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10화 (10/300)

10화

나는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은 늑대왕의 사체를 흘겨보았다.

“단순한 놈이라서 쉽게 이겼어.”

늑대왕 서린의 전투 능력은 [잊힌 신전]에서 나온 용아병보다 한 수 위였다.

스텟…… 스킬을 봉인당한 용아병.

명색이 탑 상층부의 존재인 만큼 페널티를 덕지덕지 붙여도 전투 센스가 뛰어났다.

반면 늑대왕은 본능대로 움직이는 습성 때문에 더 높은 능력치를 지녔음에도 전투를 벌이는 동안 내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전투에서 밀리면 팔 한쪽을 주고 [산성 피]로 목구멍을 녹여 버릴 생각도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이겼다.

그럼 승자의 권리를 행사해 보실까.

[늑대왕 서린의 정수를 포식합니다.]

[포식한 정수: 100%]

[정수 등급: 일반]

[한 종의 정수를 완벽하게 흡수했습니다.]

[근력 + 5]

[민첩 + 3]

[스킬 - 포효가 추가됩니다.]

[포효]

등급: ★★

분류: 액티브

목소리에 위협적인 기운을 실어서 힘껏 외친다.

*범위: 20미터

*근력 10% 감소

*민첩 10% 감소

*지속 시간: 20초

*60초 후 재사용 가능

오호.

늑대왕의 정수를 얻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회귀 전의 나는 튜토리얼에서 살아남는데 급급했다.

고난이도 보스인 늑대왕을 레이드할 생각 같은 건 못했단 말이지.

‘늑대왕의 어금니를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플레이어들이 늑대왕을 사냥하는 이유.

그건 놈의 이빨 때문이다.

[늑대왕의 어금니]는 도검 계열 무기 제작 재료로 사용되는데, 어금니를 빻은 가루를 사용하면 아이템 등급 및 공격력이 올라간다.

탑 밖에서 팔면 못해도 7억은 받을 거다.

스킬을 얻으려고 억 단위 돈을 태워 버린 셈!

‘이러니까 황금을 똥으로 만드는 능력이라고 욕을 먹었지.’

회귀 전에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걱정하지 마라. 이번 생에서는 그런 식으로 불릴 일이 없을 거다.

20미터라는 광역 군중 제어기.

홀로 탑을 오르기로 결심한 나한테 잘 어울리는 스킬이다.

늑대왕도 사냥했겠다, 평원에서 모을 수 있는 정수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조리 포식했다.

하지만.

튜토리얼에서 꼭 정수만 얻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평원 남쪽으로 내려가면 기초 훈련장이 있는데, 시험을 통과하면 인내심 스킬을 얻을 수 있다.

-얻을 수 있으면 반드시 얻어둘 것을 추천하는 스킬. 이후 탑을 오를 때 어느 계통이든 반드시 도움이 된다.

튜토리얼 스테이지 공략 중 일부다.

[인내심] 스킬이 뭐냐고?

대미지를 입었을 때 경직을 줄여주는 스킬이다.

뿐만 아니라 집중이 필요한 스킬의 경우, 타격을 입었을 때도 사용취소가 되지 않으며 집중 속도도 5%를 줄여 주었다.

튜토리얼 공략에서도 ‘얻을 수 있으면 얻어라’라고 강조하는 유용한 스킬!

근데 왜 저런 표현을 썼는가 하면…….

‘인내심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실버 팽의 영역 안쪽에 있거든.’

평범한 플레이어들은 실버 팽 무리를 상대하는 것도 꽤 용기를 내야 한다.

높은 공격력과 민첩이 강점인 실버 팽.

맷집이 약한 편이기는 하나,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기에 팀플레이의 장점도 퇴색된다.

그뿐이랴, 늑대왕이 살아 있으면 보스 레이드까지 해야 한다.

나도 회귀하기 전에는 튜토리얼 스테이지에서 [인내심] 스킬을 못 얻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튜토리얼 1일 차에 홀로 늑대왕을 사냥했다.

여기서 쭉 내려가면 바로 기초 수련장이 나온다.

평원에 다시 올 일도 없겠다, 두 번 올 것 없이 이번 기회에 [인내심] 스킬을 얻어야겠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실버 팽 영역 깊숙한 곳으로 발을 디뎠다.

* * *

기초 수련장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평평한 땅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있는 건축물.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나무로 된 문을 쭉 밀자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기름칠 좀 해 놓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기초 수련장으로 들어갔다.

수련장 내부는 단출했다.

반들반들하게 기름칠 된 마룻바닥.

그 위로 목각 인형 수십 기가 기묘한 자세를 취한 채로 멈춰 있다.

[현재 당신의 위치는 기초 수련장입니다.]

[기초 수련장에서는 당신의 기량을 테스트합니다.]

[수련장의 난이도를 선택하십시오.]

[쉬움 / 보통 / 어려움]

역시나.

