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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7화 (17/300)

17화

바벨탑 공략 스코어는 바깥 세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매일 자정, 하루 차이를 두고 각 층의 공략 상황이 각 나라에 중계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가지는 중계 목록은 두 가지다.

-탑 선발대 경쟁.

-튜토리얼 스코어.

그중에서도 매달 초에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건 튜토리얼 스코어다.

“여러분, 기다리던 그 날이 왔습니다.”

자칭 튜토리얼 분석가.

시청자들에게는 뉴비 토쟁이라고 불리는 방송인, BJ 너구리는 방송 시작과 동시에 손을 비볐다.

-너하.

-인사 말고 빨리 이번 기수 분석이나 해 봐.

-형, 이번에 누구한테 걸면 돼?

방송을 켜자마자 시청자 수가 빠르게 늘었다.

BJ 너구리의 주요 콘텐츠는 튜토리얼 분석.

유명 길드들에서는 튜토리얼 스테이지가 시작되면 홍보의 일환으로 해당 회차에 투입한 유망주의 스텟 및 장비를 공개한다.

튜토리얼 분석 콘텐츠는 공개된 유망주들의 스펙을 비교, 누가 높은 순위에 있을지 예상하는 것이다.

“이번 기수는 조금 피 튀기는 거 알죠?”

-왜. 화랑이라도 들어감?

-기사 못 봤냐. 화랑이랑 불사조가 겹쳤잖아.

-3대 길드는 아니지만 유명한 그림자 길드 출신 유망주도 있던데.

-네다그.

-아, 광고 아니라고.

-응. 듣보잡 길드 몰라.

BJ 너구리는 길드에서 공개한 자료를 띄웠다.

“이야, 이번에는 화랑이랑 불사조가 맞붙네요.”

-형, 우리가 아까 다 말한 거잖아.

-너바.(너구리 바이라는 뜻 ㅎ)

-말 돌리면 방송 끔.

“커흠, 화랑의 유망주는 박종원 플레이어인데, 고유 능력이 병기의 달인이네요.”

-병기의 달인?

-아, 장비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고유 능력인데.

-뉴비라서 모르는데. 그게 좋은 거임?

-응애. 나 애기 토토러.

채팅창은 박종원의 특성을 듣고 놀라는 이들과,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로 갈렸다.

BJ 너구리가 흐뭇하게 웃었다.

“협회 분류로는 S랭크. 착용 장비의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고유 능력이에요.”

-아이템 능력 증폭? 생각보다 별로인 것 같은데.

-뉴비들은 이래서 안 됨. 세계 랭킹 105위인 주드로가 그 능력 보유자잖아.

-석유 어서 오시고.

BJ 너구리는 시청자들이 또 과열되기 전에 다음 자료를 띄웠다.

“불사조 길드 유망주는 오지원인데, 이 친구는 철인이네요. 이야, 다들 짱짱하네.”

-철인이면 스텟 보너스 20% 아님?

-미쳤네.

-병기의 달인에 이어 또 S급이네.

-오늘 콘텐츠는 토토가 아니라 국뽕이었음?

-캬, 주모!

-너구리가 볼 때에는 둘 중에 유리함?

“화랑 길드의 박종원이죠.”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BJ 너구리.

[철인]은 대기만성형 고유 능력이다.

레벨을 올릴 때마다 스텟을 추가로 받는 건, 고레벨에서 더 혜택이 크기 때문!

철인 능력에 부가적인 능력이 더 붙어 있지만, 상대가 너무 안 좋았다.

‘화랑이 작정하고 밀어줬어.’

유니크 아이템, 소리장도.

그 외에도 최소 [레어] 이상으로 무장을 지원했다.

박종원의 고유 능력인 ‘병기의 달인’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함!

“에이, 재미없네요. 둘 중 하나를 찍으라고 하면 박종원이라서.”

따르릉- 따르릉-.

마침 11시 59분으로 세팅했던 알람이 울렸다.

“1분 남았네요.”

BJ 너구리와 시청자들은 모두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AM - 00:00]

자정이 되는 순간.

탑 각 층의 공략 현황이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BJ 너구리는 손을 비비면서 결과를 확인했다.

[바벨탑 튜토리얼 - 한국 채널]

[1위 - 유진호]

…….

“제 말이 맞죠? 박종…… 엥?”

당황한 BJ 너구리.

그의 눈에는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유진호?

-그건 또 어떤 뉴비야.

