑과의 동기화를 빠르게 올리려는 속셈이다.

네놈들이 만든 시스템.

내가 골수까지 빨아먹어서 복수해주마.

[포식]을 사용하다 보니 혈산군한테 입은 상처도 하나둘 회복되었다.

슬라임의 [용해] 시너지 효과로 포식 효율이 올라간 덕분이다.

“이래서 내가 포식을 못 끊어요.”

나는 웃음을 흘렸다.

* * *

늪지는 발을 뗄 때마다 불쾌한 감각이 드는 것 빼고는, 완벽한 사냥터였다.

“이잉!”

흡혈 모기의 공격은 나한테 통하지 않았고.

느려 터진 늪도마뱀은 디버프를 적용받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따돌릴 수 있었다.

다가온 흡혈 모기는 파리를 잡듯 가볍게 손을 휘둘러서 사냥.

[에너지 볼트를 사용합니다.]

먼 거리에 있는 늪도마뱀한테는 과충전된 에너지 볼트를 선사했다.

가끔 늪에 몸을 숨기는 녀석도 있지만.

[육감이 위화감을 감지합니다.]

혈산군의 정수에서 추출한 스킬, [육감]으로 늪도마뱀이 숨은 것을 감지해 냈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도 괜찮다.

빅 배트한테서 얻은 [초음파]가 있거든.

초음파를 늪지에 사용하면, 물결에 퍼져 나가면서 몸을 숨긴 늪도마뱀의 위치가 곧장 파악되었다.

늪지에 서식하는 괴물들이 모든 역량을 쥐어짜 내도, 내 눈을 피해 가진 못했다.

-계약자여, 다양한 능력을 익혔구나.

“포식이라는 고유 능력 덕이야.”

나는 포식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정수를 추출해서 능력을 흡수하는 고유 능력.

내 설명을 모두 들은 닉스가 안개를 좌우로 헝클었다.

-여가 말하려는 건 그게 아니니라.

“뭔데?”

-여러 능력을 효율적으로 다루어내는 계약자의 전투 센스를 말하는 것이니라.

“아, 그야…….”

나는 말끝을 흐렸다.

회귀를 해서 그렇다고는 말 못 하지.

“이잉!”

마침 흡혈 모기 하나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사냥감이 알아서 와 주는군.”

자연스럽게 돌려진 화제.

나는 다시 사냥에 집중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흡혈 모기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흡혈이 추가됩니다.]

[흡혈]

등급: ★

분류: 액티브

살아 있는 대상의 피를 빨아서 생명력을 회복한다.

[늪도마뱀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재생이 추가됩니다.]

[재생]

등급: ★

분류: 액티브

마나를 소모해서 상처를 재생한다. 절단된 부위도 밀착시키면 회복할 수 있다.

흡혈과 재생.

예상했던 스킬들이 추가되었다.

-호오, 계약자의 육체에 새로운 힘이 깃들었구나.

“어. 포식으로 새 스킬을 얻었거든.”

-과연. 특이한 능력이로다.

“그런데 내 힘이 늘어난 것도 알 수 있는 거야?”

-여는 명색이 밤을 지배하는 여신이니라. 영혼으로 연결된 계약자의 변화 정도는 금방 알 수 있느니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자부심.

나는 마지못해 대꾸했다.

“위대하신 여신님은 역시 다르십니다요.”

닉스한테 대충 대꾸하고는 흡수한 정수 능력을 확인했다.

‘둘 다 당장은 쓸 일이 없을 것 같네.’

살아 있는 생명체한테 직접 이빨을 꽂아야 하는 흡혈.

재생도 회복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늪도마뱀이 잘린 부위를 아예 새로 나게 할 정도의 재생력을 지닌 걸 생각하면…… 하위 호환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시너지 효과가 있으니까.’

나는 두 스킬 정보를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재생]에 여러 정수의 시너지가 더해지면 [초재생 능력] 스킬을 얻을 수 있다.

사지 중 하나가 잘려 나가도 몇 초 안에 회복하는 능력!

늪도마뱀의 정수는 [초재생 능력]으로 향하는 계단 하나인 셈이다.

“신이 나서 너무 깊게 들어와 버렸군.”

흡혈 모기와 늪도마뱀만으로 너무 난이도가 높아서인지, 늪지에는 보스 몬스터가 없다.

두 종족의 정수를 100% 모은 이상, 더 이상 늪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

그때.

늪지에서 기포가 펄펄 끓는 것처럼 마구 솟구쳤다.

[튜토리얼 1주 차에 보스 몬스터를 다섯 이상 쓰러트린 플레이어가 등장했습니다.]

[해당 플레이어가 늪지에서 1시간 이상 머무를 때, 이벤트가 발동됩니다.]

[늪지의 마왕이 플레이어의 기운에 자극을 받아 잠에서 깨어납니다.]

▶ 히든 퀘스트 - 늪의 위협.

▶ 목표: 늪지의 마왕에게서 승리.

잠깐만, 이런 이야기는 회귀 전에도 못 들어 봤는뎁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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