회귀 전의 기억과 다를 게 없는 선택지다.

난이도 별 차이는 보상.

[쉬움]을 골라도 인내심 스킬을 얻을 수 있지만, 더 높은 난이도로 클리어하면 추가 보상이 주어진다.

내 수준이라면 어려움도 그냥 통과 가능하겠지.

“어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난이도를 선택하려고 했다.

시스템의 추가 메시지만 없었다면.

[기초 수련장을 찾은 플레이어의 능력치가 총합 250을 넘었습니다.]

[튜토리얼 스테이지 1주 차에 총합 250을 넘긴 플레이어는 불지옥 난이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어럽쇼.

“불지옥이라고?”

기초 수련장에 불지옥 난이도가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회귀자인 나조차도 모르는 숨겨진 요소!

생각해 보면 1주 차에 능력치 총합 250을 달성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누가 충족시킬 수 있나 싶다.

나야 바벨탑에 들어오기 전부터 [포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가능한 거지.

유명 길드가 적극적으로 도와줘도 저 수치를 달성하진 못할 거다.

‘계획에 없는 일이지만, 오히려 잘됐어.’

나는 망설임 없이 새로 추가된 난이도를 선택했다.

[불지옥 난이도를 선택했습니다.]

[실패 시 기초 수련관의 시험을 다시 치를 수 없습니다.]

[그래도 도전하겠습니까?]

기초 수련관 테스트는 실패해도 언제든지 도전할 수 있다.

반면에 [불지옥 난이도]는 한 번이라도 미끄러지면 수련관 테스트 기회 자체를 박탈당한다.

“오냐. 도전한다.”

페널티가 엄청나다는 건 보상도 짭짤하다는 말!

수련장 난이도를 선택하자, 목각 인형의 동공 위로 기묘한 빛이 아른거렸다.

▶ 서브 퀘스트

기초 수련장 - 불지옥 난이도

▶ 목표: 자신의 그림자와 맞서 싸워 이겨라.

그림자는 플레이어와 동일한 능력치를 지녔으며, 임의로 보유 스킬 중 하나를 복사한다.

자신의 그림자라.

내가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붉은 점액질이 목각 인형의 머리를 뒤덮었다.

액체는 몇 번 꿈틀거리더니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저건 나잖아.”

목각 인형이 취한 형상은 나였다.

퀘스트가 말한 그림자라는 건, 저걸 의미하는 거였나.

목각 인형은 내 얼굴을 베끼자마자 곧장 지면을 박찼다.

20센티 길이로 늘어나는 손톱.

저 목각 인형이 베낀 스킬은 [날카로운 손톱]인가 보다.

“어이가 없네.”

목각 인형의 속도를 보니, 내 능력치까지 베낀 모양이다.

스텟이 같다고 해서 내가 질 것 같아?

후웅! 훙! 목각 인형의 손톱은 연신 공기를 베었다.

직선적이고 단순하다.

내 스텟을 그대로 따와서인지 속도가 제법이지만.

뻣뻣한 관절까지는 어떻게 못 한 건지, 어디를 노리는지 훤히 보였다.

[날카로운 손톱을 사용합니다.]

앞으로 쭉 뻗은 목각 인형의 팔꿈치를 잘라 내고.

휘청거리는 놈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서 목덜미를 베었다.

서걱! 내 모습을 한 목각 인형의 머리가 허공 위로 떠올랐다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가짜라지만 기분이 좋은 모습은 아니군.

다행히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목각 인형의 머리로 돌아왔다.

“이게 끝이야?”

[1분 후에 다음 전투가 시작됩니다.]

[그림자 숫자 - 2]

암, 그래야지.

명색이 [불지옥 난이도]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겁줬으면 그에 걸맞은 테스트를 해야 할 거 아니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각 인형의 몸뚱이에 손을 올렸다.

[포식을 사용합니다.]

[이미 정수 수집을 100% 완료한 대상입니다.]

[대상은 생물체가 아닙니다. 포식으로 체력이나 마나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전투 도중 [포식]으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는 건 불가능했다.

뭐, 나한테는 포식만 있는 게 아니니까.

[대지모신의 가호] 덕분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체력‧마력 회복 속도가 50%나 올라간다.

잠깐만.

‘이미 정수 수집을 끝냈다……?’

난 시스템 메시지를 몇 번이고 곱씹었다.

목각 인형이 복제한 스킬은 [날카로운 발톱], 실버 팽의 정수다.

그런데 말이야.

[원시종의 정수]처럼 미완성된 걸 복제한 녀석이 있다면…….

‘정수를 포식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문득 떠오른 가설.

확인할 가치는 충분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1분 후, 수련장에 배치된 목각 인형 둘이 고개를 돌려서 나를 바라봤다.

머리를 뒤덮는 붉은 점액질.

나랑 똑같이 생긴 녀석이 둘로 늘어났다.

“하아아아아-!!!”