-길드 소속도 아닌 듯. 찾아봤는데 없음.

-길드에 안 든 뉴비가 1위 한 거 실화?

-토쟁이들 단체 오열.

채팅창의 열기가 아까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아올랐다.

같은 시각.

BJ 너구리의 방송뿐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튜토리얼 1일 차 결과를 보고 경악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길드 관계자들이었다.

“유력 길드의 지원 없이 1위를 했다고?”

“점수를 봐. 엄청나잖아. 이건 역대급 기록이야!”

“유진호가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해.”

“화랑이랑 불사조 유망주를 제친 플레이어라니. 우리 길드에서 반드시 섭외해야 한다.”

길드 관계자들은 BJ 너구리가 분석한 것보다 더 객관적인 지표를 뽑아 놓았다.

박종원 - 67%

오지원 - 32%

그 외 - 1%

튜토리얼 첫날 1위 확률.

협회 및 각 길드에서 계산한 확률은 대동소이했다.

1%는 그저 확률상으로만 존재하는 수치.

하지만 그 작은 확률이 잭팟으로 터져 버렸다.

국내 여러 길드에서 진호의 행적을 쫓았다.

“CCTV부터 확보해.”

“나이, 학교. 친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보고.”

“SNS부터 일단 싹 뒤져!”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은 언론도 바쁜 건 마찬가지.

유진호라는 세 글자가, 대한민국의 밤을 뜨겁게 만들었다.

* * *

울창한 삼림.

빼곡하게 들어선 침엽수가 나를 반겨 주었다.

[현재 당신의 위치는 숲입니다.]

[숲 - 시야 10% 감소]

삼림 지대에 발을 대는 순간, 검은 테두리가 시야 바깥을 감쌌다.

이 정도 페널티는 괜찮지.

나는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숲을 거닐었다.

땅바닥에 드리운 침엽수들의 그림자.

해가 중천에 떠올랐는데도, 빽빽한 나뭇잎들이 햇볕을 가린 탓에 어둑어둑했다.

‘괜찮아. 숲에는 위험한 적은 없으니까.’

얼마쯤 걸었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아주 작은 소리.

빅 배트한테서 [초음파] 능력을 얻지 않았다면 못 잡아냈을 거다.

나는 잡음의 진원지로 방향을 바꾸고는 걸음 속도를 올렸다.

1분 정도 걷자, 기다란 뿔이 시야 끄트머리에 걸렸다.

마나 사슴. 숲에서 출몰하는 괴물이다.

녀석도 내 존재를 알아챈 듯,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봤다.

그 순간, 마나 사슴은 고개를 90도 각도로 숙였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양 갈래로 뻗어 나간 뿔 사이에 맺힌다.

[에너지 볼트]

쇄애액! 푸른 구체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인사 한번 강렬하네.”

난 팔뚝에 [가시 갑피]를 두른 채로 달려 나갔다.

직선코스.

이대로 달려가면 에너지 볼트에 몸을 들이미는 꼴이다.

서로 거리가 꽤 먼 덕에 피하려고 하면 충분히 회피할 수 있지만.

난 정면을 택했다.

‘마나 사슴은 공격 후에 무조건 도망친다.’

전투를 기피하는 특성.

원거리에서 에너지 볼트로 공격을 한 후, 전력으로 도망치는 게 마나 사슴의 패턴이다.

속도도 빨라서 도주하는 마나 사슴을 잡는 건 꽤 까다롭거든.

[가시 갑피의 내구도가 4% 감소했습니다.]

팔에 전해진 충격은 크지 않았다.

[에너지 볼트]는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이 공통으로 익히는 1성 스킬이다.

다시 말해 강하진 않다는 것.

“뾰로롱?”

마나 사슴은 첫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내 저럴 줄 알았다.

[민첩한 뒷발을 사용합니다.]

연속적으로 민첩한 뒷발을 사용.

단번에 100미터라는 거리를 좁혔다.

눈이 휘둥그레진 마나 사슴.

뒤늦게 발로 땅을 차면서 거리를 벌리려고 했지만.

“이미 게임 끝났어.”

[날카로운 손톱]으로 강화한 손톱을 휘둘렀다.

서걱! 푸른 궤적이 허공을 휘젓고, 그 색과 대조되는 붉은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바닥에 쓰러진 마나 사슴.

이 녀석은 속도에 치중되어 있어서 맷집이 약했다.

붙기만 하면 쓰러트리는 건 어렵지 않다.

