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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4화 (14/300)

14화

[초음파]의 색적 능력은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큼 뛰어나다.

바위 뒤에 서 있어도, 화랑 유망주 팀의 구성원쯤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근접 격수 둘.

원거리 계열 플레이어 둘.

마지막으로 보조 계열 플레이어 하나.

나한테는 원거리 공격 수단이 전무했다.

거리를 벌리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터.

‘일단 가까이 붙는다.’

협상이 결렬되는 순간.

두 다리에 힘을 주고는 [민첩한 뒷발]을 사용했다.

화랑 유망주 파티와의 거리는 약 100미터.

도약 한 번으로 거리가 절반이나 좁혀졌다.

나는 그 기세를 죽이지 않고 육상선수가 달릴 준비를 하듯, 허리를 땅 쪽으로 바짝 붙였다.

“미친.”

박종원의 입에서 튀어나온 욕설.

거의 동시에, 반대 방향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일행인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이 마나를 재배열하는 중이었다.

자식들.

당황하지 않고 바로 마법을 준비하다니.

화랑 길드에서 애들을 제법 잘 키워 놓았어.

[가시 갑피를 사용합니다.]

양팔과 등 위를 감싸는 회색 갑피.

가시 갑피로 몸을 감싼 직후, 화염 화살 두 발이 등과 팔을 가격했다.

화르륵, 갑피의 내구도가 30% 가까이 깎여 나갔다.

“파이어 애로를 맞고도 그냥 달려든다고?”

“말도 안 돼!”

경악 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린다.

아까 한 말은 취소.

나름대로 훈련을 받은 것 같다만, 그래도 초심자 티가 팍팍 났다.

공격이 안 통한다 싶으면 다음 수단을 준비해야지.

“당신의 상대는 나입니다!”

박종원이 왼손에 든 방패를 추켜세운 채, 내 앞을 막아섰다.

[상대가 아이언 월을 사용합니다.]

[대상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방어력이 20% 감소합니다.]

아이언 월은 탑 저층에서 유용한 탱킹 스킬이다.

내 노림수가 마법 계열 플레이어라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제법이잖아?

나는 방향을 틀어서 박종원에게 달려들었다.

빠르게 좁혀지는 거리.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고함을 내질렀다.

“하아아아-!!”

[포효를 사용합니다.]

[반경 20미터 안에 있는 존재는 근력과 민첩이 10% 감소합니다.]

[지속 시간은 20초입니다.]

박종원과 창을 든 플레이어가 몸을 움찔거렸다.

근력‧민첩 페널티는 생각도 못 했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이를 악다문 채로 칼을 휘두르는 박종원.

쇄애액! 곡선의 도(刀)가 내 어깨춤을 노렸다.

죽일 의도는 아니라는 것이군.

공격에 살기가 섞여 있으면 똑같이 해 주려고 했는데.

종원아, 운 좋은 줄 알아라.

나는 발꿈치에 힘을 줘서 빠르게 감속했다.

카가가각! [갑피]로 발바닥을 감쌌는데도 마찰열 때문에 불똥이 튀었다.

한 치 차이로 빗나가는 칼날.

나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퍼어엉-!

말아 쥔 오른손으로 박종원이 든 방패를 후려쳤다.

60대에 달하는 순수 근력 수치!

그걸 300%나 증폭시켰으니, 박종원의 근력 수준으로는 제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크허헉!”

피를 한 사발 토하면서 수십 미터 튕겨 나는 박종원.

방패로 몸을 보호했어도, 충격을 모두 완화시키지는 못한 듯했다.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했으면 한 번에 죽이는 것도 가능했지만, 살기를 안 내비쳐서 형이 봐준 거야.

[아이언 월을 전개한 대상이 자리를 이탈했습니다.]

[구속 효과가 사라집니다.]

아이언 월의 페널티.

사용자가 그 자리를 벗어나면 스킬도 취소된다.

[괴력]으로 박종원을 밀친 것도 그 까닭.

날 얽매던 사슬이 사라졌다.

“파이어 앵클!”

화염으로 된 밧줄이 팔과 다리를 붙들었다.

오호, 박종원이 번 시간을 나름 유용하게 사용했군.

화염 밧줄에 맞닿은 부위가 검게 그을었다.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힘을 쓰면 더…….”

투두둑- [날카로운 손톱]에 마나를 불어넣자, 화염 밧줄이 잘려나갔다.

“힘을 쓰면 뭐?”