마나를 실은 목소리가 기초 수련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목각 인형 둘이 몸을 움찔거렸다.

[포효를 사용합니다.]

[반경 20미터 안에 있는 존재는 근력과 민첩이 10% 감소합니다.]

[지속 시간은 20초입니다.]

피아를 가리지 않는 너프 스킬.

난 혼자니까 포효를 사용할 때 피아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10%라는 수치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말이야.

막상 실전을 벌여 보면 작은 차이가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

지금처럼.

우드득!

내 ‘그림자’ 둘은 스킬 한번 제대로 못 쓰고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1분 후에 다음 전투가 시작됩니다.]

[그림자 숫자 - 3]

나는 쓰러진 목각 인형 둘한테 포식을 사용했다.

[원시종 - 티라노사우루스의 정수를 흡수합니다.]

[정수 등급: 전설]

[포식한 정수: 1.2%]

이게 된다고?!

“미친.”

난 감탄사를 내뱉었다.

* * *

우직!

목각 인형 하나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났다.

“주님 곁으로 하나 더 갑니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목각 인형을 박살 냈다.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원시종]의 정수를 얻었다.

원시종의 정수는 지구에서만 구할 수 있는데, 멀쩡한 화석이 원체 비싸다 보니 현시점에서 얻기가 불가능했다.

‘이건 완전 기연이잖아.’

전투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인형 중 멀쩡하게 서 있는 건 11기뿐이었다.

아무래도 불지옥 난이도는 기초 수련장에 있는 목각 인형을 모두 박살 내야 끝나는 모양이다.

[1분 후에 다음 전투가 시작됩니다.]

[그림자 숫자 - 11]

일반적인 플레이어였으면 목각 인형이 다섯으로 늘어났을 때 쓰러졌을 거다.

테스트를 치르는 게 나라서 이렇게 멀쩡한 거지.

‘스킬 복사가 오히려 도움이 되었어.’

플레이어는 탑의 초대를 받으면서 보편적으로 특성과 스킬 하나를 부여받는다.

나야, 포식 하나 받고 땡이지만.

튜토리얼을 거치면서 스킬을 얻기는 해도, 5개 정도면 많이 획득한 축에 낀다.

그런데 나는 포식으로 스킬 개수를 미친 듯이 늘려 놨거든.

‘패시브나 주력이 아닌 스킬을 베끼면 의미가 없다는 말이야.’

예를 들면 [용의 심장]이나 [용해]처럼.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도중, 스킬 한번 못 쓰고 본신의 능력으로만 전투를 하다가 박살 나 버린 목각 인형이 꽤 있었다.

대기시간이 끝나자, 수련장에 남은 최후의 목각 인형 무리가 나를 노려보았다.

목각 인형 하나는 돌연 입을 크게 벌렸다.

잠깐만.

-하아아아!

제길.

일순간 중심이 흔들렸다.

목각 인형 하나가 [포효]를 복사한 모양이다.

한데, 다른 목각 인형들도 포효를 듣고는 몸을 움찔거렸다.

“아, 피아 식별 안 되는 줄 모르고 쓴 거냐?”

포효를 사용한 목각 인형 빼고는 모두 너프를 받았다.

내 스텟이랑 스킬 하나를 무작위로 가져오는 건 좋은데 말이야.

“이런 머저리들이 많아 봐야 내 상대가 안 되잖아.”

[민첩한 뒷발]로 지면을 차면서 목각 인형 무리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목각 인형 하나가 가드를 올렸다.

팔뚝을 뒤덮은 회색 갑피.

나는 주먹을 말아 쥐고는 [괴력]으로 갑피를 두른 팔뚝을 후려쳤다.

콰아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목각 인형의 팔이 터져 나갔다.

“아오, 더럽게 아프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양팔을 잃어버린 목각 인형의 경추를 부러트렸다.

갑피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다.

힘만 충분하면 이런 식으로 박살 낼 수 있거든.

관통이나 자상에 강하지만 묵직한 공격에는 내구력이 쉽게 깎인다.

뭐, 정수의 시너지 효과로 단점을 보완할 방법이 있으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고.”

난 [민첩한 뒷발]로 바닥을 찼다.

오른팔이 괴력의 후유증 때문에 후들거렸다.

방금 전에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들이닥치는 목각 인형들.

한 놈은 도움닫기를 하듯 살짝 앉았다가 [민첩한 뒷발]로 내 뒤를 쫓았다.

그래 봤자, 다른 스킬은 없는 거잖아.

나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달려들던 목각 인형을 찢어발겼다.

목각 인형 11기를 모두 박살 내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끝내자.”

우지끈! 최후의 목각 인형을 산산조각 냈다.

▶ 서브 퀘스트

기초 수련장 - 불지옥 난이도를 통과했습니다.

▶ 최초로 불지옥 난이도를 통과했습니다. 보상으로…….

자, 어떤 보상을 줄 거냐?

난 기대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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