‘접근 자체가 어려워서 그렇지.’

마나 사슴은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기피하는 사냥감이다.

턱없이 높은 사냥 난이도.

원거리에서 마법을 사용하면 요리조리 피하고 가까이 붙으면 전력으로 도망쳐서 플레이어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나도 [민첩한 뒷발]을 연속으로 쓰지 않았으면 사냥하는 데 꽤 땀을 빼야 했을 거다.

[포식을 사용합니다.]

[마나 사슴의 정수를 포식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것도 없겠다, 곧장 다음 사냥감을 찾아 움직였다.

“뾰로롱.”

“뾰롱.”

마나 사슴들은 내 존재를 인식하는 순간, 한결같이 에너지 볼트를 사용했다.

에너지 볼트를 전개할 시간에 도망치면 조금이라도 살 가능성이 높아질 텐데 말이야.

그걸 알 리가 없지.

난 정면으로 날아드는 [에너지 볼트]를 무시하고 마나 사슴을 하나둘 사냥했다.

[마나 사슴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일반]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스킬 - 에너지 볼트가 추가됩니다.]

[에너지 볼트]

등급: ★

분류: 액티브

마나를 응축해서 화살 형태로 방출한다.

사용 시 미량의 마나를 소모한다.

*마나 충전 가능

역시나 1성 스킬.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원거리 대응 수단이 생긴 게 어디야?’

회귀 후 처음으로 익히는 마법 스킬.

정수를 흡수하자, 마나 재배열 방식이 뇌리에 인식되었다.

나는 시험 삼아 [에너지 볼트]를 사용했다.

신체의 마나가 간단한 재배열 과정을 거치면서 응축된다.

[에너지 볼트]가 완성되기까지는 약 1초.

손을 까딱거리자, 푸른 구체가 침엽수로 날아갔다.

쿵- 작은 폭발음과 함께 충돌 부위가 푹 파였다.

마나 사슴보다는 강한 위력.

내 마력 수치가 높은 덕에 에너지 볼트의 공격력도 보정을 받았다.

“주력으로 쓸 정도는 아니네.”

내 근력 수치는 아이템을 포함해서 80이 넘는다.

[가시 갑피]로 손을 보호한 채로 후려치면, 나무를 부러트릴 수도 있다.

원거리 공격 수단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해야 하나.

‘잠깐, 충전 기능도 있었잖아?’

난 다시 한번 에너지 볼트를 사용했다.

완성된 구체가 손바닥 주위를 아른거릴 때, 방출하는 대신 마나를 더 불어넣었다.

조금씩 커지는 에너지 볼트.

4.2초 정도 지나니, 구체의 크기가 처음보다 3배 정도 커졌다.

[에너지 볼트가 과충전 상태입니다.]

[해당 스킬에 더 이상 마나를 불어넣을 수 없습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볼트를 침엽수 쪽으로 방출했다.

콰앙!

이번에는 폭발음부터가 달랐다.

산산이 부서진 피격 부위.

침엽수가 우지끈, 이라는 소리를 내면서 우측으로 기울었다.

“쓸 만하잖아?”

나는 부러진 침엽수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먼 거리의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할 만한 위력이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맞히기가 어렵겠지만, [에너지 볼트]의 존재만으로도 심리전을 걸 수가 있는 거다.

회귀 전에는 얻지 못했던 마나 사슴의 정수.

생각보다 쓸 만한데?

‘그럼 분노 유인원을…… 아, 이미 사냥당했지.’

박종원이라는 놈이 선수를 쳤다.

튜토리얼 첫날에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릴 줄이야.

실력은 나쁘지 않았으니까.

흠, 1주 뒤에 다시 오는 건 상관없지만, 이대로 숲을 나서긴 아쉬웠다.

잠깐, 그러고 보니 숲 안쪽에는 ‘그 녀석’이 있었지.

레인보우 아일랜드에서 한 손가락 안에 뽑히는 난이도의 보스 몬스터, 혈산군.

‘놈을 사냥하면 무공 비급을 얻을 수 있다.’

난 오른손을 쥐었다가 폈다.

원래는 2주 차에 도전하려고 계획을 세웠던 놈이다.

하나 내 능력치는 이미 처음에 상정했던 수준을 월등하게 뛰어넘었다.

그렇다면 무공을 한시라도 빨리 익힐 겸, 도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 한계를 시험해 보자.’

꾸욱.

오른손을 꽉 쥐고는 숲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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