마법 계열 플레이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야아압!”

날선 창날이 시야의 사각지대를 노려서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아, 그래. 너도 있었지.

[초음파]를 병행한 덕에 사각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창날이 날아오는 방향을 보지도 않고 왼손으로 낚아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잡은 창대를 확 잡아당겼다.

“으, 으으으?!”

창대를 잡은 플레이어가 홱 딸려 왔다.

휘청거리는 모습이 미끼를 물은 물고기를 연상시켰다.

나는 [가시 갑피]를 전신에 둘렀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가시.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아도 창을 다루는 플레이어를 무력화시키는 게 가능했다.

[디바인 실드]

쩌엉!

우윳빛을 띤 방어막이 근접 격수의 몸에 드리웠다.

간발의 차이로 완성된 디바인 실드가 갑피 위에 솟아난 가시를 막아 냈다.

보조 계열 플레이어의 솜씨였다.

“이대로 끝나진 않습니다.”

[괴력]을 맞고 튕겨 나갔던 박종원도 전장으로 돌아왔다.

금세 태세를 정비하는 팀원들.

“시시하게 안 끝날 것 같으니 다행이네.”

난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 * *

화랑 유망주들은 만만치 않은 적이었다.

전원이 [레어] 등급 이상으로 무장했고, 보유 특성과 스킬도 강력했다.

포식으로 스텟을 올려놓았지만, 아이템 차이로 그 간극도 어느 정도 메워졌고.

하지만.

“끄으으…….”

“쿨럭.”

5분이 지났을 때, 발을 딛고 서 있는 화랑 유망주는 박종원뿐이었다.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은 기절한 지 오래.

나머지 둘도 의식만 있을 뿐, 완벽하게 무력화되었다.

“어, 어찌 그리 잘 싸우는 건지.”

창을 사용하던 플레이어가 비명을 토하듯 쥐어짜 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럴 만하지.

난 다수를 상대하는 게 익숙하거든.

[포식]의 페널티.

괴물 사체의 가치를 0으로 만드는 효과 때문에 홀로 다닌 덕분(?)이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유일한 플레이어, 박종원.

녀석은 발악하듯 칼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합니다.]

갈고리 형태로 뻗어 나온 손톱이 소리장도의 칼날을 붙든다.

서걱- 손톱 끝이 조금 잘려나갔다.

유니크 아이템은 역시 다르구먼.

난 손톱에 마나를 불어넣어서 버텨 냈다.

마나로 손톱을 강화해도 2초 정도나 더 버티려나.

그 정도면 충분해.

동시에, 발을 내디디면서 박종원의 간격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둘 다 팔을 휘두르기 어려운 간격.

이렇게 되면 [가시 갑피]를 두른 내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힐 수가 있었다.

“클럽에서 좀 놀아 봤나?”

몸을 좌우로 흔들기만 해도 박종원의 갑주가 조금씩 손상되었다.

“제, 젠장.”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박종원.

이런 상황은 처음이겠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이란다.

“마나가 다 떨어져서 박종원 플레이어를 도울 수가 없어요.”

보조 계열 플레이어가 울상을 지었다.

회복과 보호막을 몇 번 사용한 후로 마나가 다 떨어져서 손을 놓은 지 오래였다.

반면에 나는 쌩쌩했다.

[포식]이 없어도 체력과 마나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두 [대지모신의 가호] 덕분이다.

땅에서 발을 딛고 있기만 해도 체력과 생명력 회복 속도가 올라가는 신의 권능!

용아병한테서 얻은 스킬, [용의 심장]도 한몫했다.

스킬을 여럿 사용해도 도통 마나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이익!”

이를 악문 채로 나를 밀치려고 용쓰는 박종원.

녀석이 나를 밀어내려고 과하게 힘을 줄 때, 자세를 낮추면서 다리를 걸었다.

“어?!”

박종원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무방비하게 드러난 틈.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된 박종원의 가슴팍에 발을 올렸다.

“몸의 대화를 하려면 실력 좀 더 키워야겠어.”

“크으으…….”

박종원의 눈가가 새빨개졌다.

핏줄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게, 엄청 분한 듯했다.

근성은 마음에 드는데.

이대로는 박종원의 고집을 꺾긴 어려울 것 같다.

여기서 놔주면 다음에 또 1위를 노린답시고 달려들겠지?

흠, 어쩔 수 없군.

튜토리얼에서 사망한다고 실제 죽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2025년도에는 말이지.

그럼 왜 망설이느냐고?

튜토리얼에서 사망 판정을 받으면 플레이어 권한을 박탈당하거든.

복권으로 치면 당첨됐는데 날짜가 지나 버린 셈이다.

뭐, 어설프게 후환을 둘 바에는 손속을 확실히 쓰는 게 낫겠지.

제가 낸 꾀에 당하는 거니 억울해하지는 말라고.

[괴력]으로 박종원의 머리를 노릴 때.

“삐이이익-!!”

고막을 찢을 것 같은 날카로운 소리가 산자락에 울려 퍼졌다.

“이, 이 소리는?!”

“에미리트산 정상에 머물러야 할 괴물이 왜……!”

의식이 남아 있는 화랑 유망주들은 당황한 기색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와들와들 떨리는 손가락.

그 끝에는 붉은 독수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탈론 플레임.

에미리트산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괴물이다.

* * *

탈론 플레임은 딥 슬라임이나 늑대왕 서린 같은 희귀종이다.

다시 말해, 저놈을 쓰러트리면 온전한 정수를 얻을 수 있다는 뜻!

“안 그래도 사냥할 생각이었는데. 제 발로 와 주니 다행이군.”

나는 혀로 입술을 축축하게 적셨다.

안 그래도 슬슬 허기가 지고 있었는데, 희귀종이 모습을 드러내자 뱃가죽이 요동을 쳤다.

“지, 진심입니까?”

“탈론 플레임의 돌진 공격은 강력합니다. 가시멧돼지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고요.”

화랑 유망주들의 얼굴 위로 진한 음영이 드리웠다.

이 녀석들, 아까는 그렇게도 기세가 좋더니 탈론 플레임이 나타나자마자 곧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저 새대가리가 그렇게 강했나?”

“새대가리요? 탈론 플레임은 레인보우 아일랜드에서 손에 꼽히는 플레이어 킬러라고요!”

“돌진 속도가 총알만큼 빠르고, 제지할 방법이 없어서 도망칠 수도 없단 말입니다.”

저 녀석이 그렇게나 고평가를 받던 괴물이었나.

회귀 전에는 신화적인 적들과 싸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일까.

붉은 새 따위는 전혀 두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난 화랑 유망주들을 흘겨보았다.

이미 반쯤 전의를 상실했던 녀석들이었는데.

저 새대가리가 나타나자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나는 박종원을 내려다보았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냐?”

“우리 수준으로는 일격도 못 버틸 겁니다.”

안색을 굳히는 박종원.

쳇- 나는 혀를 찼다.

“흥이 깨졌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시시하다고.”

나는 박종원을 지나치면서 산 위로 올라갔다.

삐이익!

탈론 플레임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날 사냥감으로 점찍은 모양.

박종원이 몸을 일으키더니 내 뒤를 따라붙었다.

“유, 유진호 플레이어! 저 괴물을 혼자 상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왜, 힘이라도 합치자고?”

“이런 말은 우습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돕겠습니다.”

난 싸늘한 눈빛으로 박종원을 흘겨봤다.

“저 새대가리는 내 먹이다.”

“예, 예?”

“끼어들지 말라고.”

이놈 보소.

겁도 없이 보스 레이드에 무임승차를 하려고 해?

박종원에게 눈을 부라린 후, 탈론 플레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순간, 하늘을 배회하던 탈론 플레임이 급강하를 했다.

이글거리는 불꽃이 날개를 휘감는다.

뿔토끼의 수배나 되는 속도로 낙하하는 탈론 플레임.

총알만큼 빠르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저 속도라면 화랑 유망주 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박종원도 막을 엄두조차 내지 못할 거다.

나한테는 안 통하지만.

탈론 플레임이 직선 코스로 날아들 때, 각도를 정확하게 맞춘 후 다리에 힘을 주었다.

[민첩한 뒷발을 사용합니다.]

대각선으로 솟구치는 몸뚱이.

지면을 박찰 때보단 속도가 조금 느렸다.

상관없다.

내가 점프한 건 탈론 플레임의 돌진 타이밍을 뺏으려는 거니까.

[가시 갑피를 사용합니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오른팔을 휘감는 가시 갑피.

그 생김새가 팔뚝을 고정시키는 깁스와 비슷했다.

거의 동시에, 말아 쥔 주먹을 정면으로 뻗었다.

주먹을 휘두른 궤적 끝에는 빠르게 강하하던 탈론 플레임의 머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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